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가 지은 건축물 8

패션 브랜드가 지은 건축물 8

2018-04-05T10:48:21+00:00 |ENTERTAINMENT|

도시의 풍경은 건축물이 좌우한다. 오래됐거나 새로 지었거나, 새삼 지금 다시 얘기하고 싶은 패션 하우스 8곳을 추렸다.

 

1 Oma’s Fondazione Prada in Milan
“건축은 느린 작업이다. 실제로 건물이 완성되기까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패션은 그동안 훨씬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속도가 다른 두 분야 사이에서 발생하는 묘한 긴장감이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줬다.” —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 OMA

문화 예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우치아 프라다의 지휘 아래 렘 쿨하스는 밀라노 남부 공업 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양조장을 초현실적인 복합 예술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들은 오래된 공장과 창고, 실험실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더해 3천 평이 넘는 드넓은 부지에 아주 특별한 건축물을 세웠다.(건물 한 동은 아예 24캐럿 금박으로 뒤덮었다.) 여기엔 각종 전시와 예술 공연, 행사와 강연을 위한 공간, 심지어 웨스 앤더슨 감독이 직접 디자인한 카페와 극장도 있다. 또 건물 곳곳엔 로버트 고버 Robert Gober와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까지 설치해놓았다. 예술을 향한 미우치아 프라다의 애정에는 한계가 없다. 그녀는 폰다지오네 프라다라는 넓은 마당에서 자신의 열정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

 

2 Herzog & De Meuron’s Prada Aoyama Store in Tokyo
“창조적인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건축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프라다는 늘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을 ‘프라다답다’는 수식으로 정리한다. — 자크 헤르조그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프라다 스토어는 기술적 완성도와 미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건축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름모꼴 골조와 프레임을 타고 둥그스름하게 굽은 유리 외관. 모든 면면이 실로 초현대적이다. 반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프라다의 컬렉션은 복고와 21세기적인 독창성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공간은 패션과 건축, 과거와 미래, 실용과 디자인적 욕망이 결합된 거대한 교류의 장이다.

 

3 Ando Tadao’s Armani Teatro in Milan
“아르마니 테아트로는 거대한 건물이지만, 어떤 겸손함도 갖추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처음부터 ‘단순하면서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건물을 개조할 때는 그 건축물이 처음 들어선 순간을 상상해보곤 한다. 건축은 시간의 스펙트럼 안에 존재하니까. 좋은 건축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는 철이나 콘크리트처럼 무거운 소재를 흥미롭게 변형시킨다. 게다가 그는 빛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건축가다. 빛이야말로공간의 성격과 분위기를 결정짓는 기본 재료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조르지오 아르마니

안도 다다오는 네슬레 초콜릿 공장이었던 낡은 건물을 아르마니의 초대형 런웨이로 바꿔놓았다. 독학으로 건축을 익힌 이 천재적인 건축가는 미니멀한 콘크리트로 아르마니 디자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을 완성했다. 아르마니 테아트로는 얼핏 텅 빈 벙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극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의 골격과 표면, 장식에 사용한 콘크리트는 실크처럼 부드럽게 마감했다. 채광을 세심하게 고려한 구조는 또 어떻고. 영적이고 종교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의 건축물은 극적인 웅장함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그가 만든 건물은 때론 숭고하고 엄숙해 보이기도 한다.

 

4 Laurent Deroo’s A.p.c. Store in Los Angeles
“소재에 대한 감각과 세부에 대한 취향, 형태를 정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합리성…. A.P.C.의 이런 요소들은 내 디자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미니멀하지만 따뜻한 것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 로랑 데루

단정한 셔츠와 빳빳하게 풀을 먹인 듯한 데님으로 유명한 A.P.C.는 어느새 전 세계에 63개 매장을 거느린 거대한 브랜드가 됐다. A.P.C.의 거의 모든 매장을 설계한 사람은 로랑 데루. 2001년부터 A.P.C.와 일해온 이 프랑스 건축가는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작업, 동시대적인 흔함과 지나치게 레트로적인 것 어느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스타일로 A.P.C.의 세계를 완성한다. 그는 미묘하게 다른 재료를 사용해 공간의 쓰임과 목적을 구분한다. 특히 밝은 톤의 원목과 탁 트인 공간을 선호하는데, 이는 그가 존경하는 핀란드 건축의 거장 알바 알토 Alvar Aalto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인테리어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우아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로랑 데루가 만든 공간은 장 투이투가 만든 A.P.C. 옷과도 참 닮았다.

 

5 Asa Studio’s Thom Browne Flagship Stores in London & Milan

“톰 브라운은 옷의 비율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는 그것이 패션계에서 얼마나 혁명적인 사건이었는지 기억한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건축은 비율이 전부이기 때문에.” — 플라비오 알바네즈, ASA 스튜디오.

밀라노와 런던에 들어선 새로운 톰 브라운 플래그십 스토어는 그가 만든 독특한 비율의 수트를 처음 봤을 때처럼 조금 낯설다. 럭셔리와 실용이 장르를 넘나들며 뒤섞여 있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고전과 모던한 아름다움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매장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톰 브라운이 직접 정했다. 테라조 타일과 형광등 조명, 가로결의 블라인드 역시 그가 손수 고른 것이다. 톰 브라운은 옷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인테리어에도 까다로운 디자이너니까.(자신의 맨해튼 아파트에 1960년대에 만든 군용 간이침대를 고수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이 모든 요소 덕분에 매장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보험회사 사무실을 연상시키고, 때론 코엔 형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밀라노와 런던 플래그십 스토어는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의 매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 하지만 아담하고 소박한 매장이어서 오히려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6 Peter Marino’s Louis Vuitton Place Vendôme Store in Paris
“우리는 이 작업으로 프랑스의 역사와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18세기의 전통 기술을 많이 사용했다. 창틀에 끼운 유리 한 장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 모양이 다 다르다. 옛날 것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불완전함을 최대한 구현하고 싶었다.” — 피터 마리노

루이 비통의 새로운 매장이 방돔 광장에 들어섰다. 쥘 아르두앙-망사르 Jules Hardouin-Mansart가 1714년 만든 바로 그 역사적인 건물에. 루이 비통은 160년 전 이 근처에서 파리 귀족들을 위한 가방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니 다시 방돔 광장으로 돌아온 건 이들에게 굉장히 뜻 깊은 일이다. 피터 마리노는 이를 위해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건물을 합치고, 상점과 미술관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공간을 완성했다. 모두가 탐내는 스피디 백은 애니 모리스 Annie Morris를 비롯한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과 나란히 진열하고, 그 옆으론 루이 비통의 클래식 스티머 트렁크를 배치했다. 파리다운 화려한 외관과 매끄럽고 현대적인 내부. 대조적인 두 요소가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처럼도 보인다. “현대적인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절묘한 균형, 그것이 바로 파리의 진정한 모습이다.” 피터 마리노는 이렇게 말했다.

 

7 David Chipperfield’s Valentino Flagship Store in New York
“발렌티노는 건축을 인테리어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 공간은 패널과 인위적인 장식을 줄여 건축을 표면이 아닌 건물 내부에 집중할 것으로 정의했다.” — 데이비드 치퍼필드

뉴욕 5번가에 문을 연 발렌티노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어가보면 쉽게 입을 다물 수 없다. 바닥과 벽, 계단, 천장까지 큼지막한 테라조 타일을 발라놓았으니까. 지금까지 속삭이는 듯한 건축물을 만들던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아예 새로운 인테리어와 디자인으로 현기증이 날 만큼 근사한 공간을 완성했다.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는 색깔을 한 가지로 제한한 대신, 두 종류의 테라조 타일을 사용해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동시에 구현한다. 매끈하게 다듬은 외관은 바로 옆 파크 애비뉴에 그 유명한 시그램 빌딩을 세운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에 대한 오마주다.

 

8 Studio Sofield’s Tom Ford Stores in New York & Los Angeles
“톰 포드 매장은 모던하지만 결코 미니멀하지 않다. 아낌없이 쓴 대리석과 마카사르 흑단, 꼼꼼하게 바른 광택제와 손으로 짠 카펫까지. 매장 안의 모든 것이 호사스러움을 표방하며 옷을 돋보이게 한다.” — 윌리엄 소필드

가끔씩 엉뚱할 정도로 기발하지만 때론 갤러리만큼 엄숙하기도 한 요즘 패션 업계에서 톰 포드는 언제나처럼 풍성한 물성으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모헤어 소파와 앙고라 카펫, 고급스러운 벽난로와 황동 거울…. 그가 만든 왕국엔 이런 호사스러운 상징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샴페인을 건네주는 상상 속의 탈의실도 톰 포드 매장에서만큼은 현실이 된다. 단순히 인테리어만 고급스러운 게 아니라, 점원 한 사람까지 섬세하게 조율한 톰 포드식 판타지. 이곳은 상스러운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 이상적 공간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좋은 점은 당신이 이 모든 걸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