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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상대의 숨 막히는 카톡

2019.05.23GQ

어쩐지 질려버리는, 열어보기가 무서운, 소개팅 후 상대방이 보낸 그 카톡.

#집착하기
몇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늘 나의 안부를 챙겼다. 출근은 잘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이런 소소한 관심에 괜히 기분도 우쭐해지고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근 전까진 참 다정하다가, 퇴근 이후의 안부부터는 좀 날카롭기 시작했다. “회사 마치고 바로 운동을 간다고요?” “친구들을 만난다고요? 언제부터 알던 친구들이에요?” 이렇게 내가 한 말을 반문하는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취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차단을 하게 된 결정타는 바로 회식 날. “회식이 12시에 끝났는데 12시 반에 집에서 잠을 잤다고요? 회사와 집까지 거리가 30분은 넘지 않나요?” 이대로 계속 만나다간 내 보폭까지 계산해 귀가 시간을 체크할 것 같아 끝내버렸다.
안승진(IT 마케터)

#떠보기
‘남자’, ‘여자’를 다 떠나서 비겁한 사람이 싫다. 나에게 비겁함이란, 자신의 본심이 나의 도를 숨긴 채 상대방의 의중을 먼저 떠보는 것을 말한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거지 상대방의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거 너무 비겁하지 않나? 얼마 전 만난 소개팅남은 기분 좋게 데이트를 마쳐놓고 꼭 내 의중을 떠봤다. “다음 주말에 벌써 다른 사람과 약속 잡아 놓은 거 아냐?” “혹시 자꾸 내가 카톡 보내서 귀찮은 거아니야?” 도저히 “아냐, 나도 너랑 만나고 싶어”라는 말이나오지않아서 “ㅇㅇ” 이렇게 보내려다가 그냥 “다음에 보자”고 해버렸다. 물론 그 다음은 다음 생에도 불가능할 거다. 간보는 습관을 고치지 않는 한.
한영은(그래픽 디자이너)

#조르기
나도 한 때 ‘사랑이 밥먹여 준다’고 생각하던 지독한 낭만주의자였지만, 이제는 밥은 내가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안다. 연애하고 데이트하는 것도 생계 활동이 끝난 이후라고 생각한다. 줄줄이 이어진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김밥을 우물거리며 야근을 하던 날, 분명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던 소개팅남이 갑자기 카톡을 했다. “회사 근처인데 잠깐 나와요.” 잠깐 빠져 나가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고, 지금 화장실도 참아가며 문서작성 중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 그럼야근 끝나고 딱 10분만 봐요” 부장님한테 할 욕을 소개팅남에게 퍼붓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른 채 그와 끝을 냈다.
김영인(브랜드 PR)

#일기장으로활용
뭐 사실 소개팅으로 만나서 초반에 할 얘기가 많이 없을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나와의 채팅방을 본인 일기장으로 활용하는 건 참 곤란하다. 얼마 전 만난 그 남자는 주로 하소연을 쏟아 놓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점심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부장님이 또 다른 일을 던져주시네요.” “어제 야근해서 오늘 늦게 출근했는데 눈치가 보여요.” 모든 카톡이 다 저런식이니까 열어보기가 겁났다. “힘내세요!” “화이팅!” 외에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자연스레 ‘읽씹의 단계’로 넘어갔다. 이미 차단을 했지만 아마도 그 채팅방은 쭉 그 남자의 일기장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장영주(바리스타)

#지나친활기
기운 없는 거보다야 기운 있는게 좋지만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첫 만남부터 참 씩씩하다는 생각은 했다. 매사에 활기가 넘친다는 건 장점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카톡으로도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는 것. “오늘도 힘찬 하루 보내세요! 푸와이애탱!!” “졸음 다 뿌셔버려!! 야근 가즈아아아!!” 뭐 이런 카톡을 보고 있자면 답하기도 애매하고 광고 카톡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답을 제 때 못한 채 그를 보내줬다.
김승연(포토그래퍼)

#일방적이고자잘한선물
선물이란 것은 받으면 좋은 게 맞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지나치게 자주, 의미와 맥락없이 보내는 선물은 고마움을 넘어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아무 날도 아닌데 보내주는 커피, 과자, 디저트, 핸드크림 등등. 할리우드 리액션도 한 두번이지 계속하려니 버겁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의 카톡은 열어보기가 무서웠다. 또 이런 내용일까봐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이시은(회사원)

    에디터
    글 /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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