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여름휴가 권장 도서

이번 여름휴가에는 책이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2018 여름휴가 권장 도서 10선.

Group 9

<캄포 산토> W. G. 제발트 여행지의 시간은 애매하다.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적고, 적은 것 같지만 많다. 집중해서 많은 양을 읽을 것 같지만 의외로 안 되고, 산만해서 못 읽을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몰입된다. 가벼운 책을 들고 가면 읽을 게 없어서 아쉽고 무거운 책을 챙기면 안 읽혀서 짜증 난다. 평소의 리듬과 다른 낯선 읽기의 경험. 무슨 책이 얻어걸릴지 모를 일이다. 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애매한 위상의 책이 필요하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몰입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있는 책. 그런 책은 걸작만큼이나 찾기 힘든데(사실 출판 ‘시장’에서 가장 찾기 쉬운 책은 ‘걸작’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 W. G. 제발트의 산문집 <캄포 산토>가 나왔고 나는 <캄포 산토>를 들고 여행을 떠났다. <캄포 산토>는 제발트의 글이 늘 그랬듯 소설과 산문의 경계에 애매하게 위치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챕터의 길이는 짧고 시간이 남을 때 노트에 필사할 문장이 즐비하다. 제발트는 이 원고를 코르시카를 여행하며 썼다고 한다. 나는 이 원고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쓰고 있다. 그러니까 여행->글->여행, 그리고 다시 글. 이게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모르겠다. 글 / 정지돈(소설가)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크루즈 여행이다. 그것도 카리브해 6박 7일 호화 크루즈 여행. 누구나 평생 한 번은 꿈꾸는 휴가. 더구나 저자는 잡지에 체험담을 쓰는 대가의 공짜 여행이었다. 그런데 남들은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고?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궁극의 휴가인 크루즈 여행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자칫 절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 청소부들의 굽실대는 태도에서, 너무 가식적이라 외려 꺼림칙한 승무원들의 미소에서, 달러가 내리면 UFO처럼 숭배하는 가난한 항구 주민들에게서, 심심할 틈 없이 광적으로 진행되는 선상 오락 활동에서, 세상과 자신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기를 휴가에서조차 그만두지 못하는 냉소주의자는 관리된 재미의 허무함에, 즉 재미의 고삐를 남에게 넘기고 아기처럼 응석 부리는 일을 휴식으로 여기는 세태에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딱한 호화 크루즈 여행담을 쓴 사람은 올해 사망 10주기를 맞은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다. 그의 소설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집으로 그현란한 문장과 집요한 시각은 아쉽지 않게 맛볼 수 있다. 휴가지에 휴가의 절망을 말하는 글을 가져가라고 권하는 것은 악취미다. 그러나 이 글로 호기심을 가질 독자라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는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는다. 당신의 휴가가 어떻든, 이 글을 읽는 시간만큼은 쉼 없이 낄낄대리라 장담한다. 미치코 카쿠타니가 “웃기게도, 슬프게도, 냉소적이게도, 진지하게도 쓸 수 있었고 심지어 그 모두를 동시에 쓸 수 있었다”고 말한 월리스니까. 글 / 김명남(번역가)

 

<사물들> 조르주 페렉 “먼저 시선은 높고 좁은, 긴 복도의 회색 카펫을 따라 미끄러져갈 것이다.” 작년 여름, 태국 후아힌의 호텔에서 조르주 페렉이 쓴 <사물들>의 첫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휴양지로 휴가를 간 건 난생처음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몇 권 챙겨갔지만 역시나 하나도 읽지 않았고 정작 떠오른 <사물들>은 없었다. 물질 소비를 너무 좋아하는 것을 아는데, 너무 좋아하는 만큼 소비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 거라는 사실 또한 잘 아는 부부가 어떻게 이 물질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지에 대한 소설. 단순화한 내용만 보면 쉬러 떠난 곳에서 볼만할까 싶다. 하지만 공포영화를 일부러 불까지 끄고 즐길 수 있는 건 자신이 그 상황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일상에서 <사물들>을 읽는 건 공포영화 속에 들어가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그들은 부자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아니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제는 나도 잘 안다. “차츰 부자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살 수는 없었다.” 이런 문제까지는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절대적이면서 수준이 낮은 데다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비극. 가끔 비극의 주인공 역할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랑, 운명 같은 멋들어진 주제에나 해당하지 자잘하게 돈이 부족한 혹은 부족할 인생 전반에 대한 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뭔가를 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예전엔 미처 이해 못하던 소비를 하며 생각했다. 너무 좋다! 이 상태에서 읽으면 남의 얘기처럼 느낄 수 있을까? 글 / 문성원(회사원)

 

<자아 연출의 사회학> 어빙 고프먼 휴가가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이들에게 권한다. 학문적 방법으로 쓰인 책의 좋은 점은 그것이 정련되고 검증된 생각의 기술로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추상적 수준과 구체적 사례를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관통시키는 생각의 건축 안에서 마음 놓고 돌아다니는 경험. 쉽게 몰입할 수 없고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오히려 휴가와 잘 어울린다. 아이디어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찬물 더운물, 단짠단짠, 들이쉬고 내뱉고, 수축과 이완 같은 왕복 운동을 통해서만 몸소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휴가 역시 더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왕복 운동의 일부다.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이 어떨까.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부분은 길지 않으며 분석 대상으로서의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따라갈 수 있는 책이다. 고프먼이 박사논문을 위해 셰틀랜드 섬에서 3년간 진행한 섬사람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집요한 현장 연구 결과다. 가정과 일터, 파티와 도박장, 거리와 뒷골목, 다양한 산업/상거래 현장 등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폭넓게 망라해 연극 공연의 관점으로 분석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무대에 비유한다. 매 순간 자아를 연출해 드러낸다는 것은 이젠 보편적 관념이다. 바로 그 익숙한 실감을 분석틀로 구사해 설득력 있는 사회와 자아의 기술에 도달하는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가깝게는 물건을 살 때 상인과의 대화부터 시작해 일상의 모든 장면, 나아가 드라마나 영화 속 많은 장면도 다르게, 더 흥미롭게 보일 것이다. 원제는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일상의 무대에서 잠시 내려온 휴가지에서 보기 딱이다. 글 / 안은별(<IMF 키즈의생애> 저자)

 

<숲은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콘 휴가는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드는 제도다. 일상에 비일상을 틈입시키는 강력한 계기는 공간의 이동과 뜻밖의 만남이다. 휴가는 두 가지 계기에 가깝게 다가서는 일이다. 공간의 이동이 잠깐의 여행보다는 길게 거주하는 경우에 효과적이라면, 뜻밖의 만남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 여운이 일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다면 휴가지에서 읽을 책은 분명하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들어줄, 그런 뜻밖의 만남을 준비하는 책. 평소 즐겨 읽지 않아 손이 잘 가지 않던 책. 술술 읽히지 않고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책. 그래서 이번 휴가에 권하는 책은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다. ‘나는 생각한다’의 주체, ‘체계가 생각한다’의 구조에 대한 성찰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에서 ‘숲은 생각한다’라니. 물론, 요즘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 사물도 생각한다는 얘기가 유행이다. 생각하기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인식론의 문제이기 이전에 존재론의 과제다.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서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이냐로 문제가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존재론적 전회’를 이끈다는 소개는 이런 얘기와 관계 있을까. 오해든 이해든 상관없다. 비일상의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책과 뜻밖에도 만났다는 사실뿐이다. 휴가지에 들고 가서 이 책이 얼마나 술술 읽히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지 경험해보기를,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이해를 끝내 거부하는 듯한 다른 생각하기와 부딪혀보기를. 한 가지만 피하면 좋겠다.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의 방식으로 성마르게 개념화하지 말기. 내 쪽으로 끌어당겨 개념화하거나 환원하는 일은 종종 바빠서 그럴 텐데, 휴가지에서는 바쁠 일 없다. 글 / 박준석(문학평론가)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즈 지난여름, 방콕으로 떠나는 내 캐리어엔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한 권이 들어있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한 가지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시도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줄리언 반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언제나 줄리언 반스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만) 있었고, 혼자 떠난 여행지야말로 그 노력이 실행으로 옮겨질 만한 장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콕에 머문 두 번째 날, <시대의 소음>을 넣어둔 가방을 들고 호텔 밖으로 나와 카페로 갔다. 손님은 나와 다리에 깁스를 한 금발의 중년 여성뿐이었다. 구운 바나나를 곁들인 프렌치토스트와 커피를 다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 책을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그날, 나는 거기서 그 소설의 1/3을 다 읽어버렸다. 화자는 현재와 과거,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면서, 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인생 전체를 서술한다. 문장도 아름답지만, 더 근사한 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반복되는 지연과 공백, 갑작스러운 단락, 멈춤, 휴지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삶의 번영과 영예, 한순간의 실수, 몰락, 공포와 회한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떠밀려갔다가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다리를 다친 금발 여성의 뒷모습이 보이고, 창밖으로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도시가 보였다. 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무척 멀리 떨어져 나와 있구나, 라는 실감이 들었다. 줄리언 반스는 시인 블로크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꿈꿀 때만 쉴 수 있다.” 혼자 떠난 이국의 도시에서 나는 어떤 때보다 아름다운 꿈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 글 / 손보미(소설가)

 

<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휴가를 떠날 때면 책을 두세 권 챙기곤 하지만, 숱한 경험을 통해 나는 휴양지에서 진득이 책 읽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은근히 짐의 무게를 늘리는 것도 문제다. 그렇기에 어떤 이유로든 책을 챙기고 싶다면 얇고 띄엄띄엄 읽어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부합하는 책으로 국판 30절 판형이나 그보다 작은 크기의 무선 제본 책들—시집이나 에세이를 주로 택하는 편이다. 올여름 여행 가방에 넣고 싶은 책, <오늘 너무 슬픔>은 정신병을 앓는 멀리사 브로더의 에세이다.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몸, 음식, 분비물, 섹스, 사랑 그리고 죽음 등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록산 게이가 추천사에 “슬프고 불편하면서도”라고 덧댄 바와 같이 이 에세이는 조금 울적하고 다소 노골적이고 일말은 불편하다. “여성의 사적인 경험은 곧 사회적인 것”이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그가 겪은 곤경은 대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글이 무겁지만은 않게 읽히는 까닭은 언제나 한 스푼의 블랙 유머와 막말을 빼놓지 않는 그의 필치 때문이겠다. 자신의 병이 소재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네 예술에 필요하다면야 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남편의 말을 두고 “에세이도 예술일까?”라고 자문하는 데서는 잠깐 독서를 멈춰야 했다. 글쎄, 굳이 답하자면 아마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예술이든 뭐든 간에 이 감정의 구렁텅이들은 압도적이다. 글 / 송승언(시인)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언젠가부터 나는 시집을 모으기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삶에 여백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숨 쉴 틈 없이 주인공의 세계 속을 질주하는 소설에서 피로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는 숨쉴 틈을 마련해준다. 최승자의 시집을 넣은 핸드백을 들고 집을 나서는 길은 발걸음도 가볍다. 어느 날, 시 서가에서 서성이던 차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아, 이 얼마나 시적이지 못한 제목인가. 한데 호기심으로 집어든 이 책의 프롤로그가 솔깃했다. 철학과 시의 공통점은 “삶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이며, 이들의 목표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핸드백 속 시집을 꺼내 낯선 시어들을 바라보던 시간이 좋았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시를 읽는 시간은 삶의 리듬을 복구하기 위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을 난해한 학문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선으로 엮어낸 스물한 편의 시와 스물한 명의 철학자는 이 책의 제목보다 훨씬 흥미롭다. 2년 전 여름의 강원도에서 나는 느린 독서를 했다. 최명란의 시 ‘아우슈비츠 이후’는 강렬했지만,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독일에 외치던 철학자 아도르노가 이 시를 읽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관점이 안겨준 질문의 시간은 귀했다. 이번 휴가엔 시간을 ‘순삭’시켜주는 베스트셀러 소설 대신 우직한 교양서를 캐리어에 넣는 건 어떨까. 휴가지에서 삶을 역행하는 독서는 뜻밖의 해방감을 선사할 테니까. 글 / 최희서(배우)

 

<책 낸 자> 서귤 습관이란 그런 거다. 길지도 않은 휴갓길, 뭐 그리 가져갈 것이 많다고 이미 꽉 들어차 빈틈 하나 없는 가방 안에 기어코 공간을 만들어 꾸역꾸역 챙겨 넣게 되는 책 한 권. 하지만 고백하자면, 한번 손에 들면 도저히 놓을 수 없다는 추리소설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신간 만화도, 작정하고 가져간 두꺼운 고전도, 몇 페이지만 훑다 오기 일쑤였다. 안 챙기면 서운하고 가져가면 짐만 될 것 같다는 습관성 ‘책 챙김이’들이라면, <책 낸 자>는 꽉 들어찬 가방 한 쪽에 가볍게 밀어 넣기도, 휘리릭 살펴보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에도, 회사를 잠시 떠난 휴가에서 회사를 영영 떠날 계획을 남몰래 구상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1백 페이지 남짓 네 컷 만화로 구성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를 꿈꾸던 직장인이 독립출판을 통해 ‘책 낸 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하루하루 무미한 일상을 살다 어느덧 서른 살의 나를 만나고, 매사에 어떤 감흥도 없는 선배의 모습에서 5년 후의 나를 보다 저질러버린 독립출판 작가의 길. 네 개의 컷 속에 담긴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여 ‘책 낸 자’가 되는 과정은 내 일마냥 뿌듯하고, 위트와 페이소스가 교차하는 소소한 모습들은 내 일상을 들킨 듯하다. 재충전을 위해 떠난 휴가지에서 웬 진로 고민이냐고도 하겠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하겠나? 단순한 그림체와 칸과 칸 사이 여백 속에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것 또한 여백을 찾아 떠난 휴가의 목적과 닮아 있다. 일상과 꿈을 병행하는 데 따르는 갈등, 온갖 시행착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책 낸 자’가 된 후 조금은 달라진 얼굴을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처럼 나 역시 여행의 끝에서 조금은 달라진 일상을 마주하곤 하니 말이다. 글 /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여행을 떠날 땐 최근에 샀거나 눈에 띄는 가벼운 책들을 가져갔다. 한데 수년 전, 책 한 권 덕에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다. <만엔 원년의 풋볼>이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1967년에 쓰고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오래전에 사둔, 언젠가 읽은 것도 같은,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책이었다. 읽긴 했을 텐데, 의심이나 풀자는 생각으로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더운 나라였고 혼자였다. 책 읽을 시간은 충분했다. 처음에는 숙제하듯 얼마간 봤다. 고향으로 돌아간 네즈 미츠사브로와 동생 다카시는 1백 년 전 만엔 원년 농민 반란을 일으킨 증조부 형제에게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떠다니고 헤매는 캐릭터들, 그들이 마주하는 제각각의 지옥에 몹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아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 기억들 중, 전체를 몰랐기 때문에 두려움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세세하게 끄집어내 오해였음을 확인하는 과정 같았다. 그러니 더욱 헤어나지 못하고 책만 붙들고 있게 되었다. 한참을 읽다가 정신이 들면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볕은 뜨겁고 밝았다. 가만히 있으면 파도 소리도 가까이 있었다. 좋았다. 이곳이 어딘지 잊을 만큼 집중하게 하는 책 덕분에 정신이 들었을 땐 오히려 먼 곳에 온 것을, 일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을 실감했다. 여행지임을 잊게 하는, 동시에 낯선 곳에 있음을 절감하는 독서였다. 이후, 여행을 떠날 땐 묵은 책 두어 권을 꼭 챙긴다. 오해와 불신이 가득한 되도록 두꺼운 책. 글 / 김영탁(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