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술과 어울리는 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독한 술과 어울리는 잔

2019-09-03T11:18:45+00:00 |living|

계절의 온도가 낮아지면 술의 도수는 높아져야 마땅하다. 독한 술일수록 유연한 잔을 고른다.

얼음없이 위스키를 따라 마시기에 좋은 크기인 바웨어 니트 글라스는 2개 4만8천원, 리델. 구겨진 모양의 넉넉한 글라스는 에디터의 것. 요철이 있는 커팅으로 손안에 감기는 질감이 색다른 디아망 텀블러는 2개 36만원, 바카라.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7년에 디자인한 오리지널 제품을 재생산한 강철관 다리의 커피 테이블은 1백80만원, 텍타 at 에이치픽스.

스카치 위스키
얼음 없이, 상온의 술을 병에서 잔으로 그대로 따라 마시는 방식을 니트(Neat)라고 부른다. 온도를 낮춰서 잔에 따르는 스트레이트와 비교하면 니트로 마실 수 있는 술의 범위는 확 좁혀진다. 블렌디드 위스키, 싱글 몰트위스키는 한 손에 크게 잡히는 니트 글라스와 온더록 글라스가 어울린다. 큰 잔 안에서 위스키 향을 터뜨려도 좋겠다. 온더록으로 즐길 때는 최대한 사이즈가 큰 얼음을 넣어 녹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 위스키와 얼음이 만났을 때 잠깐 생기는 술 아지랑이와 얼음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충분히 즐긴다.

잔 바닥에 기포가 있어 그림자가 독특하게 드리우는 스리 스텝 술잔은 각 6만8천원, 최혜숙 작가. 파이렉스 소재로 만들어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모양의 작은 잔은 1만6천원, 글래스문 at 퀸마마마켓. 모던한 커팅이 매력인 옥시모어
샷 글라스는 가격 미정, 생 루이. 디자이너 카트린 그레일링이 발터 그로피우스의 1920년작 F51 홀링달 암체어를 재해석한 에디션 버전 6 F51N 암체어는 6백70만원, 텍타 at 에이치픽스.

버번 위스키와 아이리시 위스키
위스키 중에서도 보리가 아닌 다른 곡물을 섞어 증류한 버번 위스키는 좀 더 작은 잔에 즐겨도 좋다. 호밀과 옥수수에서 오는 버번 위스키 특유의 대범한 맛은 손가락 두 개로 감싸쥘 수 있는 잔에서도 충분히 힘을 발휘한다. 샷 글라스처럼 작은 잔은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손에 쥐는 느낌, 입술에 닿는 촉감이 소주를 마시는 기분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홀짝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격식보단 재미가 더해진다. 요즘 새로운 위스키 증류소가 빠르게 생기고 있는 아일랜드 지역의 부드럽고 유순한 아이리시 위스키도 작은 잔에 따라 마시기 좋다.

알도 치빅이 디자인한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고블릿 글라스는 4만9천원, 파올라 C at 챕터원. 조 콜롬보가 디자인한 유러머스한 형태의 와인 글라스 No.6는 5만7천원, 카락터 at 루밍. 비정형의 투박함과 유리의 섬세함이 조화를 이룬 술잔은 10만원대, 모와니글라스 양유완 작가. 꽃봉오리 같은 곡선의 비늄 코냑 헤네시 글라스는 5만3천원, 리델. 1926년 출시 당시만 해도 가구 소재로는 혁신적이었던 강철관으로 만들었으며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실용적인 D4 바우하우스 체어는 2백20만원, 텍타 at 에이치픽스.

주정 강화 와인
와인 양조 과정에서 브랜디를 섞어 잔당을 남기고 알코올 도수를 18도 정도로 끌어올린 술이 주정 강화 와인이다.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마데이라 와인, 스페인의 셰리 와인, 등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도 진득한 편이어서 니트 글라스나 작은 와인 글라스에 마시는 게 어울린다. 특히 오크통에 오랫동안 숙성하는 토니포트의 경우 코냑 글라스처럼 작은 잔에 마셔도 좋다. 20년, 30년 숙성한 토니포트는 정신이 번쩍 날 만큼 맛이 녹진해 위스키나 코냑처럼 작은 잔에 따르고 조금씩 홀짝거려야 한다.

호사스러운 리큐르 잔 6개로 구성된 코프레 비쥬 글라스 세트는 1백81만원, 바카라. 유리 상판과 스테인리스로 바우하우스의 간결함을 표현한 플로리안 보르켄하겐 디자인의 S43-2 캐비닛은 3백90만원, 텍타 at 에이치픽스.

진, 럼, 리큐르
칵테일용으로 섞어서 마시는 진, 럼, 리큐르 등도 니트로 마실 수 있다. 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 되는 작은 잔을 준비하고, 시핑(Sipping)용으로 마셔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는 술을 고르면 된다. 크림 초콜릿 맛이 나는 달콤한 럼주, 포도를 침출해 와인 색과 향이 더해진 크래프트 진, 포도 품종을 각별히 신경 써서 증류한 그라파, 그 그라파를 만드는 증류소에서 우아하게 만든 아마로,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뜨거운 햇살이 느껴지는 리몬첼로, 감귤 향이 터지는 전통 증류주…. 잔은 작지만 이 잔에 따를 수 있는 술의 리스트는 무한히 길다.

바우하우스의 100년
마지막 사진 속 S43-2 캐비닛에 반사된 건물이 바우하우스다. 1919년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는 지난 100년간 디자인 산업에 강력한 영향력을 뿜어왔다.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이해 독일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계승해 모더니즘의 초기 디자인을 재생산하는 텍타의 제품으로 꾸민 전시가 7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남동 에이치픽스에서 열리기도 했다. 텍타의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는 발터그로피우스의 뛰어난 제자였으며, 강철관을 사용해 만든 바실리 체어는 모더니즘 의자의 상징이 되었다. 화려한 빈티지 모티브 리큐르 글라스부터 모던한 샷 글라스까지, 묵직한 술을 확실하게 살려주는 유리잔을 텍타의 견고한 가구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