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의 위기인가 진화인가 | 지큐 코리아 (GQ Korea)

댓글의 위기인가 진화인가

2020-07-06T13:38:56+00:00 |culture|

포털 다음과 네이버에서 연예 뉴스 댓글이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댓글이 하나의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기묘한 이야기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블랙 미러>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 ‘미움받는 사람들’은 놀라운 작품인데, 내용은 이렇다. 악의적인 기사로 댓글 테러를 당하고 있던 런던의 한 저널리스트가 드론 벌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 날, TV 쇼에서 자신을 따라 한 꼬마에게 혹평을 쏟아낸 유명 래퍼가 거센 악플 세례를 받다가 같은 방법으로 죽는다. 형사 카린 파크는 두 사람의 죽음이 SNS상에서 유행하는 ‘죽음의 해시태그’ 놀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에 ‘#deathto’라는 해시태그를 달면 그날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은 인물이 타깃이 되는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목표가 되는 타깃을 정한 후,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잘못을 지적한다. 누군가는 재미와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무료한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SNS에 동참한다. 이것이 정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안 그래도 흥미롭던 이야기는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 즉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종교 재판과도 같은 폭력을 가한 40만 명의 네티즌이 드론 벌에 역으로 몰살당하면서 반전을 맞는다. 범인인 프로그래머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걸 보고 분노한 나머지 온라인에서 비난에 가담한 자들을 단죄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블랙 미러>는 악플러들에게 인과응보의 화살을 날림으로써 온라인 생태계의 해악을 꼬집는다.

이 드라마의 핵심 중 하나는 카린 파크의 대사에 함축돼 있다. “인터넷에선 늘 씹어댈 사람을 찾지.” 사이버 공간에서 ‘씹힘’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들 중 하나는 대중문화 스타다. 그리고 뉴스 소비자들이 많이 몰리는 포털 연예 섹션 댓글난은 하이에나처럼 씹을 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이들에게 ‘감정의 배설구’ 역할을 해 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이들에게 댓글 창과 연예인은 한강이었다. 익명이란 이름으로 숨을 수 있으니, 종로에서 결코 하지 못할 말들을 한강에서 쏟아냈다.

특정 연예인을 향한 악플이 심각해지면서 이는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댓글 창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유독 못나게 나온 졸업사진 기사에 달린 댓글 한 줄이 기사화돼서 전 국민의 뒷담화 대상이 되는 연예인에게 표현의 자유란 무엇일까. 정보도 아니고 비평도 아닌 가십 앞에 표현의 자유는 본래 뜻을 잃었지만, 악플 다는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때론 자신들이 연예인의 이면을 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루머 유포죄로 고발돼서 잡힌 대다수는 정작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문제는 아는 게 없는 이들이 ‘그냥’ 쓴 댓글에 사람들이 ‘공감’을 누르고, 그것이 ‘베스트 댓글’에 등극하고, 검증되지 않은 베스트 댓글을 여론이라고 믿고 싶은 언론이 쓴 기사가 재생산되고, 포털 시스템이 은밀히 공조하는 과정에서 연예인은 조리 돌림 수준의 지옥을 맛봐야 했다는 사실이다.

우연한 타이밍일까. 설리가 떠나고 구하라를 잃고 나서야 업계는 비로소 움직였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지난해 10월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네이버도 올해 3월 해당 서비스를 닫았다. “그걸 좀 미리 하지, 좀만 일찍 했으면 몇 명 구했을 것 아니냐.”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 폐지에 대해 박명수가 라디오에서 밝힌 입장이다. 업계는 이번 정책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여론 수집 도구로서의 댓글이 주는 효과보다, 악플이 낳는 악영향이 더 컸다는 이유다. “불특정 다수의 공격적 댓글이 반강제적으로 노출된 댓글 창을 접하지 않아서 좋다”고 밝힌 매니지먼트 홍보 관계자 A는 댓글 창이 사라진 것을 “무소식이 희소식인 상황”으로 빗대기도 했다.

연예부 기자들의 경우 조금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 아쉽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개인적인 고통이 줄어든 장점”은 있다는 입장도 있다. 개인적 고통이란 악플. 포털 댓글 서비스 안에선 기자들 역시 악의적인 욕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함량 미달의 기사를 쏟아내서 받는 자업자득인 악플도 있지만, 팬덤으로부터 받는 무차별적인 인격 모독도 적지 않았다. 한 인기 아이돌 앨범에 날 선 비평을 한 기자의 기사는 악성 댓글의 융단폭격을 당해 너덜너널해졌다. 특정 스타의 기사를 공유해서 댓글을 달러 가는 이른바 ‘좌표 찍기’로 댓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은 이제 뭐, 대단한 뉴스거리도 아니다.

포털 뉴스 댓글 폐지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네이버TV, 카카오TV 등의 동영상 콘텐츠에는 여전히 댓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예 뉴스 댓글이 차단되면서 동영상 콘텐츠로의 네티즌 대이동이 일어났다. 연예인 개인 SNS와 소속사가 운영하는 포스트 역시 악플러들의 표적이 됐다. 이들 공간의 경우 해당 연예인이나 소속사가 곧바로 댓글을 삭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많은 댓글을 일일이 관리하기가 어디 쉬운가.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 옹의 명언이 다른 의미로 1승을 추가한다.

일부 매체는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연예 부문’ 기사를 일부러 ‘생활 부문’ 섹션으로 분류해 전송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연예 관련 뉴스라도, 기자나 언론사 자체 판단에 따라 기사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는 맹점을 노린 것이다. 일명 ‘신종 어뷰징’이다. 언론사가 이토록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댓글이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일종의 ‘미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수치가 증명한다. 네이버와 뉴스 콘텐츠 제휴를 맺고 있는 CP사 소속의 연예부 기자 C에 따르면 연예 뉴스 댓글이 폐지된 후 기사 유입이 크게 꺾였다. 이는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동시에 증명한다. 사람들이 기사도 기사지만 댓글 보는 재미로 기사를 이용해왔다는 것과, 그만큼 댓글의 위력이 크다는 사실이다.

정보 소비가 포털 중심에서 SNS나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댓글이 하나의 놀이 혹은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는 현상 말이다. 가령 트렌드에 역행한다고 평가받던 비를 다시 화려한 조명으로 감싸게 해준 것은 유튜브 ‘댓글 놀이’였다. 발매 3년이 지난 ‘깡’이 패러디를 낳고, 주옥같은 댓글들을 낳고, 그런 댓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깡’을 다시 찾으면서 ‘1일 3깡’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 댓글 놀이의 나비 효과. 연예 뉴스 댓글이 폐지된 것이 무안하게, 영상 콘텐츠 파트에선 인정받는 댓글의 가치. 이쯤 되면 포털이 뉴스 댓글 서비스를 포기하면서 동영상 콘텐츠 댓글은 남겨두고, 뉴스 기사 조회수가 줄어드는 이 모든 변화의 저변에는 이러한 한국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가 맞물려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댓글이 콘텐츠의 흐름을 바꿀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부 콘텐츠에선 여전히 댓글의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댓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건 연예 뉴스 댓글 폐지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라, 그 너머 다양한 플랫폼에서 광범위하게 진화하고 있는 댓글 문화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인지 모른다. ‘깡’이 재발견된 댓글 놀이의 시작엔 비를 향한 조롱이 있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이것이 댓글 놀이를 통해 반전을 맞은 건 드문 경우일 뿐, 이런 유희는 또 다른 악성 댓글로 진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카린 파크가 말했듯, 인터넷에선 늘 씹어댈 사람을 찾고 있으니까.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