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스티븐 킹, 김현철의 판타스틱 데뷔작 | 지큐 코리아 (GQ Korea)

봉준호, 스티븐 킹, 김현철의 판타스틱 데뷔작

2020-01-09T16:34:04+00:00 |culture|

지금은 맞고 그때는 어땠나? 떡잎부터 새파랬다. 스티븐 킹부터 봉준호까지, 될성부른 데뷔작 6편.

스티븐 킹 <캐리>

이것은 말하자면 소설 같은 이야기다. 작가가 되려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아내를 사랑하며 아이들을 길렀고, 금요일 오후마다 술에 취했다. 데뷔작이 된 문제의 장편 소설을 쓰기 전, 그의 아내는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던킨 도너츠에서 일했는데, 만취객들이 커피를 마시겠다고 가게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면 경찰을 불렀다. 그는 교사가 되기 전엔 세탁소에서 일했고, 두 사람은 딸이 아플 때 약을 사 먹일 돈도 없이 살았다. 그는 성인 잡지에 단편 소설을 가끔 파는 정도로 간신히 생활 보호 대상자 신세를 면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허먼이라는 마을에서(원래는 ‘세상의 똥구멍’ 같다고 표현했다가 허먼 주민들의 항의를 받은 뒤 말을 고쳤다) 1973년을 보내고 있었다. 전화기를 둘 돈이 없었고, 아내 태비사는 여전히 던킨 도너츠에서 일했는데 단 한 번도 남편의 소설 쓰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좋다.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의 기념비적 데뷔작의 가장 중요한 공헌자는 아내 태비사였다.

그의 형도 한몫했다. 데이브 형은 대학생이었을 때 여름마다 모교인 고등학교에 가서 관리인으로 일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여학생 샤워실 벽의 녹 자국을 닦아야 했는데, 타일 벽에는 두 개의 금속 상자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같이 일하던 해리라는 남자는 ‘XX마개’라는 지극히 여성혐오적인 표현으로 답했고, 그 일은 시간이 한참 흘러 세탁소에서 일하던 그를 건드렸다. 그때부터 소설의 첫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이 샤워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엔…. “분홍색 비닐 커튼도 없고 프라이버시도 없다. 한 여학생이 월경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는 월경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른 여학생들은 기가 막혀서, 역겨워서, 혹은 재미로 그녀에게 생리대를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여학생은 반격한다. 반격? 어떻게? 그는 다시 몇 년 전 기억을 소환한다. <라이프>지에서 읽은 염력에 관련된 기사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사춘기 초기의 소녀들, 즉 초경 전후의 나이에.” 사춘기의 잔인성과 염력이 만났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생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성인 남자가 할 법한 상상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를 진전시키면서 그는 자신이 수많은 십 대 여성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쓰기가 수월치 않음을 깨달은 그는 쓰레기통에 초고를 버렸는데, 청소하던 아내가 구겨진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담뱃재를 털어내고 다 읽은 태비사는 킹에게 소설을 계속 쓰라고 말했다.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태비사의 말은 이랬다. “이 소설엔 뭔가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태비사가 전부 알려주었다. 고등학교의 생리대 자판기 위치부터 하나하나 말이다.

“나는 맨 처음 달려온 아이가 문을 채 밀기도 전에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캐리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흡사 출전하려고 물감을 칠한 인디언 얼굴처럼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또래 커뮤니티로부터 처절하게 소외된 십 대 여성이 만들어낸 공포와 슬픔. 괴롭힘 당하던 캐리가 빚은 재앙에 대한 여러 리포트가 첨부된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을 딴 <캐리>이며 소설가 스티븐 킹은 이 첫 장편 소설로 데뷔했다. <캐리>는 선인세 2천5백 달러로 출판사 더블데이에 팔렸다. 출판사 대표 빌 톰슨은 나중에 존 그리샴을 발굴하기도 했는데, 2천5백 달러는 1970년대 당시로도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보급판 판권은 40만 달러에 팔렸다. 그중 20만 달러가 그의 몫이었다. 킹이 살던 집의 월세는 90달러였다. <캐리>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다. 스티븐 킹은 지금까지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데뷔작 <캐리>는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꼽히고 있지만 대표작을 꼽는 것만으로 열 손가락이 부족한, 소설만 60편이 넘게 발표한 작가가 되었단 사실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만들어낸 건 무엇도 아닌 스티븐 킹의 삶이라는 것. 데뷔까지의 삶이 고되다는 생각이 들 때 고개를 들어 스티븐 킹을 보라. 또 한 가지 명심할 것. 태비사가 없었다면 <캐리>도, 스티븐 킹도 없었을지 모른다. 글 / 이다혜(작가, <씨네21>기자)

FKA 트위그스 <EP1>

2020년을 맞으며, 2010년대를 시작하는 시기와 마무리하는 시기를 비교하는 밈이 유행이다. FKA 트위그스도 이 밈의 주인공이 됐다. 201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이미지는 제시 제이 뒤에서 댄서로 서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가 올해 발매한 앨범<MAGDALENE>이 힙스터 온라인 음악 웹진 피치포크 매거진에서 9.4점을 기록하며 베스트 뉴 뮤직으로 선정된 리뷰 페이지다.

FKA 트위그스의 데뷔작은 2012년 12월에 발매한 <EP1>이다. 레코드 레이블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제작해 음악가가 직접 음원을 업로드하는 플랫폼 밴드캠프를 통해 유통한 앨범이다. 그는 EP를 발매하며 동시에 유튜브 채널에 수록곡 4곡의 비디오를 전부 업로드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신인 음악가가 첫 음반의 모든 곡을 비디오로 만들어 공개한다는 건 당시만 해도 신선한 시도였다. 영국 서브 컬처계에서 큰 이름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스켑타의 매니저이기도 한 그레이스 라도자의 도움 덕이었다. FKA 트위그스는 이 영상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음악가인지 담대히 보여줬다.

‘보여준다’는 FKA 트위그스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EP1>의 비디오는 단출하다. 몇 개의 시퀀스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 제시 제이의 댄서로 번 돈의 일부가 제작비로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EP1>의 비디오에선 그가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분명히 보인다. 신체, 움직임, 테크놀로지. 그는 ‘Hide’에서 자신의 몸을 말 그대로 보여준다. 남자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꽃과 온몸을 드러내는 비디오는 그에게 몸이 감정과 음악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매개인지 알려준다.

움직임은 그가 댄서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키워드다. FKA 트위그스의 음악은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알앤비에 기반을 둔 분절된 사운드의 리듬으로 구성돼 있다. 차를 부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Breathe’는 FKA 트위그스의 음악에서 파괴적인 사운드가 어떻게 리듬이, 움직임이 되는지 밝히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테크놀로지는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Wesk Spot’ 비디오에서는 3D로 모델링 된 FKA 트위그스가 클럽의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다 실제 자신으로 변한다. 그가 기술을 어떻게 자신의 음악과 비주얼에 활용하는지는 구글 글래스를 착용한 비디오 ‘#throughglass’ 나 보다 정교해진 3D 그래픽의 ‘How’s That’ 뮤직비디오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이가 <EP1> 대신 <EP2>, 그중에서도 ‘Water Me’나 ‘Two Weeks’로 FKA 트위그스를 접했을 것이다. <EP1>은 레이블의 지원 없이 제작된 그의 첫 음반인 만큼, 지금과 비교하면 설익게 들리기도 한다. ‘Weak Spot’은 음악가 트리키를 레퍼런스 삼았음이 노골적으로 들리고, <MAGDALNE>의 ‘Home With You’에서 현악편곡으로 구성된 클라이막스처럼 화려하게 인상을 남기는 부분도 없다. 하지만 FKA 트위그스 음악의 원형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EP1>은 소중하다. 많은 사랑을 받은 ‘Hide’가 없었다면 ‘Water Me’와 같은 곡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성과 폭력으로 이어지게 하는 이 시기의 연출은 ‘Papi Pacify’ 뮤직비디오에서 본격적으로 만개한다.

FKA 트위그스의 음악은 아름다운 팝이다. 물론 전형적인 팝 멜로디에선 벗어나 있지만,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그의 가창과 가사는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에 덧대어진 사운드는 친절하지 않다. 메인스트림 팝 차트보다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가져온 듯한 비트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오는 노이즈와 같은 사운드는 분명 낯설고 때때론 그로테스크하다. 이 기묘한 만남은 FKA 트위그스 팝이라 할 만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시기별로 메인 공동 프로듀서라 할 만한 음악가가 있으며, 다양한 음악가가 참여했음에도 일관되게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FKA 트위그스는 등장부터 지금까지 누구와도 달랐다. 춤을 추며 노래하는 알앤비 뮤지션은 많다. 하지만 FKA 트위그스의 음악은 침대 위에 누워 연인과 껴안기보단, 침대 아래를 들춰 비밀스러운 음모가 적힌 노트를 꺼내보는 것 같은 경험이다. <EP1>로 인상적인 출발을 한 FKA 트위그스는 이제 올해의 앨범을 발표한 음악가가 됐다. 2020년대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다. 글 / 하박국(영기획 대표, 기술인간 에디터)

그레타 거윅 <한나 테이크 더 스테어>

그레타 거윅은 춤춘다. 그 춤은 대개 무대 밖에서 일어난다. <프란시스 하>에서 거윅은 춤출 기회를 얻지 못하는 댄서 프란시스를 창조한다. 프란시스의 무대는 혼잡한 공원 구석, 기껏해야 텅 빈 객석 앞이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비애도 담지 않은 채 씩씩하게 춤춘다. 아니, 차라리 그의 춤은 지하철 선로 위에 오줌 누기다. 구조물을 부여잡고 허공에 허리를 쭉 뺀 채 소변을 누는 그의 모습은 기예에 가깝다. 아무 데나 오줌을 갈기는 남성들의 방향과 정반대의 위치에서, ‘요건 몰랐지?’ 하듯 그렇게 오줌을 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거윅의 춤은 무대를 창조한다. 기예와 현대무용 어디쯤 위치한 거윅의 춤은 일상의 움직임에 기이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서 브룩은 친구들 앞에서 미래의 레스토랑 홍보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말문이 막히자, 양손을 앞뒤로 굴리며 뒷걸음치는 시늉을 한다. 어리둥절한 순간, “지금 테이프를 되감는 거예요”라며 반복하는 천연덕스러운 끈기에 반응하지 않기란 힘들다. <매기스 플랜>에서 매기는 기증받은 정자를 투입하던 중,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엑소시스트’ 식 뒤집힌 자세로 기어가 발가락을 이용해 기어이 응답하는 데 성공한다. 실로 혼신의 ‘발’ 연기다.

거윅의 몸은 말한다. 그가 첫 주연을 맡고 각본을 쓴 실질적 데뷔작 <한나 테이크 더 스테어>는 거윅의 기예에 가까운 춤의 근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나를 입은 거윅은 몸을 드러내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애인과 샤워할 때와 잠잘 때의 벌거벗은 상태로 존재하며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바라본다.

솔직하고 과감하고 제멋대로인 몸에 비해 한나의 언어적 표현은 서투르기 짝이 없다. 애인의 연락을 피할 정도로 마음이 돌아섰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의 짧은 손길에도 뻣뻣하게 굳을 때조차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한다. 사랑이 끝났다 해도 외로움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몸의 말이 마음의 복잡한 상태를 앞지른 사이, 그의 어지러운 말은 마음을 그대로 찍어낸다.

한나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꼭 쥐고 짧게 신음한 뒤, 말한다. “으, 난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이후 거윅이 여러 캐릭터를 거치는 동안, 이들은 모두 같은 소망을 품은 듯 보였다. <매기스 플랜>에서 매기에게 남편 존을 빼앗긴 조젯이 마침내 굴복했다는 듯 “넌 재미있는 사람이야. 어쩔 도리가 없어. 나는 네가 좋아”라고 인정할 때, 그 인정은 거윅을 향한 관객의 마음 상태와 꼭 들어맞는다.

기억할 것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표면 아래 잠재된 불안이다. 한나는 불안 속 우울을 숨기지 못했다. 불안한 사람이 곧 ‘영화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불안은 ‘영화적인’ 한계를 종종 초과한다. 갑작스러운 눈물과 더듬거림, 나도 모르겠다는 고백들. 얼굴에 초밀착된 갑갑한 카메라. 그래서 그것이 실제의 어떤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거윅이 훌륭한 연기자라면, 누구보다 그 자신의 훌륭한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거윅이 훌륭한 연출가라면, 그가 배우의 힘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기 때문이다. 거윅이 훌륭한 각본가라면, 그 이유는 대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아서다. 대사 외에도 몸이, 리액션이, 표정이, 침묵이, 더듬거림이, 즉흥 연주가 언어임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에게 세 가지 차원은 다르지 않고, 그걸 넘나드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거윅의 필모그래피에는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을 딴 제목이 유독 많다. 한나, 매기, 프란시스, 그리고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에서 ‘레이디 버드’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골 때리는 십 대, 크리스틴이 나타난다. 그 이름들은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리면서까지 도달하고 싶은 과격한 자기 선언이다. <한나 데이크 더 스테어>에서 그것은 길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혼자 서 있을 때, 아직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찰나의 얼굴로서 잠재되어 있다.

거윅은 춤춘다. 춤을 춘다기보다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마구 흔든다. 그의 몸은 음악 뒤에서 소리를 내지른다. 거윅은 계단을 오른다. 아니 계단을 부술 듯 춤춘다. 관객의 눈에는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계단은 이미 부서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춤은 계단을 창조하는 동시에 계단을 부순다. 그래서 거윅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우리는 매번 넋을 놓고 다음 동작을 기다리며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글 / 김소희(영화평론가)

김현철 <김현철 Vol.1>

“언젠가 잃어버렸던 내 마음 한구석/그 자릴 채우려 내가 또 찾아가는 곳/아무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별다른 얘긴 없지만 메마른 시간 적셔주는 술잔을 기울이며.” 어떤날 2집에 실린 ‘초생달’의 한 구절이다. 노랫말을 쓴 조동익은 마음이 허할 때면 아무 약속 없이 가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곤 했다. 뱅뱅 사거리에 있던 카페, 심플라이프 말이다.

그곳에 수많은 음악가가 모여들었다. 약속 없이 가도 늘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들국화의 최성원,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어떤날의 조동익, 이원재, 박학기 같은 아티스트가 모여 함께 뜻 모를 얘기를 나누고 음악을 나누었다. 그런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루, 이제 스물이 된 청년 김현철이 그곳을 찾았다.

조동익과 김현철의 전설 같은 첫 만남과 교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두자. 조동익은 김현철의 재능을 무척 아꼈다. 처음 심플라이프에 들러 최성원과 하덕규를 보고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을 못 차리던 김현철은 그들의 요청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은 ‘오월은 이렇게 내리네’. 모두를 감탄시킨 이 노래는 박학기의 여린 목소리와 만나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다시 태어난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사실이 새삼스레 큰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1989년의 김현철이 그렇다. 1969년 6월 14일생. 이제 막 스물이 된 김현철은 그 해에만 세 장의 앨범을 만들었다. 박학기 1집과 장필순 1집, 그리고 자신의 앨범 김현철 1집이다. 아무 경험이 없던 스무 살 청년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또렷하게 남은 앨범 3장을 만든 것이다. 조동익은 김현철의 재능을 믿고 기꺼이 곁을 나누었고, 김현철은 믿음에 부응하며 오래 남을 앨범을 만들었다. ‘이미 그댄’과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박학기의 아름다운 노래가 남았고, ‘어느새’라는 장필순만의 분위기가 남았다.

그리고 김현철 1집이 남았다.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는 이 앨범을 가리켜 “세상에는 가끔 벼락처럼 천재가 내려온다. 벼락 같은 천재는 가끔 벼락 같은 데뷔 앨범을 낸다”라고 표현했다. 굳이 남의 문장을 가져온 이유는 이만큼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1989년의 김현철은 실로 벼락 같았다. 난데없이 등장한 천재 음악가. 김현철 1집은 이 표현과 정확히 조응했다 1집 대표곡 ‘동네’의 배경이 명륜동도 아니고, 쌍문동도 아니고, 압구정동이라는 사실에 낭만이 깨졌다며 실망했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김현철은 어린 시절부터 팝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1집에 담긴 도회적인 감수성과 팝 감각은 자연스럽게 체화돼 있었다. 미국의 팝과 스무드 재즈를 적절히 섞고, 여기에 도회적인 감수성을 더해 일급 세션 연주인들과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완성한 음악. 이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최근 몇 년간 소비하고 있는 시티 팝 열풍과 바로 맞닿아 있다.

단순히 기능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그는 여기에 수많은 이미지를 함께 연출해냈다. ‘오랜만에’와 ‘동네’에서 전해지는 아련한 설렘의 정서는 단순히 곡만으로 얘기할 수 없다. ‘눈이 오는 날이면’을 듣고 있으면 금세라도 눈이 내릴 것 같고, ‘아침향기’엔 아침의 맑음과 깨끗함이 담겨 있다. ‘춘천 가는 기차’의 옅은 기적소리는 춘천과 겨울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이 재능과 감각은 30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도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시티팝 열풍은 김현철이란 이름을 소환했다. 김현철이 데뷔 때부터 하려 한 음악은 좋은 ‘팝’ 그 자체였다. 좋은 멜로디를 좋은 연주와 좋은 편곡으로 포장해 좋은 소리로 들려주는 것. 다소 평가 절하되는 김현철의 중후기작 역시 그런 기조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음악이 세월을 타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풋풋함이 더해진 1집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했다.

2019년 2월, 홍익대 근처에 있는 클럽 ‘채널1969’가 젊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김현철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든 밀레니얼 세대가 김현철과 함께 노래 불렀다. 태어나지도 않은 해에 나온 앨범에 열광하는 새로운 세대를 보며 고무된 김현철은 얼마 전 13년 만에 새 앨범 <돛>을 발표했다. 그 앨범 안에서 김현철의 재능은 녹슬어 있지 않았다. <돛>을 거슬러 1집을 듣는다.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속에서도 김현철의 곡과 정서는 연결되어 있었다. 글 / 김학선(음악평론가)

제니 홀저 ‘경구들’

이기심은 가장 기본적인 동기다. 이타심은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솔직함이 늘 최선은 아니다. 정교함은 공해의 한 형태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남을 속이지 못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 입구로 들어선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거대한 벽면에 빼곡히 붙은 포스터에 적힌 문장들 가운데 일부이다. 트위터 피드의 끝없는 스크롤이 설치미술로 구현된 광경 같다. 2백50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경구들로부터’(from Truisms) 시리즈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4명의 공동 번역가가 국문으로 번역해 최초로 한글 버전으로 선보인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날, 검은 니트와 검은 팬츠 차림의 제니 홀저는 컬러풀한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경구들’(Truisms)(1977~1979)과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1979~1982) 시리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얘기를 들려줬다. “1970년대 후반에 뉴욕에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전 이십 대였고 열정이 넘쳤죠. 종이에 알파벳순으로 경구문을 인쇄한 포스터를 커다란 버킷에 가득 담아 한밤중에 맨해튼 거리에 붙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게시물은 불법이었어요.”

1970년대 후반의 미국은 1960년대 사회운동에서 외친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가치가 자본주의 이념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1979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대선 운동을 벌인 로널드 레이건은 다음 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회화와 인문학을 공부한 제니 홀저의 대표적인 작품은 1977년 휘트니 미술관의 독립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작되었다. 그 프로그램의 디렉터였던 론 클라크가 홀저에게 방대한 추천 도서 리스트를 주었고, 그게 경구들을 촉발시킨 것이다. 훌륭한 자료들이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기에는 너무 난해했다. 이에 대항해 홀저는 그 책들을 각각 한 줄로 줄여버렸다. 홀저의 목표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몇 초 만에 자신의 짧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구를 읽고 어떤 식으로든 자극받는 것이었다.

“낭만적 사랑은 여성을 교묘하게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ROMANTIC LOVE WAS INVENT TO MANIPULATE WOMEN.)”,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PROTECT ME FROM WHAT I WANT.)” 흰 종이에 이처럼 한 줄짜리 요약을 굵고 검은 이탤릭체 대문자로 타이핑해 밤거리에 붙인 것이 제니 홀저 작품 세계의 시작이다. ‘경구들’이 압축된 문장으로 숙고할 진실을 제공한다면, 이어 제작된 시리즈 ‘선동적 에세이’는 통렬한 비판이다. 각각 1백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에세이 컬렉션이 색지에 인쇄되어 맨해튼 도심에 나붙었다. 정치, 예술, 종교에 관한 글과 선언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에세이의 문장들은 화자가 없는 게 특징이다. 선언문의 형식을 차용해 단호하며 특정한 입장을 지지함에도, 홀저는 자신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익명으로 제시해 읽는 이의 주관적 해석을 끌어낸다. 이후 이 문구들은 티셔츠, 콘돔 포장지, 종이컵, 화강암 벤치 등에 새겨지고,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의 초대형 전광판에 명멸하고, 구겐하임 뮤지엄 입면에 떠오르고, LED 사인으로 제작되며 계속해서 변주되고 발전했다.

뉴욕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지하철 승강장에 다닥다닥 붙어 추위를 피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제니 홀저가 자신의 포스터를 몰래 붙이던 그 겨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문구들이 지닌 힘은 강력하고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미술관 로비에서 나와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는 옆 사람에게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어지게 하는 힘. 실제로 제니 홀저의 초기 작품은 지금도 논쟁적인 사회 정치적 이슈를 반영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뉴욕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이자 홀저의 협력자 중 한 명인 레이디 핑크가 ‘경구들’ 가운데 “권력의 남용은 놀랍지 않다.(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1983년에 찍은 사진은 2017년 미투 운동 당시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되며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해 초에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트럼피즘 열풍에 제니 홀저의 정치적인 격언이 다시금 대두됐다. 제니 홀저의 용감한 문구들은 그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각성시킨다. 글 /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

봉준호 <플란다스의 개>

장편 데뷔작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최근 언급은 이렇다. “요즘 해외에서 미니 회고전 형식으로 제 작품들을 상영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플란다스의 개>만큼은 상영작에서 빼주면 안 되겠냐고 애원하곤 하죠.” 지난 11월 말 한국영화감독조합 선정 ‘올해의 감독’ 5인이 참석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그가 한 얘기다. 모름지기 첫 작품이라면, 어느 감독이든 아쉬움이 남아 있을 터다.

이 영화가 개봉한 서기 2000년은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오! 수정>,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에다 <춘향뎐>까지 극장에 걸렸으니 평론가들도 덩달아 어깨가 들썩이던 때였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이듬해 <씨네21> ‘영화야 미안해’ 기획 기사를 통해서야 재평가됐다.

봉준호 감독이 데뷔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의 발자취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면 거장의 영화 유전자 상당 부분은 <플란다스의 개>부터 담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모든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영화적 DNA는 누가 뭐라해도 서스펜스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봉준호라는 장르’가 기어이 탄생하기까지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서스펜스의 배열이었다. <플란다스의 개>가 불안과 긴장을 시각화하는 천재 감독의 등장을 예고한 작품인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이 얘기를 건너뛴다면, 데뷔작부터 그의 영화들이 줄기차게 말해온 계급의 문제, 근대 시스템과 지식인의 허위라든가, 각자도생하는 위험 사회 따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초반에 아파트 지하실 옷장 속에서 훔쳐보는 자와 옷장 밖 칼을 든 자의 서스펜스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히치콕의 <싸이코>로부터 형성된 이 서스펜스는 <살인의 추억>의 목격자가 볏짚단에 숨어 범죄 현장을 엿보는, <마더>의 어머니가 옷장에 숨어 젊은 커플의 정사를 훔쳐본 뒤 탈출하는, <기생충>의 기택 가족이 탁자 밑에 숨어 사장 부부의 정사 소리를 엿들은 다음 몸을 피하는 장면들로 쑥쑥 자라났다.

보는 자는 알고, 보이는 자는 모른다. 이 단순한 문장이 ‘봉준호 장르’를 관통하며 작품마다 다른 형태로 분화하는 줄기세포다. 당신이 그의 영화를 볼 때 심장이 조이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저 한 문장만 기억하면 된다. 보는 자만 알고 그 대상은 모른다는 걸 아는 우리는, 저 서스펜스의 뒤에서 이 모든 걸 함께 지켜본 인물과 더불어 종종 슬퍼진다.

<기생충>의 종반부에서 박 사장은 자신을 “리스펙트”한다는 근세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나 알아요?” 관객은 ‘다들 아는데 너만 모르는 거야!’라고 외치고 싶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약자들끼리 벌이는 소동은 21세기 자본주의라는 나라에서 발발하는 숱한 희비극의 실체다. 교수가 되려는 자와 개를 지키려는 자의 엇갈리는 소동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권력자인 대학 학장 역시 뇌물과 폭탄주에 절어 주인공들과는 다른 액자 속 세상에 존재한다. 극중 액자 극에서 교수가 될 뻔한 남궁민 박사의 성씨는 <기생충>에서 박 사장네 저택을 설계한 건축가 남궁현자 선생으로 되살아나는데, 그는 문자 그대로 액자 속에 있다.(박 사장도 종종 잡지 표지 모델 등의 표구된 이미지를 통해 딴 세상 사람처럼 그려진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연보를 차이와 반복이라는 테마로만 정리하려 해도 캐릭터의 작명부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장르 컨벤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하다. 그 변주들이 복제가 아닌 진화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나는 그가 각 시대의 다른 의제를 포착해 칼끝 같은 직관 위에 올려놓을 줄 아는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의 공식 상영을 지켜보고 입이 떡 벌어진 나의 예측은 ‘이거 감독상도 가능하겠는데’였다. 어설픈 평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 9일에 열릴 예정이다.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개봉일이 2월 19일이니, 봉준호 감독 데뷔 20주년 기념일에는 오스카 트로피가 함께할 것으로 슬며시 전망해본다. 상상해보자. ‘한국영화 100주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봉준호 감독 데뷔 20주년에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한국영화에 감독상.’ 이 정도 조합,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글 / 송형국(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