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비엔날레 말고 뭐가 더 있나요?"

“광주에 비엔날레 말고 뭐가 더 있나요?”

2018-03-06T14:05:02+00:00 |ENTERTAINMENT|

빛고을이라는 별칭 이상의 광주를 고민하는 참신한 예술 공간, ‘바림’의 대표 강민형에게 물었다. 광주에 비엔날레 말고 뭐가 더 있나요?

<후방가르드적 착상 2015>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 전시에서 바림은 신생 공간의 ‘쇠락 시나리오’를 보여준 바 있죠. 생각대로 착착 ‘쇠락’했는지요?
<후방가드르적 착상 2015>는 설치, 비디오 작품으로 A부터 Z까지의 알파벳이 표기된 26종류의 원고지 26묶음이 단상에 펼쳐져 있고, 한편에는 싱글 채널 영상이 반복되는 작품입니다. 26종류의 원고지 각각에는 26개의 서로 다른 시나리오가 적혀 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신생공간 ‘바림’이 쇠락하는 다양한 과정이죠. 수년 전 서울에서 신생공간이라 불리는 형태의 전시 공간이 대거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제 현상을 관찰하고, 해당 공간과 인물을 모두 ‘바림’으로 대체해 쓴 시나리오입니다. 당대 미술계에 대한 관찰과 비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작업이지만, 실제 바림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반성적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바림은 발전과 쇠락을 반복하며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전과 쇠락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이 발전이었고 무엇이 쇠락이었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광주는 오랫동안 시각예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도시입니다. 광주 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대표적입니다. 대안 공간이 그랬듯, 새로운 흐름은 기본적으로 제도권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합니다. 바림의 경우 제도권에 대한 비판으로 한정하는 건 너무 좁은 것 같지만, 광주 비엔날레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해 광주의 예술가들이 가지는 의식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또 그것이 바림의 출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요.
저는 광주 출신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13년간 유학생, 직장인, 작가로 생활했으며,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행 차 광주에 갔습니다. 2014년 당시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아직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더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택시 운전사 분이 “저건 새로 짓는 아파트인가?”라고 하고, 지나가던 작가는 “아시아문화? 푸드코드인가?”라고 했습니다. 비엔날레는 물론 잘 알려진 국제 행사였고, 저도 사실 광주 하면 비엔날레를 떠올렸습니다.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처음 왔을 땐 그 뒤에 가려진 광주의 미술신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는 동안 느낀 것은, 국제 미술 도시인 광주가 사실은 지역 작가들과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지역 작가가 아니기에 정확히 그게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지역 예술가에게 뭐든 자리를 하나 줘야한다거나 지역 안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지역 작가도 많더군요.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광주 미술 신은 ‘로컬’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통상 비엔날레가 가지는 국제적인 미술 프레임과는 톱니바퀴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광주비엔날레는 매회 꼭 광주 작가를 넣고,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고, 광주의 인력을 채용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뭔가가 있습니다. 바림은 거기에 딱히 저항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비엔날레와 같은 제도권에 다가설 필요를 전혀 못 느꼈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계속해서 던지고 있습니다. 국제와 로컬은 뭐가 다른가. 그 사이에 계층은 있는가.

한국에서 서울은 수도 이상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지방에서는 서울을 의식합니다. 설사 부정의 방식이더라도요. 바림은 서울을
지켜보면서도 서울 바깥을 고민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바림에게 서울 신과 광주 신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요?

제가 13년 만에 한국을 찾았을 때, 당연하게도 서울에서 좋은 직장을 찾고, 똑똑한 사람들을 만나며, 국제적인 음식을 먹고, 블록버스터 전시를 즐기려 했습니다. 그 후 ‘한국 미술’의 정의나 범주, 역사에 대해 찾아보다가 알았는데, 한국 미술은 곧 서울 미술이었습니다. 지방은 그 지방의 ‘특색’을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지방이라는 말도 차별적이지요)에 실제로 내려가 보니(‘내려’가야 하고요) 그 도시의 특색에 매몰된 작업이 있는가 하면, 서울의 ‘퀄리티’와 별다를 바 없는 작업도 많았습니다. 똑같은 작업이라도 서울에서 발표하느냐, 지방에서 발표하느냐에 따라 매체가 다뤄주는 방식, 양, 내용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작가에게는 “이렇게 훌륭한데 왜 서울에 안 가?”라는 말을 흔히 하고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한다지만, 중앙집권의 중심에 있어야만 ‘퀄리티 있는’ 예술을 할 수 있나, 탈중심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동네가 달라서 다른 게 아니라 서울과 비서울 사이에 계층이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기획자, 공간, 기관 등 촘촘하게 엮인 큰 네트워크의 문제입니다. 대안적 공간은 그게 뭐든 대안을 표방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본능적으로 모색합니다. 그 여러 방향 중 하나가 중심과 변두리였습니다. 중심을 변두리로, 변두리를 더 변두리로 가져가기 위한 역주행을 의식하면서 바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크고 중요한 나머지, 그 밖의 광주는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작가들에게도 광주의 정치적인 맥락이 남아 있는지, 정치적인 맥락을 제거한 광주 예술계의 고유함이 있을지요.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것을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겪은 것과 같이 살아야 하는 후세대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실제로 겪지 않은 세대로서 저는 광주보다 광주 역사가 더 커서 그것에 모든 것이 매몰된 느낌까지 받습니다. 동시대에 탈중심화가 가장 잘 발현되고 있는 것은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매체일 텐데요. 지금 광주의 젊은 작가들 역시 타 지역의 젊은 작가와 다를 것 없이 역사와 문화, 도시를 마주하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뇌 속에 인지한 상태와 같달까요. 마치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정보를 다량으로 입력받고 있는 컴퓨터처럼요.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언어화하는 교육이나 시도가 부족해서 명확한 고유성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체화되지 않은 경험, 머릿속에 떠다니는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 내 신체, 비공식적인 기록을 작품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곧 광주의 고유성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원래 바림의 공간은 고시원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찾아낸 건가요?
눈에 띄었습니다. 눈에 띈 이유는, 고시원이라는 주거 형태가 동시대 한국의 수많은 관점을 이야기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환경과 같은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이 고시원에 집약된 것처럼 보였고, 미술인으로서 ‘레지던시’를 하기에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 살았던 공간에서 살며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실천으로 보였습니다.

보통 장소적 특성은 처음에 두드러지고 이후부터는 희미해집니다. 바림은 최초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이후에 어떻게 이어나가고 있는지요.
고시원은 다양한 형태로 쓰였습니다. 작업실, 퍼포먼스, 영상실, 설치 장소, 촬영 장소…. 처음엔 고시원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 많다가 (공간 특정적 예술) 점점 예술가의 작품으로 덮이면서 고시원의 모습을 잃고 예술 공간화되었습니다. 2017년 초에는 바로 앞의 ‘일반적인’ 건물로 이사했고요. 저희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사정상 그렇게 되었고, 현재는 고시원이 아닌 곳에서, 리서치 중심의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식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바림의 실제 위치가 바림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바가 있는 듯합니다.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와 아시아문화전당 옆. 공공/ 민중 미술과 엘리트 미술, 그 양쪽에 면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길이겠습니다. 바림을 한국 미술의 구도 속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로 규정하고 있는지요.
그곳에는 완성품이 즐비합니다. 작업 과정이나 실패보다는 예쁜 프레임에 걸린 그림과 수억이 들어간 설치물이 몇 년간 전시됩니다. 물론 저도 그런 걸 보며 즐길 때도 있습니다. 누구든 잘 정리된 언어와 사상을 읽으면 즐겁지요. 모두에겐 자신의 일이 있으니까요. 대안 공간으로 태어난 바림은 그와 반대되는 과정 중심적 작업을 선보이고 있고, 따라서 그들과 다른 결을 가지지만,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다 보니 숙명적으로 그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과정 중심, 실패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바림은 공공성보다는 작가 자신이 강조되기 때문에 옆 기관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공미술과도 거리가 멉니다. 민중미술도 반항적이고 비판적이라는 면에서는 크게 통할 수 있어 보이나, 광주의 민중미술은 역사가 길고 그 계통이 있기 때문에, 역사와 계통을 가지지 않는 (못하는) 바림의 색깔과는 다릅니다. 여러 대치되는 구도 속에서 바림이 가지는 성질은, 크게 말하면 ‘현대’ 미술 같습니다. 포스트 모던적 시각으로 근대성을 비춰보고 그 비춰진 상에서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찾으려고 합니다. 감성, 경험에 기반한 작업보다는 리서치 중심의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현대 미술의 성향을 보여주는 한 가지 특징입니다.

바림은 유연해 보입니다. 딱히 시각예술이라고 한정짓기 어려운 예술 전반을 다룹니다. 심지어 다양한 창작자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기획자, 기술자의 입장에서 진행한 프로그램도 보입니다. 바림은 ‘시각 예술 중심의 공간’ 이상인가요?
시각 예술을 하면서 그 이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합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나 기반은 미술입니다. 현대 미술은 미술 외의 재료, 장르, 사람들을 끊임없이 미술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공연자 중에서 무대의 정형적인 서사와 표현법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최근 미술의 영역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커뮤니티 아트, 미디어 아트 등 기존에 미술이 아니었던 것이 계속해서 미술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 확장된, 확장되려 하고 있는 영역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미술이라고 봅니다. 큐레이터, 기획자, 기술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크게는 미술, 시각 예술입니다. 좀 더 후에는 미술이 아닌 장르도 선보이면 좋겠는데, 페미니즘, 신자유주의, 인공 지능 같은 주제도 충분히 미술이 되어가고 있어서, 미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작품 이상으로 문제의식이 선명히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것이 아티스트-런-레지던시의 특징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일반적인 기획 전시에서는 문제의식보단 기획-편집이 더 잘 보일 테니까요.
아티스트는 ‘왜’ 자신이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를 관객에게 설명하는 데 능숙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술가가 우리와는 너무 다른 어떤 천재적인, 잠재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예술적 표현을 할 자유가 있으며, 예술 표현에 정답은 없으며, 예술가에게서 완벽하고 빛나는 천재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가 ‘왜’ 그것을 하려고 했는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재단이나 기관이 기획하는 것에는 이 부분이 많이 간과됩니다. 아티스트-런-레지던시에서는 모두가 아티스트고, 때에 따라서는 비슷한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고 유일무이한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왜’ 하는가. 왜 ‘이런 식’으로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아티스트 사이에서 가능하며, 구조적으로는 아티스트-런-레지던시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완성보다는 과정, 토론에 중점을 둔다”는 것, “시민의 공동체를 조성하고, 리서치를 통한 예술 교류를 지원한다”고 바림에 대한 소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림을 완성작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한 공간으로 상정하는 뜻을 묻고 싶습니다.
광주에도 ‘갤러리’ 나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단 곳이 많습니다. 바림은 여러 소개나 이름에서부터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죠. 애초부터 갤러리가 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림을 걸고 그림을 팔고 그 수익을 나눠 가지는 갤러리의 구조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객과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에게 스트레스입니다. 그 스트레스 속에서 예술가가 왜 이것을 하는가, 내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기를 기대합니다. 관객에게도 힐링이나 문화생활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위해 미술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정치인이나 공적 인물의 발화만큼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정과 토론에 중심을 두는 것은 그 생태계를 만들려는 목표와 연관돼 있습니다.

새로운 것과 유지하는 것은 서로 상충된다고 뭇사람들이 말하고, 실제로 그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한 사례는 매우 드물어 보입니다. 바림이 어떻게 끝날지 그리고 계십니까? 다만 이제는 유지를 위한 그림일까요?
바림이 끝나는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할수록 더욱 잘 그려집니다. 바림과 같은 고민, 역할을 하는 젊은 세대들이 더 큰 판을 벌려 미술계를 뒤흔들면 자연스레 끝날 겁니다. 미술계 자체가 유지한다기보다는 계속 파괴하고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의 판도나 그림이 유지될수록 미술은 제 기능을 잃습니다. 창조적 파괴를 지속해야 미술에서 더 다양한 시도가 나옵니다. 미술계의 이 큰 흐름 속에서 바림은 매우 작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꼰대’가 되면 꼭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