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삶과 연기는 같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7년 모든 여우조연상의 주인공은 김소진 단 한 명이었다. <더 킹>으로 숱한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나, 줄곧 침묵을 지켰던 그가 첫 운을 뗐다.

코트는 프라다, 시스루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한창 <더 킹>으로 주목받을 무렵, 모든 매체의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나요? 생각은 많은데 잘 나누질 못해요. 말도 잘 못하고, 저를 보여주는 일이 쉽지는 않아서…. 연극할 때도 인터뷰를 잘 안 해요. 작품을 위한 인터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이야길 하는 건 편하지 않아서 양해를 구하는 편이죠.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가요? 사람에 따라 달라요.

낯을 가리는군요. 본래 성격을 좀 깨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깨지더라고요. 평소에도 혼자서 시간을 많이 가지고, 친구가 그렇게 많지도 않거든요.

보통 신인들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신중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대중과 밀접한 인터뷰가 처음이어서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영화가 잘되길 응원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제게도 관심이 쏟아져 부담이 됐어요. 소속사가 없으니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 감독님과 이야기 나눴어요. 많은 사람이 소진 씨를 궁금해한다고 하셨고, 저도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나가는데 왜 나라는 사람은 그게 안 될까, 이게 뭐라고 어렵고 힘든 걸까 자책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그게 저인가 봐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아, 눈물이 계속…. 왜 이러지, 오늘? 안하던 말을 해서 그런가.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갑작스러웠나요? 그래서 정말 감사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저다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만약 그 당시에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면, 움츠러든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만났을 거예요.

그런 성향인데 어떻게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는 대담한 사람이 되는 걸까요? 배우로서 모험하는 덴 두려움이 없어요. 반면 인간 김소진은 소극적이죠.

목소리도 여리고 나긋나긋합니다. <더 킹>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안희연 검사의 강한 면모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영화 속 이미지가 많이 강했으니까요. 처음 보는 분들은 제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겠죠? 그런데 전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저에게도 안희연 같은 모습이 있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할 순 없으니까. 지금 절 알게 된 분들은 제가 앞으로 작품 하는 걸 보면서 이런 면도 있었네, 하고 또 다른 모습을 알아가실 거예요.

긴 소매 드레스는 질 샌더.
긴 소매 드레스는 질 샌더.

그만큼 안희연 검사가 잘 만들어진 캐릭터란 이야기겠죠. 그의 센 면모는 통속적인 방식이 아니라 능청을 부리며 기를 꺾는 방식으로 드러나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태수(조인성)에게 신문을 주는 척 슬쩍 뺏고, 태수가 당황하니 픽 웃으며 건네는 사소한 제스처 같은 것들. 그건 즉흥적인 연기였어요. 자연스럽게 나왔죠. 안희연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진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유로우면서도 날카로울 테니까. 한재림 감독은 안희연이 마치 벌처럼, 어디에 머무를지 모르는데 어느 순간 적재적소에 톡 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셨죠. 약간 미친 년 같은. 그 감각이 너무 좋더라고요. 정의로운 여성 검사라고 했을 때 떠오를 법한 관습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좀 더 살아 있고 싶었죠. 그 캐릭터의 중요한 지점은 맞닥뜨린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특히 태수라는 인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 좋네요.

다르다고 했지만, 안희연 검사와 닮은 점이 있다면 뭘까요? 비겁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에요. 반대의 인간형이 버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인간 군상 속에서 묵묵히 제 할 일들을 하는 안희연 같은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굴러간다는 말이 참 와 닿았죠. 전 누군가 혼자라고 느낄 때, 저런 사람이 내 주변 어딘가에 있지, 라고 생각하면 힘이 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저 역시도 그런 사람에게서 힘을 얻었고. 그런 마음으로 안희연을 연기했어요.

<아이 캔 스피크>의 시민 활동가 금주도 정의로운 인물이죠. 이런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어떤 신념이 개입한 결과일까요?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참 많은 큰일을 겪었죠. 세월호 사고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좌절과 분노도 있었지만 거기서 빛도 봤어요. 모두가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구나, 라는 소망을요. 예전엔 항상 될까, 가능할까, 이런 회의가 더 컸어요. 그런데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 발짝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건, 함께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행동하는 분들에 비해선 많이 부족하지만, 그 시간에 동참하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뭘 해야 삶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고민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지네요. 튀지 않는 아이요. 소극적이고 친구도 많지 않고, 평범했어요. 주어진 것만 정직하게 했어요. 꿈도 없었고요.

대학 땐 영상 제작에서 연극 연출로 전공을 바꿨고, 대학원에서는 연기 전공으로 또 한 번 진로를 바꿨어요. 어렸을 땐 별생각이 없었어요. 작은 엄마께서 “소진이는 성격이 꼼꼼하니까 영상 제작과에 가서 편집 일을 해보면 어때?”라고 추천해주셨고, 저는 그냥 ‟네” 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가보니 다들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온 친구들이더라고요. 그들을 보며 방황하다 다시 학교에 가보자, 해서 영화과 편입 원서를 넣으러 갔는데 같은 창구에서 연극과 접수도 받더라고요. 연극? 순간 물음표가 떴어요. 스무 살에 처음으로 연극을 봤을 때, 배우들이 무대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본모습으로 돌아와 커튼콜할 때의 생경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저건 어떤 에너지지? 하고요. 그 자리에서 접수처를 바꿨고, 연극을 하게 됐죠. 직접 해보니 정말 흥미로웠어요. 관객일 땐 프레임 안의 그림만 봤는데, 프레임의 연장선을 보게 된 거죠. 배우가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어, 오늘 저 배우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갑자기 어제와 오늘의 연기가 다르지?’ 하면서. 배우의 고민이 쌓여서 나오는 변화도,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변화도 감동적이었어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죠. 순간순간을 살아야 되는구나, 연극은 삶이라는 말이 이 뜻이구나. 그것이 그냥 내 삶, 내 역사가 되겠구나. 영화와 연극 모두 사랑하게 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무대 위 모습이 아니라, 커튼콜에서의 모습을 보고 연기에 매혹됐다는 것이 흥미로운데요. 인상적인 연기를 보면, 그 배우의 삶이 궁금해지는 순간이 생겨요. 그 삶과 연기는 같이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죠. “사랑해” 한마디가 다르게 들리는 배우가 있다고 해봐요. 저 사람의 삶은 어땠기에, 저 ‟사랑해”란 말이 나에게 이렇게 들리지, 궁금해져요. 그래서 저도 잘 살아야겠다, 다 들키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좋은 생각을 하며 잘 살아야 연기에도 그게 잘 묻어나겠구나. 연기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를 깨게 하고, 깨려고 해도 깨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그렇지만 또 끊임없이 깨려고 노력하는 작업이에요. 결국 그게 배우의 일일 테고요.

트렌치코트는 도나카란 뉴욕, 귀고리는 코스.
트렌치코트는 도나카란 뉴욕, 귀고리는 코스.

김소진은 고요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온 마음과 감각으로 서로를 보는 거죠. 서투른 말보다 마음을 듣는 것. 그게 누군가를 진짜로 만나는 일일 거예요.” 마음은 느리게 개화한다. 때 이른 목련 내음을 맡은 듯했다.

처음에 왜 그렇게 대중들 앞에 나서기 힘들어했는지 이제 이해가 됐어요. 어떤 것이었던 것 같나요?

배우 김소진의 삶 이전에 인간 김소진의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싶고. 이제는 자신의 모습대로 인터뷰에 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인가요? 지금도 전 그래요. 배우 김소진이 아닌 인간 김소진의 삶이 더 중요해요. 때로는 배우 김소진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순간도 있는데 전 그 둘이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배우 김소진 뒤에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보조를 맞추고 싶다 보니 시간이 걸리네요. 나라는 사람이 좀 많이 느리니까.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나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기도 한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좀 답답하겠지만요. 지금은 예전보다 편해졌어요. 잊어버리셨을 수 있지만, 관심을 가져주신 데 대한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매니지먼트가 생기면 어떤 과정들은 수월해질 수도 있을 텐데요. <더 킹> 이후 여러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렇긴 했지만, 저는 그냥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에 집중해야 했고요. <아이 캔 스피크>와 <마약왕> 촬영에 들어갔고, 연극 <라빠르트망>을 했죠. 지금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고 같이 이야기할 좋은 파트너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은 배우 김소진에게 여자 송강호라는 별명을 붙였죠. 배우 송강호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죠. 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에 선배님이 있는 느낌이었달까. 여자 송강호란 말 자체가 저한테 크게 의미 있는 말은 아녜요. 다만 그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면 제게도 변화가 있겠죠.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모습이죠? 자유로웠어요. 그 자체를 즐기고, 매 순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되는 게 지금의 저에겐 가장 큰 목표예요.

이름 한자는 뭔가요? 흴 소에 별 진이요. 아버지가 옥편 찾아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흰 별, 화려하게 빛나는 것보다 은은한 걸 선호하는 김소진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정말 그렇네요. 저, 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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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영화와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