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나플라 "하면 할수록 성장하게 돼요"

2020.04.24GQ

나플라는 본능에 익숙하다. 느끼는 대로 표현한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외로움을 치르고 이 노래들을 얻었다.

핑크 점프 수트, 앰부쉬. 화이트 하이톱 슈즈, 호간. 반다나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David Helbich의 ‘House of Ear’는 작가가 제시하는 지시문과 제스처에 따라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음악적 경험을 유도한다. 나플라는 손으로 귀를 열고 막길 반복했다. 일종의 테크노 비트.

핑크 보머 재킷, 벨티드 팬츠, 모두 디올 맨. 베이지 니트 톱, 오디너리 피플. 선글라스, 루이 비통. 나플라가 발을 딛자마자 “말도 안 돼”라고 감탄케 만든 Doron Sadja의 ‘고요한 방 속 빛의 소리’는 소리의 반사를 흡수하도록 설계된 무반향실 설치 작품.

실크 셔츠, 보디. 페인팅 화이트 데님 팬츠, 사스콰치패브릭스 at 매치스패션. 소리, 빛, 그림자가 시시각각 변주되는 Doron Sadja의 ‘우리는 영원히 다시 함께할 수 없다’는 계단 형태의 작품. 나플라는 꼭대기에 선 채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블랙 레더 베스트, 와이프로젝트. 레드 니트 베스트, 화이트 티셔츠, 모두 닐 바렛. 블랙 쇼츠, 보테가 베네타. 햇, 캉골. 블랙 레이스업 부츠, 프라다. 나플라가 천장과 바닥을 가로지르는 파란 빛의 줄을 잡아당기자 반대편 피아노가 소리를 내며 까만 정적을 깼다. Lab212의 ‘Potrée/’.

체인 목걸이, 루이 비통. 플라워 패턴 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오늘 사운드 비주얼 아트 작품들과 촬영하면서 “와!”, “말도 안 돼” 이런 감탄사를 자주 내뱉었는데, 가장 황홀하게 느낀 작품은 뭔가요? 하나하나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계단 형태의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음향, 빛, 그림자 속에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마치 내가 상상했던 미래 속을 걷는 것 같았어요. <은하철도 999>에 나올 법한. ‘이게 미래구나’ 싶었어요.

평소 미래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딱히 그렇진 않아요. 저보다 루피 형이 우주나 미래에 훨씬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음악에서도 그런 게 느껴져요. 저는 제 미래나 걱정해야죠.

아까 작품 설명은 듣지 않겠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설명을 듣고 나면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직접 보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작품을 보면서 의미를 찾거나 영감을 받으려고 하진 않아요. 영화도 리뷰를 멀리 하고, 음악도 평점을 안 보고 들어요. 그래야 저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최근 공개한 정규 앨범에 대한 설명도 별로 하고 싶지 않겠네요. 그렇긴 해요. 앨범명인 <u n u>에 담긴 의미를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야 임팩트가 클 것 같아요. 말보다 바이브로 이해시키고 싶어요. 이런 인터뷰도 자칫 앨범에 대한 해설이 될까 봐 조심스러워요.

그럼 진짜 궁금했던 몇 가지만 물어볼까요. 파트 1, 2로 나눠 공개한 앨범은 멜로디컬하고 재지한 싱잉 랩과 보컬이 돋보이는데, 그보다 흥미로운 건 사랑을 노래한 곡이 많다는 거예요. 왜 ‘사랑’을 말하고 싶었나요? 뭐든 기승전결이 있어야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나플라라는 캐릭터는 계속 치고 올라왔어요. 어느 정도 정점을 찍었는데 다시 잘난 척하면 뻔해 보일 수 있어요. 날카롭고 타이트한 랩을 하는 뮤지션이 노래를 부르면 신선한 충격일 거고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발표하는 첫 솔로 앨범이라 많은 사람이 듣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멜로디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어요. 작업할 때도 최대한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죠. 머리 색을 검게 바꾸고 옷도 되게 루스하게 입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효과를 봤어요? 글쎄요, 지금은 확실하게 효과를 말하기 어려워요. 나중에 옷을 화려하게 입고 플렉스한 곡을 작업해봐야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파트 1의 첫 번째 트랙 ‘아이스 커피’에선 “우리 둘만의 공간에 오늘도 결국 난 혼자네”라고 노래했고, 파트 2의 ‘자랑’에선 “기억해줄래 내 발걸음까지도 나 아직도 흔들려서 그래”라고 했잖아요. 사랑이 주는 다양한 감정 중에서 하필 이별과 외로움에 집중한 까닭도 궁금했어요. <쇼미더머니777> 이후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심적으로 지치기도 많이 지쳤어요. 공연과 음악 작업 의뢰가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따라야 하는 의견이나 요구가 많았어요. 게다가 어깨도 무거웠어요. 좋다는 사람에 대한 부담, 싫다는 사람에 대한 부담, 날 보며 배운다는 사람에 대한 부담, 그리고 팬들의 사랑은 좋은데 그게 또 부담이고.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 감정이 끓어오를 때마다 곡을 썼고, 이번에 사랑이라는 주제로 재해석해 앨범을 만들었어요.

감정적으로 바닥을 치고 난 뒤 나플라다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나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점점 더 들수록요. 흔히 “나이 먹어서 기분 좋다”라기보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나이 듦에 따른 변화는 어쩔 수 없어요. 다만 지금은 슬프거나 불안하지 않아요. 좀 신나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감정이 무뎌지기도 했어요.

앨범의 마지막 트랙 ‘투 머치’가 딱 그래요. “이미 떠난 너인데 자꾸 핸드폰에 걸어 난 너에게 call”이라고 노래하는데 목소리는 그렇게까지 참담하게 들리지 않거든요. 그 곡은 술을 마시고 녹음했어요. 사랑도 이별도 끝난 남자의 담담한 심정을 표현하려고 했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트랙이기도 해요. 마지막 곡까지 다 듣고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듣는다고 했을 때 ‘아이스 커피’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너무 신나거나 다운되지도 않도록 의도했어요.

‘멀로’라는 곡에서 “너의 눈빛 너의 향기 마음을 전부 꿰맸지”, “그대 입술은 아파요 그대 이름도 너무 아파요 그대의 눈빛이 너무 나빠요”라는 가사를 듣고 나플라에게 이런 감성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 한국 발라드적인 가사를 넣었어요.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LA에 살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다들 한국 가요, 특히 발라드를 불렀어요. 한국 발라드는 되게 슬퍼요.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거 같대요. 소주 감성이랄까, 미국에서 멀로의 뮤직비디오까지 다 찍었는데 약간 오그라들어서 내지 말까 고민했어요. 근데 소주를 마시고 들었더니 괜찮더라고요.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나플라에겐 중요한 문제인가요? 그런 시각에 부정적이지 않아요. “음악 역사에 획을 그을래, 돈을 벌래?”라고 물어보면 제 대답은 돈을 버는 거예요. 대중의 큰 사랑을 얻는 사람이 결국 큰 획을 긋는다고 생각해요. 마이클 잭슨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음악이 훌륭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건 빌보드 1위에 수차례 올랐고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기 때문이에요. 비틀스도 그렇고요. 우선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해요.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클 것 같아요. 진짜 커요. 여유를 두지 않고 계속 음악 작업을 하는 것도 잊히지 않기 위해서예요. ‘쇼미빨’이라는 게 있잖아요. <쇼미더머니777> 우승 이후 어떻게 해야 인지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어쩌면 이번 앨범이 그 답이 될 수 있어요. 제 기준에서 최대한 대중적으로 접근했거든요. 누구에게나 잘 흡수될 수 있는 물 같은 앨범이죠.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곡을 꼽는다면요? 아직까진 ‘Wu’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에게 저를 알릴 수 있었고, 커리어에 획을 그은 곡이에요. 클래식이라 자신해요.

5년 전 루피를 따라 한국으로 왔다고 들었어요. LA 한인타운의 클럽에서 공연을 했던 시절로 돌아가 한국행을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건가요? 당연히 루피 형을 따라야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꿈 같은 현실이란 말을 실감해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보면 신기하고 감사해요. 큰 축복을 받았어요. 그때 LA에 남았다고 해도 음악은 계속 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찾는 사람은 서서히 줄어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을 거예요.

2017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의 수록곡 ‘jungle’에선 “아무도 내 자리를 볼 수 없어 아무도 내 자리를 올 수 없어”라고 썼어요. <쇼미더머니777>에서 우승하기 1년 전이었는데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인가요? 그럼요. 대신 의미는 좀 달라졌어요. 그때는 ‘난 정상에 있고 너희는 날 못 따라와’라는 뉘앙스였어요. 이를 악물고 칼을 갈 때였거든요. 지금은 ‘나만의 색깔을 가졌고, 이런 색깔은 아무도 없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은 매일매일 바뀌어요. 내일이 다르고, 그다음 날도 달라져요. 인터뷰 때마다 저를 찾는 게 인생 숙제라고 언급하곤 해요.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에요.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당연히요. 이번 앨범의 파트 2를 파트 1과 비교하면 성장했음이 느껴져요. 이번에 배운 건 다음 작업에 반영이 되고, 더 잘하게 될 거예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얼 씨가 인터뷰에서 음악은 만들면 만들수록 성장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맞는 말이에요. 하면 할수록 성장하게 돼요.

함께 촬영한 David Helbich의 작품 바닥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더라고요. “당신이 아이였을 때의 목소리를 상상해본다.” 어릴 적에 어땠나요? 조용하진 않았어요. 느끼는 대로 다 표현했어요. 저는 라이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이라고 해요. 아이들은 깊게 생각하거나 틀에 갇혀 있지 않아요. 얼음이 녹아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면 봄이 온다고 대답하잖아요. 아이처럼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음악으로 온전히 표현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요. 세상에 적응하느라 쉽진 않지만 그게 바로 가장 나플라다운 순수한 모습이에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들린다고 생각해본다”라는 글귀도 있던데 이건 어때요? 듣기 싫어요. 그랬다간 제 음악을 못 할 거예요. 제 생각만 듣고 싶어요.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김준경
    스타일리스트
    권수현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
    로케이션
    D Museum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