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신드롬에 대하여 | 지큐 코리아 (GQ Korea)

트로트 신드롬에 대하여

2020-08-26T12:31:50+00:00 |music|

트로트 가수마저 아이돌처럼 소비하는 대중과 트로트가 가진 본연의 힘이 만나 폭발한 2020년 기이한 신드롬에 대하여.

TV 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합동 콘서트 제목은 ‘미스터트롯 대국민 감사 콘서트’다. 초현실적인 기시감이라고 할까. ‘국민’을 호출하는 것이야 트로트 특유의 익숙한 화법이지만, 과거의 레전드가 아닌 올해 스타덤에 오른 트로트 가수들이 체조경기장에서 ‘대국민 감사’ 인사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생경한 일이다. 꼭 비슷한 감각으로 KBS는 <트롯 전국체전>, MBC는 <트로트의 민족>이란 오디션을 각각 준비 중이다. 엠넷 <프로듀스 101> 이후 우후죽순 같던 아이돌 오디션마저 떠오르는, 그러나 트로트답게 끈적하고 뜨거운 풍경이다. 작년 <내일은 미스트롯>을 계기로 불어닥친 열풍은 SBS <트롯신이 떴다>, TV 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터>, <뽕숭아학당>, <최애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제목과 포맷으로 미디어를 뒤덮고 있다.

우리 가요 시장 속에서 트로트는 옹벽을 두른 유배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트로트에도 발라드 성향과 댄스 성향의 곡들이 있지만 이들은 ‘발라드’나 ‘댄스’로 분류되지 않는다. ‘트로트’ 또는 ‘성인가요’라는 체에 담긴다. 국내에서 이런 장르는 트로트뿐이다. 마치 가요 시장에서 십 대가 좋아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가요라고, 그 여집합을 트로트라고 각각 부르기로 약속했다는 듯이 말이다. 가요 시장을 미국 팝 시장에 비유할 때 트로트를 컨트리에 대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류 가요계와 트로트는 ‘어번’과 ‘컨트리’만큼이나 상반돼 보인다. 사실 트로트는 유배지라기보다는 자치구 또는 지방 토호에 가깝다. 역시 가요 시장을 미국에 비유한다면 차라리 라틴 팝에 가까워 보인다. 트로트 청자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하지만 트로트는 종종 일방적으로 주류 시장을 누비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 국민을 덮치는 ‘트로트 인베이전’의 역사는 길고도 꾸준하다. 최근 몇 년의 사례만 당장 떠올려봐도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엄지 척’, 이애란의 ‘백세인생’(“못 간다고 전해라”),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등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 젊은 세대가 트로트에 빠지고 있다고 말한다. 트로트가 ‘힙’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트로트는 언제나 젊은 세대에게 소구해왔다. 늘 일정한 방식으로. 어떤 이들에게 트로트는 늘 경박하고 촌스럽고 조금 징그러운, 그리고 바로 그래서 ‘웃긴’ 것이었다. 밈 Meme으로 가득한 풀장 같은 것 말이다. 언제든 질색팔색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그러나 이것이 제시되기만 하면 아무튼 ‘웃긴다’고 하는 효용이 웬만큼 보장된 그런 존재. 트로트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트로트가 가진 힘이다. 모든 이에게 모든 트로트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국경 바깥의 사람들은 아주 높은 비중으로 트로트를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써먹는다. 좌중을 ‘빵’ 터뜨린다. 그러면서 친숙해지고 애정을 쌓아간다.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트로트의 ‘친근함’의 정체다.

2020년의 트로트 신드롬에 대한 질문은 ‘왜’가 아니라 ‘지금은 어떻게’여야 한다. 답은, 이렇듯 트로트가 가진 본연의 힘과 작동 방식이 2020년의 현실을 만났다는 것이 된다. 어떤 이는 트로트 팬들의 열정을 마치 “너희만 즐거우라는 법이 있느냐”는 듯하다고 표현한다. 팬들은 응원봉을 들고, 팬픽을 쓰고, 투표와 조공, 영업을 한다.
십 대와 아이돌을 위한 곳인 양 보이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이들이다. 이제 판이 깔렸으니 본때를 보여주듯 즐기겠다는 듯한 기세다. 우리 사회는 마이너를 자처하며 억울해하기를 즐기고, 가요계의 천대받는 유배자만큼 ‘마이너부심’ 부리기 좋은 존재도 없다.

그러나 트로트 청중이 반드시 시대와 불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 대중은 정치인이나 픽션의 인물까지 아이돌처럼 소비할 만반의 준비가 된 집단이다. 캐릭터로 정의되는 인물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을 투사하고, 이에 대해 압도적이고 배타적인 지지를 보낸다. 기복신앙과 개미 주식투자 사이 어딘가에 걸친 행동이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가수를 뽑는 오디션이지만 가슴 저미는 사연이나 깜짝 놀랄 만한 개인기를 쏟아내는 무대이기도 했다. 노래를 매개로 저마다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 스타가 되는 것. 그것은 <전국 노래자랑>의 본질이자 <프로듀스 101> 이후 정립된 아이돌의 왕도다. 실제로 영탁, 임영웅 등은 <전국 노래자랑>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인물들이다. 트로트 가수를 아이돌처럼 즐기는 사람들은, 아이돌을 즐기는 십 대의 거울상으로서 등장했다. 자연히 다음 질문은 ‘앞으로는 어떻게’가 옳겠다. 다만 업계 밖에서 그 질문은 트로트를 향하는 시선에 관한 것인 편이 좋다. 상당수의 트로트 가수는 “ㅇㅇㅇ 콜라텍 3”, “ㅇㅇㅇ 디스코 메들리” 등의 휘황찬란한 제목을 단 앨범들을 거느린다. 이런 편집 앨범은 남의 노래나 자신의 기존 발표곡을 대량으로 수록하게 마련인데, 정규 앨범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왕왕 보인다. 스튜디오 정규작 Studio Album을 중심으로 자신의 레퍼토리와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하는 팝/록과는 전혀 다른 생태다. 그렇다고 케이팝의 ‘정규 앨범’, ‘리패키지’, ‘스페셜 앨범’ 프레임과도 동떨어져 있다. 영미권에서 유례를 찾자면 차라리 고전 재즈맨들의 음반을 들먹여야 할 지경이다.

아티스트의 생애 주기는 또 다르다. 이들은 지상파에 거의 중계되지 않는 독자적인 언더그라운드를 구축하고 있다. ‘행사 시장’이다. 디지털로만 발매된 <미스터트롯> 음원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실물 음반으로 한정 특판될 정도로, 고속도로라는 독특한 시장 또한 무시 못 할 존재다. 가수들은 ‘스탠더드 넘버’를 포함하는 짧은 무대를 반복하며 전국의 청중을 몸으로 만나는 ‘길 위의 삶’을 살다가, 언젠가 히트곡이 나오면서 미디어에 노출되고 몸값이 오르는 식이다. 이런 건 또 영미권의 장르 음악가들과 닮아 있다. 이런 ‘아래에서 위로’ 산업을 TV 조선이 ‘위에서 아래로’로 바꾸고 있는 듯도 하지만 말이다. 산업 측면에서 트로트는 한국 주류 대중음악이 영미권에서 수입한 것들을 거부하고, 수입하지 못한 것들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만큼이나 흥미로운 장르를 우리는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년 한국대중음악상은 2019년을 휩쓴 송가인에게 어떤 상도 주지 않았다. 언론은 요즘의 트로트가 얄팍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다가는 특유의 뜨거움에 과몰입한 듯 상찬으로 일관한다. 이런 점까지도 아이돌 같다. 음악적으로 궁핍하다는 비판만 하다가 팬들의 공격이 두려워 ‘눈높이’를 맞춰주고 마는 것은, 오랫동안 음악 비평이 아이돌을 다루던 방식이다. 아이돌은 근간이 십 대 문화인 데다가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으로 제시된 장르였다. 그러니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몸부림치며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트로트에도 같은 동력이 작용할지는 모를 일이다.

중장년층의 음악이 젊은 세대에게도 스며든다는 사실에 더는 과몰입하지 말자. 그건 트로트가 언제나 잘해온 일이고 딱히 더 잘할 구석도 없는 일이다. 그 부분에서 열을 내봐야, 젊은 세대가 공감해줘서 신난 아저씨가 되는 게 고작이다. 거기서 공감을 강요하는 ‘개저씨’까지는 고작 한 걸음이다. 더구나 트로트의 힘을 세대의 벽을 넘는 침투력에서만 찾는다면, 트로트는
그저 침투력만 강한 장르가 된다.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면 그 이상의 이야기가 나와주는 게 옳다. 아닌가? 글 /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