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마블

마블의 우주엔 유일신이 없다. 주변부와 소수자를 포섭하며 팽창 중인 다중심적 우주에 하나의 중심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의 증식성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정체성은 ‘혼종’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2008년의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최근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까지 총 19편의 마블 영화에 의해 구축된 가상 세계를 뜻한다.) 여기엔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등을 주연으로 내세운 각각의 시리즈와 이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존재한다. 인간, 초능력자, 괴물, 심지어 신이 동시에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야말로 마블 영화의 백미다. 후발주자인 DC코믹스에서도 이질적인 영웅들이 단체로 나오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웅을 한자리에 모아놓는다고 스코어도 배가 되는 것은 아님을 증명했을 뿐이다. 이 성과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블은 DC코믹스와 달리 정통이 아닌 이단의 길을 걸으며 극한의 혼종성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특징이 현재의 다중심적 구조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마블의 세계는 중심과 변방, 혹은 상부와 하부의 위계가 나뉘지 않는다. 19편의 영화가 서로 맞물리며 유기적인 연결을 이룬다. 각도를 달리해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놓아 큰 그림을 보게 하는 식이다. 각 영웅들이 비교적 수평적이라 가능한 얼개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히어로는 다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은 신화적인 장중함을 지니는 캐릭터다. 슈퍼맨의 기원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며, 기독교적 메시아주의를 담는다. 원더우먼은 제우스가 숨겨놓은 여성 부족의 일원이자 신의 자식이다. 즉, 헬레니즘적 기원을 갖는다. 한편 배트맨은 파우스트적인 고뇌를 지닌 근대인이다. 부모의 죽음으로 오이디푸스적인 죄의식을 지닌 인물이자, 슈퍼맨과의 대결을 통해 인간성과 신성을 고민하는 철학적 주체다. 이에 반해 새로 영입된 아쿠아맨, 플래시맨, 사이보그의 존재감은 약하다. 이들도 나름 신화적 기원과 존재론적 의문을 품은 인물들이긴 하지만, 장중함은 떨어지고 능력의 차이도 벌어진다. 슈퍼맨은 플래시맨과 속도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데, 이는 플래시맨의 능력이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마블의 영웅들은 더 다채로운 기원을 갖지만, 층위가 별로 없다. 신이 등장하지만, 유일신이 아닌 북구의 신화 속 신들로 서구 세계를 지배해온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신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더욱이 신들의 세계와 지구는 우주의 아홉 거점들 중 하나로 거의 동등하게 묘사된다. 아스가르드의 오딘은 인간보다 뛰어나고, 외계 분쟁에서 지구를 지켜주었기에 지구인들은 그를 신으로 섬기지만, 이는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이 전제하는 신의 개념과 다르다. 게다가 토르는 아스가르드에서 쫓겨나 신의 능력을 잃고 지구에 떨어짐으로써 인간세계의 감시 대상이 된다. 즉, 신이 등장하지만, 그의 ‘신성’은 신성화되거나 추앙받지 않으며 인간과 격이 맞는다.

마블의 영웅들은 고결하지 않다. 오히려 비천하고 모순적이며 소수자적 특징을 지닌다. 캡틴 아메리카는 군인이 될 수 없는 왜소한 청년이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전쟁 영웅이 된다. 아이언 맨은 세계 최대의 무기상으로 제 잘난 멋에 살던 인물이었지만, 폭력의 실상을 경험한 뒤 인간 병기가 된다. 헐크는 자신의 변신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자 도망자이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었지만, 여전히 피자 배달을 하는 청소년이다. 노동계급 출신 청소년에게 영웅의 자리를 내준 것이다. 심지어 앤트맨은 가난한 도둑이었으며, ‘작은 히어로’라는 역발상도 소수자적 감수성의 발로다. 마블 세계의 소수자적 감수성이 가장 빛난 작품은 <블랙팬서>다. <블랙팬서>는 최초로 흑인 원톱의 슈퍼 히어로물이자 실존했던 흑인운동단체의 실명을 제목으로 쓴 블록버스터다. 블랙팬서는 ‘말콤X’로 대표되는 급진 투쟁 노선을 취했으며, 300명 이상이 체포되는 탄압을 겪었다. <블랙팬서>는 제목을 통해 흑인 운동의 역사를 환기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차별받는 흑인들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웠다.

마블의 영웅들은 본래부터 초능력을 갖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해 신체변형을 겪으며 히어로가 된다. 아이언 맨은 심장에 아크 리엑터를 박고 슈트를 입음으로써 히어로가 된다.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 솔저’ 혈청을 주입받은 뒤 강인한 신체를 얻는다. 헐크도 ‘슈퍼 솔저’ 용액을 다시 만들다가 감마선에 노출되어 생긴 것이며, 스파이더맨도 실험용 거미에 물려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것이다. 앤트맨도 핌 입자에 의한 신체 변형을 겪는다. 이들을 변화시킨 과학 기술은 무기 산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적에게 탈취당하거나 모방된다. 그 결과 과학기술의 성과를 공유하는 쌍둥이 같은 존재가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가령 아이언맨이 그의 복제품인 아이언 몽거와 싸우고,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처럼 ‘슈퍼 솔저’ 혈청을 맞은 악당 레드스컬이나 윈터 솔저와 싸운다. 헐크는 슈퍼 혈청을 맞은 어보미네이션과 싸운다. 이런 싸움의 구도는 과학 기술의 총아인 첨단무기들이 품은 모순을 확연히 드러낸다. 내가 가짐으로써 상대도 갖게 되는 무기 경쟁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 결과 첨단 무기가 전쟁을 막는다는 말도 성립되지만, 전쟁을 부른다는 말도 성립된다. 쌍둥이 같은 존재들의 싸움은 ‘모든 전쟁이 나의 일부이자 적과의 싸움’이라는 모순을 깨닫게 한다.

전쟁에 대한 숙고는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1941년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마블 코믹스는 뚜렷한 반파시즘의 이념을 갖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탄생한 히어로인 원더우먼도 반파시즘의 이념을 공유하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와 맞섬으로써 반전평화의 이념에 더 집중한다. 반면 캡틴아메리카가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마블의 세계에서 모든 에너지와 악의 원천은 외계에 기원을 둔다. 궁극의 에너지가 오딘이 흘린 테서랙트에서 유래되었고, 악의 축인 ‘하이드라’는 외계 종족이 지구인에게 심은 하이브 종족에 기원을 둔다. 그런데 ‘하이드라’는 나치 심층과학부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하이드라는 나치즘의 본령에 대한 은유로,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으니, 오직 자유를 빼앗는 통제와 지배만이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상으로 요약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하이드라와 싸우던 캡틴 아메리카는 70년 만에 깨어나 실드(국제안보기구)가 하이드라에 장악되어 있음을 본다. 이는 현재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파시즘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세계안보를 명목으로 위험인물을 지목해 제거하려는 실드의 계획은 ‘지구제국’이 전 세계 다중을 대상으로 ‘전 지구적 내전’을 벌이는 상태임을 말해준다. 실드가 파괴되자, 영웅들을 UN의 관리하에 두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놓고 내분이 일어난다. 영화는 규제 반대와 자율성을 주창했던 캡틴 아메리카의 입장에 존중을 표하며 정리된다. 요컨대 규제보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강화하는 것이 미국이 애초에 지향했던 민주주의의 가치임을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상기시키는 것이다.

혼종적인 소수자 히어로들이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마블의 세계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며, 파시즘의 본령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마블 영화들이 생산·유통·소비되는 맥락을 보면 가장 자본주의적인 행보와 성취를 보인다. 이것은 모순인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본래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문화까지 흡수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생명을 연장한다. 따라서 가장 상업적인 마블 영화들이 소수자적 감수성을 지닌 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비판적인 시선을 드리우는 것은 그 자체로 자본의 운동 방식이다. 곧 역대 최대 규모의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가 개봉한다. 우주를 재편하려는 타노스를 막기 위해, 지구의 ‘어벤져스’팀과 우주의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팀이 합친다.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나가는 영화의 구조처럼 스크린 독점이 어떤 규모로 이루어질지 우려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일관되게 펼쳐 온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은하계 규모로 확장해서 다뤄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도 없다. 끝판왕의 진면목이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