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형 럭셔리 하우스의 조건

2020.07.30GQ

한국형 럭셔리 하우스의 쟁점은 럭셔리 개념을 주거 공간에 어찌 녹이는가에 달렸다. 럭셔리란 화려한 치장이 아닌 취향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간극 조절이다.

한국에서 ‘럭셔리 하우스’를 말할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푸른 잔디와 수목을 가꾼 정원, 주변 풍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망, 그림처럼 멋진 외관, 화려한 인테리어, 최고급 가구와 오브제로 가득 찬 단독 주택이다. 정원과 집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어도 조망은 터에 따라 결정된다. 럭셔리 하우스에서 조망권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의 중심은 옛 사대문 안이었다. 이런 도시에서 최고의 조망지란 곧 도심을 내려다보는 위치다. 초기 럭셔리 하우스가 모두 산세가 험한 성북동, 평창동 등에 몰린 이유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사대문 부근의 주거 장소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한강 개발을 통해 서울의 공식적인 영역이 강남까지 확장되면서 조망권의 중심도 사대문 도심이 아니라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한강으로 이동했다. 한강 조망권은 서울의 부동산 개발을 움직이는 주요 요인이다. 얼마 전 시공사가 결정된 한남 3구역에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비용이라는 약 7조원이 투입되는 이유도 오롯이 한강 조망권이 보장되는 사업성 덕분이다. 단독 주택 형태의 럭셔리 하우스 역시 남산 기슭에서 한강을 조망하는 한남동, 이태원동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런 럭셔리 하우스는 땅값만 1백억원이 훌쩍 넘는 상황이라 그 주인들은 재벌 등의 초부유층일 수밖에 없다. 서울의 수많은 땅이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의 공동 주택으로 채워진 현실을 고려한다면 보다 보편적인 럭셔리 하우스는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공동 주택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작년 공동 주택 공시 가격에서 50억원이 넘은 초고가 공동 주택 리스트를 뽑아봤다. 서초 트라움하우스 5(68억 6천4백만원)를 기점으로 한남 한남더힐(55억 6천8백만원), 청담 상지리츠빌 카일룸 3차 아파트(53억 9천2백만원), 청담 마크힐스웨스트윙 아파트(53억 6천8백만원), 청담 마크힐스이스트윙 아파트(53억 4천4백만원), 삼성 상지리츠빌카일룸 아파트(50억 5천6백만원), 삼성 아이파크(50억 4천만원) 순이었다. 현물 가격은 훨씬 높게 예상되는 이런 공동 주택들은 철통같은 경비와 프라이버시 유지, 편리한 교통은 기본이고 한두 곳을 제외하면 한강을 통째로 바라보는 조망권을 필수로 갖추고 있다. 서울시에서 특별 관리하는 재건축 아파트 개발 단지 또한 한강 변에 몰려 있다. 잠실 주공아파트 5단지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 단독 주택이 지닌 정원의 존재를 만회하기 위해 요즘 공동 주택 형태의 럭셔리 하우스는 자연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서울숲이 좋은 예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고급 아파트인 갤러리아 포레,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2021년 1월 준공 예정)는 한강 조망권에 서울숲과 지척인 점을 부각시켜 친자연의 장점을 더한다. 옛 남산 체육관 자리에 새로 짓는 남산 소월길의 어퍼하우스 남산 또한 한강 조망권과 함께 남산이라는 천혜의 자연을 강조한다. 삭막한 콘크리트에서 벗어나려는 이런 시도는 공원을 바라보는 정도에 따라 집값이 천차만별인 뉴욕 센트럴파크 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말한 공동 주택 형태의 한국형 럭셔리 하우스가 조망과 자연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이제 추구하는 가치가 집 내부로 이동 중이다. 럭셔리 하우스를 완성하는 마지막은 매일 생활하는 주거 공간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고도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를 비롯해 각종 가구, 오브제를 제대로 갖춰놓아 기능성, 편안함, 만족, 취향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욕망은 얼마 전 MBC <나 혼자 산다>에 소개된 배우 유아인의 3층 단독주택 내부의 각종 가구와 집기에 대중이 보인 열광적인 반응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도 인식의 큰 전환이다. 이와 관련해 함께 공유할 예가 있다. 언론과 각종 SNS에 대서특필된 아크로 갤러리다. 아크로 갤러리는 작년 말 리뉴얼한 대림산업의 고급 주거 브랜드 ‘아크로 Acro’의 콘셉트 하우스를 꾸며놓은 곳이다. ‘상위 0.1퍼센트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최상의 주거 공간’, ‘모두가 꿈꾸는 하이엔드 주거의 정점’이라는 홍보 글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요 근래 눈에 띄게 증가하는 럭셔리 하우스 내부에 대한 해결점을 확인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어가 끝나고 나는 설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럭셔리를 표방한 공간 중 근래 가장 불쾌한 곳.”

이유는 단순하다.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인물들의 페르소나가 보이지 않았다. 성공한 부부라고 말하는 집주인의 교육 수준과 직업, 재산, 취향, 취미에 대한 정보는 ‘무’에 가까웠다. 디터 람스의 제품을 모으는 사람의 집에서 극도의 미니멀리즘이 느껴지지 않고, 바이레도, 딥티크, 조 말론 제품이 빼곡한 모습에서 특정 브랜드에 대한 ‘도착증적 애호’가 생각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게다가 겉보기에 멋진 곡선 계단의 흰색 난간에 손을 대었을 때 느껴지던 울퉁불퉁함은 덧바른 페인트의 산물이었고, 남성의 화려한 드레스 룸 서랍에는 네이버 쇼핑에서 최저가 1만원을 채 못 넘는 ‘오마 샤리프’ 드레스 셔츠로 채워져 있었다. 3억원짜리 맥라렌을 타는 사람들의 이 알뜰한 태도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이런 혹독한 비판은 사필귀정이다. 0.1퍼센트라는 수치를 통해 꿈과 환상을 심었으면 책임을 져야 했다. 집주인에 대한 명확한 설정 없이 얄팍하고 달콤한 이미지로 살짝 덮으며 스르륵 넘어가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 내러티브 없는 고가 브랜드의 향연은 의미 없는 잡탕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강행했다. 아크로 갤러리는 한국형 럭셔리 하우스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럭셔리 하우스는 비주얼과 브랜드의 아우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형 럭셔리 하우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쟁점은 럭셔리 개념을 주거 공간에 어찌 녹이는가에 달렸다. 2009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럭셔리한 집을 이렇게 묘사했다. 모든 물건에 손때가 묻어 있는 곳, 대대손손 내려오는 고가구도 있고 수많은 추억이 담긴 곳. 누군가는 분노하겠지만 이런 말도 했다. “요즘 새로 지은 최고급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집은 럭셔리한 집이 아니다.” 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어떨까. 2016년 세계적인 패션 전문 기자인 수지 멘키스가 ‘컨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를 주최하기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소수가 모인 기자간담회에 운 좋게 참여했던 나는 Q&A 시간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수지 멘키스 개인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그녀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음미하듯 말했다. “럭셔리는 전적으로 내 느낌, 그리고 감각에 깊게 관련한다. 실크나 다른 직물이 내 몸에 살짝 닿는 그런 미묘한 상황을 총칭하는 거라고 해두자. 말 그대로 매우 비밀스럽고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경험에 달린 게 바로 럭셔리다.” 럭셔리 하우스의 터와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내부의 분위기와 경험은 향유자가 충분히 계획할 수 있다. 이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유명한 브랜드, 화려한 이미지에 유혹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기의 지난 시간과 취향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간극 조절이 바로 럭셔리 하우스를 완성하는 비법이다. 이 법칙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지구 어디에서든 럭셔리 하우스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말이 안 된다고? 일단 해보고 얘기하자. 글 /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피쳐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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