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라비 "카메라 앞에서 굳이 연기하지 않아요"

2020.02.26GQ

라비는 지금 인생의 황금기에 닿고 있다.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 블랙 팬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레이스업 슈즈, 앤더슨 벨.

레터링 셔츠, 디올 맨.

브라운 니트 베스트, 맨온더분. 레더 팬츠, 코스. 슈즈, 보테가 베네타.

블랙 니트, 톰 포드. 실버 샤이니 팬츠, 김서룡 옴므. 슈즈, 지미 추.

코튼 재킷, 나일론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레더 브레이슬릿, 크롬하츠.

오늘 입고 온 의상으로 화보를 찍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 화려한 옷을 선호하나요? 그럼요. 옷뿐만 아니라 주얼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컴백을 준비하면서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착용할 만한 아이템을 찾던 중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어요. 다이아몬드가 부착된 근사한 테니스 체인이에요.

곧 올 생일날 스스로에게 선물할 계획인가요? 어떤 디자이너의 제품이 좋을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사려고요.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지난겨울에 아크네 스튜디오에서 머플러만 10개를 샀더라고요. 느낌이 온 아이템에 꽂힌 나머지 언제 뭘 샀는지도 몰랐던 거죠.

생일은 어떻게 보낼 건가요? 생일과 비슷한 시기에 <엘도라도>가 발매돼요. 첫 정규 앨범이에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데다 3월부터 시작할 월드 투어 준비, 방송 스케줄까지 겹쳤어요. 그냥 촛불이나 불고 끝날 듯한 예감이네요.

앨범 타이틀 곡은 정했어요? ‘락스타’로 결정했어요. 팔로알토 형이 피처링을 해주고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준 곡이에요. 보너스 트랙 하나를 포함해 총 12개 곡이 실리는데, 그중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요. 이번 앨범으로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했어요. 무대 퍼포먼스를 어떻게 구성할지도 타이틀 곡을 선정하는 기준 중 하나였어요. 사운드뿐 아니라 비주얼도 음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에서 곡예 영상을 봤는데 무대 퍼포먼스와 관련 있나요? 마샬 아츠를 배운 지 6개월 정도 됐어요. 무대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무에 응용할 만한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지난해 힙합 레이블 그루블린을 설립했어요. ‘라비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적응됐나요? 그루블린을 세운 지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잖아요. 하하.

‘빅스의 멤버’라는 경력 때문일까요? 레이블 소식을 접했을 때 의외였어요. 인지도와 관계없이 가능성을 지닌 뮤지션을 발굴해 집단적인 움직임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더 깊숙한 힙합 신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라고 할까. 솔로 앨범을 낼 때마다 직접 기획과 제작을 소화한 경험이 많아서 레이블 운영도 잘 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어요. 실제로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어요.

아이돌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그리고 레이블의 리더 자리까지 왔네요. 아이돌 출신에 대한 대중의 편견 섞인 시선을 느끼기도 하나요? 예전이라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뮤지션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관점이 많이 변화됐어요. 현재 갖춘 음악적인 소양이 중요하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별로 중대한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돌과 뮤지션이라는 개념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졌잖아요. 그 희미해진 경계에 걸친 장본인으로서, 활동하는 형태와 추구하는 음악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요. 어차피 모두 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 속한 사람들이에요.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태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는 의지,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가 훨씬 더 중요한 조건이에요.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응원받은 기억만 나요. 솔로 활동을 시작할 때도, 레이블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도 모두 존중과 지지를 해줬어요. 팔로알토 형과 식케이처럼 힙합 뮤지션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깊게 고민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더욱 따뜻하게 격려해줬고요.

그루블린에는 시도, 콜드베이, 칠린 호미까지 총 세 명의 아티스트가 있어요.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회사를 차리기 전부터 꾸준히 아티스트를 물색했어요. 개별적인 색깔을 낼 줄 알면서도 레이블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죠. 그런데 재능이 있는 아티스트는 많아도 뜻이 통하는 아티스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레이블 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서 성격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꼼꼼하게 살폈어요.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사람들이 현재 그루블린 소속 뮤지션들이에요. 시도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활동했고, 콜드베이는 유튜브에서 지켜보던 아티스트였어요. 모두 제가 먼저 접근해서 제안했어요. 칠린 호미는 알고 지내는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만났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감하는 바가 많더라고요. 서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죠.

사업가다운 면모네요. 아티스트의 수를 더 늘릴 건가요? 소속된 아티스트의 수가 레이블의 존재감과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규모의 문제가 아니죠. 단순히 위세나 유명세를 위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배제하고 있어요. 대신 지금으로선 아티스트들이 지닌 소질을 세련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주고 싶어요. 힙합 외에도 각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 있을 테고, 또 그런 욕구는 언제든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를 포함한 네 명 모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방송, 음악, 패션 등 영역을 국한하지 않고 그 어디에서라도요.

자신도 몰랐던 리더로서의 재능 같은 게 있을까요? 동기를 부여해주는 능력요. 지금껏 몰랐지만, 타인에게 내재된 긍정적인 기질을 이끌어내는 수완도 좋더라고요.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때 저는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멋진 결과물을 내놓은 사람이 마땅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저의 재능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프로듀서의 역할에 그치고 싶지 않아요. 비전을 강제로 심어주는 일방적인 관계도 싫어요. 같이 무대에 오르내리고, 마음 터놓고 의지하는 형과 동생들로 구성된 레이블을 꾸려나갔으면 좋겠어요.

<1박 2일>을 비롯해 예능에서도 활약하고 있어요. 가끔 ‘허당’ 이미지로 비춰지거나 희화화될 때가 있는데, 예능인으로 각인될 수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나요? 전혀요.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 또한 저의 일부니까요. 인간에게 한 가지 성격과 특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대 밖에서의 모습을 애써 숨기거나 포장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굳이 연기를 하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예능은 앞으로도 피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본업에 나태해지지만 않는다면요. 연예인에게 대중과의 접점은 다양할수록 좋아요. 제가 지닌 재미있는 면이 비춰지면 ‘대체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을 촉발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동안 대중에게 밀접하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예능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능 출연의 긍정적인 효과를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내년이면 데뷔 10년 차가 돼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떤 면이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나요? 훨씬 구체적인 사람이 됐어요.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은 아이덴티티,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점점 명확해졌죠. 생각한 바를 현실화하는 방법도 그려낼 수 있고요. 예전과 달리 주변에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심적 여유도 생겼어요. 팬을 포함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를 지지해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음악은 처음과 지금, 어떻게 달라졌나요? 완성도와 표현력에서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고 자평해요. 과거엔 정말 초보 단계였던 것 같아요.

작곡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 만든 노래를 다시 듣기도 하나요? 절대요. 도저히 못 듣겠어요.

공개하지 않고 쌓아둔 곡이 꽤 있다고 들었어요.
한 가지 앨범만을 위해 허겁지겁 과제하듯 곡을 쓰진 않아요. EP, 싱글 프로젝트 등 앞으로 발표할 프로젝트를 대비해 미리미리 만들어 둬요. 지금도 벌여놓은 곡이 10개가 넘어요. 작곡을 마치면 어느 앨범에 어떤 곡을 넣을지 전략적으로 접근해요.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나 발표 예정 시기의 계절까지 생각해 적절한 곡을 선별하죠.

평소에도 이렇게 일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죠?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요즘에는 더 그런 것 같아요. 온 신경이 앨범 준비와 레이블에 쏠려 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무대 위에 서기까지 고생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야 비로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체감할 수 있거든요. 멋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팬에게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게 뮤지션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남자가 제일 멋있는 나이는 20대 후반이라고 했더라고요. 올해 스물여덟 살이 됐어요. 인생의 전성기를 마주했나요?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네요. 20대 후반이 까마득한 미래인 줄 알았어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인생에 던져진 과제를 상당수 끝내놓았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이가 들면 이렇겠지?’라는 예측 자체가 무의미하더라고요. 목표점에 골인한 이후엔 그럼 뭘 해야 하죠? 자신을 직시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발을 내딛는 단편적인 과정의 연속이 더 중요해요. 내가 그리고 있는 모습에 가까워지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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