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만에 가면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금 오만에 가면

2019-06-25T17:05:47+00:00 |travel|

넘실대는 열기와 메마른 정경이 아라비아의 전부는 아니다. 중동의 가장자리, 오만에서 발견한 또 다른 이야기.

와히바 사막의 모래 언덕.

니즈와 염소 시장의 상인들.

알 함라의 대추야자 농장. 오만은 대표적인 대추야자 생산지다.

알 함라의 대추야자 농장. 오만은 대표적인 대추야자 생산지다.

아라비안 반도 동쪽 끝 지점인 라스 알 진즈의 해안선. 거북이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무스카트에서 알 함라로 가는 길.

와히바에 있는 럭셔리 모빌 캠프.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밤을 보낼 수 있다.

알 함라의 주택가.

상인들의 낙타. 사막이 많은 오만에선 아직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바르카에 있는 작은 바위섬.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아침이 밀려왔다. 빛은 술탄(최고 정치 지도자)의 궁전에도 들었다. 나팔 모양의 황금 기둥과 화려한 꽃이 빼곡한 화단, 잔디밭에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 소리가 점점 달아오르는 공기와 기묘하게 어울렸다. 오만은 1970년까지 사실상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보호국이었다. 현재 오만의 술탄인 카부스는 영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결혼을 한 번 했지만,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후계자가 될지 정해진 것도 없다.

오만은 석유 덕분에 부유한 나라다. 하지만 풍족한 자원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거의 없다. 가끔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부가티를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오만 사람은 규율에 따라 검소하게 산다. 외출하는 여성들은 머리를 가리라고 강요 받지 않는다. 종교적 소수자도 사회적으로 보호받는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오만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지평선을 완전히 탈출한 태양이 점점 기세를 더하며 땅에 열기를 내리꽂고 있을 때, 오만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무트라 수크’로 향했다. 시장은 혼잡했다. 낙타를 탄 사람들이 전자 기타를 연주하며 잡동사니를 팔고 있었다. 한 남자는 통통한 아기의 팔에 키스를 퍼부었다. 또 어떤 상인은 분주하게 장미 자루를 옮기고 있었다. 시장 한구석에서 빗물에 얼룩진 18세기 인쇄물을 발견했다. 왕비가 공작들과 박제한 가젤 머리 사이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장면이었다. 도시에서는 오래된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시장에서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모래와 바다
시장 근처에 있는 ‘무트라항’에서 작은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다. 무스카트의 해안가를 따라 날치들이 폭죽처럼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전기가 오른 것처럼 지느러미를 부르르 떨었다. 상어 내장 때문에 얼룩진 주황색 로브를 입은 선장에게 날치 요리법을 물었다. 그는 “아니, 뭘 그런 걸 물어요?”라며 걸걸하게 대답하더니 배 위에서 잡아 올린 참치와 씨름하다 이빨에 당한 흔적이라며 팔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 날치처럼 작은 생선보다 커다란 참치 이야기가 자신에겐 어울린다는 듯, 자신에 찬 표정으로 무용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고, 우린 무인도가 군집한 바르카의 해안에 다다랐다. 선장은 근처에 진주를 찾아 잠수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귀띔하며 하선 준비를 했다. 배를 앞뒤로 밀며 백사장에 고정시키는 동안 호기심에 머리를 삐죽 내민 녹색 거북이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선원들은 담배를 피우고, 알리는 갑자기 몰아친 폭풍 때문에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던 때의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가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저녁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만의 첫 번째 기찻길을 짓고 있다는 소식, 세찬 비가 내려 내륙 고지대에 물 웅덩이가 생겼다는 소식 등이 아랍어로 흘러나왔다. 배가 얕은 물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라비아의 밤
무스카트에서 남쪽으로 약 2백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와히바 사구가 있다. 최근 ‘샤르퀴야’라는 새 이름을 얻었지만, 아직 와히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곳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의 숙소를 찾았다. 큰 천막을 친 방 안은 커피와 숯, 야자 냄새로 채워졌다. 대추야자 나무의 잎으로 덧댄 벽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숙소를 제공한 베두인 가족의 장녀 살마는 은색 실로 장식한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은빛이 반짝였다. 낯선 이방인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는지 살마가 플라스틱 병을 건네며 낄낄댔다. 조그만 돌로 가득 찬 병 안에서 연두색 ‘데스 스토커’ 한 마리가 허둥대고 있었다. 그녀의 남동생이 병에 가둬 집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한 번만 쏘여도 폐와 심장을 멎게 하는 이 전갈은 외부인의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촉수를 세워 독침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이 더웠다. 1422년에 이곳에 왔던 탐험가는 “단검에 박힌 보석이 석탄이 돼버릴 정도”라고 와히바 사구의 더위를 기록했다. 열기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스물다섯 살 살마는 뜨거운 낮이 지나면 사막에 적막이 찾아온다는 걸 안다. 가끔 성운이 가득 껴서 우주가 그린 하얀 밤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외딴 시골이라 해도 작은 짐승이 우는 소리나 바람에 흔들리는 잎이 내는 소리가 있기 마련이다. 마주 앉은 그녀에게 ‘사막의 적막’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살마는 빛에 따라 황갈색과 보라색 사이를 오가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한번은 모래언덕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쪼그리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야 겨우 방향 감각을 다시 잡을 수 있었죠. 신기루는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으로도 찾아와요. 정말로 고요한 사막이라면요.” 밤이 절정에 달하자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침묵이 사막을 기습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내 ‘청각의 신기루’가 찾아왔다. 모래 안에서 생명이 움트고, 느릿느릿 자라나는 소리가 슬며시 귓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동이 틀 무렵, 이국의 낯선 공기에 눈이 뜨여 숙소 밖으로 나갔다. 엷은 안개가 사구를 포위하고 있고, 아라비아 오릭스와 작은 새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가득 찍혀 있었다. 지난밤 피운 불은 꺼지기 직전이라 희미한 빛을 냈다. 방금 껍질을 벗겨낸 굴처럼 하얀 아침 햇볕이 밝아오는 가운데, 세 마리의 낙타가 생각에 잠겨 반쯤 감긴 눈으로 마른 아카시아를 씹고 있었다. 새벽녘의 와히바는 공허로 가득 찼다. 영국의 아랍 독립운동 지도자 T.E. 로렌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버려진 사막의 성을 방문했을 때, 꽃물을 넣어 반죽한 점토로 벽을 세워 재스민과 장미꽃 향이 나는 방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자 동행한 아랍인 동료가 그를 창가로 데려가 바람이 막 휩쓸고 지나간 황량한 사막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가 최고야. 아무 향취도 없어.”

오만의 삶
여행의 끝자락, 내륙의 오래된 도시 암 함라를 거쳐 니즈와에 당도했다. 한때 오만의 수도였던 곳이자 매주 시끌벅적한 염소 시장이 서는 곳이다. 픽업트럭과 낡은 밴으로 인해 주변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남자들은 어린 자녀를 안고 시장을 돌아다녔고, 염소가 여기저기서 발을 구르며 날뛰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베두인족 여자들은 성난 염소를 달래고 있었다. 정신없었지만 무질서하지는 않았다. 어떤 동물도 유실되거나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험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 모퉁이에 작게 마련된 새 시장에서 들리는 잉꼬들의 울음소리가 더 컸다.

상인들은 당나귀를 자갈이 깔린 길로 걷도록 이끌었다. 등에 실은 비둘기 우리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진로를 잡았다. 우리 안의 하얀 비둘기들은 시장에서 팔리게 될 운명을 모르는 듯 평온해 보였다. 청년들은 시장까지 타고 온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두고 어마어마한 양의 양파를 발로 차며 옮기고 있었다. 한 여성은 가판대 위에 놓인 닭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날개를 펼쳐 뒷부분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모습이 빈티지 재킷의 소매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어린 아들은 녹초가 된 듯 엄마에게 잔뜩 기댄 채 서 있었다. 닭의 날개를 들춰보던 엄마는 아들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시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왁자지껄했다. 상인들은 즐거운 어조로 손님과 흥정을 했고, 거래가 끝나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크게 웃기도 했다.

니즈와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미스파는 바위에서 솟아난 것 같은 요새와 1천 년 된 망루가 있는 마을이다. 황토색 건물로 둘러싸인 골목길을 걷자 흙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낮게 깔렸다.

발자국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또 있었다. 펄럭이는 분홍 비단으로 몸을 둘러 히비스커스 꽃잎에 싸인 것 같은 두 소녀가 걸어왔다. 그 뒤로 아버지가 따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유 한 병, 다른 한 손에는 가축을 먹일 풀을 베는 곡선형 단검을 농기구처럼 쥐고 있었다. 카페에선 남자들이 카르다몸을 섞은 차와 작은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1면에는 ‘공항 이용객이 7퍼센트 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머지않아 신문은 카페 구석에 던져졌다. 오만에선 어떠한 변화도 너른 포용에 가라앉고 만다. 다시 미스파로 돌아오니 모든 게 평화로웠다.

늦은 오후, 카페의 웨이터는 바닥의 담배꽁초를 쓸었다. 바삭한 과자를 접시에 채우기도 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남자가 카페로 들어왔다. 족히 십 년은 된 듯 먼지가 내려 앉은 군용 외투를 걸쳤고, 맨발이었다. 낡은 외투처럼 오랜 세월을 견딘 듯한 발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오만 사람들의 역사를 활자 대신 설명했다. 남자는 무거운 가방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더니 작은 저울을 꺼내 끈적이는 유황 덩어리의 무게를 쟀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오렌지 빛 석양이 아라비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예고하고 있었다.

오만에서의 초여름
수도 무스카트 기준으로 6월의 평균 기온은 약 37도다.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며 습도는 매우 낮다. 더운 날씨만 견딜 수 있다면, 오만은 인내의 대가를 반드시 제공하는 곳이다. 열흘 정도면 사막 꼭대기서부터 해안가의 캠핑장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는데, 작은 선박을 빌려 선장과 선원들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프로그램은 일정에 꼭 넣는 게 좋다. 배 안에서 수산물을 활용한 음식까지 제공한다. 와히바 사막 주변에 야영지가 몇 개 있긴 하지만, ‘럭셔리 모빌 캠프’를 이용하면 사막 더 깊은 곳까지 경험할 수 있다. 차를 빌려 구리나 석탄이 나는 산악지대를 달리는 로드 트립도 짜릿하다. 무스카트에서 가장 좋은 호텔은 ‘체디 Chedi’다. 오렌지 정원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높이의 빌라로, 프라이빗 비치가 인접해 있다.
오만 관광청 | omantourism.gov.om | @experienceo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