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프린세스의 존재 | 지큐 코리아 (GQ Korea)

킹 프린세스의 존재

2020-06-16T13:06:54+00:00 |interview|

팝스타 킹 프린세스는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며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어느 한쪽으로 정의할 수 없는 자유로운 존재다.

버튼다운 화이트 셔츠, 라벨 디테일 팬츠, 블랙 파나마 울 모헤어 베스트, 블랙 실크 타이, G 디테일 레더 솔 모카신, 모두 구찌. 귀고리는 킹 프린세스의 것.

스트라이프 코튼 셔츠, 저지 재킷, 빈티지 트리코틴 팬츠, GG 패턴 실크 타이, 골드 GG 그립 시계, 블랙 페이턴트 레더 오페라 장갑, 모두 구찌.

레드 빈티지 울 플레어 코트, 하늘색 싱글 브레스 티드 베스트, 울 실크 팬츠, 울트라페이스, 메탈 안경, 모두 구찌. 브리프 케이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레드 싱글 브레스티드 가죽 재킷, 팬츠, GG 로고 튤 브라, 블랙 페이턴트 레더 초커, 블랙 레이스 장갑, 모두 구찌.

라벨 디테일 캐러멜 비스코스 셔츠, 팬츠, 하늘색 크레이프 실크 셔츠, 실크 타이, 모두 구찌.

밀리터리 멜란지 트윌 코트, 와이드 팬츠, 블루 실크 크레이프 버튼다운 셔츠, 실크 타이, G 디테일 레더 솔 모카신, 모두 구찌.

그레이 지오메트릭 G 모티프 그리자이유 재킷, G 프린트 실크 롱 슬리브 셔츠, 실크 타이, 모두 구찌. 핑크색 새틴 빈티지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킹 프린세스는 관객이 없을 때도 꽤 근사했다. 콜로라도 덴버의 휘황찬란한 오그덴 극장의 무대 위에서 스물한 살의 킹 프린세스는 사운드를 체크하는 동안 기타를 메고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며 서성거렸다. 비평가들에게 호평받은 2019년 데뷔 앨범 <Cheap Queen>에 수록된 감성적인 이별 노래를 리허설할 때는 잠시 숨을 돌렸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지난밤 길 건너 컨트리 & 웨스턴 음악 게이 바, 찰리스 덴버에서 열렸던 파티의 가벼운 숙취를 진정시켰다.

미카엘라 스트라우스라는 본명을 가진 킹 프린세스가 후디를 벗자 특유의 인장과 같은 흰 탱크톱이 드러났다. 밴드의 드러머는 즉석에서 마룬파이브의 ‘Memories’를 연주했다. “술은 모든 기억을 되살리지.” 그녀는 가사를 살짝 틀어 불렀다. “그리고 넌 내 뒤에 섹스하고 있지 And you are funking me in the bum.”

밴드는 이어서 ‘Home Girl’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팬들은 이 몽환적이고 대중적인 발라드가 그녀의 연인이었던 배우 아만들라 스텐버그에 대한 노래라고 추측하고 있다. 퀴어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숨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감추려던 시도는 금세 탄로나 버렸다. 이어서 밴드는 아리조나 제르바스의 바이럴 히트곡 ‘Roxanne’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다음으로는 가사를 다듬은 버전의 ‘Cheap Queen’을 연주했다. “나는 착한 사람일 수 있었어. 나는 싸구려 여왕이야.” 그녀는 가사를 바꿔가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싸구려 페니스야. 네가 좋아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운드 체크를 마친 후, 킹 프린세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녹색 방에 있는 낡은 황갈색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 이날은 슈퍼볼 경기가 있던 일요일이었다. 경기 전에 데미 로바토가 국가를 열창했는데, 마침 이날은 킹 프린세스가 로바토의 발라드곡 ‘Anyone’의 글리치 리믹스 버전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다음 날이었다. “내가 방금 놓친 거야?” 킹 프린세스는 DIY로 찍은 댄스 비디오 ‘Hit the Back’에 함께 출연했던 친구 헨리 멧칼프에게 물었다. “못된 년!” 킹 프린세스는 안티 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주류 팝도 좋아한다. 레이디 가가를 커버한 적도 있고, ‘Birthday’라는 곡을 들어봤냐며,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셀레나 고메즈를 극찬했다. 또한 해리 스타일스의 유럽 투어 오프닝 무대에 서기로 했다. 원 디렉션 멤버 출신의 그가 ‘1950’을 획기적인 곡이라고 평가한 트윗을 올린 지 2년 만에 성사된 공연이었다. ‘1950’은 스포티파이에서 3억 2,500만 번이나 스트리밍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까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뮤지션으로 여겨진다. <Cheap Queen>은 2019년의 가장 강력한 팝 앨범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또한 ‘1950’에 비해 앨범의 나머지 트랙의 스트리밍 횟수는 현저히 적었다. 퀴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탓일까? 노래 제목이 ‘Pussy is God’이기 때문일까? 스스로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오늘날 음악계에 드문 일이라서? 간혹 그녀 스스로 자책하듯이 라디오에서 플레이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갖춘 히트 앨범이 아니라서? 그녀의 음악적 기량이 대중적 위치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저 섹시하고 멍청한 년들 같지 않다고요?” 그녀는 장난으로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애들은 나보다 훨씬 많이 벌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건 내가 아니거든요.” 그녀는 입 안 가득 과자를 털어 넣으며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지금도 예측이 가능하고, 앞으로도 언제나 이 세상을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그다음에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겠죠. ‘세상에. 이거 좋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네. 빌어먹을 내 거기가 이상해지잖아.’ 제가 노리는 건 이런 거예요.”

킹 프린세스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보통은 두서없지만 직설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주류 팝의 노랫말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들린다면, 킹 프린세스의 가사는 마음의 문제, 특히 아픔에 대한 Z세대의 굳건한 사색이 담겨 있고, 그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2015년 영화로 만들어진 <캐롤>로도 잘 알려진) 소설 <소금의 값>에서 영감을 받아 퀴어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1950>을 발매한 지 2년이 지나자 킹 프린세스는 더는 퀴어임을 숨기거나 난감해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포장하면서 젠더퀴어의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설사 퀴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퀴어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이다. 이는 킹 프린세스가 갑작스레 인기를 얻으면서 바로 알게 된 사실이다. “제가 정치화될 줄은 알았지만, ‘1950’을 쓸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이년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그러니 그 내용을 노래로 써야겠어’ 같은 생각뿐이었죠.”

킹 프린세스는 지난 10월에 발표한 앨범 <Cheap Queen>의 많은 부분을 직접 쓰고, 연주하고, 제작했다. 이 앨범은 관계가 남기고 간 것에 관해 성숙하면서도 생생하게 반추한다.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어떻게 관계를 다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앨범은 슬픔을 다양하게 표현하면서도 냉정하게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Cheap Queen>의 감정적 스펙트럼은 넓고 너저분해서 실제 생활 속 모습과 많이 유사하다. 토비아스 제소 주니어 Tobias Jesso Jr. 가 피처링한 ‘Isabel’s Moment’에서는 로맨틱한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Do You Want to See Me Crying?’에서는 감정을 마구 휘몰아 세운다. “나는 기분이 나아지려고 온 마음을 다했어. 그리고 너는 아마 이제 그저 내 팬이겠지”라고 노래한다. 또한 스스로 ‘바텀 게이들의 찬가’로 설명했던 ‘Hit the Back’은 그 리듬은 물론이고 연인들까지도 항복시킬 정도로 경박스러운 면이 있다. 타이틀곡인 ‘Cheap Queen’에서는 1930년대 반 레즈비언 공익 광고의 문구를 보컬 샘플로 깔아두고 로맨틱한 사랑이 끝나버렸을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우정에 대해 노래하는 반면, ‘You Destroyed My Heart’에서는 좀 더 위악적으로 이별을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되찾고, 우린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차라리 레즈비언일 테고, 넌 아마추어겠지.”

가사의 많은 내용은 논 바이너리 Non-Binary 활동가이자 <헝거 게임>, <더 헤이트 유 기브>로 잘 알려진 배우 아만들라 스텐버그와의 연애에서 비롯되었다. 킹 프린세스는 리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퀸 윌슨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 몇 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예술적 배터리는 여전히 헤어짐의 고통으로 충전되어 있다. “깊은 상처와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무대에서 힘 빠지게 만든 슬픈 경험이지만, 음악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도 있기에 정말 감사해요. 이 나쁜 년, 나는 아직도 그 일에 대해 쓰고 있어.”

이 솔직한 고백은 수많은 팬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그덴 극장 백스테이지에는 직접 손으로 장미를 그려 넣은 스니커즈,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해초 과자의 빈 봉지가 벽에 걸려 있는 등, 팬들이 준 선물로 꾸며둔 공간이 있었다. 공연장의 입구가 열리는 시간쯤에는 건물을 빙 둘러 긴 줄이 생기는데, 투어 매니저 트레버의 말에 따르면 이제껏 매일 밤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콘서트에 오는 관객들은 연령대나 생김새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 여성이나 퀴어처럼 보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출신 교사인 캐런은 “그녀가 자신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좋아요”라며 말을 이었다. “솔직해요. 그게 뭐든 간에 자기 이야기를 하잖아요. 사람들은 조금씩 진보적으로 바뀌면서 마음을 열고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대세인 거죠.”

가까운 바에서는 슈퍼볼 게임의 3쿼터를 중계하고 있었다. 근처 골목에서는 몇몇 팬이 맥주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킹 프린세스는 진짜 퀴어 중의 퀴어예요.” 공연 티켓을 든 안나벨이 말했다. 그녀의 친구인 안나가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을, 이성애자가 아닌 젠더퀴어를 이렇게 강렬하게 대표하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밀레니얼들에게는 기껏해야 ‘가짜 동성애’를 다룬 케이티 페리의 ‘I Kissed A Girl’정도였죠. 요즘은 무언가를 대표한다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넷플릭스가 만들어낸 대표성이 아닌 진짜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킹 프린세스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세심했다.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서 자란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레즈비언임을 알았지만 성 정체성의 복잡함을 두고 계속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릴 때는 남성처럼 자신을 드러냈고, 왜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으로 여성적인 옷을 입기도 했다. 이런 복장은 대학 진학 전까지만 이어졌다. 자퇴하기 전에 1년간 다녔던 LA의 대학, 손턴 스쿨 오브 뮤직에서 그녀는 하나의 성 정체성을 선택할 필요 없이 단순히 ‘존재’라고 쓸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여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도 매우 자신 있어서, 완전히 양쪽이 다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드레스를 입고 바깥을 활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정도의 부끄러움은 있죠.”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꾸미고 변신할 수 있어요. 마치 몸을 소품처럼 쓰는 거죠. 옷도 갑옷. 화장도 갑옷. 그게 전부예요. 나만의 진짜 탁월함을 발견했고, 이제는 내면에 있는 가장 여성적인 면을 연기하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제 외모는 분명 그 중간 어딘가예요.”

이는 킹 프린세스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Prophet’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네가 원할 때만 단지 너의 예쁜 여자가 되고 싶다”고 노래하면서 미식축구의 쿼터백 같은 옷을 입고 풋볼 경기장을 서성거린다. 지난 11월 <SNL> 데뷔 무대에서, 그녀는 각진 정장을 입고 부드러운 곡 ‘1950’을 선보이고, 홀터 톱, 청바지 위에 스커트로 갈아입고 ‘Hit the Back’을 불렀다. <Cheap Queen> 앨범 커버는 그러한 성적 이중성을 더욱 간결하게 전달한다. 얼굴에는 드래그 메이크업을 하고,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채 머리를 팔에 괴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런 모습을 불편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안다. 이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제 스스로 여자로 정체화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여자처럼 옷을 입는 것, 예술의 한 형태를 매번 하나의 캐릭터로 완벽히 인식하는 것처럼 어려운 개념이에요. 여성처럼 생긴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와!’라고 감탄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제 말은 이게 바로 제가 그래미를 받지 못하는 이유고, 사람들이 제 음악을 스트리밍하지 않는 이유라는 거죠. 어렵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냥 좀 즐기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장애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킹 프린세스는 남자 아티스트 같은 수준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로버트 플랜트? 빌어먹을 마크 볼란, 로저 돌트리. 이런 사람들은 그냥 여자 흉내를 내는 개자식들이에요. 로큰롤에는 남성성이 여성성으로 전환되기 쉬운 무언가가 있죠.” 그녀가 말했다. “여자들한테 ‘너 레즈비언이야?’라고 묻는 것과 같아서 좀 더 복잡해요. 말 그대로 겨드랑이에 털 하나 났다고 ‘빌어먹을 면도기 가져와!’ 하는 것과 같아요. 이상한 이중 잣대죠. 저는 그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와 잠을 잤어요. 그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조차 안 써요.”

킹 프린세스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성공의 척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그 기준은 음악이 존중받는 것이었다. 그녀는 뉴욕에서 자라면서 익힌 프로듀싱 능력과 음악적 기술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올리버 스트라우스는 뛰어난 오디오 엔지니어였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미션 사운드’ 녹음실을 드나들며 음악을 배웠다. 그녀는 녹음실을 드나드는 아티스트들의 창의적 역량이 음악 산업에 의해 무력화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열한 살에 레코딩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017년 2월 컬럼비아 레코드의 임프린트인 마크 론슨의 젤리그 레코딩스와 플래그십 아티스트로 계약을 맺게 되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다.

킹 프린세스는 자신의 자부심처럼 짧은 시간 안에 업계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 피오나 애플은 그녀를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고, 그녀는 피오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작년에 피오나 애플의 부드러운 발라드 ‘I Know’의 듀엣 버전을 발표했다. 마크 론슨은 일종의 멘토로서 지난해에 저평가된 보석 같은 곡 ‘Late Night Feelings’의 피처링에 참여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어울릴 수 있는 혈통을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한다.

“사람들이 저를 다른 동성애자와 비교하고 ‘얘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게 싫어요. 자기야, 저를 다른 게이들과 비교하지 말고 스트레이트들이랑 같은 링 위에서 붙여줘.” 그녀가 말했다. (킹 프린세스는 모든 사람을 ‘자기야’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시에 이의를 제기한다. “퀴어들은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이 만들어낸, 엄청나게 풍부한 태피스트리에서 비롯되었어요. 제가 그 혈통의 일부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정치화되어야 하는 순간에 제 혈통을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매우 운이 좋은 위치에 있어요. 위험에 처해 있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역겨운 타블로이드 신문에 제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다루는 글을 쓰지 않아요. 제가 대놓고 ‘나는 여자랑 잔다!’고 말하니까요.”

킹 프린세스의 앞에는 방금 사인을 한 포스터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그중엔 얼굴에 수염을 휘갈겨 그린, 운 좋은 팬의 몫이 될 포스터도 있었다. 그녀는 성적 이중성이 여성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평소에 칼을 들고 다니지만 제게는 생각보다 소녀스러운 모습도 있어요.” 여자친구가 선물로 사준 비싼 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 가루가 묻은 양날의 접이식 웬체스터 칼을 꺼냈다. 그녀는 열정적인 컬렉터다. 용수철이 달린 잭나이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름답게 각인된 근사한 칼을 좋아한다. LA의 집에 있는 피아노 의자에는 표창, 활, 화살과 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킹 프린세스는 지난 몇 주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보냈다. 어제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곡을 녹음하기 위해 덴버 외곽의 스튜디오에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짬을 내서 펠로톤 바이크를 탔다. 지난 공연에서 팬들이 가장 좋아했던 새 싱글 ‘Ohio’를 수록한 <Cheap Queen>의 디럭스 에디션을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발매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 동안 준비했다.

킹 프린세스가 되면서 더 자유로워졌지만, 한편으로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돈을 못 벌까 봐 아티스트로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말 그대로 게이라서 돈을 벌어요.” 그녀는 동성애 혐오로 유명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의 본거지인 캔자스시티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제가 ‘여기 호모 년이 왔다!’라고 전화한다니까 여자친구랑 부모님이 화를 내더라고요.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가 단지 동성애자라고 저를 죽인다면, 그 순간 미친 순교자가 되는 거겠죠.” 킹 프린세스는 농담을 하면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매번 심각한 생각을 약간의 장난스러움으로 덮어씌워 표현한다. “저는 원할 때마다 무엇으로든 바꿀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에요.” 그녀는 이제 자신의 말이 팬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 며칠 전 유타의 솔트레이크 시티 공연에서 몰몬교 아이들에게 평소답지 않게 말을 건넨 일을 떠올렸다. “저는 절대 일장연설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때는 내가 무언가 말을 해야만 한다는 ‘깨달음의 순간’이 왔어요. 그 애들은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신났다기보다는, 나 같은 사람 중 누구도 그곳에서 공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흥분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그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건 무례한 일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언제나 정직하게 말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엄청나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기를 부여하고, 동시에 공연도 하죠. 그건 저랑 안 맞아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과 문화나 예술에 대해 ‘이건 꼭 봐야 한다’, ‘그거 진짜 죽인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건 퀴어들끼리의 정보 전달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우린 문화와 예술을 미친 듯이 좋아해요. 문화와 예술이 바로 우리의 언어예요. 제가 뭐라도 도울 방법이 있다면? 그저 행복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