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샷]의 킬링 포인트 '세스 로건' | 지큐 코리아 (GQ Korea)

[롱 샷]의 킬링 포인트 ‘세스 로건’

2019-07-04T15:46:44+00:00 |interview|

로건은 변함없이 웃긴다. 하지만 이젠 할리우드의 실세, 뭐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셔츠, 드리스 반 노튼 at 바니스 뉴욕. 선글라스, 화이트 마운티니어링 × 자크마리마지. 시계, 튜더. 커프는 세스 로건의 것.

셔츠, 반바지, 모두 구찌. 시계, 튜더. 본인 소유의 빈티지 재떨이, 구찌.

셔츠, 팬츠, 모두 루이 비통. 슈즈, 사바. 선글라스, 가렛 라이트. 시계, 튜더.

수트, 폴 스튜어트. 셔츠, SSS 월드 코퍼레이션. 샌들, 그렌슨. 안경은 세스 로건의 것.

세스 로건은 인생의 전략을 정제한 어록, 그러니까 지혜와 영감을 조그마한 덩어리 따위로 빚어 아침 요가와 말차에 곁들이도록 건네주는 그런 친구가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인생의 전략’이라고 여기지도 않을 테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 해도 그와 어울려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정한 패턴이 보인다. 예를 들어 멘토를 찾아라,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격려라도 해줄 누군가를 찾아라, 오래 가는 관계를 구축하라, 점진적으로 성장하라, 자만심을 경계하라, 타인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지 말라, 자기 작업에 대한 통제권을 쥐어라,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진행하라 등이다.

어느 오후, 페어팩스의 켄터스 델리 구석 부스에 자리한 세스 로건은 맛초볼 수프를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 수년간 그는 이 식당 바에서 파티를 열었으며, 사무실을 갖추기 전까지 회의실이나 다름없었던 이곳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곤 했다. 이렇다 보니 식당에 들어선 그가 가장 잘 나가는 인기인인 양 환대를 받는 게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남자 몇 명이 다가와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로건은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연사로 찍는다. 촬영을 마친 그들이 돌아가자 로건은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 뒤로 사진 속의 제 모습도 훨씬 나아지더군요”라고 설명한다.

세스 로건을 보며 그가 이십 대 시절 연기한 마리화나에 취한 백수에 아이 같은 캐릭터들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올해 서른 일곱살인 로건이 합법적인 사업을 이끄는 경영자이자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일으킨 창업자로서, 연기나 각본, 제작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낯설 수도 있다. 지난 봄, 단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예로 들어보자. 로건이 그의 창작 파트너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이끄는 제작사 포인트 그레이와 라이온스게이트가 맺은 멀티 플랫폼 계약이 발표된 데 이어, 소비자 교육에 중점을 두고 모국인 캐나다에 설립한 마리화나 브랜드 하우스플랜트가 출범했다. 자신의 영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각본을 쓰고 연기하는 것 외에도 로건은 TV 프로그램(<프리처>, <퓨처 맨>, <블랙 먼데이>, <더 보이즈>) 제작과 성우 (<소시지 파티>, <라이온 킹>)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부인 로렌 밀러-로건과 함께 <세스 로건: 웃음의 마법으로>라는 코미디 시리즈를 만들어 알츠하이머병 환자 부양 및 연구에 쓰일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고, 2020년엔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다. 하지만 로건이 과거에 연기한, 조금씩 모자란 캐릭터들이 여전히 아른거리는 건 어쩌면 그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다. 그 이미지야말로 십 대 시절 할리우드로 건너와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온 로건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숨을 곳이기 때문이다. 로건은 버닝 맨 페스티벌 참가자이지만 일 중독자이기도 하다.

“저는 항상 열심히 일했어요. 그게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꽤 어릴 때부터 깨달았거든요. 꼬마였을 때 문화회관에서 공수도를 배웠는데, 시작할 당시 제가 그 반에서 가장 못 하는 애였어요. 괴롭힘 당할까 겁내는 유태인 꼬마 25명 중 꼴찌였던 거죠. 그런데 다들 중간에 그만둬서 3년이 지난 후에는 제가 1등이 되어 있었죠. 그건 언제나 확실하고 분명한 길이었어요. 그만두지 않기만 해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엄청난 도약 같은 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계속해서 했을 뿐이고, 다른 이들이 그만두기 시작했던 거예요. 다른 일도 비슷하죠.”

로건은 그의 신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롱 샷>을 선보이며 전 세계 극장 사업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시네마콘에 투입되었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경의를 표하는 건 꼭 필요한 과정이다. 3월에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시사회를 가진 <롱 샷>은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공동으로 주연을 맡은 로건과 샤를리즈 테론의 앙상블에 대한 열렬한 기대가 따라왔다. 극중 국무장관이자 대선 후보인 테론이 과거에 로건의 베이비시터였다는 설정은 세스 로건이 가장 잘하는 장르로의 복귀이자, 그가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 중 익히 알려진 캐릭터의 진화 버전이다. <사고 친 후에>,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같은 영화에서 보인 흐리멍텅한 게으름뱅이 유형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들 대부분에서처럼 로건은 금발의 쿨한 여성과 맺어지고 마약도 양껏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로건의 묘사에 따르면 그가 “지금껏 연기한 다른 인물들이 완전히 잘 풀린 경우”에 해당하는 주인공은 최소한 겉치레로나마 진짜 직업과 적절한 윤리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전이 보인다!

<롱 샷>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로건은 다년간 개발 과정을 이끌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는 이번 결과물의 흥행에 대해서도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확실히 마음을 편하게 먹게 되죠. 제가 들떠서 보러 갈 영화가 아닌 작품을 홍보하는 건 어색하고 불편하거든요.” 자랑스럽게 내놓은 영화 몇 편의 성공과 젊음으로 가득했던 커리어 초기, 로건과 골드버그에게 언뜻 일생일대의 기회로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극장판 <그린 호넷>의 각본 제의를 받은 것인데, 로건에게 주연까지 맡기겠다는 얘기였다. “우리의 첫 반응은 ‘오! 최고다!’였죠.” 그들은 자신들이 쓴 영화 프로젝트들의 창작 과정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그 결과 코미디 영화인 <슈퍼배드>와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모두 흥행에 크게 성공해 제작비의 몇 배나 회수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영화는 제작비가 낮았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는 더 크고 비싼 영화들에 관심과 신경을 쏟고, 우리는 내버려뒀죠”라는 게 로건의 설명이다. 하지만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코미디에서 특수효과로 가득한 1억 2천만 달러짜리 액션 영화로 넘어가는 건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그 전까지 저는 ‘우리가 뭘 하든 스튜디오는 상관 안 해. 진짜 좋아’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 경영진 미팅에 들어가 ‘자, 서류 첫 페이지를 봐주십시오’라는 말을 듣게 된 거죠.” 그때부터 <그린 호넷>은 감독 교체와 촬영장에서의 불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2011년 개봉한 후에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 뒤로 로건과 골드버그는 이미 검증된 그들만의 공식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2천에서 3천5백만 달러 사이 예산이라면 스튜디오 입장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어요. 말 그대로예요. 1억 5천만 달러짜리 영화를 제작 중인데 그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한 스튜디오는 우리한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거라는 거죠. 오히려 예산이 적은 영화야말로 그들이 한 주간 내린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이 되는 거예요. 저희가 만든 영화들 중 상당수는 그저 스튜디오의 골치덩어리가 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던 것들이에요.”

로건이 작품의 실패로부터 회복하는 방식은 더 많은,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린 호넷> 때도 그러했으며, 그 덕에 다른 이라면 커리어가 완전히 뒤집어질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로건은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실망스러웠죠. 제가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비난하는 수천 개의 기사에 포위되는 것도 끔찍하고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면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거예요. 중요한 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거죠. 안 좋은 작업물보다 좋은 작업물을 더 많이 내놓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요.”

밴쿠버 동부에서 자란 로건의 가정과 도시는 진보적인 분위기였다. 환경 문제나 총기규제, 동성 결혼, 낙태, 건강보험 등의 이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곳에서 자라는 게 어떤 건지 미국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로건의 말에 따르면 그런 이슈들은 “캐나다에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얘기가 끝났고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로건의 부모는 항상 그의 창의적 활동을 지지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워크숍에 참가하라는 부모님의 제안은, 향후 세스 로건의 커리어의 향방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저 혼자 어린애였지만 제 농담이 꽤 잘 먹히는 것을 보며 고무됐죠. 어쩌면 소질이 없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로건의 어린 시절 스탠드업 영상 속에서 그는 유태인 여름 캠프, 유태계 조부모, 그리고 불량배들에 관한 농담을 느긋하게 풀어놓는데, 뻔뻔스러운 자신감이 인상적이다. 스탠드업을 하기 시작한 로건은 관객에 익숙해지는 한편, 농담의 타이밍을 갈고 닦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프릭스 앤 긱스>의 캐스팅 담당 팀이 밴쿠버를 방문했는데 로건은 오디션을 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캐스팅 담당자들이 엄청 웃었던 걸로 기억해요. ‘날 떨어뜨린다면 다들 엿이나 먹으라고 해’라는 생각으로 오디션장을 나섰죠.”.

그리고 하루아침에 로건은 수업을 빼먹고 마리화나를 피우던 고등학생에서 어른들에 둘러싸여 하루 14시간씩 촬영을 하는 연기자가 되었다. 당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부모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함께 지냈고, 열일곱 살이었던 로건은 갑자기 직업을 갖게 된 데 더해 한동안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졌다. “저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저임금 연기자였지만 아버지가 ‘내가 평생 번 것보다 올해 네가 벌어들일 수입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행복했어요.”

골드버그가 합류한 후 둘은 <슈퍼배드>의 각본을 완성하고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쓰는 데 힘을 쏟았다. 애퍼타우는 이따금 개작 일거리를 던져줬으며, 둘을 <다 알리 지 쇼>의 작가로 고용함으로써 휴식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몇 년간 로건과 애퍼타우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 친 후에>, <수퍼배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의 작업을 함께했고, 로건은 스타가 됐다. 로건은 당시 만든 영화들이 세대를 초월한 명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최근 골드버그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자식들이 다 자랄 때쯤에는 우리가 만든 영화들이 도저히 못 볼 것들로 치부될 거야. 사람들은 문화의 어떤 부분들을 퇴행적이라고 생각할 테고, 그런 건 아무도 안 볼 거야. 우리가 만든 영화들이 거기에 속할 가능성이 크지’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로건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처럼 모두가 의식적으로 깨어난 사람인 것처럼 구는 시대에, 계몽이나 훈계도 아니고 무기력하거나 밋밋한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코미디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을 진짜로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며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화에 나오는 어떤 장면 때문에 자신은 기분이 엉망이 되었는데, 정작 다른 관객들은 모두 웃고 있더라는 식의 얘기들을 해준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네가 왜 게이인지 알아?’ 신 말이에요. 그 장면을 두고 관객들이 웃는데, 심지어 실제로 자기가 무엇을 비웃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웃어버리는 상황이 유쾌하지 않았다는 반응들이 있었죠. 이제 저는 어느 누구도 우리 영화를 보며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를 원해요.”

일련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후 애퍼타우 사단에서 빠져나간 것은 자연스러운 전환이었으며 극적인 사건 같은 것도 없었다. 앙금만 남은 이혼이 아니라 더 열린 관계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그는 10년도 더 전에 영화 <50/50>의 기획을 들고 애퍼타우를 찾아가 제작을 부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애퍼타우는 <퍼니 피플>을 만드는 중이라 거절했고, 로건과 골드버그는 직접 제작을 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들은 창작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제작과 진행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작품 안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죠. 이젠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불편해지더라고요.”

애퍼타우의 품에서 벗어나 경쟁자가 되는 게 어땠는지 물어보자,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라고 점잖게 정정해준다. 분열과 대립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지나간 길에 망가진 관계들을 여기저기 남겨두는 사람이 아니다. 로건과 골드버그는 “열두 살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인격이 여러 면에서 같이 형성된 사이”로서, 로건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우리”라는 표현을 쓸 때는 골드버그를 지칭하는 것이다. 로건은 여러 협력자들과 수차례 반복해서 협업을 했는데, 영화감독 니콜라스 스톨러와 조너선 러바인 뿐 아니라 자주 함께 출연하는 동료 배우들 제임스 프랭코, 조나 힐, 크레이그 로빈슨, 대니 맥브라이드, 폴 러드 등도 포함된다.

로건은 유명 인사이면서도 어쩐지 유명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신뢰를 얻는 부분이 있다. 백스테이지 입장이 가능한 투어 가이드 또는 환각의 세계를 넘나드는 주변인처럼 보여 공감을 산다. 로건이 겪은 유명인들과의 비현실적인 만남에 관한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 칸예가 아무런 예고 없이 집으로 찾아와 같이 농구를 하자고 했다거나 톰 크루즈에게 인터넷 포르노에 대해 알려준 일 등은 심야 토크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실감을 잃기 쉬운 셀러브리티들 세계의 다른 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연기자로서 제 자신을 평가한다면 비교적 안정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배우들과 함께 일해봤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 저를 본다면, 제가 보통 사람이 겪는 힘겨운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죠. 사람이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많은 어려움을 제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않고 넘겨버릴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저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죠. 그래도 전 제가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아주 적극적으로 말이죠.”

로건의 성격은 <스토너>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그대로이고, 그 덕에 팬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게 가능하다. 이는 스스로의 본질에 대해 세상을 상대로 사기를 치지 않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아까 저랑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기분 좋은 건 제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제가 그들을 기만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런 관계가 마음에 들어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보며 똑똑하다거나, 천재라거나, 또는 열심히 한다거나 생각하건 말건 관심 없어요. 사람들이 제가 제 영화에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다음 날, 그는 베벌리 대로에 위치한 핸드 브 데스티니 도예공방에 개인 교습을 받으러 나타났다. 그가 초보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물레를 다룰 줄 안다! 굽칼도 쓴다! 알고 보니 로건은 아내와 함께 도예 수업을 들어왔으며 점토를 만지는 데서 안정감을 얻는다고 한다. “치유 효과가 있어요. 마지막에 뭔가가 생겨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요가랑 비슷하죠.” 로건은 금세 대칭이 맞는 재떨이를 두 개나 완성했다. 이토록 다양한 우물을 동시에 파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내기 위해 로건의 평상시 스케줄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날 아침 그는 6시 45분에 일어났다. 운동을 마치고 커피를 내린 뒤 강아지를 곁에 앉힌다. 골드버그와 집필 중인 코믹북 원작의 영화 <인빈서블> 대본을 1시간 동안 작업한 후 자신의 회사 하우스플랜트와 관련해 길게 통화를 한다. 포인트 그레이 사무실이 최근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선셋 대로의 자택 근처로 이사한 관계로 그는 통화를 마친 후 사무실에 들러 제목 미정인 코미디 영화의 편집 상황을 점검한다. 사이먼 리치가 각본을 맡은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로건은 두 가지 역할을 소화해낸다. 그리고 5분 만에 점심 식사를 해치운 뒤 도자기를 구우러 오게 된 것이다. 이후의 일정은 골드버그와 내년에 연출할 영화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이다.

“여러 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걸 좋아해요. 가끔은 일이 너무 많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극과 기운을 얻죠. 할 일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데에 능숙한 편이에요. 그렇다고 소시오패스 같지는 않고요.” 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선택할 때 기저에 깔린 개인적인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그 동기가 불순한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만심에서 비롯되거나 쿨해 보일 것 같아서, 또는 사람들이 나를 똑똑하다고 생각해줄 것 같다는 이유로 제가 움직이는 상황이 생길 경우,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경각심을 키우려 애썼어요. 이름을 얻고 성공해감에 따라 중력에 이끌리듯 자만심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죠. 자만심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방향을 틀어야 하는 거예요. 앞으로만 가려고 한다면 빨려 들어가고 말거든요. 저는 여전히 가끔씩 ‘운전대를 틀어줘야겠는데’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요. 주변에서 모두 ‘아이디어 좋네, 돈 여기 있으니까 가져가서 한번 해봐’라고 하기 때문에 서서히 자만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본인이 나서서 ‘아냐, 그건 좋은 생각이 아냐’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반면 자신감이 넘칠 때 획기적 발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로건은 덧붙인다. “종이 한 장 차이예요. 칸예를 예로 들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신발을 만들지? 그냥 음악이나 해’라는 반응을 보였거든요. 근데 칸예가 만드는 신발은 굉장하잖아요. 칸예 덕에 아디다스는 돈을 엄청 벌었고요.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길에서 굉장한 성취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라는 게 로건의 설명이다. “칸예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극장에 대한 얘기를 계속 했었죠. 여덟 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 했어요. 전 속으로 ‘이봐, 역사상 가장 뛰어난 랩 앨범을 몇 개나 만들었잖아. 왜 영화관까지 만들려고 하는 건데? 그냥 끝내주는 랩 앨범이나 계속 만들지’라고 생각하고 앉았었던 거죠. 하지만 칸예는 멋진 신발을 만들었고 저도 가끔 신어요. 그래서 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죠. 어디까지 확장하고 있나? 새로운 것을 얼마나 시도하고 있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가? 얼마나 기존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가? 끊임없이 조정해나가죠.”

로건은 다 만든 재떨이를 건넨다.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가 갓 완성한 도자기들을 둘러보았다. 로건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노력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물체를 손에 쥐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걸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잠깐 동안의 도예 수업은 끝났고, 다음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