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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SUV 탐구

2020.06.13GQ

지극히 주관적으로 우열을 가려본 소형 SUV 탐구.

RENAULTSAMSUNG
XM3

엔진형식 I4 가솔린, 터보
배기량 1332cc
변속기 7단 자동(DCT)
구동방식 FF

KIA
Seltos

엔진형식 I4 가솔린, 터보
배기량 1591cc
변속기 7단 자동(DCT)
구동방식 AWD

CHEVROLET
Trailblazer

엔진형식 I3 가솔린, 터보
배기량 1341cc
변속기 9단 자동
구동방식 AWD

간만의 아사리판이다. 원래 단둘이 맞붙는 게임보다는 한데 뒤엉켜 벌이는 삼파전이 흥미롭지 않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전할 용병전도 아니다. 국적은 달라도 세 SUV는 모두 ‘Made In Korea’다. 셀토스는 토박이, 트레일블레이저는 미국계, XM3는 프랑스계 한국차다. 국내 시장 안착을 중요 과제로 설정하고 제작한 만큼 비슷한 속성을 공유한다. 동시에 복잡한 출생 배경에 따른 선명한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국산 소형 SUV 간의 육박전은 3년 전 이미 한 차례 벌어진 바 있다. 쉐보레 트랙스, 현대 코나, 르노삼성 QM3가 당사자였다. 당시엔 가장 후발주자인 코나가 역전승을 거두며 상황이 종료됐다. 이번엔 조건이 다르다. 현대 대신 기아가 나섰고, 코나보다 반 등급 정도 상위 차종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끼리의 경쟁이다. 도전자와 방어자의 위치가 도치되기도 했다. 기아가 가장 먼저 뛰어들자 쉐보레와 르노삼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명타자처럼 신모델을 투입했다. 새롭게 형성된 시장을 재빨리 선점하려는 기아와 최근 계속된 부진을 회심의 한 방으로 뒤엎으려는 쉐보레와 르노삼성. 엄청난 수요가 보장된 만큼 밀려선 안 되는 게임이다. 간만의 올인전이다.

세 차가 구사한 디자인 코드는 천차만별이다. 셀토스는 전형적인 SUV의 윤곽 내에서 세부적인 기교를 가미하는 방법을 택했다. 호불호를 구분 짓는 잣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디자인이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영리하게도 합승 전략을 폈다. 자사의 유명한 머슬카 카마로의 디자인을 SUV에 걸맞도록 변형했다. 가장 용기를 낸 브랜드는 르노삼성이다. XM3는 쿠페의 실루엣을 접목한 SUV다. 현재 국산차 중에선 유일하고, BMW X6와 벤츠 GLE 쿠페 등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카테고리다. 루프 라인이 매끄럽게 떨어져 눈이 호강하는 대신 여유로운 뒷좌석 머리 공간은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안전하게 자리를 차지하려면 대중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입장인데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향했다.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다.

XM3의 디자인을 해체하면 르노삼성의 깊은 고민을 추론할 수 있다. 포기해야 할 것과 확보해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했다. 가령 XM3는 셋 중에 체격이 가장 크고, 휠베이스 또한 압도적으로 긴 데도 불구하고 뒷자리가 협소하다. 쿠페형 SUV라는 구조적 특성상 비좁은 머리 공간은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리어 시트를 필요 이상으로 전진시켜 무릎 공간마저 넉넉지 않다. 하지만 해치를 열어보고는 이내 고의적인 설계라는 의중이 파악됐다. XM3의 트렁크 용량은 셋 중 가장 넓은 513리터다. 경쟁 상대 셀토스보다도 한 급 위인 스포티지의 트렁크마저 능가하는 수치다. 뒷좌석 시트가 앞쪽으로 밀착된 효과로 2열 시트를 애써 접지 않아도 골프백이 사선으로 쉽게 적재된다. 타깃이 분명하다. 뒷좌석에 동승자를 태울 상황보다 트렁크를 활용할 일이 잦은 싱글 혹은 커플. 명확한 전략에 동의한다. 어차피 모두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는 차는 없을 테니까.

반면 실내 거주성과 편의성은 기아 셀토스가 경쟁 차들을 압도한다. 집도, 차도 큰 걸 선호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진화한 현대·기아차의 내부 공간 확보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셀토스의 차체는 셋 중 가장 작지만 실내 공간의 부피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공들여 설계한 흔적은 시트에도 역력하다. 시트의 품질을 판단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여도 자동차의 성향에 얼마나 어울리는지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지나치게 물컹하거나 과도하게 단단하지 않다. 무던한 셀토스의 주행 질감에 절묘하게 부합해 장시간 주행에도 피로하지 않다. 더구나 유일하게 뒷좌석 등받이를 기울일 수 있다. SUV의 아킬레스 건은 꼿꼿하게 선 2열 시트인데, 셀토스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SUV의 뒷좌석에서 몸을 눕힌 채 곯아떨어진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셀토스는 본의 아니게 반칙 아닌 반칙을 하나 저질렀다. 트레일블레이저가 3기통 1.35리터, XM3가 4기통 1.35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반면 혼자서 1.6리터 엔진을 얹었다. 당연히 최고출력도 다른 두 대보다 20마력가량 푸짐하다. 고속 주행 시 차를 밀어주는 뒷심이 조금 더 낫지만, ‘피지컬’의 우세가 실생활에서 그다지 돋보이진 않았다. 고성능 차도 아닌 소형 SUV에서 20마력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심야의 추격전을 벌이려고 소형 SUV를 구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셀토스의 잘못은 아니다. 장르의 문제다. 엔진에 어떤 변속기를 연결 짓고, 어떻게 화음을 맞췄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화두에선 메르세데스-벤츠와 공동 개발한 엔진을 탑재한 XM3가 월등했다. 조작에 따른 반응이 빠릿빠릿하다. 배기량이 1.35리터에 불과한 다운사이징 엔진인데도 불구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힘겨워하는 기색을 잘 내비치지 않았다. XM3의 파워트레인 구성에는 특질이 하나 더 있다. 틈만 나면 단수를 높이려고 한다. 역시 장단이 분명하다. 순간적으로 힘을 쏟아내는 상황이 잦은 시내에선 그다지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변속하는 도중 일으키는 미세한 진동으로 탑승객에서 피로감을 안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6~7단에 진입하기만 하면 연비가 솟구치며 미뤄왔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다. 실제로 고속도로에서 규정속도를 준수하며 달리자 주유소를 고사시킬 만한 연비, 리터당 20킬로미터에 우습게 도달했다. 이 정도 연료 소모 효율을 기록한 가솔린 승용차는 경험한 적이 없다.

친절한 셀토스, 진지한 XM3와 달리 트레일블레이저는 유머러스한 SUV다. 코나와 QM3, 트랙스의 경쟁에서도 그랬듯이 가장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차는 쉐보레 엠블럼을 달고 있었다. 하다못해 경적 소리도 ‘빵빵’이 아닌 ‘뽕뽕’. 트레일블러이저의 성격은 탄탄한 서스펜션과 매몰차게 몰아대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견디는 한계치에도 드러난다. 차체 안정화 장치가 일찌감치 개입하는 XM3, 셀토스와 달리 종방향과 횡방향으로의 극단적인 쏠림을 야무진 하드웨어를 밑천 삼아 버텨낸다. 3기통 엔진의 헐떡이는 소리가 이따금씩 산통을 깨기도 하지만, 소형 SUV의 평균적인 정숙성을 감안하면 그다지 중대한 문제라고 여기고 싶진 않다.

세 SUV를 직접 경험하자 어떤 차를 택할지 고민하는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젊다면 트레일블레이저를, 젊었던 시절을 거쳤다면 셀토스를 권하고 싶었다. 정작 나는 그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걸까? 마음이 점점 XM3로 기울었다. 사실 SM6에 크게 실망한 경험 탓인지 르노삼성의 차가 당연히 최하위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뒷자리보다 적재 공간이 더 중요한 입장이고, 어떻게 운전하느냐보단 어디로 향하느냐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 XM3의 몇몇 약점을 관대하게 포용할 수 있을 듯했다. 동일한 선택 사양을 추가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브랜드도 르노삼성이었다.

르노삼성은 XM3를 통해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신뢰를 한 뼘 쌓았다. 허술한 조립 품질과 불안정한 고속 주행감, 빈궁한 주행 보조 시스템 등 SM6와 QM6에서 발견되었던 치명적인 흠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 문제 제기에 정면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증명이다. 실수를 보완하려는 태도와 탐구 속에서 탄생한 자동차라면, 후회가 따를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1세대 SM5 이후 장황한 시간이 흘렀다.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던 르노삼성이 기어코 구미가 당기는 차를 만들었다.

    피쳐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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