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비용', '탕진잼'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형태 | 지큐 코리아 (GQ Korea)

‘시발 비용’, ‘탕진잼’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형태

2019-09-04T15:05:20+00:00 |culture|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펑펑 쓰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혀를 찰 일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미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얼마 전 한 외국 트위터 계정에서 ‘시발 비용’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일러스트 하나를 봤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기사로 꽤 강렬한 이미지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왜 젊은 한국인들은 돈을 펑펑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Why Young Koreans Love To Splurge).”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시발 비용’, 낭비하는 재미를 일컫는 ‘탕진잼’ 등의 신조어를 소개하면서 한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비 습관을 취재한 기사였다. 기사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다. “좋은 코트를 사라.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 집을 살 수 없을 테니까. 지금 당장 스테이크를 먹자. 우리는 절대 은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모으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건 나와 주변 친구들의 (그리고 추측하건대 당신의) 이야기다. 정신 나간 상사 때문에 지옥을 경험 중인 A의 인스타그램 피드엔 날마다 미술작품에 가까운 파인 다이닝 사진이 업데이트된다. 가격 또한 작품 뺨칠 것이다. 또 다른 친구 B는 쿠튀르 재킷을 맞췄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고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기사의 부제는 “때로는 월급을 모두 써버리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였는데, 이건 사회 초년생 시절 한 선배가 내게 해준 조언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말 잘 듣는 후배였던 나는 그 가르침을 믿고 따랐다. 거기에 특유의 기질,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돈이 손에 있는 꼴을 못 보는” 성격 덕에 런던에서 한량으로 지내고 있는 요즘도 ‘합리적으로’, 그냥, 막 살고 있다. 물론 나도 친구들도 모두 가난하다. 적어도 SSG에서 쇼핑을 즐기고 1:1 요가 레슨을 정기적으로 받을 정도로 풍족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까다롭게 와인과 구두를 고르고 호기롭게 택시를 턱턱 잡는다.

이 기사가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상황을 영어로 썼기 때문이 아니라 시발 비용이 전 세계를 관통하는 시대적 현상이라는 데 있다. 미국의 소셜 뉴스 커뮤니티 ‘레딧’을 비롯해 ‘스크리브드’, 캐나다의 ‘레드 플래그 딜스’ 같은 웹사이트들은 이 기사를 퍼다 날랐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미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내 얘긴가? 나를 포함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는 밀레니얼 세대들 역시 집을 갖는 것이 꿈이다. 결코 이룰 수 없는 꿈!”, “이건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냥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사고방식 아닐까?”, “내가 보기에 이건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십 대들의 철없는 사고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시발 비용’, ‘탕진잼’과 궤를 같이하는 ‘욜로(Yolo)’나 ‘샴페인 라이프스타일, 레모네이드 머니’ 같은 외국 신조어까지 생각해보면, 이건 확실히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에서는 “영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은퇴 후 노숙자가 될 위기에 직면했다”고 단언했다. 최소 63만 명은 연금 수입으로 임대료를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에 그 누구도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한 친구는 “런던 사람들이 가끔 회사에 결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하철 푯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었어. 그럴 만도 하지”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가 하면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미국인 열 명 중 단 한 명만이 은퇴 후에도 충분한 만큼의 저축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아홉 명은 퇴직 연금제인 401(K)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저축을 포기하거나 너무 적은 양을 저축한다는 거였다. 스스로 너무 많이 저축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고작 0.5퍼센트에 불과했다. 테드 토크 웹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트렌드 카테고리에 ‘내일, 내일을 위해 저축하기’ 라거나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과의 싸움’ 같은 새로운 저축법과 재정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강연들이 절로 뜬다. 굳이 검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내 주변의 밀레니얼 세대 런더너들의 생각 또한 ‘이번 생은 망했다’에 가깝다. 열댓 명의 친구에게 얼마나 계획적으로 지출하는지,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지, 그렇든 그렇지 않든 어떤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간단한 설문을 부탁했다. 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친구만이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가 집을 물려받았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운이 좋은 상황이라는 조심스러운 코멘트를 남겼을 뿐이다. 누군가는 크래프트 비어에 수백 파운드를 쓰고, 어떤 이는 여행이 취미이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그러게, 그게 문제다”, “런던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세계를 여행하고, 책과 미술품을 사는 것”, “미래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않으려고 하지만 비전은 가지고 있다. 그 비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즉 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계속 변화한다”와 같이 막연하고 한숨 섞인 답이 돌아왔다. 의외였던 건 그들 모두 내심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판타지에 가까운 얘기긴 하지만”, “내가 그만큼 통제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조건을 걸긴 했지만 말이다.

애초에 10년 후 계획 같은 걸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거의 전멸했다고 봐도 좋다. 집단적으로 미래를 망각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만 같다. 도대체 왜? 사방에 매혹적인 아이템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와 어디서든 소비가 가능한 인터넷 환경 때문에? 정말 호주의 한 백만장자의 말처럼 소비욕구를 참지 못하고 “아보카도 토스트와 커피에 40달러를 쓰면서 평생 집을 사지 못할 거라고 징징거리는” 우리 세대가 문제인 건가? 자기 합리화나 핑계로 들리지도 모르지만, 난 이런 ‘내일이 없(어 보이)는’ 우리 세대의 소비 행태가 심리학적 생존의 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당장 4천원 상당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든 마시지 않든, 어차피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룰 수 없다. SNS에 떠도는 자조 섞인 말처럼 아보카도 브런치 값 48년을 모으면 기껏 집 구매에 필요한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요지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금 이 순간에만 목 매는 이유는 기성 세대의 비난처럼 현실감각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는 거다. 이건 집도, 자본도 없을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한, 돈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집을 사는 게 성공의 증거가 된 건가? 왜 성공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행도 자제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전 재산을 털어서 집을 구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 세대의 풍요로운 삶의 양식이란 40평형의 브랜드 아파트보다는 옥탑에서의 와인 한 잔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근본적인 만족감을 위해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진짜 내게 안정감을 주는 요소와 삶의 방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에 사는 지인은 창문 밖으로 나무가 무성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은 지 40년쯤 된 아파트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새로 도배를 하는 일이 나름 재미있고 오래된 아파트의 우아한 구조가 마음에 든다면서. 런던 친구 중 하나는 도시를 떠나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투자가치가 전혀 없는 작고 저렴한 땅을 샀다. 그는 중고 벤을 개조해서 살고 있고 수입은 거의 없으며, 하루 종일 잡초를 뽑아가며 그 땅을 농장으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런던으로 돌아올 계획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페이스타임 화면 너머 그의 얼굴은 확실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가끔 망해가고 있다는 현실감이 밀려올 때면 우리는 그저 우스갯소리를 나눈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생각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실패자들의 커뮤니티 같은 거나 만들자. 포르투갈 농장에서 가지나 감자 기르면서 요리는 직접 해 먹으면 되지 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나? 원래 허무한 농담만큼 냉정한 위안이 되는 것도 없는 법이다. 솔직히 말해서, 런던은 고사하고 서울에서 집을 살 가능성보단 몇 배는 현실적인 계획 아닌가? 그것만큼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글 /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