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 "요즘 소주의 맛을 알아가고 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코 "요즘 소주의 맛을 알아가고 있어요"

2020-01-21T17:02:56+00:00 |interview|

거침없이 달려온 지코가 거울 앞에 섰다. 스스로를 비춰보다 마침내 활짝 웃었다.

흰색 레터링 티셔츠, 발렌티노. 생지 데님, 돌체 & 가바나. 벨트, S.T. 듀퐁. 반지, 존하디와 코디시아르.

청 재킷, 메종 마르지엘라. 이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레더 셔츠, 블랙 팬츠, 모두 코게트 스튜디오. 스트라이프 이너, 산드로 옴므.

하늘색 셔츠, 하늘색 타이, 그레이 팬츠, 그레이 윙팁 슈즈, 모두 버버리.

아이보리 니트, 산드로 옴므. 블랙 와이드 팬츠, MSGM at hanstlye.com. 흰색 스니커즈, S.T. 듀퐁.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블랙 수트, 블랙 숄 셔츠, 모두 돌체 & 가바나.

그레이 수트, 블랙 터틀넥, 네이비 로퍼,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아이보리 니트, 산드로 옴므.

2020년 1월을 기분 좋게 시작했어요.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베스트 R&B 힙합상을 받았네요. 올해의 음원, 올해의 가수상이 아니라 어떤 한 장르를 대표하는 트로피를 수상했다는 점이 특별해요. 이 장르를 굉장히 좋아했던 팬으로서 성공했다는 마음도 들고.

8년 만의 첫 정규 앨범 <THINKING>은 감정의 결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랐어요. 그 앨범을 제작할 당시의 심리 상태가 많이 번잡했어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감정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완전히 소진되어 소각 상태가 되어버렸달까요. 그래서 일기 쓰는 마음으로 하나씩 그 감정을 기록하듯 정리한 앨범이었어요. 하루하루 변화한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이런 감정을 맞닥뜨릴 수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때의 내가 이랬었구나 하면서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깊게 쌓아둔 한숨을 뱉은 느낌이었어요.

힙합 크루 팬시차일드가 한자리에 모인 무대 위에서 크러쉬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한동안 서로 한숨이였다고. 안 그래도 어제 다 같이 신년회로 모였어요. 사실 다들 너무 바빠서 작년에 했던 팬시차일드의 콘서트 뒤풀이를 이제야 한 거죠. 2020년이 오고 우리도 이제 나이 들었다는 걸 한번 더 받아들이는 시점이 신기하면서도 좋았어요.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무언가에서 벗어나니까 다들 홀가분해진 거죠.

어제 테이블에서의 화두는 무엇이었나요? 누구에게나 다 때가 있다. 우리에게도 그 때가 적절한 순간에 찾아왔고 그걸 최대한 잘 활용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선택받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 때가 우리에게 다시 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순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열심히 살아가자. 이런 이야기를 했네요.

취중진담을 나눴네요. 술을, 혹은 취하는 순간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좋아하진 않는데 요즘 소주의 맛을 알아가고 있어요. 신기해요. 작년부터 생긴 변화예요. 힘들 때도 기쁠 때도 소주 생각이 종종 나요. 집에서 한두 잔 혼자 마실 때도 있고.

바이닐을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을 거실과 침실에 각각 두었다고 들었어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거실에 음악을 틀어두면 공간을 거쳐서 소리가 울려요. 그러면 음악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방에도 턴테이블을 하나 더 뒀어요.

온전히 편하게, 계산하지 않고 음악을 듣는 게 어렵지는 않은가요?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는 많은 생각을 안 해요.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항상 학습하듯이 청취하는 게 우선이었죠. 그런데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이제는 음악을 평범한 사람처럼 감상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위로를 받았던 음악은요?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최근에 음악을 눈에 띄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나요? 해외에서는 24Kgoldn, 아리조나 제르바 Arizona Zerva. 이 둘의 음악을 듣고 정말 잘한다, 재능 있다 생각했어요. 눈여겨보는 국내 뮤지션에 대해서는 이제 인터뷰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웃음).

이제 자리가 자리인 만큼 중요한 영업 기밀이죠. CEO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있나요? 사실 그 직책이 실감 나지는 않아요. 아직 뭔가 뚜렷한 성과를 달성한 것도 없고요. 하던 일도 이전과 비슷해요. 어떤 회사에 귀속되어 있을 때도 모든 계획은 스스로 짰으니까요. 다만 이런 건 있어요. 누군가에게 책임 전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모두 제가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스코어에 대한 책임은 이제 온전히 저에게 달려 있죠. 그런 점이 오히려 편리해요. 나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진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지금 가장 간절한 건 뭐예요? 새로 나온 노래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궁금해요. 재밌는 노래거든요. 조금 엽기적인 면도 있고. 다들 편하게, 무난하게 좋아할 것 같아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만든 노래예요.

신곡 ‘아무 노래’라는 제목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친구들끼리 모여 있을 때 그런 이야기 많이들 하잖아요. 아무거나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아무 노래나 좀 틀어봐. 그런 부질없는 대화의 내용을 키워드로 삼았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오늘은 그저 고민 없는 아무개로 편히 살고 싶다. 그런 마음요.

내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친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게 음악에도 계속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고. 음악을 대하는 에티튜드가 가장 크게 변했어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 안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음악을 예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들고 싶어요. 첫 구절을 외쳤을 때 그다음 구절을 사람들이 바로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심플하면서도 유쾌한 음악을 한번 만들어볼까? 예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음악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트렌드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음악적 기술이나 사운드적 방향성이 없다는 점이 요즘 음악의 트렌드인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유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콘텐츠가 트렌드인 시대랄까요? 음악의 방향을 좌우하는 역할을 콘텐츠가 대신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새로운 콘텐츠를 가지고 음악을 표현하는지가 관건인 시대 같아요.

가사에 쓴 것처럼 여전히 음악은 어려운 존재인가요? 엄청 어렵죠. 음악이 어려워도 신경 안 쓰는 사람으로 저를 트레이닝하고 있어요. 음악을 어렵게 느끼지 않기 위한 연습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만들어보기도 해요. 좋은 창작물은 마인드에서 비롯된다는 걸 요즘 새삼 느끼거든요.

혹시 언젠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직접 인터뷰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요? 서태지 선배님의 삶이 궁금해요. 당연히 어디선가 인터뷰를 하셨겠죠. 그런데 저는 솔직한 진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나만 구독할 수 있는 인터뷰. 그분이 데뷔했을 때 제가 태어났어요. 그분의 삶은 모든 맥락에서 과연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싶어요.

라이프스타일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요?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특히 음악은 만든 사람의 심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변하지 않았는데 음악이 달라져 있다면 그만큼 제가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겠죠.

지코는 제스처가 근사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특히 무대 위에서. 제가 내는 소리와 제가 하는 동작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간의 접점이 있달까요? 몸이 먼저 움직여야 소리가 나올 때가 있고, 반대로 소리가 나오면서 자동으로 동작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래서 얌전한 슬로 템포 곡을 부를 때 평소보다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몸을 움직일 때 훨씬 집중을 잘하고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가끔 그런 제스처도 미리 계산해서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는데, 자세히 보면 모든 공연마다 거의 몇 구간을 빼고는 조금씩 다 달라요.

방송 활동보다는 공연에 더 집중하려는 의지가 느껴져요. 2월 마지막 주에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열죠?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확실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공연이 될 거예요. 공연에서만큼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영화를 볼 때 낯선 세계 안에 푹 빠져드는 것처럼.

이제 곧 서른인데 더 먼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나요? 원래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았었는데 올해부터는 그러지 않으려고요. 그게 더 효율적이거든요. 오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내일 해야 할 일을 오늘로 가져오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어요.

모험, 실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큰 편인가요? 비슷한 길은 가지 않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일단 뇌파 자체가 가보지 않은 곳을 계속 찔러보는 것 같아요. 제 발길과 손길이 닿았던 곳은 지나치려고 조차 하지 않는달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습관이 제 몸과 머리에 자연스럽게 배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습관 없이 여러 가지 방향과 성향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해요.

오른쪽 팔에 새긴 문신은 무슨 뜻이에요? 요한복음 8장 7절에 나오는 구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He That is without Sin Among You, Let Him Cast The First Stone.” 처음 이 구절을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굉장히 와 닿았어요.

다독가로 알고 있어요. 제목에 끌려 산 책이 있어요? <죽음에 관하여>라는 만화책을 읽었어요. 하나 더 꼽자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