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효리는 없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제2의 이효리는 없다

2020-07-27T15:04:30+00:00 |culture|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 연예인이 20년 넘게 스테디셀러로 머물며 영향력을 잃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효리 외에는 사실 없다.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프 더 레코드, 효리>는 이효리의 24시간을 엿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집 안 곳곳에 설치된 9대의 CCTV에는 외로움을 달래는 독신 여성 이효리, 쌩얼로 친구와 고민을 나누는 이효리, 오보에 눈물을 흘리는 이효리가 포착됐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곳에선 왠지 모를 인공의 냄새가 가끔씩 풍겼다. 그것이 리얼이나 아니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접근의 문제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효리의 삶을 <인간극장> 느낌으로 담아냄으로써 종종 스타에게 변명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혐의를 안겼다. 이효리 역시 보여줘야 할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들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타이기에 지니고 있을 명성에 대한 집착까지는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때가 2008년, 이효리의 나이 서른이었다.

그리고 9년 후, 마흔을 앞두고 이효리는 JTBC <효리네 민박>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다시 공개했다. 그곳엔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항변하던 이효리는 없었다. 대신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이상향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모순된 사람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효리가 있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스타의 딜레마라면, 쇼비즈니스 산업 안에서 그런 면모를 드러내는 게 이미지 괴리로 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작은 실수 하나도 트집 잡아 단죄하려는 세간의 날 선 시선들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자기 안의 모순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효리에게 탄탄한 자존감이 자라나 있었다. 아이유와 윤아 등 후배들과 고민을 나누고 “박수 칠 때 떠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라고 조언하는 이효리의 모습에선, 그녀의 존재감이 어느덧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인상을 줬다. 이런 변화의 징후는 9년 동안 여러 차례 포착됐다.

아이돌 1세대로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웬만한 일엔 면역이 생긴 이효리지만, 4집 ‘H-Logic’의 표절 논란은 면역으로 자연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발적 혹은 반강제적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그런 이효리가 얼마 후 유기견 보호에 관심을 보이고, 채식을 선언하고, 상업 광고를 찍지 않겠다고 공표하자 사람들은 눈치 백단 스타의 이미지 마케팅이라 생각했다. “천하무적! 한우”를 외치던 한우 홍보대사가?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계의 큰손이? 혹시 누군가가 ‘개념 연예인’의 길을 조언한 거 아니야? 의혹이 날아들거나 말거나, 이효리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설득해 나갔다. 이효리는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을 찾아가 동물 보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명품 매장 출입 대신 바자회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혀지고 싶지는 않다”고 털어놓은 이효리는 자신이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으면서 그걸 넘어서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지닌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돈을 내는 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안부 관련 활동에 꾸준히 힘을 보탰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복직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며 노동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훗날 쌍용자동차가 ‘이효리도 춤추게 하는 티볼리’라는 문구로 마케팅을 펼치자 “아직 춤 안 췄다. 이놈들아”로 일침을 놓는 객관화도 잃지 않았다. 스타의 사회 참여에 대한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한국 연예계 지형도 안에서 이효리의 이러한 행보는 종종 오해받았고, 때론 위협받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신문 한 토막에 실리고 지나칠 뻔한 중요한 사안을 많은 이가 뒤돌아봤다는 사실이다.

섹시 퀸으로 호령했던 이효리는 30대 들어 ‘섹시하다’는 의미를 재정의하기도 했다. 5집 수록곡 ‘미스코리아’에선 물질만능주의 사회 분위기를 꼬집으며(“명품 가방이 나를 빛내주나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는 메시지를 보냈다. 6집 수록곡 ‘변하지 않는 건’에선 자연스럽게 늙는 것(“변하지 않는 건 너무 이상해”)을 이야기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억압에 대항했다. 이 무렵 이효리의 섹시함은 굴곡진 허리와 우월한 가슴 라인으로 대변되는 섹시함이 아닌 주체적인 ‘어떤 태도’로 나타났다. ‘차세대 섹시 퀸’의 등장과 퇴장이 지속됐지만, 당당함과 절제를 품은 이효리의 섹시함엔 비할 게 못 됐다.

물론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가 이효리 인기의 핵은 아니다. 이효리 매력의 저력은 양극단의 면모들이 이물감 없이 공존하는 엔터테이너라는 점이다. 또래 스타들이 신비주의에 의탁해 무대 뒤로 숨는 동안, 이효리는 대중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왔다. 무대 위에서 포스를 발산하다가, 예능 안에서 털털한 면모를 선보이는 건 이효리가 일관되게 보여온 행보다. 예능에서 ‘생리’와 ‘배란일’을 대수롭지 않게 언급한 스타가 있었던가. 요정 출신 아이돌에게 다소 금기시되는 발언을 한 것도 흥미롭지만, 그것으로 사람들을 불편함 없이 웃게 하는 이효리의 재능은 가끔 ‘이 사람 뭐지?’라는 놀라움을 줬다. 섹시 퀸과 소길댁 사이의 이미지 낙차를 적극 활용하는 <놀면 뭐하니?>에서의 린다G는 또 어떤가. 터지는 입담과 느낌 있는 안무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효리가 가요대상과 연예대상 모두를 거머쥔 스타’였음을 상기하게 된다. 그녀가 잠시 부른 블루의 ‘다운타운 베이비’가 음원 차트 1위까지 역주행한 사건이 다시금 증명한 것은 트렌드세터로서의 영향력일 테다.

코로나19 시대에 노래방 방문을 라이브로 방송했다는 이유로 <놀면 뭐하니?> 하차 요구까지 받은 사례에선, 이효리가 응원 못지않게 숱한 비난과 논란을 달고 살아온 스타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엄밀히 말해 이효리는 이효리이기에 더 높은 대중의 요구와 더 엄중한 잣대를 적용받아 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빈틈을 여러 번 들키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아 성장한 스타가,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고 반성하고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성장하려 안간힘을 써왔다는 점이다. 이번 노래방 사건에서도 이효리가 선택한 돌파법은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완성형이어서가 아니라, 부단히 새로 고침을 해나가려 하기에 이효리는 더 지켜보고 싶은 스타일지도 모른다.

핑클의 요정 시절을 거쳐 유혹하는 데 10분이면 된다고 자신하는 섹스 심벌이었던 이효리는 언제부터인가 패션 아이콘이 아닌, 여성 롤 모델 영역의 아이콘으로 넘어갔다. 유행도 빠르고 팬들의 변덕도 심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 연예인이 20년 넘게 스테디셀러로 머물며 영향력과 존재감을 잃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가요계에서는 이효리 외에는 사실 없다. 물론 이효리보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는 아주 많다. 이효리보다 예쁜 연예인도 적지 않다. 이효리 못지않은 예능감을 선보이는 아이돌도 드물지만 있다. 그러나 그 전부를 합했을 때 이효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대한민국엔 없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누가 제2의 이효리가 될 수 있나. 이효리는 그냥 이효리, 이효리이기에 유일무이한데.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