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홈파티를 여는 방법 | 지큐 코리아 (GQ Korea)

최고의 홈파티를 여는 방법

2019-07-26T13:49:09+00:00 |culture|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올래? 홈파티가 부쩍 늘었다. 옆자리 손님이 대화를 엿들을까 신경 쓸 필요도,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목소리를 높일 일도 없다. 그 대가로 인간관계의 새로운 관문이 하나 더 생겼다.

“이번에는 디자이너랑 다 같이 저희 집에서 볼까요?” 업무상 두어 번 만난 출판사 편집자가 문자로 수줍게 운을 뗐다. 뭐랄까. 그와 나 사이에 쌓여 있던 야트막한 담이 풀썩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소나기가 퍼부었던 며칠 전 저녁에는 생면부지의 주민들과 탁자에 둘러앉아 스키야키를 먹기도 했다. 요가원에서 알게 된 동네 사람이 주선한 홈파티였다. 어색함도 잠시, 주민들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사이에 두고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고물고물 풀어졌다. 직업을 변호사라고 밝힌 주인이 살구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요즘은 집이 제일 편해요.”

집에서 갖는 모임이 부쩍 늘었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홈파티를 열 만큼 손님 초대를 즐기는 나이지만, 호스트가 아닌 게스트로 이렇게 분주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생각지도 못한 남의 집 방문이 잦아지면서 손님 초대를 즐기는 호스트들의 면면에도 눈길이 갔다. 오래된 약수동 아파트를 휴양지 무드로 꾸민 친구 K는 무엇보다도 홈파티의 가성비를 높이 샀다. K는 길쭉한 와인 잔에 요즘 유행이라는 슬로베니아산 오렌지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그거 알아? 이 7만원짜리 와인이 밖에서 마시면 15만원이야. 내가 이래서 외식을 못 한다니까.” 서촌 한옥에서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사는 건축가 S의 가치관도 이와 비슷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일랜드 키친 너머에 선 그는 “요즘 바깥 음식은 참 먹을 게 없어요. 특히 애들 먹거리는 정말 최악이에요”라며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참나물을 얇게 저민 소고기 수육 위에 소복이 올려놓았다. 빈 접시를 치우는 틈틈이 레코드판을 뒤집는 라디오 작가 P의 손놀림에서는 손님 접대에 익숙한 호스트의 내공이 엿보였다. “요즘은 웬만하면 다 집으로 불러요.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요.”

남의 집에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항공사 마일리지 쌓이듯 흐뭇한 감정이 샘솟았다. 옆자리 손님이 대화를 엿들을까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술값 뒤집어쓸 걱정 없이 앉은 자리에서 2차, 3차 달릴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바깥에서 샌들 끈이 끊어지도록 놀다가 토사곽란에 시달리느니 아늑한 가정집에서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다 대리를 불러 귀가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10년 전에도 “홈파티족이 트렌드”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IMF 이후 주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외식을 줄이던 시기였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홈파티 완전정복’ 같은 기사가 잡지 커버스토리를 장식하곤 했다. 다만 이때의 홈파티는 ‘홈’이 주는 안락한 느낌보다는 ‘파티’의 글래머러스한 뉘앙스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아서, 기사도 실용적인 팁보다는 화려한 테이블 세팅이나 서구의 파티 매너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센터피스 만드는 법’, ‘포틀럭 파티 에티켓’ 등을 소개한 기사 말미에 파티 플래너의 비현실적인 조언을 살짝 덧붙였다. 이런 식이었다.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소장품을 하나씩 내고 경매를 해서 그 수익금을 파티 주최자에게 주면 부담을 줄일 수 있어요”. 에티켓이나 매너에 대한 글도 대부분 해묵은 해외 기사를 베낀 것이어서,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필터 없이 게재하는 일도 흔했다. “친하게 지내는 가정일 경우 초대받은 여성은 뭔가를 도와드릴 일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 좋다.” 당시만 해도 홈파티는 유한마담의 호사 취미에 가까웠고, 유한마담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집 보여주길 꺼렸다. 집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이 드물었던 것이다.

지금의 홈파티는 서양식 사교모임의 우스꽝스러운 재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집 꾸미기, 요리, 배달 음식 등의 유행이 버무려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형 커뮤니티 문화에 가깝다. 비로소 홈파티의 포즈가 아닌 본질을 우리 식으로 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프라이빗한 실내 공간을 선호하는 ‘샤이’한 성정의 한국인에게 홈파티는 친목을 꾀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홈파티는 우리가 앞으로 적응해야 할 인간관계의 새로운 관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인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진솔한 자기소개이자 “넌 어떤 사람이니?”라고 되묻는 무언의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이때 홈파티는 서로의 취향과 태도를 가늠하는 일종의 리트머스지 역할을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7년 차 호스트이자 초보 게스트로서, 그간의 사적인 경험과 팁을 공유하려는 이유다. ‘센터피스 만드는 법’이나 ‘포틀럭 파티 에티켓’처럼 근사한 팁은 아니다.

일단 누구를 초대할 것이냐의 문제. ‘게스트를 잘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파티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스트의 합을 고려해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을 부르기보다, 약간 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편이 한층 신선한 ‘케미’를 보인다는 뜻이다. 단 복날을 옹호하는 육식주의자와 골수 채식주의자인 비건을 함께 부르는 건 피할 것. 오늘날 가장 예민한 대화 주제는 트럼프도 이슬람도 아닌 채식이다.

제철 음식을 핑계 삼아 평소에는 갖기 어려운 대규모 모임을 주선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자주 써먹는 방법 중 하나다.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에는 민어 파티만큼 아름다운 핑계도 없다. 5킬로그램에 달하는 튼실한 민어 한 마리를 집에서 ‘가정식’으로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홈파티뿐이다. 회와 전으로 먹고 남은 머리와 뼈로 탕을 끓이면 10인분도 거뜬하다. 여기에 차갑고 프루티한 드라이 리슬링까지 곁들인다면 슈퍼 호스트로 등극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불어 한국인의 술자리는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잠깐 휴식, 탄수화물’ 순서로 마무리된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디저트는 생략해도 상관없지만 탄수화물 음식만큼은 넉넉히 준비해둘 것을 권한다. 애주가들의 “배부르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알코올 레이스의 막판 스퍼트로 안초비 파스타, 트러플 짜파게티 한 그릇을 거부할 술꾼은 많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술자리를 탄수화물로 마무리하는 일본식 해장이 점차 호응을 얻는 추세다.

고급스러운 테이블보나 냅킨 링으로 상차림에 너무 힘을 주는 것도 비호감 호스트로 찍히는 지름길이다. 경험상 과도한 데커레이션은 오히려 게스트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보다는 현관 옆에 켜둔 티라이트 향초 하나, 화장실 세면대에 무심히 놓은 꽃병 하나가 훨씬 사려 깊어 보인다. 다소 서먹한 파티 초반에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철 지난 가요가 예상 밖의 호스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스트들 사이에 공통된 화제가 포도송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홈파티를 즐기는 사람의 인간관계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집에 부르고 싶은 사람, 아직은 시기상조인 사람, 다시는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 전자에서 후자로 강등되고 싶지 않다면 게스트로서의 예의도 조금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단 호스트의 집에 너무 일찍 가는 건 피해야 한다. 특히 약속 시간 10분 전이라면 호스트가 길을 헤매거나 주차 공간을 묻는 게스트들의 전화를 받느라 상당히 허둥대고 있을 시간이다. 그 아비규환의 시간에 벨을 누르느니 차라리 10분쯤 지각하는 편이 안전하다. 음식에 대한 칭찬도 호스트를 춤추게 만드는 고전적인 스킬 중 하나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이 양고기 어디서 샀어요?”라며 재료의 출처를 묻거나 레시피를 받아 적는 건 그중에서도 꽤 고급 스킬이다.

호스트로서 가장 기분 좋은 게스트는 오늘 어떤 요리를 낼지 물어본 뒤 그에 어울리는 술을 사오는 사람이다. 선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아닌 이상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자하기로 혜민 스님 못지않은 나는 웬만한 선물에 다 감동하는 편이지만, 집 앞에서 급하게 샀을 것이 분명한 마카롱 세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와인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민어의 가장 맛없는 부위를 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홈파티에서 분위기 띄우기 좋은 게임 하나. 이른바 ‘리즈 시절 사진 월드컵’. 말 그대로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리즈 시절 사진을 한 장씩 꼽아 TV나 프로젝터 화면에 띄워 자웅을 겨루는 게임이다. 이때도 주변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아도취적 사진은 금물이다. 홈파티는 서로의 취향과 태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지니까. 글 / 강보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