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관람기 | 지큐 코리아 (GQ Kore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관람기

2019-07-19T16:23:53+00:00 |culture|

이보다 뜨거운 여름이 있을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린 메트로폴리타노 스타디움을 찾았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지원된 닛산의 전기차 리프.

마드리드 시내 곳곳에 암표상의 입장권 거래 벽보가 붙었다.

토트넘의 슛은 번번이 리버풀의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에게 가로막혔다.

경기장까지 트로피를 운반한 리프 니스모 RC 2.0.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는 이래서 재미있다. 토트넘은 ‘승점 자판기’로 예상된 팀이었다. 명문 팀에 비하면 선수들의 존재감이 흐릿한 게 객관적인 사실이고, 총 네 장의 카드가 배정된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프리미어 리그에 올랐다. 손흥민이 뛰는 팀이라서 내심 선전을 바라면서도 언제든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별 리그를 통과하고는 8강에서 맨체스터 시티까지 이겼고, 이변을 일으키던 또 하나의 팀 아약스도 궤멸시켰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리버풀과의 결승 매치 확정.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른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공항에서 시작된 마드리드 내에서의 모든 이동은 닛산의 차로 소화했다. 챔피언스 리그 관계자와 방문객의 이동 등 결승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운송 업무를 닛산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닛산은 총 3백63대의 차를 투입했는데, 차종은 각각 해치백 리프와 미니밴 e-NV200. 모두 전기차였다.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호베르투 칼르로스는 전기 레이스 카인 ‘리프 니스모 RC 2.0’를 타고 경기장까지 우승 트로피를 옮기는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챔피언스 리그는 단일 종목 중 시청자가 세 번째로 많은 스포츠 이벤트다. 각기 다른 리그에 속한 세계적인 선수들끼리 맞붙기 때문에 시청 범위가 유럽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홍보 효과도 톡톡하다. 하지만 닛산의 스폰서십은 스포츠 이벤트와 기업의 단순한 제휴가 아니었다. 전기차 확충을 독려하는 마드리드시의 정책과 자동차 배출가스 저감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닛산의 비전이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마드리드는 현재 전기차 확충에 매우 적극적인 곳이다. 도시 일부를 ‘배기가스 저감 구역’으로 설정해 노후한 내연 기관차의 진입을 막고 있으며, 1백10기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를 시내에 골고루 설치하고 있다. 닛산이 이벤트에 동원한 전기차를 충전하기 위해 경기장에 설치한 36기의 충전기도 결승 이후 마드리드시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닛산 리프는 세계에서 누적 판매 대수가 가장 많으면서도 한 번도 화재가 난 적이 없는 차다.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에 지원되는 자동차라면 ‘신뢰도’를 따질 수밖에 없다.

마드리드는 더웠다. 결승 경기가 점점 임박하자 영국에서 날아온 두 팀의 서포터즈로 도시는 더욱 달아올랐다. 경기 하루 전, 챔피언스 리그 페스티벌이 열리는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은 난장판이었다. 하얀 유니폼의 토트넘 응원단과 빨간 유니폼의 리버풀 응원단이 몇백 명씩 뭉쳐 대치했다. 상대 팀의 기를 꺾으려는 듯 서로를 향해 자신들의 응원가를 불렀다. 축구 때문에 도시 전체가 술렁였다. 현지 언론은 숙박비가 평소의 8배가량 올랐으며, 암표는 약 1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짜 입장권이 유통되고 있으니 사기를 조심하라는 뉴스도 나왔다. 외교부에서 문자도 날아왔다. “훌리건 및 유혈사태 주의.”

결승 당일, 마드리드시 외곽에 있는 메트로폴리타노 스타디움 주변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됐다. 도중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장갑차와 무장한 기동 경찰이 경기장을 둘러쌌고, 기마 경찰이 주변을 순회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쯤 스타디움에 도착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입구에서 가방을 일일이 뒤지며 보안 검사를 하는데, 영상 촬영을 위해 들고 간 짐벌이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입장을 불허했다. 짐벌을 버릴 수도, 1천만원이 되어버린 입장권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무기나 폭발물이 될 수 없다고 설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용 인원이 약 6만8천 명인 스타디움은 이미 만석이었다. 리버풀 측은 경기가 시작 되기도 전에 붉은 연막탄(어떻게 반입했는지 모르겠지만)을 터뜨려가며 우승을 요구했다. 반면 토트넘의 서포터즈는 비교적 온순해 보였다. 개인용 깃발을 흔들며 응원가를 부르는 게 전부였다. 경기 시작 18초 만에 무사 시소코의 핸들링 반칙이 선언되기 전까지는.

토트넘 팬들은 패널티킥 키커로 나선 살라를 향해 야유했다. 하지만 여유롭게 골을 밀어 넣은 살라는 토트넘 관중 측으로 달려가 검지로 입술을 막으며 도발했다. TV 중계엔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장으로 온갖 집기가 날아들었고, 토트넘 팬들은 일제히 ‘주먹감자’를 날렸다. 시작부터 경기가 풀리지 않자 토트넘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손흥민이 반전을 노리며 공격을 주도했지만, 이가 맞지 않는 톱니처럼 계속 어긋났다. 토트넘은 경기 막판 쐐기골까지 내주며 무기력하게 경기를 내줬다. 손흥민은 눈물을 쏟았다. ‘한 방’ 해주리라는 기대를 업고 출전한 헤리 케인은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토트넘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결승에서 멈췄고, 리버풀은 12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리버풀의 팬들은 토트넘의 팬들이 쓸쓸히 퇴장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마드리드의 밤을 점령했다.

이튿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향한 공항에서 아직도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즈들이 눈에 띄었다. 리버풀에서는 우승을 자축하는 퍼레이드가 벌어져 또 다시 거나하게 취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기대가 컸던 만큼 허망했던 원정길,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순간과 자부심을 안겨준 여정. 축구는 이래서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