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의 늪에 빠진 요즘 시대 | 지큐 코리아 (GQ Korea)

‘괜찮아’의 늪에 빠진 요즘 시대

2019-09-04T15:14:46+00:00 |culture|

혹독한 자기계발의 시대를 지나 이젠 뭐든 다 괜찮다는 위로가 서점가를 점령했다. 곰돌이 푸나 라이언의 얼굴을 한, 귀엽고 공허한 위로가 이 시대를 떠돌고 있다.

위로받는 데도 지쳤다. 괜찮아, 안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아.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애뽈의 숲소녀 컬러링북: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에겐 아직 마지막 카드가 있어>, <시시콜콜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괜찮아 그냥 너 하나면 돼>…. ‘괜찮아’ 라는 말은 2018년 이후 갑자기 책 제목으로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어린이를 위한 용기의 심리학’이라는 부제의 <미움받아도 괜찮아>라는 책도 있다. <곰돌이 푸우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를 위시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 위로는 영원히 이어질 듯 보인다.

당신은 책을 왜 읽는가. 이 ‘왜’가 한때는 자기계발이었다. 2017년에 25주년 에디션이 나온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는 자기계발서다. 이 책은 제목 으로도 유행을 불러왔는데, ‘습관’으로 검색하면 숱한 책이 쏟아진다. 몇 가지만 지키면 된다는 솔깃한 말이다.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30가지 습관을, 성공하는 기업이 되려면 8가지 습관을,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면 7가지 습관을 배우란 식이다.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일본 열도의 아침을 뒤바꾼”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상륙한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일찍 일어나면 세 가지 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건강’, ‘부유’, ‘현명’.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해도 된다”는 마법 같은 주문은, 론다 번의 <시크릿> 열풍으로 이어졌다. ‘수세기 동안 단 1퍼센트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이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와 더불어 마법적 자기계발서의 범주를 개척했는데, 그 인기는 2000년대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을 사로잡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서 비소설 베스트셀러는 오랫동안 자기계발의 주문에 붙들려 있었다.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고 지역 서점들이 잇달아 문을 닫던 2000년대. 한국 저자들이 쓴 자기계발서 제목으로 가장 각광받은 단어는 ‘미쳐라’였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라는 인문서가 크게 히트하면서 자기계발서로 옮겨 붙은 미쳐라 열풍은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 <부자가 되려면 채권에 미쳐라>, <대한민국 20대, 내 집 마련에 미쳐라> 같은 책들로 이어졌다. ‘미치자’, ‘미쳐라’, ‘미친다’ 식의 단어가 들어가는 책은 지금도 출간이 이어지는데,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헌신해야 한다는 학자적 교훈을 가장 세속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사례가 되겠다. 2000년대 출판시장은 ‘세대론’이 특히 인기를 끌던 때로, 386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20대에게는 더 열심히 살라는 ‘고나리’가 책 제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반면 40대를 위한 책은 주로 한숨 돌리며 자기 자신을 돌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다가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등장했는데, 아파본 적 없는 사람이 청춘만 아프라는 것은 아닌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등의 농담 섞인 비판론이 나오기 전까지 꽤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요즘은 비소설 베스트셀러가 ‘괜찮아’ 주문 아래 묶여 있다. 미치라는 제목의 책이 여전히 없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다. 오히려 이대로도 괜찮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너는 너 자신으로 괜찮다고 위로하는 책이 많다. 가끔은 위로받을 일도 없는데 서점에 가면 세상이 나를 위로하려고 덤비는 인상이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서 출세하고 어서 내 집을 장만하자! 욕망이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세계에서 책은 자기계발의 구루 자리에서 내려와 ‘공감하는 친구’로 자리 잡았다. 문장형 제목이라면 명령형 제목은 안 된다. 듣자마자 “맞아, 맞아”하는 즉각적 인상이 들어야 어필한다. 일단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의 히트 이후로 ‘약간의 거리를 두는’ 제목들이 인기를 끌었다. (표지는 하나같이 감성적인 컬러 일러스트다.) 그 중에서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큰 사랑을 받은 한국 저자의 베스트셀러.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만 호구는 싫어>, <야근은 하기 싫은데 일은 잘하고 싶다>,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진상을 대처하는 기술>은 번역서의 제목을 시류에 충실하게 지은 경우다. 무엇, 무엇은 싫은데 그렇다고 내가 욕먹기는 싫은 시대의 처세술이다. 읽어보면 딱히 해답을 주는 건 아닌데, 중요한 점은 저자의 경험에 공감하기 좋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억의 만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제목의 책들이 쏟아진다는 말인즉 빅히트한 원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캐나다의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중심으로 한다. 즉, 백영옥의 에세이에 더해 어린 시절 본 <빨강머리 앤>의 극중 장면을 여러 컷 볼 수 있는 구성의 책. 여기서부터 또 하나의 전기가 만들어진다. 백영옥의 에세이가 어린 시절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돌이키며 현재의 삶을 반추하는 글을 그림과 ‘함께’ 실었다면, 후발주자들은 점점 글보다 그림에 치중하기 시작한다.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보노보노>의 대사와 그림을 에세이와 엮었고, 그 이후 “굿즈와 같이 팔아야 책이 나가더니 이제는 아예 책을 굿즈처럼 만든다”는 한탄이 나오는, 글은 최소한으로 한 그림 중심의 책이 등장했다. 원작 동화책인 <곰돌이 푸>보다 더 잘 팔리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의 지은이는 ‘곰돌이 푸(원작)’이라고만 되어 있다. 저자의 말을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푸는 영리하지 않지만 수를 쓰거나 일을 복잡하게 꼬아 생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죠. 오랜 시간 전 세계 어린이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던 푸, 이제는 어른이 된 그때의 어린이들에게 삶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원작은 없이 아예 카카오톡 캐릭터를 가지고 글 작가를 붙여 만든 ‘카카오프렌즈 시리즈’도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책을 내는 작가들은 곰돌이 푸, 빨강머리 앤, 보노보노와 싸워 이겨야 하는 셈이 되었다.

이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중심에 둔, 글을 최소화한 ‘괜찮아’ 책의 인기와 관련해, 출판사 편집자들과 얘기해보면 그런 책이 팔리기 때문에 “우리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았다. 공들인 글을 받아 편집에 힘쓰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귀여운 캐릭터를 잡아오는 편이 매출에 도움 된다는 것도 문제지만, 글이 많은 책이 안 팔린다는 쪽이 더 절박한 문제인 상황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고등학생,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곤 하는데, ‘독후감’ 글쓰기로 제출하는 책 중에 이런 ‘괜찮아’ 책이 놀랍도록 많이 보인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열일곱 살이 읽고 공감한다고? “현명한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이런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고? 내가 대학을 떠난 이후에 태어난 학생들도 나처럼 지쳐 있고 위로를 필요로 한다고?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어떤 책의 유행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충실한 반영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는 세대와 무관하게 차분히 앉아서 글만 있는 책 한 권에 집중할 시간도, 그럴 만한 집중력도 없다. 부모 세대는 ‘요즘 애들’ 탓을 하지만 그들이 책을 읽었다면 출판시장이 이렇게 되었을 리 없다. 그나마 취직은 할 수 있었지만 지속 가능성의 불안을 느끼는 부모 세대, 아예 그 취직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그에 앞서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든 다른 재능이든 발견하고 개발하기를 요구 받으며 유튜브, SNS에 24시간 노출되어 끝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판하는 자녀 세대. 경험하기 전부터 다들 지쳐 있는 것은 아닌가. 지쳤으니, 일단 위로가 필요하다. 무엇을 위로하느냐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단 위로가 필요하다. 시작할 힘이라도 내려면. 하지만 그렇게 괜찮아 늪에 빠져 시작도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괜찮은 건 괜찮지 않은 때가 도래했다. 글 / 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