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IL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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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T15:05:10+00:00 |ENTERTAINMENT|

이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야생 동물은 로메인 피치 덕에 목숨을 구했다. 그는 야생과 다름없는 극한의 수술실에서 그동안 몇천 마리의 친구를 살려냈다. 혁신과 교훈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2012년, 보호 자선 단체 ‘프리 더 베어스’는 흔치 않은 질환에 시달리는 동물의 진료를 로메인 피치에게 의뢰했다. 작은 키에 염소 수염을 기른 피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야생 동물 외과의사다. 반팔 수술복을 입으면 드러나는 근육질의 팔은 수달의 뒷다리를 닮았다. 복강경 또는 열쇠 구멍 수술(최소 침습) 전문가인 그는 기린과 타란툴라, 펭귄과 개코원숭이, 코끼리거북과 상어를 수술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다른 수의사들이 꺼리는 동물도 맡는 터라, 담석증으로 고생하는 호랑이나 골골한 비버를 발견하면 피치에게 맡기면 된다.

‘프리 더 베어스’의 최고 경영자인 맷 헌트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수의사는 많지만 로메인은 정말 독보적입니다.” 그런 그가 의뢰한 동물은 참파라는 이름의 아시아흑곰이다. 가슴팍의 흰색 반달 모양 무늬 때문에 반달가슴곰이라 불리는 아시아흑곰은 담즙과 발바닥, 뼈를 쓰는 아시아 전통 의학 탓에 멸종 위기에 처했다. 특히 업자들은 곰을 양식장의 좁은 철창에 가둔 채, 수술로 담낭에 삽입한 카테테르를 통해 담즙을 뽑는다. 그 탓에 많은 곰이 노출된 상처와 감염으로 죽었다. 결국 지난 10년 동안 반달가슴곰의 개체수가 30퍼센트나 줄어 국제자연보호연맹의 멸종 위기종으로 등재됐다.

1993년에 설립된 ‘프리 더 베어스’는 라오스나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구출된 담즙 곰(반달가슴곰 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위기종인 말레이곰, 느림보곰)의 보호소를 운영한다. 2010년, ‘프리 더 베어스’는 피치가 일하는 에딘버러 동물원에 구출된 말레이곰 두 마리를 기증하고 그 대가로 재정 지원과 피치의 진료를 받았다. 피치는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서 지역 수의사를 교육하고, 구출된 곰에게 세계 최초로 담낭 제거 수술을 시행했다.

참파는 보통 곰이 아니다. 새끼 때 구출되어 라오스의 ‘프리 더 베어스’ 보호소로 옮겨진 그는 두개골이 찌그러졌고 눈도 잘 안 보인다. 다른 곰이 서로 어울리는 것과 달리 참파는 자기 우리 안에 틀어박혀 고통에 시달리는 듯 머리를 숙이고 어정거렸다. 피치는 드문 증상이지만 뇌척수액이 두개골에 차 뇌손상을 일으키는 뇌수종을 의심했다. “다른 나라라면 참파의 안락사를 권할 것입니다”라고 헌트는 말한다. 하지만 국교가 불교인 데다가 담즙 수출에 대처하고자 제정한 보호법이 엄격해, 설사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더라도 안락사를 시킬 수 없다. 그래서 헌트는 피치에게 자문을 구했다.

수의사는 일반 병원에선 상상하지 못한 제약에 시달린다. 코끼리를 MRI에 넣고 진단할 수 없는 것처럼 일단 규모가 인간과 다르다. 기질도 다스리기 어렵다. 호랑이가 수술대에서 깨어났다고 상상하면 쉽다. 위험해질 수 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압박을 받는다. 애완 고양이나 개를 위한 최신 수술에는 몇천에서 몇만 달러의 돈이 들 수 있다. 반면 야생 동물을 위한 자선 단체(심지어 멸종 위기종을 보살피는 곳조차도)는 그보다 적은 연간 예산으로 운영된다. 더군다나 종종 보호소나 야생 동물 보호 구역 같은 야외에서 수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이럴 땐 살균 수술장이나 안정적인 전력 공급 같은 일반적인 동물원의 여건조차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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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는 어떤 상처라도 잡아 뜯을 겁니다. 그래서 열쇠 구멍 수술이 꼭 필요하죠.” 피치가 설명했다.

“라오스엔 돈이 없어요”라고 피치는 내뱉듯이 말했다. “나라 전체에 MRI 스캐너가 없습니다. 심지어 인간을 수술할 여건도 못 돼서 돈이 있으면 태국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곰의 뇌수술은 전례도 없다. 참파의 경우라면 확진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가장 가까운 인간 병원에서는 곰의 엑스레이 촬영 의뢰를 거절했다. “로메인과 수술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만, 6개월 동안 본격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피치는 돌파구를 찾고자, 연구 목적으로 포유동물의 두개골을 보관하는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에서 어린 암컷 반달가슴곰의 두개골을 빌렸다. 그리고 먼저 두개골을 엑스레이로 촬영한 뒤 사진 측량으로 디지털 3차원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뇌강에 라텍스 고무를 한 켜 부어 굳힌 뒤 소석고를 부어 곰의 뇌 공간 모형을 만들어냈다. “이를 다시 사진 측량을 거쳐, 두개골 속에 뇌를 넣으면 최종적인 모형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쉬운 일이라는 듯 피치가 설명했다.

그리고 나에게 디지털 모형을 보여주었다. “사람이라면 전두부로 접근해 수술하겠지만 곰은 큰 비강 탓에 틈이 커 후두부로 접근해야 합니다.” MRI 없이 참파의 뇌를 시각화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피치는 태아 초음파 진단을 응용했다. “수술을 위해 작은 구멍을 뚫고 초음파 스캔용 젤을 넣으면 시각화가 가능해집니다. 인간이라면 MRI 스캐너를 쓰면 되니까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겠죠. 동물이라 접근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연습을 위해 피치는 포르말린에 담긴, 뇌수종을 앓은 붉은여우와 유럽족제비의 뇌를 입수하는 한편 인간 신경외과에 자문도 구했다. 그리고 늘 협업하는 마취 수의사인 조나단 크랙넬에게 도움을 청하고, 에딘버러 동물원의 수석 수의간호사인 도나 브라운과 함께 여섯 시간짜리 수술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그렇게 최대한 준비를 마친 뒤 2013년 2월, 장비를 챙겨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로메인 피치는 언제나 작고 연약한 것들을 좋아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자란 그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프레토리아 남자 고등학교(일론 머스크가 졸업한)에 다닐 때 둥지에서 떨어진 비둘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비둘기를 잘 보살펴 놓아주었죠. 이후 몇 주 동안 저를 찾으러 교정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프레토리아 수의과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국의 런던 동물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인간 의학에 비해 수의과 수술이 너무 낙후되어 충격을 받은 그는 곧 복강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은 관에 담긴 수술 도구를 몸에 집어넣고 카메라와 광원에 의존하는 수술이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수의과 복강경 수술을 시도한 사람이 저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을 겁니다.”

오늘날 그는 수의대에서 복강경 수술법을 강의한다. “그는 늘 지식을 탐구하고 세부사항을 놓치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거나 발견하려고 애씁니다”라고 런던 동물원 수의과장인 닉 마스터스는 말한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돈이 없는 데다가, 인간보다 예후가 훨씬 좋아야 수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죠”라고 피치가 이어서 설명한다. 곰처럼 똘똘한 동물이라면 손이 닿는 족족 봉합선을 뜯어버릴 것이다. 원숭이의 부러진 팔을 맞춰놓으면 바로 나무에 매달릴 것이다. 각 종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문제가 벌어진다. “인간이라면 수술 후 몇 주 동안은 수영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버라면 수술을 받고 그날, 혹은 다음 날 물에 돌아가겠죠.”

국립 야생 동물 구조 센터는 에딘버러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피시크로스에 있다. 2017년 6월, 나는 피치와 스코틀랜드 동물보호협회(SSPCA)에서 운영하는 이 구조 센터에 방문했다. 피치는 이 센터와 에딘버러에서 일하는 한편 출장 수술도 한다. 그가 2010년 합류한 이래, 센터는 영국 최대 규모의 야생 동물 재활 허브로 성장했다.

SSPCA는 매일 야생 동물 사고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 물론 동물끼리 상해를 입힌 경우도 있지만, 인간에게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보를 받으면 구급차가 출동하고, 오후 늦게 센터로 돌아와 사고를 당한 동물을 입원시킨다. 반려동물 전문 수의사라면 고양이나 개 위주로 진찰을 하겠지만 야생 동물은 사정이 다르다. 동물원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받지만 빈도가 잦지는 않다. 무척추동물을 제외하고도 스코틀랜드 왕립동물학회는 1년에 7백30종의 동물을 받았다. 반면 구조 센터는 2016년 9천3백 건의 동물 치료를 기록했으며, 2018년에는 1만 건이 넘을 것이라 피치는 예상한다.

 

2011년 7월, 피치가 에딘버러 동물원에서 호랑이 성체를 수술하는 광경.

저층 벽돌 건물과 동물 우리가 모여 있는 센터는 작은 포유동물, 큰 포유동물, 바다표범과 물새, 조류의 네 병동으로 나뉜다. 각 동이 연결된 복도에는 동물의 울부짖음과 까악거림이 가득하다. 그리고 애완동물 전문점의 배변통을 비울 때처럼 날카롭고 톡 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피치가 볼 수 있도록, 각 구역에는 입원 동물의 현황이 적인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취재 당일에도 새 병동에만 딱다구리, 솔잣새, 갈까마귀, 까마귀, 개똥지빠귀, 지빠귀, 푸른박새와 박새, 황금종려새, 되새, 피리새, 물수리, 댕기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황조롱이, 꿩, 그리고 부엉이 몇 종류가 치료 중이었다.

몰려드는 동물 덕분에 피치는 새로운 치료 방식을 개발할 수 있었다. 센터에서 막 일을 시작했을 때, 아내 욜란다(에딘버러 대학의 동물 심장외과 전문의)가 출장 중이면 그는 밤 늦게까지 시체를 해부하며 각 동물에 적응하는 한편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했다. “그처럼 많은 동물을 치료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죠.” 브리스톨 수의과 대학의 클라우디아 하틀리는 말한다. “종을 불문하고 치료를 맡기 전에 전례를 찾아봐야 하는데요, 개별 종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요. 특히 멸종 위기종이면 더 심하죠.”

작은 포유동물 병동에서 피치는 익은 아보카도를 만지듯, 손끝으로 섬세하게 고슴도치를 촉진한다. 낡은 수건을 척추 주변에 걸치고 두 손을 오므려 받쳐 든 뒤, 배를 만져 느낌을 확인한다. “내장의 두께를 느낄 수 있어요. 부은 조직을 느낄 수 있죠. 부은 내장은 압축이 안 되는 똥과는 다릅니다.” 그는 아마도 고슴도치를 1만 마리쯤 진찰해서 이렇게 촉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테리아, 골절, 심지어 희귀한 풍선 증후군(손상된 성문 탓에 고슴도치가 비치볼만 하게 부풀어 오르는)도 다뤄보았다.

그의 남아프리카 억양은 원래도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동물을 진찰하면 한층 더 부드러워진다. 야생 동물은 인간의 존재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으므로 그는 이를 최소화하는 진찰법을 개발했다. 그 결과 상대방을 이끌며 춤추 듯 우아하게 움직일 수 있다. 머뭇거리지도 서두르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만큼만 동물을 들고 만진다. “그들은 인간이 이런 식으로 들고 있으면 마치 포식자의 입에 물린 것처럼 느낄 겁니다”라고 피치는 말한다. 영국 내에서도 위협 받는 동물이 많은데, <플래닛 어스>에나 나올 법한 멸종 동물이나 주목받는 사실이 슬프다. “매체가 좋아할 법한 큰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을 뿐이죠”라고 그는 덧붙였다.

피치는 고슴도치의 염증에는 항생제인 베타목스를, 백선에는 항진균제를 처방했다. 모두 간호사가 처리할 것이다. 할 일은 또 있다. 척추 파열로 의심되는 토끼는 엑스레이를 찍어보아야 하고, 저스틴이라는 이름의 비버는 복강경이 필요하다.

물론 SPCCA의 예산도 넉넉지 않다. 하지만 일을 거듭해가며 피치는 필요한 장비를 조금씩 갖췄다. 그는 삼성 텔레비전과 기록장치 및 예비 모니터 역할을 맡는 아코스 mp3 플레이어로 만든 내시경 장비를 보여주었다. “이베이 덕을 톡톡히 보죠”라고 그는 자랑스레 웃으며 말했다. 한편 민영화되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미국 병원에서도 쓸모 있는 장비를 많이 구할 수 있다. 그의 책상에는 수업에서 쓰는 고프로 카메라와 털을 깎을 때 쓰는 필립스 전기면도기가 널려 있다. 휴대용 엑스레이 촬영기와 초음파 진단기도 있다. “수의학용은 엄청 싸졌습니다”라고 피치가 설명한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의 부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에) 수의학용으로, 특히 소의 진찰에 쓸 것이라고 말하고 입수하지만 사실은 선택적인 낙태용 수요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장이 영향을 받는 상황이죠.”

한쪽 벽의 선반에는 ‘인간 병원 땡처리’를 통해 구한 봉합선, 스크럽, 거즈 등이 있다. “전부 유효기간이 지난 영국 의료보험(NHS)의 물품입니다. 인간에게는 쓸 수 없지만 여전히 멸균 처리되어 있어 동물에게 쓸 수 있죠. 뿐만 아니라 NHS에서는 돈을 들여 소각 처리해야 합니다.” 대신 그는 병원에 협조를 구하고 센터로 가져와 쓴다. 마지막으로 피치는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인 프리핸드 수술 로봇을 시연했다. 추가 수술 도구를 쥐고 피치가 머리에 단 센서로 조작하는 것이다. “출장에서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이들과 수술을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유용합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수의사는 많지만 로메인은 독보적입니다.”

그의 장비는 “일을 잘할 수 없어 느끼는 좌절감”의 결과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여전히 자리가 잡히지 않는 분야의 현실도 반영한다. 동물 수술 장비 시장에는 별게 없어서, 수의사들은 인간 의학용 장비를 응용 또는 개조해 쓴다. 피치는 직접 디자인한 수술 장비를 포함한 네 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또한 한 의료 업체에도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자문을 제공한다.

코끼리는 너무 커서 부검에만 30명이 꼬박 하루를 매달려야 한다. “포획된 코끼리는 충분히 걷지 못해 관절염에 걸리기도 합니다”라고 피치는 말한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찍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그렇듯 안경을 쓰고 볼 수 있는, 간단한 3차원 이미지 기술을 발견했다. “코끼리 다리의 엑스레이를 찍어서 평면을 살짝 움직인 다음 뜸을 들이죠.” 그리고 이미지를 무료 소프트웨어에서 끼워 맞추면 짠! 하고 3차원 엑스레이가 된다. 그는 수의과 학생들과 이 기술을 시험해보고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결과는 올해 안에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아이디어 내기를 좋아합니다. 쉽고 간단하게, 그리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언제나 있어요. 굳이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되는, 싼 방법도 찾을 수 있죠.” 예를 들어 내시경 수술 전에 시술자는 김이 서리지 않도록 장비의 온도를 미리 올려야 한다. “NHS라면 몇천 파운드짜리 기기를 사주겠지만 솔직히 말도 안 되게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치는 손난로를 쓴다.

멸균 장비가 없다면? 전자기기 전문점의 쓰레기 봉투에 파라포름알데히드 정제를 녹이면 충분하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랩톱 소프트웨어로 손질하면 사진 측량도 비교적 싸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든 3차원 이미지를 PDF에 담아 국외로 보내 외부 의견을 얻는다. “사람들은 제가 괴짜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비이성적인 인간이 발전을 이끌어낸다’라는 말이 있어요”라고 피치는 설명한다.

참파의 수술은 출발이 좋지 않았다. 열쇠 구멍 수술에는 장비가 움직이고 볼 수 있도록 체내 공동을 부풀리는 흡입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피치와 크랙넬이 라오스의 구호 센터에 도착해보니 흡입기와 호환되는 이산화탄소 실린더가 없다는 점이었다. 센터는 루앙 프라방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국립공원 숲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생맥주를 파는 바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루앙 프라방에서 케그가 배달됩니다. 그 바에서 ‘괜찮아요, 닷새 동안 생맥주를 안 내면 되죠’라고 결정을 내린 거예요. 바에서 기증한 이산화탄소에 호스를 연결하고 집게로 그럭저럭 고정시킬 수 있었다.

마취도 어려웠다. “마취가 되면 참파가 숨을 쉬지 않아요”라고 헌트가 말했다. (“첫 번째 마취에서 제가 실수했어요”라고 크랙넬이 말했고 곧 마취제가 다시 투입되었다.) 수술실은 북적이고 습했으며, 과정을 촬영하는 BBC 다큐멘터리팀 덕분에 온도는 더 올라갔다. 땀이 바닥의 타일에 떨어졌다. 피치가 두개골을 드릴(드레멜 브랜드의 목공 도구)로 뚫을 준비를 하자, 방 전체가 숨을 죽였다.

진단대로 정말 뇌수종이었다. 3차원 모형과 초음파가 제 역할을 한 것이다. 피치는 뇌실복막강단락을 삽입해 뇌강에 찬 물이 체내에 흡수되도록 복강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피치가 삽관을 시작하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구호소의 전력(다큐멘터리팀 때문에 이미 과부하가 걸린)이 끊긴 것이다. “퓨즈가 나갔네요”라고 크랙넬이 말했다. 흡입기가 타버렸다.

하지만 피치는 이런 경우에도 대비가 되어 있었다. “일이 잘못되거나 기기가 망가질 가능성이 너무 높으므로 주요 장비는 언제나 예비로 준비해두려고 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절약 혁신의 대표 격인 도구를 꺼냈다. 바람을 불어 부풀리는 매트리스 펌프였다. “복부에 몇 번에 나눠 눌러주면 공기를 채워줍니다. 정화된 공기가 아니므로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괜찮아요. 갑자기 다량의 출혈이 발생할 경우에는 펌프를 반대로 작동해 피를 빨아들여 워터트랩이 달린 코카콜라 병에 모읍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고안한 장비는 놀라워요”라고 크랙넬은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 와서 이런 수술을 하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은 건 아닌가 걱정을 하게 마련인데요, 로메인과 함께 일하면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 수술에는 여섯 시간이 걸렸다. 다음 날 아침 헌트와 함께 울타리에 찾아가 보니, 참파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고 눈이 멀어서 참파는 올려다본 적이 없습니다.” 헌트가 말한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면 올려다보고 우리에게 시선도 고정하죠. 너무 놀랍습니다.”

 

“이런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귀엽고 친근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사나운 동물입니다.” 피치가 설명했다. “언제나 서로 싸우며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치료를 해줘야 합니다.”

피치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판다 복통 치료법에 대해 설명한다. “판다가 복통에 시달리면 중국에서는 담낭을 들어내버리는데요, 그럼 사흘 만에 죽습니다. 인간이라면 담낭이 복통의 원인일 수 있지만, 판다는 장이 문제거든요.”

모든 동물을 살릴 수는 없다. 피치는 가망이 없는 동물을 수건으로 싸서(그래야 더 어둡고 편안하다) 마취제 펜토바르비탈을 치사량으로 주입한다. 다친 갈매기에게 주사하며 그는 “인간에게 둘러싸여 받는 스트레스 없이 잠듭니다”라고 말한다. “갈매기는 놀라운 새예요. 하늘에서도 잠들고 며칠 동안이나 떠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멸종 위기라도 닥쳐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는 화장터로 옮길 수 있도록 죽은 갈매기를 종이 상자에 담았다.

멸종 위기종을 다룰 때면 그는 죽음의 뜻을 새삼 되새긴다. 피치는 멕시코 서해안의 레비야히헤도 제도가 고향이지만 이젠 야생에서 멸종된 소코로 비둘기를 수술한다. 한편 최후의 파르툴라 달팽이 또는 쿡 선장의 콩달팽이와 찍은 사진도 가지고 있다. 1791년 쿡의 탐험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그렇게 붙은 달팽이는 2016년 에딘버러 동물원에서 멸종했다.

흔치 않은 질환이나 동물인 경우 피치는 보고 배우기 위해 검시도 직접 한다. 저녁 무렵, 그는 잔점박이물범인 그레이 웜을 해부했다. (2017년 8월, 해변에서 구조된 새끼 바다표범에 ‘왕좌의 게임’ 등장 인물의 이름인 테온을 붙인 일이 있다.) “그레이 웜은 6개월이나 입원해 있었는데도 차도가 없었어요. 두 번이나 안락사시키려고 했죠”라고 그는 말했다. 피치는 그레이 웜 뱃속의 플라스틱을 꺼내려 수술한 적이 있다. 바다 생물이 요즘 흔히 겪는 문제였다. 갈색에 야위고 주름진 몸통이었다.

 

포획된 마카로니펭귄은 인간이 던져주는 걸 족족 받아먹는다. 피치는 펭귄의 뱃속에서 양말, 동전, 부러진 빗자루대, 건전지 한 쌍을 꺼낸 적이 있다.

검시는 수업으로도 이루어지므로, 센터의 수의간호사들이 둘러싸고 보고 있었다. “림프절이 별로 크지 않은데요, 감염 탓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흉곽을 톱으로 써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폐, 횡경막을 보세요.” 피치가 그레이 웜의 복부를 절개하자 사람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바다표범의 뱃속이 거의 터질 정도로, 밟아서 납작해진 녹색 플라스틱이 가득 차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눈에 띄게 슬픔에 잠겨 한숨을 쉬었다. “이게 이유였네요.” 미끄럼 방지 발깔개의 플라스틱이 바다표범의 뱃속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러니 그레이 웜은 먹을 수도 없었고 굶주린 것이었다. “빌어먹을”이라고 피치는 다시 말했다. “제 잘못입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발견했어야 할 플라스틱이었다. 몇백 마리의 바다표범을 치료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후 국립 야생 동물 센터는 플라스틱 발깔개를 없애버렸다.)

그날 내내 피치는 사람들을 멀리했다. “그는 자신에게 아주 비판적인 사람입니다”라고 국립 야생 동물 구호 센터의 매니저 콜린 세돈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더 잘하고 싶어 하죠.” 한편 피치는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실패입니다”라고 말한다. “고칠 수 있는 걸 못 고치면, 그래서 동물이 죽었는데도 괴롭지 않다면 이 일을 하지 말아야 돼요.”

피치는 라오스로 돌아가 참파를 재수술할 예정이다. 첫 번째 수술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참파의 건강이 부쩍 나빠져서다. 단락이 막혀서 뇌압이 올라갈 수 있다. 열어서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교체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게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참파가 그냥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행히 최근 상태가 좋아졌지만 뇌는 여전히 손상을 입은 상황이다. 방생하면 참파는 죽을 것이다. “라오스의 상황이 안 좋아요. 따라서 참파의 상태가 안 좋다면 안락사를 시켜야 할 겁니다.”

수의사는 언제나 이런 고민에 시달린다. 동물이 얼마나 더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살아서 고통받는다면 우리에게 살려둘 권리는 있는 걸까? 그리고 동물보다 우리 인간을 위해 살리려 드는 건 아닐까? 지구의 야생 동물을 살리고 싶다면 숲을 불태우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멸종될 때까지 사냥할 게 아니라, 거주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후 에딘버러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피치는 “보호라는 말은 참으로 공허합니다”라고 운을 뗐다. “동물을 잡아 기르고 번식시키는 걸 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야생 동물을 포획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랑우탄을 살리러 동물원에 오나요? 그저 그들은 하루를 즐기고 싶을 뿐이죠.”

야생 동물이 멸종 위기에 몰림에 따라 수의사도 개입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점차 크게 받는다. “몇십 년 동안 생태계의 다양성은 굉장히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야생이라는 게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에요.” 코뿔소나 호랑이라면 예산이 제약 없이 책정될 것이다. 캠페인이나 다큐멘터리, 티셔츠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스코틀랜드 왕립동물학회의 수의학부 책임자이자 에딘버러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이먼 걸링은 이런 피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라고 다르게 취급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몇몇 수의사는 멸종 위기에 놓인, 그리고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은 동물을 살리라는 압력이 커진다고 말한다.

“가장 큰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의 생존이 모두에게 중요하다면 그걸 기회로 삼아 복지를 확대해야 합니다”라고 런던 왕립수의학회의 수의 윤리학 및 법 강사인 마틴 화이팅은 말한다. “수의학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말하는데요, 뒤집어 보면 어떤 고통은 필요하다고 여긴다는 방증입니다”라고 피치는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물원의 동물이 고통받는 건 원하지 않는 반면, 먹기 위해 도살하는 소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피치는 채식주의자다.) 우리는 대규모 멸종에 대해 안달복달하지만 습관을 바꾸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피치의 일에는 비극이 따른다. 야생 동물을 살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연간 1만 마리의 야생 동물을 살린다고 해도 빠르게 산성화되는 바닷물에 한 방울처럼 미미할 뿐이다. 대체 얼마 만큼의 고통을 묵인해야 할까? 그가 가장 깊이 고민하는 문제다. 한편으로는 몇 년 전 치료한 흰꼬리 바다독수리를 생각한다. 그는 날개가 부러졌으며 외다리였다. “안락사시키는 게 편하고, 그게 길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피치는 말한다.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왔지만 새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날으려 애를 썼다. “절개해 죽은 뼈를 한 뭉치 잘라내야 할까요? 얼마 만큼 개입해야 하는 걸까요?” 그는 뼈를 다시 맞추고 3개월 뒤, 추적 장치를 달아 방생했다. 이후 독수리는 서툴게 날아다녔으므로, 오늘날까지도 그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최선이었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어쨌든 독수리는 살아서 계속 날았다. 4년 뒤 자연사할 때까지.

 

그는 직접 만든 내시경 장비를 보여주었다. “이베이 덕을 톡톡히 보죠”라는 말을 덧붙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