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스티븐 연 "이 영화는 참 희한했어요"

[버닝] 스티븐 연 “이 영화는 참 희한했어요”

2018-05-18T16:48:05+00:00 |ENTERTAINMENT|

스티븐 연은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보듯, 수줍은 청년이었던 적이 없다. 더 이상 피가 낭자한 <워킹데드>의 세계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는 매우 선명한 생각을 가진 배우고, 영화 <버닝>에서는 불을 지른다.

네크리스, 인디안 주얼리  at  오쿠스. 벨트, 보테가 베네타. 재킷, YMC. 티셔츠,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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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셔츠, 블로윈드 at  서프코드.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벨트, RRL.  재킷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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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스티븐 연)’이 죽은 <워킹데드> 시즌 7 이후에도 계속 챙겨보고 있어요? 계속 봤는데 중간에 바빠지면서 최근엔 못 봤어요. 재밌어요?

네건을 어떻게 처단하는지 보려고 시즌 7 끝까지만 정신없이 달렸네요. 막상 끝나니 섭섭하진 않고요? 한두 해 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보다는 시원한 쪽이었어요. 대학교 졸업하면 다시 대학교 가기 싫은 것처럼? 하하. 거기서 제일 좋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을 예전처럼 못 보는 게 가장 아쉽죠.

스티븐 연의 삶은 <워킹데드>에 출연하면서 바뀌었겠지만, <워킹데드>에서 퇴장한 이후 또 한 번 변했을 것 같아요. 7년 동안 정해진 스케줄을 살았어요. 1년에 4개월 정도 휴식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도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죠. 대학교 졸업하고 비교적 일찍 경력을 시작했잖아요. 저도 몰랐는데 끝나고 보니 지금까지 제가 선택한 게 별로 없더라고요. 먹을 것만 선택했죠. 하하. 결혼하고 애기도 낳으면서 이제는 내가 관리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가족이 참 어렵지만 재미있고요.

출연작을 거칠게 나누면 두 가지예요. 판타지 혹은 드라마. 판타지 쪽의 선택은 <워킹데드> 덕분에 쉽게 납득했지만, 덜 익숙한 드라마 쪽에서의 스티븐 연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소위 ‘작가주의적’이라고 일컫는 감독들의 작품이 많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관리할 수 없었어요. 저한테 오는 것 안에서 선택했죠. 봉준호 감독님과 일한 건 운이 좋았어요. 3년 전에 만났을 때 제 역할을 쓰고 있다고 했죠. <옥자>를 하면서 내가 믿는 감독과 일하면 연기가 참 편안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았지 일부러 아티스틱한 걸 찾진 않았어요.

이창동 감독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나요? 봉준호 감독님이 연락했어요. 이창동 감독님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왜?’ 했죠. 이창동 감독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저를 다르게 본다, 진실하게 본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보통 다른 사람들은 제가 보여주는 것만 보는데,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저를 안다는 게 기막혔죠. 저는 봉준호, 이창동 감독님이 정말 잘하는 건 캐스팅 같아요.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거죠.

사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어요. 저도요. 하하. 배우는 누가 찾아줘야 하는 거지만, 저는 준비돼 있었어요. 단지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저를 알아봤다는 게 참 감사하고 운이 좋았죠.

이창동 감독의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처음 본 건 <시>요.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우리 할머니를 본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어요. 한국 사람이 나오면서 ‘Universal Theme’을 얘기하는 영화라는 게 신기했죠. 이후에 다 찾아서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모든 영화에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밀양>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머리가 터질 것 같죠.

 

팬츠, 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재킷, 버버리.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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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츠, 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재킷, 버버리.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팬츠, 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재킷, 버버리.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한국 TV 쇼에서 송강호를 언급한 걸 봤어요. 구체적으로 송강호 연기의 어떤 면이 그랬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요. 원래 연기 너무 잘하는데, <밀양>에서는 뭐랄까, 말없이 다 해요. 말이 많은 캐릭터인데 말이 없을 때 진짜 잘했고, 제 생각에는 정확했어요. 한 여자를 좋아할 때 행동이 어색하고 느끼하고 슬프고 용감한 게 다 섞여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버닝>의 ‘벤’도 좀 복잡한 혹은 모호한 캐릭터 아닌가요? 그럴 수… 있죠? 흐흐. 저는 벤을 확실히 아는데, 바깥의 시선으로 알아보기는 힘들 거예요. 벤은 자기 머리 안에 사는 사람이에요. 본인이 만든 세상에 사는 사람요. 저도 그런 편이라서 이해해요.

영화는 못봤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헛간을 태우다>는 읽었어요. <버닝>에는 원작에 없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도가 있죠.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 특정 부류를 악으로 규정하는 드라마를 썼을 것 같진 않아요. 이창동 감독은 한 인물이 사는 사회, 처한 상황, 우연 등에서 사소하지만 사악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에 관해 어떤 윤리적인 질문을 하죠. 당신은 이 영화에서 어떤 질문을 읽었어요? ‘동시 존재’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 말처럼 우리는 나쁜 거 좋은 거 다 같이 있죠. 나 혼자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도덕이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사람들의 자아라는 게 참 센데, 사고가 난다거나 애기를 낳는다거나 하면 그때 살짝 자아가 죽고, 도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잠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요? 애기 태어났을 때 저 울었거든요?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사랑해서 운 게 아니에요. 아, 나는 아주 작구나, 라고 느껴서 운 거예요. 자아가 세서 바로 다시 돌아왔지만. 하하.

자아가 강하다거나, 머릿속에 산다거나 하는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사실 큰 갈등 없이 미국에 적응한 사람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했어요. 동양 사람은 ‘Collective Society’에 살잖아요. 미국 같은 ‘Individual Society’에서는 너 진짜 사람들 잘 지켜준다, 잘 봐준다, 정말 용감하다, 이렇게 보죠. 다 그렇진 않지만 동양 사람이 미국에서 ‘Individualism’을 느끼긴 힘들어요. 매일 동양 사람이라고 보잖아요. 저도 스티븐으로 다니지 못했어요. 교포니까 살짝 걸쳐 있지만, 어려서부터 벽을 쌓고 살았죠. 매일 연기하면서 살았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답답한지 몰랐어요. 그냥 서바이벌한 거예요. 나중엔 벽을 만든 것도 잊어버렸고요. 나이 먹고 애기 낳으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여기서 촬영하는 동안 한국인처럼 산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어떤 애였어요? 욕심이 많은 애요. 맨날 이기고 싶었어요. 경쟁심이 강했죠. 어렸을 땐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세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애니까요.

친구는 많았어요? 많았지만 깊지 않았어요. 전부 1레벨. 근데 우리 와이프가 가르쳐줬어요. 친구는 아주 중요한 말이고,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고요. ‘친구’라는 말을 진실하게 생각해야 한다고요.

자아가 세고 승부욕도 강했으면 많이 싸웠겠네요? 많이 싸웠죠. 어릴 땐 동생을 진짜 괴롭혔고요. 저는 제 아들 그렇게 안 가르칠 거예요. 하하.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쇼하는 것 좋아했고 장난도 좋아했지만 배우를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사실 음악을 더 좋아했죠. 노래도 많이 불렀고요. 대학교에서 쇼 한 번 보고 진짜 재밌어 보여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클래스 듣고 깨달았죠. 나는 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게 더 편하지?

 

팬츠, 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재킷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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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브룩스브라더스.  타이, 톰 포드. 스니커즈, 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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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블로윈드 at 서프코드.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재킷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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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에서 한국어로 연기한 건 어땠어요? 어떤 언어인가를 떠나서 자신에게 충분히 익지 않은 언어로 연기한다는 게 만만했을 것 같진 않은데.
이 영화는 참 희한했어요. 겁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저는 원래 그렇지 않아요. 하하. 저 겁 많아요. 이창동 감독님이 날 모르는데 부른 것도 이상하고 이 역할에 나를 뽑은 것도 이상하고. 저는 그냥 따라갔어요. 외우라고 하면 외우고 연습하라고 하면 연습하는데, 거기에 제 노력만 더하는 거죠.

언어 문제는 전혀 없었다는 건가요? 아뇨, 엄청 많았죠. 하하.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고, 저도 많이 연습했고요. 사실 어렸을 땐 집에서 한국말만 썼거든요. 제 안에 있었을 거예요.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뉘앙스가 어려운 게 많았는데, 그건 국어 선생님이었던!, 이창동 감독님이 잡아줬어요.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붕괴된 <워킹데드>라는 세계가 말하는 유일한 가치가 있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싸우라는 거죠. 딱히 호전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당신은 싸우는 사람이고, 그래서 영리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문제의식을 가지고 뭔가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해도 좋겠네요. 스티븐 연은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나요? 돈을 너무 사랑하는 세상도 문제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요새는 싸우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엔 말로 싸우고 싶었어요. 요새는 행동으로 싸워요.

좋은 작품으로 말한다는 건가요? 그것도 있지만 하나의 예로 살고 싶달까. 어렸을 때부터 저는 말이 엄청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말을 할 때 자아가 좀 더 세져요. 와이프가 그랬어요. 이 세상은 시끄러운 사람들의 세상이라고요. 그런데 사실 제일 똑똑한 사람들은 조용한 사람들이라고요.

촬영장의 모든 사람에게 매번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오늘의 스티븐 연도 하나의 예겠네요? 진짜 우리 엄마, 아빠가 확실히 가르쳐준 거예요. 맞아요, 그것도 하나의 예죠. 어렸을 땐 감사하다는 말을 잘 이해 못했어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말로만 감사하다고 한 거죠. 근데 엄마는 알았어요. 여자들은 아는 것 같아요. 너는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으로는 모른다고 그랬어요. 그 얘기 듣고 아무 말도 못 했죠.

음악을 좋아했다니 이런 질문으로 끝내볼까 해요. 스티븐 연의 인생에 BGM을 고른다면 뭔가요? 어린 시절과 지금으로 나눠서요. 어릴 땐 힙합, 록 음악을 좋아했어요. 시끄러운 음악이 좋았죠. 하나만 꼽자면 펄잼이요. 진짜 좋아했는데, 아마도 ‘Jeremy’가 좋은 사운드트랙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한 곡을 뽑을 수 없지만, 가사가 없는 노래로 하는 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