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김무열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2018-04-27T18:44:15+00:00 |ENTERTAINMENT|

김무열은 자신이 아직 신인배우라고 말한다. 연기에 대한 그의 사랑은 꺾인 적이 없다.

블랙 컬러의 턱시도 디테일 오간자 셔츠,  김서룡 옴므.

블랙 컬러의 턱시도 디테일 오간자 셔츠, 김서룡 옴므.

 

오버사이즈 블랙 재킷은 마틴 로즈 at 10 꼬르소꼬모. 블랙 베스트, 블랙 스카프 모두 돌체 & 가바나. 화이트 스니커즈, 디올 옴므. 블랙 팬츠, 화이트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오버사이즈 블랙 재킷은 마틴 로즈 at 10 꼬르소꼬모. 블랙 베스트, 블랙 스카프 모두 돌체 & 가바나. 화이트 스니커즈, 디올 옴므. 블랙 팬츠, 화이트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베스트톱, 와이드 팬츠, 슬리브 디테일의 벨트 모두 디올 옴므.

블랙 베스트톱, 와이드 팬츠, 슬리브 디테일의 벨트 모두 디올 옴므.

처음 만났는데 어쩐지 익숙해요. 조금씩 닮은 다른 사람이 떠오르는 얼굴이네요. 특징 있는 얼굴이 아니라 그런 거 같아요. 누군 잘생겼다고 하는데 누군 못생겼다고 하고. 저 되게 평범하게 생겼으니까.

평범하진 않죠. 오늘 사진만 봐도…. 그건 화보용 얼굴. 편한 옷 입고 노는 것도 보셨잖아요.

신작 영화 <머니백>에서의 얼굴은 또 새로웠어요. 궁지에 몰린 만년 취업 준비생 역할을 맡아서 흠씬 얻어맞고 퉁퉁 부은 얼굴이던데요. 시종일관 억울한 얼굴인데, 마지막에 최 형사를 따돌리고 돈을 차지했다고 생각하고 혼자 웃는 게 나와요. 그 얼굴을 봤을 때 만족스러웠어요. 청춘은 그렇게 웃어야죠.

배우 김무열은 뮤지컬 <쓰릴 미>에서처럼 먹이사슬 상위에 위치할 법한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찌질’해졌죠. 센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망가졌다”나 “찌질해 보인다”는 평가가 저에게는 되게 긍정적으로 느껴져요. 사실 ‘찌질함’이라기보다 그건 남자의 본성 같은 게 아닐까요?

남자의 본성이요? 강자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리는 거요. 영화 <작전>의 브로커 조민형도 무서울 게 없어 보이지만 폭력 앞에선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개들의 전쟁>의 양아치 상근도 마찬가지죠.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표현되는 본질은 그런 경우가 많아요. 위치에서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본인에게도 그런 면이 있어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건 제가 아주 싫어하는 거예요. 늘 거기에 저항감을 갖고 나은 인간이 되려 하죠. 저는 연기를 할 땐 일단 내 경험에서 재료를 찾아요.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를 이해시키는 게 시작이니까요. <기억의 밤>에서 유석의 습관, <머니백>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민재가 겪은 일 중엔 제가 겪은 것도 있었어요.

<머니백> 기자 간담회에서 민재의 자살 시도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가난이란 늪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절망이 온몸을 휘감고 내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하던 때가 있어요. 아버지는 아프시고 집안 사정은 어렵고, 내가 날 붙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매일 술 마시고, 화내고, 내 자신에게 나쁜 짓도 많이 했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통과했어요? 공장 일부터 경비 용역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런데도 연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아침에 출근할 때 뮤지컬 노래를 틀어놓고 연습하고, 퇴근할 땐 세 정거장 먼저 내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대사를 연습했죠. 행사 알바로 시작해 어린이 뮤지컬, 악극을 했고, 헤매고 헤매다 첫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을 만났어요. 원래 할 일이 이거였던 것처럼 천천히 돌아온 거죠.

한 순간에 절망에서 빠져나온 게 아니라, 좋아하던 걸 하다 보니 수렁에서 나와 있었던 거네요. 신기하게도 그랬죠. 쌓였던 울분, 젊은 에너지가 부딪치니 출구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대학로에서 공연해도 먹고살 만큼 돈을 벌 수 없단 것도 알고 있었어요. 단지 좋아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때의 열정은 좋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숙제로 가지고 있어요.

그 숙제는 지금 어느 정도 달성했어요? 멀었죠. 사실 <머니백>에서도 제 연기를 볼 땐 형편없었거든요. 연기 톤이나 테크닉적인 부분, 해석하는 방식 모두 아쉬움이 많았죠. 반성 많이 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아요? 이상이 높은가요? 맞아요. 눈만 높아가지고. 사실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조금 그래요. 뭐, 비판적인 시선을 여과 없이 보내는 건 자신에 한해서지만.

이상주의적인 태도는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죠. 20대에 절 움직인 게 그거였어요. 스스로 다잡고 나아가는 데 남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갖고, 자책하는 게 큰 에너지가 됐어요.

자신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본 적 있어요.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숫기는 없고, 속물근성이 있다.” 심지어 속도 더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더 화나는 건,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단 거죠. 어쨌든 배우는 제3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해요. 연기라는 건 인생을 흉내 내는 작업이니 제 인생부터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똑바로 보는 게 중요해요.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하면요? 배우는 많은 역할들을 연기하기 때문에 중심이 없으면 어느 순간 자신을 잃어버려요. 저도 위기감을 느낀 적이 있었어요. 내 안에 있는 걸 다 꺼내 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중력이 생겼나요?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는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저를 있던 곳에 가져다 놓죠. 결혼 후엔 그 중력이 강해졌어요. 유기견을 입양하면서 책임감도 생겼고, 요리 외 집안일은 제가 해요. 연기 말고 다른 관심거리도 많이 가지려 하고, 전공과 관계없는 책을 읽어대요. <사이언스>를 구독하는데 신기한 읽을 거리가 많죠.

<사이언스>라니! 또 연기나 작품 외에 최근 인상적인 일은 뭐예요? 오늘은 일정 소화하는 짬짬이 박근혜 1심 공판 중계를 봤어요. 나중에 근현대사 교과서에 큰 단락으로 실릴 일이죠. 배우는 동시대의 삶을 투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니까, 젊은 예술가로서 비판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려 해요. 저, 또 연기하네요.

배우 김무열은 예능에 거의 출연하지 않아요. 작품 외에 다른 채널로는 자신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인간 김무열을 지키려는 노력인가요? 제 신념 같은 거예요. 동시에 배우 김무열을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하죠. 연극하는 선배들은 “공연 끝나고 퇴근할 때는 항상 분장을 지워야 하고, 관객을 개인적으로 만나선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관객의 감상을 존중하고, 그걸 깨뜨리고 싶지 않아요.

관계 자체에 신중한 건 아니고요? 관계에서 먼저 다가가지 않고 관망하는 편이에요. 일단 그 사람이 어떤지 살피고 ‘이 사람과는 어떤 식의 관계가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저 눈치 되게 봐요. 사람을 관찰하는 건 배우로서의 버릇인 것 같아요. 누군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이면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헤아리기도 하고, 순간의 표정만으로 그 사람에게 오늘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는 습관.

사람에게 호기심이 많은 걸까요? 음…, 역시 일은 일인가 봐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어려워요.

타인은 알 수 없다는 주의? 어떻게 누군가를 온전히 알 수 있겠어요. 삼십 년 지기 친구, 같이 산 어머니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은데요. 요즘엔 거기서 나아가 호의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에겐 그만의 이유가 있을 거고, 그건 남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늘 ‘악의는 없을 거’라고 전제해요.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서 좀 낙관적이 된 건가요? 전 여전히 낙관적인 사람이 아녜요. 그냥 불편하지 않은 게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부부가 되니 관계를 처음부터 배우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조금 너그러워진 것 같기도 하네요.

작년엔 10주년 기념으로 마지막이 될 <쓰릴 미> 공연을 했어요. 그 세월을 관통하면서 김무열을 대표하는 캐릭터 하나와 이별했는데,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요? 그 시절엔 무자비한 청춘의 찬란함이 있었어요. 몰랐기 때문에 쉽게 부딪힐 수 있었죠. 더 많이 알게 되니 더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무자비한 찬란함 대신 어떤 게 생겼나요? 여유? 지름길을 알게 됐고 요령도 생겼죠. 하지만 ‘어떤 배우의 길을 걸어야 할까’라는 막막함과 두려움, 기대감이 덜하진 않아요. 그건 사십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고민을 멈추진 않으려고요.

얼마 전 크랭크업한 <인랑>에서 김지운 감독과의 작업은 그 기대감을 좀 채워줬나요? 왜 이제야 만났나 싶었죠.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제가 맡은 한상우라는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8개월간 잡고 가는 게 쉽진 않았어요. 자그마한 옹심에서 시작해 점점 커진 어두운 감정에 잠식되는 역할이에요.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과 잘 어울려요. 고뇌에 빠진 자의식 강한 캐릭터,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던 <달콤한 인생>의 선우 같은. 집약적으로 폭발시키는 연기에 능하다는 느낌도 받아요.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도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되죠.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넌 내게 목욕값을 줬어.” 진짜 많이 따라 했는데, 하하. 전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극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인물을 이해할 때 붙이는 전제가 “얼마나 그랬으면 그랬겠어”거든요. 극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건 단편적인 순간에 그의 인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에너지를 쌓기 위해 상황을 극적으로 해석하죠.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여전히 연기요. 안 해본 역할하고 싶어요. 전 작품 몇 개 안한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어요. 연기로서는 영화보다도 연극이, 대극장 공연보단 소극장 공연이 더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거든요. 관객과 세밀하게 나누는 호흡이 간절해요. 무대에 서지 않은 지 1년이 넘으니 몸이 근질거려요. 지금 이 순간도 그 감각이 생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