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EDITOR’S LETTER 7

2018.09.24GQ

이 글을 읽을 때 함께하면 좋을 것.

Cognac XO Grande Champagne, Pierre de Segonzac
Vinum Brandy Glass, Riedel

피츠제럴드와 카포티: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읽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의 소설은 장편보다 단편이 훨씬 좋다. <위대한 개츠비>나 <밤은 부드러워>는 괜찮지만, ‘다시 찾은 바빌론’ ‘베르니스 단발을 하다’ ‘컷 글라스 볼’ 같은 건 정말로 좋다. 작가마다 문체가 있어서 읽기에 어울리는 계절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와 오 헨리의 글은 겨울에 좋고 여름 낮에는 헤밍웨이(글에 소금기가 있다), 밤에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냉혹한 하드보일드풍 장편이 어울린다. 커트 보네거트와 존 업다이크는 어느 계절에 읽어도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 없으나, 정신이 맑을 때 집중해서 읽으면 비로소 좋다. 피츠제럴드와 함께 가을에 권하고 싶은 다른 작가는 트루먼 카포티다. 그는 말이 많고 믿음이 약하며 사치스럽고, 남 험담하는 취미에 식성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취향이 좋았다. 돈이 없을 때도 낮밤으로 멋을 부렸고 가진 게 없을 때도 일관적으로 거만했다. 그리고 연인과 헤어진 여자에겐 “세상 모든 일 중에 제일 슬픈 건 내 사정과 상관없이 세상이 움직인단 거예요. 누군가 사랑을 잃었다면 온 우주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해요” 낯뜨겁지만 마음을 녹이는 위로 또한 할 줄 알았다. 카포티의 문장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처럼 닮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페리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다”이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 콜드 블러드>에서 발췌했다.

파티와 글렌 굴드: 파티에 가면 소란은 모퉁이마다 기다리고 있다. 술에 취한 신경 쇠약의 사람들, 바닥에 떨어진 찌그러진 도넛과 온갖 술이 쏟아져 밟을 때마다 즙이 나오는 러그, 싸구려 케이터링과 가짜 샴페인, 때도 모르고 케이크 위에 한자리 차지한 뚱뚱한 아기 천사. 주로 파티는 고역이거나 고통이고, 자주 곤혹스럽다. 잘 모르는 사람과 더 모르는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없어지고 몸이 투명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파티에선 슬픈 일은 잠시 잊을 수 있다. 절대로 술이 깨지 않는 밤, 서서 잠든 웃기는 사람들, 괜한 악수와 키스와 포옹. 그 혼란을 틈타 뭔가를 잊을 수 있다면, 기꺼이 초대장을 받겠다. 한편, 글렌 굴드야말로 파티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타고난 음악가였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했던 글렌 굴드의 기행은 자고 난 호텔방의 열쇠를 죄다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서 에어컨이 있는 식당에는 가지 않는 것, 이스라엘 항공사의 비행기만 타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만 치는 것까지, 편집증적인 행적으로 모아진다. 그가 죽은 후 음악가들은 글렌 굴드의 바흐에 대한 집착과 쇼팽과 슈베르트에 대한 냉담함을 토론했고, 친구들은 아프다고 둘러대고 번번이 약속을 펑크 낸 그의 나쁜 습관, 마침내 중병에 걸렸건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 치료 기회를 놓친 불운에 관해 얘기했다. 가을밤,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글렌 굴드의 모습을 보고 듣는다. 그는 극단적으로 낮은 고무다리 의자에 앉아 몸을 윙윙윙 돌리고 허공을 쓰다듬는 손동작을 간간이 섞어가며 열심히 연주를 한다. 섬세하고 잘생긴 옆 얼굴은 예술가의 우울과 우아함, 나약과 자존감을 한데 모아놓은 표본 같다. 드물게 아름답고 저주받은 듯한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덜 마시기로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가을은 마음을 지배하고 사로잡고 마침내 불안하게 한다. 이 계절에 할 수 있는 분별 있는 일 중, 코냑을 마시는 것도 있다. 한잔하기 위한 변명은 아니고. 그래도 할 수 없고.

    에디터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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