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리스 엘바가 원하는 것 | 지큐 코리아 (GQ Korea)

이드리스 엘바가 원하는 것

2019-08-30T14:03:18+00:00 |interview|

이드리스 엘바는 열심히 일하고, 어디에나 있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드라마부터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 영화, 그리고 코첼라 DJ까지 그는 어디서나 뚜렷하다. 사람들은 이드리스 엘바에게 무엇을 원하고, 엘바는 어떻게 기대에 답하는가?

코트, 디올 맨. 팬츠, 루이 비통.

LEADING MAN
이드리스 엘바,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

TURN UP
“내 온몸을 세상에 던져서 남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끌려가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웃음거리가 되고, 칭찬을 들어요. 그게 어떤 행동이건, 저로 인해 더 격렬해진다는 건 확실하죠.”

코트, 프라다. 탱크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데님 팬츠, 지방시.

LOOK AHEAD
엘바는 예의 바르고 현실적인 지능형 캐릭터를 갈고 닦아왔고, 이제 주류 영화계의 중심에 서려 한다.

재킷과 티셔츠, 모두 루이 비통. 팬츠, 드리스 반 노튼. 링, 지방시. 헤어 제품, 필립 비. 메이크업 제품, 조르지오 아르마니.

THE CLIMB
엘바가 중간 정도의 인지도에서 주류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멈췄다가 기어가다가 펄쩍! 뛰는, 그런 과정이었죠. 정말로.”

확실히, 그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키가 컸다. 이드리스 엘바를 한 시간째 만나면서도 그것을 계속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1980년대 영국에서 흑인으로 자라면서 영화배우를 꿈꾼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한참 진행 중이었다. 가나와 시에라리온 출신 부모의 아들로 이민 2세대 노동계급 청소년이었던 이드리사 아쿠나 엘바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엘바는 런던의 해크니와 이스트런던의 캐닝 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 성향이 강한 지역들이니, 그의 역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캐닝 타운에서 흑인으로 살다 보면, 길에서 ‘깜둥이’라며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모욕을 당하곤 했어요.” 그는 회상한다.
하지만 엘바는 경험을 곱씹기보다는 화제를 돌리는 편을 선호했다. 열세 살 때 만난 웨일스 출신 연극 교사, 맥피 선생님은 어린 엘바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깨웠다. “그때, 푹 빠져버렸죠.” 엘바는 말한다. “선생님은 이런 식이었어요.” 엘바가 생기 넘치는 설명조의 교사 말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뜨거운 프라이팬 위의 달걀이라고 상상해보자. 달걀 프라이가 되는 중이야. 어떤 기분일까?” 엘바는 먼저 같은 반 아이들의 반응을 흉내 냈다. 수업에 협조적이지 않은, 시끌시끌한 십 대 소년들 말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입으로 기름이 튀고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며. 격렬한 연기였다. <루니툰>의 대피 덕과 비슷했다. “’정말 잘하는구나.’” 엘바는 다시 맥피 선생님의 말투로 돌아갔다. “혹시 기름에 튀겨진 적 있니?”
올해 마흔여섯 살의 엘바는 튀김과는 거리가 먼, 단련된 몸의 소유자다. 희끗희끗해서 더 근사한 머리카락 아래로 티셔츠와 트랙 수트 팬츠를 입은 수수한 차림새였는데, 티셔츠에는 도검 범죄 반대 문구인 “네 미래를 찌르지 마(Don’t Stab Your Future)”가 적혀 있었다. 도검 범죄는 최근 몇 년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급격히 늘고 있으며,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인 청년이 주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엘바는 BBC 시사 프로그램 <더 원 쇼>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할 예정이다. 그는 이 방송에 출연하는 데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큰 방송에 나가서  말하는 게 아무래도 영향력이 있겠죠.”
엘바는 담배를 피워도 괜찮겠냐는 양해를 구한 후, 열린 창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상체를 뻗어 말보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의도한 게 아닌데도 그림 같았다. 이때가 되어서야 엘바는 조금 전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을 시작했다. 1980년대 영국, 아버지 세대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층에 속한 흑인 청년이 스타의 꿈을 안고 산다는 건 어떤 일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그에게 롤 모델은 누구였을까?
“당시 영국엔 흑인 배우나 예능인이 많지 않았어요.” 엘바는 담배 연기를 뿜어낼 때마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음악계에서 레게가 큰 인기긴 했죠. 영국인들은 레게를 사랑했어요. 레게는 영국 내 흑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카리브해 지역 출신 이민자들의 음악인데, TV를 틀면 레게 밴드나 레게-백인음악 퓨전 밴드가 늘 나오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에 비해 흑인 배우는 무척 적었어요.”
예외는 물론 있었다. 레니 헨리 쇼로 유명한 코미디언 레니 헨리가 좋은 예다. 엘바는 당시의 전 세계 사람들, 특히 흑인들이 그랬듯 시드니 포이티어, 해리 벨라폰테, 리처드 라운트리 등 미국 흑인 배우들을 보며 자랐다. 이후에는 데뷔 초기였던 웨슬리 스나입스와 덴절 워싱턴의 연기를 열심히 봤다. 워싱턴은 1980년대에 영국군 흑인 공수부대원이 주인공인 영화 <최후의 총성> 촬영 차 영국을 방문한 적 있다. 엘바는 워싱턴이 촬영 기간 동안 영국 흑인들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영국에도 흑인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엘바는 워싱턴이 그래야 했던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미국 생활을 막 시작한 배우 지망생이었던 저는, 캐스팅 회의에 갈 때마다 그 자체로 참신한 시도가 되는 존재였어요.” 엘바가 말했다. 영국 흑인 배우는 미국인들에게 낯선 경험이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배우 새뮤얼 L. 잭슨이 2017년에 영국 흑인 배우들의 존재가 미국 흑인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옳건 그르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그 수가 늘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당신보다 그것이 좋아>에서도 작중 인물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엘바가 신인이던 시절의 오디션 현장에서는 이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무렵 담당자들은 (엘바는 눈을 휘둥그레 뜨는 흉내를 냈다) ‘악센트가 정말 멋지시네요, 아주 고급스러운데요’라고 말한 후 ‘깡패 1번 역할로 캐스팅하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이제는 농담을 섞어 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엘바와의 인터뷰는 그의 제작사, 그린 도어 픽처스가 위치한 캠든 타운의 안락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2013년에 설립된 그린 도어 픽처스의 작품은 엘바와 같은 역량을 갖춘 배우를 ‘깡패 1번’으로 캐스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엘바에게는 그런 시절이 끝난 지 오래다. 그는 에미상 후보에 오른 수사물 드라마 <루터> 시즌 5를 포함해 작년 한 해만 TV 드라마를 세 작품이나 찍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야디>라는 범죄 스릴러 영화로 감독 데뷔를 마쳤으며, 개봉을 앞둔 뮤지컬 <캣츠>의 실사영화에도 출연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스핀 오프인 <분노의 질주: 홉스&쇼>도 이번 달에 개봉할 예정이다. 엘바의 성공에 대한 이력을 늘어 놓자면, 이것들로는 부족하다. 엘바의 사무실은 코팅된 유리창이 달린 대형 차고를 닮은 근사한 문 뒤로 별다른 표식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위층의 녹음실에서는 애나라는 젊고 재능 있는 여성이 프로듀서 몇 명과 함께 곡을 녹음하고 있었다.
엘바에게 올해는 성공적인 해인 동시에 놀라운 해다. 엘바는 평소보다 코미디를 조금 더 많이 찍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턴 업 찰리>에서는 보모가 된 DJ 역을 맡아 얼빠진 성격의 미혼남을 연기했다. 최근에는 <SNL>에 첫 호스트 출연을 마쳤다. 음악적 성공도 거뒀다. 4월에 코첼라 페스티벌에 출연해 2시간 동안 그의 장기인 하우스와 힙합 위주의 무대를 매끄럽게 선보인 것이다. 대중문화 전문 매체 <벌처>는 이 무대가 “실제로도 대단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엘바가 DJ로서 이보다 더 호평을 받은 무대는 단 하나뿐인데, 바로 작년 5월에 열린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 파티의 디제잉이었다. 해리 왕자에게 직접 부탁 받은 무대였다.
HBO의 드라마 <더 와이어>의 스트링어 벨 역으로 미국 드라마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2000년대 초에 비하면 그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인간 엘바 또한 스트링어 벨과 사뭇 달랐다. 그는 작은 역을 맡았을 때도 그 인물에 비밀을 감춘 듯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엘바 본인은 정반대다. 1.5미터 앞에서 본 엘바는 성격이 원만하고, 개방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기’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겠지. 혹은 스트링어 벨 효과인지도 모른다. 엘바는 악역일 때조차 사연을 궁금해하게 만든다. 그에겐 타고난 흡인력이 있다.
엘바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사람들의 대규모 영국 이민이 끝나갈 무렵인 1972년에 태어났다. 영국 출생 흑인으로서 그는 이러한 흐름이 개인의 정체성에 여러 면에서 복합적으로 결부된 세대에 속한다. 노동계급 지역에서 자란 경험도 정체성의 일부다. 영국 케이블 채널 스카이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인 더 롱 런>은 해크니와 캐닝 타운에서 보낸 엘바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엘바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남성이자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인물이다. 엘바는 이 드라마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종종 진짜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갈등을 느껴요. 1980년대의 제 인생을 연기하고 있으니까요. 가끔씩 아, 이 이야기 기억나는데, 싶을 때가 있어요. 다시 펼쳐진 과거의 한순간 속에서 아버지를 연기하다 보면 당시의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돼요.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기이한 경험이죠.”
그의 아버지는 이스트런던의 대거넘에 위치한 포드사의 자동차 공장에서 약 25년을 근무했다. 제조 라인에서 일한 후 노조 간부직을 맡았다. 엘바는 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갔는데, 본인의 뜻은 아니었다. “열아홉 살 때였고, 야간근무 조였죠.” 엘바가 회고했다. “전업 배우가 되면 열심히 해볼 수 있겠다는 각오가 그 시절에 생겼어요. 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반복적인 일을 밤새도록 할 수 있으면, 연기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엘바는 미국법상 근로 가능 연령에 도달하기도 한참 전에 뉴욕으로 가 오디션 기회를 잡으려 애썼다. 여름휴가 때면 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캐스팅에 도전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단조롭지만, 전형적인 깡패나 농구선수의 키와 체격을 지닌 흑인 배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촬영되는 폭스 영화사의 파일럿 작품 참여를 계기로 비자를 발급받아, 나이가 차는 대로 미국 내 오디션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97년, 그는 뉴욕으로 이사했다. 생계는 계속 클럽 경비와 마리화나 판매 등으로 유지했다. 2001년에야 미드 <더 와이어> 시즌 1으로 기회를 잡았다.
엘바의 스트링어 벨은 <더 와이어> 속 흑인의 삶의 묘사에서 핵심적인 존재다. <더 와이어>의 기획자 데이비드 사이먼은 스트링어 벨이 드라마에서 퇴장할 당시, 엘바에겐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이먼에게는 있었다. 그는 엘바에게 “이번 시즌이 방영되고 벨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필요 이상으로 일이 들어올걸.
조만간 주연으로 영화를 찍는 날이 올 거야”라고 말했다. 엘바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렇게 되면 좋겠죠”라고 답했고 그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더 와이어> 시즌 3가 방영된 후, 엘바의 커리어는 긍정적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영국에서는 드라마 <루터>에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는 프랜차이즈 영화 조연으로 다수 출연해 주류 영화배우로서 기반을 다졌다. 한편 <더 와이어> 직후 그는 <가스펠>, <디스 크리스마스>, <대디스 리틀 걸스> 등 미국 흑인 영화에도 여러 편 참여했다. 사람들은 더 큰 작품에 관심이 쏠려 이 부분을 지나치기 쉽겠지만, 엘바에게 흑인 영화 출연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HBO가 <더 와이어>를 1시즌에서 3시즌으로 늘린 이유는 이후 흑인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었어요.” <더 와이어> 출연이 끝난 후, 흑인 제작자와 감독-엘바에 따르면 윌 패커, 타일러 페리와 제작진 등-들은 엘바가 흑인 영화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할 일련의 배역을 제안했다. 엘바는 “<더 와이어> 이후의 제 세계는 그곳에서 시작했죠”라고 말한다. “이젠 더 이상 흑인만 흑인 영화를 보지 않죠. 관객층이 넓어진 거예요.”
최근 엘바의 꿈이 커졌다. 그에겐 지금까지 갈고 닦은, 예의 바르고 현실적인 지능형 캐릭터로 주류 영화계의 중심에 서려는 목표가 있었다. 많은 이가 엘바를 위태로운 도덕적 정의감과 복잡한 영웅성을 소유한 주인공으로 접하는 데 익숙했지만, 그의 노력은 최근 보이지 않는 한계에 직면한 듯했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엘바 007’ 루머는 그의 영화계 활동에 대한 논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엘바는 제임스 본드에 딱 맞는 배우니까. 엘바가 최초의 흑인 007이라는 추측이 인기를 얻은 한 계기는 <할리우드 리포터>지가 미국에서 진행한 2018년 설문조사였다. 응답자의 63퍼센트가 엘바를 차기 본드로 지지한다는 결과는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엘바 007’은 늘 예측이라기보단 희망 사항이었다. 엘바가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엘바는 인터뷰에서 차기 007 가능성이 없다고 확언한 후, 이 주제를 반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제임스 본드는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배우가 도전하는 상징적 캐릭터죠. 본드 역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좋다고 답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동안 ‘흑인 본드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던 건 아니라는 거죠.” 거듭된 007 추측으로, 이제 그는 마지막 본드 영화를 앞둔 대니얼 크레이그와 찍은 셀카를 올리며 대중들을 도발하는 등 루머의 확산에 재미를 붙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일이다. 흑인 007은 매력적인 발상이자 서사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기회다. 흑인이나 여성(혹은 둘 다인) 본드가 자신이 백인 남성일 것이라는 모두의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수없이 많은 잠복경찰 영화와 흑인 B급 영화가 이런 시나리오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어쨌든 스파이 이야기니까. 첩보물을 제대로 하려면, 스파이의 정체가 뻔하지 않을수록 좋지 않겠어요?” 엘바의 말이다. 그래도 엘바는 이 주제에 대해 말하고픈 열의가 없었다. 그의 차분한 태도가 잠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건 안 된다’는 사람들의 말이 실은 내 피부색을 뜻한다는 게 밝혀지면 낙담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내가 그 역할을 맡았는데 잘 안 되거나 잘된 이유가 다 내 피부색 때문이라면 말이죠. 굳이 그런 힘든 입장을 떠맡고 싶진 않아요.”
차기 본드 여부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엘바는 이미 세계적 성공을 거둔 프랜차이즈 영화에 여럿 출연했다. 지금은 시리즈 영화의 시대다. 엘바는 다양한 대작 프랜차이즈 영화에 등장하는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그의 적응력에 비할 만한 배우는 조이 살다나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엘바는 에일리언 시리즈인 <프로메테우스>, <토르> 3부작 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스타트렉> 시리즈, <도리를 찾아서>, 디즈니 실사화 영화 <정글북>, <퍼시픽 림> 등에 출연했다. 007 시리즈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인종 중립적 캐스팅을 통한 주연 출연도 경험했다. 2017년 영화 <다크타워: 희망의 탑>에서 그는 매커너히와 영원한 대결을 펼치는 신비로운 건슬링어 역을 맡았다. 흥행엔 참패했지만, 흘러간 서부 총잡이의 분위기를 비틀어 우아함을 더한, 무뚝뚝한 주인공 캐릭터는 엘바가 장르나 배역과 상관없이 관객을 유인하는 진정한 스타임을 증명했다.
인종 중립적 캐스팅의 장점과 필요성은 명백하다. 어떤 역할도 다양한 몸매, 체격, 피부색의 배우에게 주어질 수 있다. 백인 배우를 문화적 표준으로 고수한 그간의 태도는 비슷비슷 지겨운 작품들을 낳았다. 백인이 아닌 배우들의 경력 발전을 가로막은 것은 물론이다. 엘바는 그런 이유에서 <토르> 시리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가 맡은 아스가르드의 수호자 헤임달은 모든 것을 듣고 볼 수 있는 귀와 눈의 소유자다. 그간 원작 만화에서 헤임달은 보통 “금발에 푸른 눈, 장발을 흩날리는 북유럽 신”으로 그려졌다. “흑인 아이들도 만화책을 본다는 걸 사람들이 갑자기 깨달은 거죠”라고 그는 말한다. 헤임달 역은 오디션으로 얻었다. “<토르> 1편을 감독했던 케네스 브래너가 ‘배우로서의 당신이 정말 좋다’며 같이 일하자고 했죠.”
엘바는 프랜차이즈 영화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배역을 고를 때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얼마나 작용하는지 안다. “배우들의 최종 목표 중 하나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캐릭터를 맡는 것, 그리고 그 캐릭터가 고유의 세계로 확장해 팬층을 갖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신의 시리즈가 생기는 걸 싫어하는 배우는 없겠죠.” 현재 엘바의 프랜차이즈는 BBC 드라마 <루터>다. 그가 맡은 주인공 존 루터는 자신감 넘치고 충동적이며, 자주 도를 넘는 탐정이다. 엘바는 응원은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는 주인공을 통해 도덕적 혼란을 일으키는 드라마를 이끌었다. 현재 시즌 5까지 온 <루터>는 미국판 제작이 논의된 적도 있다.
관객이 이드리스 엘바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 와이어>는 엘바에게 주류와 흑인 영화라는 두 갈래 길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전형적 인물을 구축하는 결과도 낳았다. 엘바의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바로 악역이다. 악당이 된 이드리스 엘바, 보고 싶지 않은가?
혹은 악에 가까운 모습이라도. 스트링어 벨은 마약상, 즉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링어 벨은 공동 기획자 에드 번스가 경찰 시절에 수사했던 실존 인물, 레이먼트 ‘친’ 파머를 기반으로 하는 캐릭터다. 사이먼은 “파머는 기민하게 자신의 범죄 활동을 은폐했죠. 조용한 인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엘바의 캐릭터, 벨도 마찬가지다. 미남에 내성적이며 전문적인 태도가 흥미를 유발한다. 벨은 MBA처럼 일을 처리하는 방심할 수 없는 존재로, 엘바는 이 긴장감을 독특하게 활용한다. 사이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리 출신의 대범함”과 “마음 깊은 곳 그와 모순되는 심리적 힘”이 작용하는 모습이다.
엘바는 자신의 유년기에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복잡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가 연기한 스트링어 벨은 어린 시절 동네의 마리화나 판매상, ‘더 젠트’에 다소간 기반했다. 젠트는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했으며, 신중했다. 엘바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 젠트에 대해 말했다. “몸집이 크고,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는 캣 대디였어요.” 그는 어떤 일을 좋고 나쁨 이외의 방식으로 설명하길 좋아했고, 서비스 정신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벽돌을 팔지.” 엘바가 그를 흉내 냈다. “‘그 벽돌’ 말고. 난 고급 가구를 팔아. ‘그 고급 가구’ 말고. 알겠냐?”(벽돌을 팔다sell bricks와 가구furniture는 각각 마약판매와 마리화나를 뜻하는 은어다.)
엘바의 신작인 <분노의 질주: 홉스&쇼>도 드웨인 존슨과 빈 디젤을 주연으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시리즈의 스핀오프다. 여기서도 엘바는 우리의 예상처럼 한때는 선했던 악당 역을 맡았다. 이 인물의 이름은 브릭스턴이지만, 모든 이가 그를 블랙 슈퍼맨이라 부른다. 유전적으로 강화된 신체를 소유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감독 데이비드 리치는 고민 없이 엘바를 택했다고 한다. “드웨인 존슨의 호적수가 될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아요.” 리치의 말이다. “그런데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테이섬 콤비의 호적수를 찾아야 했죠. 후보가 더 없었어요.” 엘바는 이렇게 말했다. “브릭스턴을 훌륭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죠.” 엘바는 악역 연기를 좋아한다. 악역의 복잡함은 평소와 다른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엘바는 일상적 세계 너머를 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갈망하길 멈추지 않는다. 그가 특정 유형 전문 배우로 남는 걸 원치 않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언 매켈런, 주디 덴치,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캣츠>를 택한 것일까? 그는 ‘악당’ 고양이인 매커비티 역을 맡았다. 뮤지컬 <캣츠>의 원작은 T.S.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서 매커비티는 “인간의 모든 법칙을 어겼고, 중력의 법칙도 어기네. 그의 공중부양 능력은 고행 수도자도 눈을 뗄 수 없다네”라고 묘사된다. 중력의 법칙을 어긴다니, 엘바가 이 역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엘바가 프라이팬 위에서 익는 달걀을 연기하는 모습을 조금 전 보았으면서도, 필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했다.
<캣츠>의 톰 후퍼 감독은 오래전부터 엘바의 팬이었고, 특히 스트링어 벨 역을 좋아해 대본 초안 단계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캣츠>에서 그는 “엘바에게 숨겨진 짓궂고 유머러스한 일면”에 주목했고, 잭 니컬슨의 “무서우면서도 웃기고 예측 불가한 면모”를 떠올리기도 했다. 엘바는 배역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개라는 속담이 있는데, 매커비티는 그중 하나만 남은 상태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절실하고, 불안정하며, 이미 죽음과 몇 번 맞닥뜨렸던 경험이 있어요. 후퍼 감독은 노래와 춤과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원한 것 같아요.” 엘바가 고양이 흉내를 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노래는 어떨까? “전 ‘가수’는 아니죠.” 엘바는 자신이 프로 음악인임을 상기시키는 답변을 했다. “뮤지컬에 가까운 음악을 만든 적은 있지만.” 엘바는 <캣츠>에 캐스팅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고, 새로운 도전이었다. 후퍼에 따르면 당시 엘바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고 한다. “전혀 몰랐는데, 뮤지컬 출연이 이드리스의 꿈이었다고 하던데요.” 후퍼의 말이다.
꿈을 이루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는 엘바의 커리어가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지 않은가. <캣츠>는 이 서사의 일부다. 연기 인생만 잘 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DJ들에게 코첼라 페스티벌은 몇 년을 노력해야 설 수 있는 큰 무대다. 엘바의 음악 경력에서 코첼라가 하나의 정점이었던 이유다. 그는 몇 년 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한 바 있다. 작년엔 <피플>지의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 표지 모델로도 선정됐다. 흑인 남성으로선 1996년 덴절 워싱턴 이후 최초였다.
마치 엘바가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두가 갑자기 깨달은 듯한 흐름이었다. 2017년에 케이트 윈슬렛과 멜로 연기를 한 후, 매튜 매커너히와 SF를 하고, 드웨인 존슨과 액션 대결을 펼쳤다. 이런 성공이 남들 눈에는 마치 갑자기 톱스타가 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엘바는 잘 알고 있다. 실제로는 그랬다. “맬컴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렇게 노력했어요.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기-어-가-다-가 멈췄다가 기어가다가 펄쩍! 뛰는, 그런 과정이었죠. 정말로.” 그랬다. 엘바는 <더 와이어>로 ‘뜨기’ 전에도 9년간 전업 배우로 일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엘바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엘바는 자신의 음악적 경력이 전환점을 맞이하기까지 4~5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극장과 TV에서 상영하는 엘바의 신작들은 대부분 2019년 이전에 촬영됐으며, 올해 개봉이 몰렸다. 늘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지는 않았다. 미국에서의 첫 3~4년간 그는 오마 엡스, 돈 치들, 보리스 코조, 타이디그스 등에게 밀려 배역을 쉽게 얻지 못했으니까.
불안을 직면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배우라는 일의 일부다. <SNL> 출연을 예로 들자. 무대 뒤 엘바의 유머러스한 면모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오피스> 출연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일주일 안에 구상, 각본 작업, 리허설까지 마쳐야 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에 꼭 출연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바는 <SNL> 호스트가 “무척 힘들지만 재미있고 결과가 정직하게 나오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SNL> 출연은 스스로를 공개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스스로의 불안감을 솔직하게 드러낼수록 좋은 경험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엘바는 대중에게 딱히 숨기지 않고 자신의 불안을 드러낸다. 그에게는 그게 현실이다. “내 온몸을 세상에 던져서 남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끌려가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웃음거리가 되고, 칭찬을 들어요. 그게 어떤 행동이건, 저로 인해 더 격렬해진다는 건 확실하죠.” 이런 삶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는 어느 누구라도 힘들 것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대단한 배우죠.” 엘바가 말했다. “그는 대중에게 노출되는 걸 꺼리면서도 연기를 계속해요. 저도 저를 드러내지 않고 데이 루이스 같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문제는 21세기에 유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거다. 데이 루이스는 엘바가 영화계에 진출했을 당시 아카데미상 수상자였다. 엘바처럼 성실하고 매력적인 연기자가 SNS 시대 이전에 데뷔했다면 상황도 달랐을 거다. “SNS 팔로워가 없어도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지만, 내 팔로워가 8백만 명이고 이들이 내 영화를 본다면, 영화사 입장에선 환영이겠죠? 그 결과, SNS를 활발하게 하라는 압박이 커지는 거예요.” 트위터에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는” 시대는 끝났다는 뜻이다. 엘바는 “셀카나 집 사진을 찍을 때는 사람들이 배경을 확대해서 본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좋아하진 않을 망정, 엘바는 이 방면에 통달했다. 두 번째 인터뷰 날짜까지 몇 주 동안 코첼라가 이어졌고, 모로코에서 3일간 진행된 엘바의 결혼식도 끝났다. 비공개 행사였지만 엘바의 유명세로 인해 공개가 되어버린 결혼이었다. 영국 <보그>가 화려한 사진을 실었고, 전 세계 팬들이 아쉬움의 한숨을 쉬었다. 엘바는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 촬영 차 토론토에 머무르던 중 한 파티에서 사브리나 도레를 처음 만났다. 다소 구식의, 평범한 첫 만남이었지만 그에겐 이상적이었다. “인생은 균형의 문제예요. 일은 해야 해요. 지금 인기가 있고, 일이 있는 게 최고니까. 하지만 동시에 전 아내와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하죠.” 지금도 엘바의 최우선 순위는 명성이나 유명세가 아닌, 어른이 된 캐닝 타운의 소년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집에서 저는 유명하지 않아요, 그냥 저일 뿐이죠.” 엘바의 말이다. “주변 사람들, 가족, 매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해요. 그럴 때는 유명인 같은 건 없다는 것, 아시겠죠? 모두에겐 매일매일이 새로운 출발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