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6

EDITOR’S LETTER – 6

2018-08-24T15:41:53+00:00 |book|

이 글을 읽을 때 함께하면 좋을 것.

Bourgogne Pinot Noir Vieilles Vignes 2014, Maison Roche de Bellene
Fino Burgundy Glass , Zwiesel 1872

2018년은 솔리드 옴므가 30년을 맞은 해이다. 어떻게든 축하를 전하고 싶었고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사는 게 너무 바빠 미뤄만 두었다. 아직 계절은 여름이고 해를 넘기기 전 기회는 있겠으나 세월만 믿다가 종종 그랬듯 캐럴을 들으면서야 후회하고 싶진 않다. 더 나은 방법, 더 적당한 순간이란 영원히 없다. 오래전, 우영미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제목을 ‘Tender Teller’로 지었고, 다 쓰고 나선 문장을 다듬는 대신 셔츠를 다렸다. 누굴 좋아하면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묻길 기다린다.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에 축하를 더해, 글을 줄여 여기 싣는다. 인사가 너무 길면 그것도 어색해서.

사진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해 늘 똑같이 말했다. “오래 관찰하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화가 앤드류 와이어스는 작품 속 인물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화가는 없다”고 얘기하면서 웃었다. 우영미가 만든 청결하고 진지한 남자 옷을 볼 때마다, 라르티그와 와이어스의 천진하고 아름다운 대답이 떠오른다. 우영미가 오랜 시간 완전하게 사랑한 대상은 청년이다. 소년이라 말하기엔 이미 성숙하고 남자라고 부르기엔 훨씬 세심한. 그녀는 1988년에 시작한 단정한 레이블 ‘솔리드 옴므’와 2006년에 론칭한 정교하고 견고한 남성복 ‘우영미’를 통해 도시 청년들이 패션뿐만 아니라 고요의 가치와 삶의 비결까지 숙고하도록 만들었다. 우영미의 오랜 팬인 총명하고 세련된 한 청년은 그녀의 옷이 자신의 사생활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우영미 옷을 입으면 일상에서의 태도와 몸가짐, 대화법과 걸음걸이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므로, 어떤 엄격한 훈육보다 효과적이었음을 고백했다. 멋과 유행에 헌신하는 남자들이 늘어날수록, 남성복에는 기괴한 재단과 과도한 디자인이 범람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허무한 언어와 엉뚱한 논리로 자신이 만든 옷보다 한발 앞에 나선다. 우영미는 철부지 패션광들이 반짝이는 신소재 팬츠를 입고 우주를 횡영하는 꿈을 꿀 때, 도시에 필요한 건물을 세우고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옷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영미의 옷에는 기이하고 불가해한 면모가 없다. 어떤 디자이너들이 내세우기 좋아하는 손상과 왜곡, 역설과 파격도 없다. 우영미의 옷은 ‘스타일’과 ‘디테일’, ‘밸런스’의 온화한 삼중주다. 패션을 넘어선 스타일이고, 다른 온도의 언어다. 그녀가 만든 셔츠와 코트의 침착한 세부는 세필로 그린 정물화처럼 정교하다. 그리고 밸런스야말로 우영미 옷의 가장 뛰어난 지점이다. 정서적인 측면에선 우영미의 옷을 ‘에스프리’와 ‘여백’으로 표현하고 싶다. 세련되고 생기 있는 재치와 개성, 기지를 뜻하는 에스프리는 우영미 옷의 면면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다. 그리고 그녀가 만드는 옷은 과도한 장식을 배제함으로써 입는 사람이 조촐하게 연출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준다. 결국 우영미가 옷으로 보여주는 복식에 대한 태도는 그녀가 도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부드러운 화법의 문장들로 청년들 스스로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탐험을 하게 만든다. 이윽고 그들은 깨닫는다. 남성복의 우아한 매력이란 스타일의 혼란 속에서도 굳게 버티고 선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자존심’이고, 청년의 옷장은 서글픈 서커스나 보부상의 보따리가 아닌, 잘 닦인 ‘거울’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