꿈을 파는 남자, 한동철 피디

마음이 동해야 기획을 시작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한동철 PD는 늘 하던 대로 해왔고, 지금이야말로 그 초점이 가장 선명한 순간이다.

골드 버튼 롱 코트, 화이트 티셔츠, 카키 카고, 모두 모델의 것. 니트 비니, 노스 프로젝트 by 플랫폼 플레이스.

촬영을 한껏 즐기는 것 같았다. 옷을 정말 좋아한다. 70년생인데, 고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땐 패션 잡지가 많지 않아 을지로나 명동 중국대사관 뒤에 가서 일본 <논노> 구해서 보고 그랬다. 근데 잡지 속 그 옷을 팔지를 않으니 또 신촌 가서 세탁소에 사진 보여주면서 만들어달라고 했다.

PD로서 좋은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 피디는 스스로 관심 있는 것보다 주어진 일을 할 때가 더 많다. 방송국에서는 지금 우리 방송국에 필요한 프로그램, 혹은 지금 유행하는 사회 현상을 리스트업하고 그걸 연령대별로 나누고, 기획 가이드를 준다. PD는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기획을 하고, 공부를 한다. 요새 음식 프로그램이 대세다 싶으면 음식에 대해 공부를 하는 식이다. 근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왔다.

골드 버튼 네이비 코트, 화이트 티셔츠, 인디고 진, 스니커즈, 스웨이드 캡, 모두 모델의 것.

고집 있는 PD였다는 뜻인가? 그보단 대부분의 PD 생활을 엠넷(Mnet)에서 했고, 이런 장르 채널에선 지상파에 비해 자유롭다. 음악 범주에서만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고,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니까 이건 문제없었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 그리고 <프로듀스101>과 <믹스나인>을 거쳐오는 최근 몇 년간의 행보를 보면 한동철 스타일이 명확하 게 보인다. 그건 처음 기획을 흐리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뜻일 텐데….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좀 웃기는 캐릭터의 출연자가 필요한데, 다른 사람이 다 재밌다고 해도 나에게 그 사람이 웃기지 않으면 안 쓴다. 연차가 낮은 피디일 때도 요리조리 피하면서 회사를 설득하고 다녔다. 내가 꽂히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 같은 후배가 내 밑으로 들어오면 나도 싫을 것 같긴 하다. 흐흐. 난 요즘도 “선배님은 나이가 들어서 모르는데 요새 애들은 이런 거 싫어해요” 하면 기분이 되게 나쁘다.

카키 오버올, 면 티셔츠, 니트 워치 캡, 모두 모델의 것.

프로그램 바깥의 의견들을 어떤가? 인기만큼 논란도 많이 따라붙는다. 걱정도 하고,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도 많이 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PD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수없이 닥쳐오는 위기 상황에서 좀 덤덤해지는 것 말이다. 처음 동아TV에 입사했을 때 동기가 80명이었다. 그중에 아직까지 PD로 일하는 사람은 나 하나다.

전에 없던 프로그램, 완전히 새로운 기획이 연이어 성공했다. 비슷하게 모방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길 정도로. 꽂히는 것에 대한 확신만으로 성공할 수 있나? 지금 많은 사람이 내가 성공한 프로그램만 이야기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프로그램이 되게 많다. 정말 많이 망하고 실패한다. 그런 프로그램도 처음엔 내가 꽂혀 있고, 정말 하고 싶다면 회사에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친다. 실패하면 그 말은 거짓이 되는 거고 성공하면 확신이 되는 거다. 사실 <쇼미더머니> 할 때는 누군가를 크게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음악 채널은 늘 다양한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고, 음악 시장 자체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이라면 음악방송 채널 입장에서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얻는 것이 있으니까. <프로듀스101>은 좀 다른 경우다. 2년간 품고 있었던 기획이다. 나중엔 화를 많이 내고 내가 다 책임진다 그러면서 시작했다.

통했다. 그것도 아주 크게. 그것 때문에 PD 하는 것 같다. 내가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그리고 내 생각대로 대중들이 반응하고 환호하면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계속하고 싶다.

카키 오버올, 면 티셔츠, 니트 워치 캡, 모두 모델의 것.

새 프로그램을 만들 때 아이디어와 동력은 어디에서 얻나? 주로 화가 나는 상황에 내가 잘난 척을 하고 싶은 상황이 더해져야 괜찮은 것이 나올 때가 많은데, <쇼미더머니>가 그랬다. 6~7년 전만 해도 아이돌 음악은 힙합 리듬으로 만든 것이 많았다. 엑소의 ‘으르렁’도 그랬고. 아이돌 프로듀서들 중엔 힙합 하는 친구도 많고. 근데 대중들은, 특히 팬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이 뭔지, 그게 어떻게 지금 아이돌 음악과 연결되는지, 지금 알고 있는 힙합이 원래 어땠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내가 되게 맛있는 라멘집을 알고 있는데, 친구가 옆에서 잘 모르는 라멘 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자. 그때 막 얘기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지 않나? 아오, 진짜 라멘은 이건데, 이런 마음인 거다. 내가 아는 힙합 하는 친구들, 이 음악들 진짜 제대로인데, 정작 행사 가면 20만원밖에 못 받고, 이런 상황에 화가 너무 났다. ‘힙합 내가 이렇게 들려주면 너희 완전히 여기 빠질걸?’ 이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물론 ‘이럴 걸?’ 그랬는데 대중들이 ‘아닌데?’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걸?’ 그랬는데 ‘진짜?’ 하면서 열광하면 어우…. 요즘은 사람들이 마이너한 것들에 대한 관심도 많고, 내가 프로그램 만들기 좋은 세상인 것 같다.

지금 시대가? 일한 지 24년 차 정도 되는데, 한 번도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해본 적이 없다. 가족이 둘러앉아 과일 깎아 먹으면서 보는 프로그램은 해볼 생각조차 안 했다. 늘 나는 비슷한 것들만 만들었다. 예전엔 너무 니치한 타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젠 메인스트림이 되고, 힙스터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힙스터 자체에 모순이 생기고, 스타벅스가 트렌드인 세상에서 스타벅스가 촌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이어서 내가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사실 <믹스나인>으로 태어나서 처음 예능 프라임 타임에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난 항상 밤 11시, 11시 반. 오밤중에 하는 프로그램 말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일반인, 혹은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서사와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는 한동철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리얼리티에 되게 심취해 있었다. 예전엔 <아찔한 소개팅>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도 많이 했다. 리얼리티라는 장르 프로그램이 있고, 리얼리티라는 내러티브가 있는데, 후자의 ‘리얼리티’가 요즘 방송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 같다. 이런 리얼리티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때, PD 입장에선 유명인은 재료로 쓰기에 한계가 있다. 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 있고 속해 있는 조직이 명확하면 방송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신인들은 아직 책임감, 부담감이 없다. 그리고 이들이 더 애절하고 진정성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진심을 느낀다. 자극적이다, 선정적이다, 괜히 애들 경쟁 붙인다,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꿈을 가지고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결국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돌 신이, 힙합 신이 더 커지고 더 활발하게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인디고 진 재킷, 팬츠, 스니커즈, 니트 비니, 모두 모델의 것. 가죽 벨트는 RRL.

다만 <쇼미더머니>에서나 <프로듀스101>에서나 누군가에게 부끄럽고 초라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순간이 가혹할 만큼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볼 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재미’라는 것이 좀 잔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솔직히 지리산에 혼자 한 며칠 있다가 이거네! 하고 만든 건 아니다. 다른 프로그램도 쉴 새 없이 보고 끝없이 고민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동철만 해야 해, 이런 뜻은 아니더라도, 물론 지금 유행이라 누군가 내가 만든 걸 모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예능이니까, 예능이야 뭐 어떤 분야의 PD라도 만들어볼 수 있는 거지. 누구라도 만들면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좀 기분 나쁘다. 자존심이 상하는 거고. 드라마보다야 매커니즘이 좀 단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도 내가 만드는 결과물에 싣고 싶은 메시지가 있고, 쏟아붓는 전문성이 있고, 상업적으로 주어진 과제들도 있다. 자극적이라는 논란이 혹시 이런 것에 대한 고려 없이 극대화되는 건 아닌지 속상할 때도 있다.

갈수록 만드는 프로그램의 대중적 파급력이 커진다. 두렵거나 무서울 때도 있나? 그런 건 없다. 나랑 코드가 잘 맞는 시대가 왔으니까 열심히 해서 성공해보자는 생각이 크다. 하하. 6~7년 전에는 나는 마이너한 것과 대중적인 것의 경계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처럼, 앞으로 또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YG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긴 것은 변하는 미디어 상황을 고려한 것인가? 엠넷은 정말 좋은 조직이지만 크리에이터에게 조직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프로듀스101>도 시즌1을 함께 만든 후배 안준영 PD가 시즌2를 맡아서 혼자 했는데 심지어 더 잘되지 않았나? 그러니 엄밀히 보면 이건 내 것이 아니다. 창작자가 플랫폼에 속해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만약 엠넷에 있으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선 아무 거나 할 수 있다. 좀 더 가볍게 움직이고  싶었다. 대중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목 없음-7
화이트 셔츠, 카키 오버올, 카무플라주 스카프, 겨자색 캡, 모두 모델의 것.

<믹스나인>이 심상치 않다. 유난히 눈길이 가는 출연자도 있겠지? 열심히 하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친구에게 당연히 애정이 생긴다. 일부러 게으르고 얍실한 애를 눈여겨보겠어, 하지 않으니까. 내 눈에 띄는 친구는 당연히 대중들의 눈에도 띄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노홍철과 하하, MC몽이 전혀 유명하지 않을 때, 내가 처음 발견해서 띄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캐스팅했을 뿐이지, 누구라도 어떤 PD라도 그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나 내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출연자가 있다고 그게 특혜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 명을 꼽자면…. <믹스나인> 점점 더 재밌어지니까 꼭 시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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