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오 "저는 게으름과 매일 싸워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유태오 "저는 게으름과 매일 싸워요"

2021-01-20T17:01:18+00:00 |interview|

유태오가 자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제목은 ‘OVERWHELMING’. 전자음 비트에 맞춰 손가락을 튕긴다. “YOU KEEP ME KNOCKING ON YOUR DOOR. 여기서 YOU는 인생이에요. 인생, 너는 내가 끝없이 네 문을 부수게 만들어.”

블랙 슬리브리스 니트 톱, 코스. 블랙 지퍼 디테일 팬츠, 던힐. 커머번드, 디올 맨. 첼시 부츠, 르메르.

블랙 벨티드 재킷, 던힐. 실버 네크리스, 칸티크.

화이트 실크 셔츠, 김서룡 옴므. 그레이 쇼트 재킷, 그레이 울 팬츠, 모두 펜디.

유태오도 세상에서 심드렁한 일이 있을까? 태오 씨의 지난 인터뷰들을 보면서 이게 가장 궁금했어요. 늘 요리, 건축, 책, 시, 작사, 노래. 다양한 관심거리와 흥미를 말했죠. 제가 공부 집중력이 안 좋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다가 반복적으로 자주 쉬어요. 한 40분, 50분 동안 읽고 10분, 20분 정도는 쉬어요. 그런데 그 쉬는 틈을 재밌는 걸로 채우지 않으면 성과가 안 나와요. 제가 하는 공부에도 그렇고, 일에 대해서도 그렇고, 제 취미에 관한 것에도 그렇고. 그 틈을 뭔가로 해소해야 또 빨리 캐릭터를 다시 연구하고 발전하고 싶어서 여기(시나리오)로 돌아가는데, 틈이 비어 있으면 오히려 성과가 안 나더라고요.

여러 관심사를 집중력을 잇는 징검다리로 쓰는군요.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늘 틈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생각하죠. 요새는 다시 작사, 작곡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녹음 장치에 관한 것들도 궁금해지잖아요. 제일 저렴한 가격에 제일 성능이 괜찮은 건 뭘까. 내가 실력도, 목소리도 크게 좋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또 음악 장르가 궁금해지고.

1년 전 <지큐>와 인터뷰할 때는 소시지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법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소시지를 만들려면 고기를 다지고 그 다짐육을 양념해서 소시지 막에 넣어야 하잖아요. 옛날에는 그걸 다 했거든요. 그런데 고기 손질이 어렵고 힘드니까 손질하기 쉬운 부위를 공부했어요. 통 부위가 좋아요. 예를 들어 허벅지, 목살, 뱃살 이런 부위요. 이 부위들은 만들고 숙성시키고 건조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서 맛있어요.

해답을 찾았네요. 저는 목살이 제일 좋더라고요.

관심 분야가 넓고 많으면 금방 끓어올랐다가 쉽게 식기도 하니까 궁금했어요. 태오 씨가 답을 찾았을지. 저는 그러진 않아요. 한번 시작하면 집요한 그게 있어서 완전히 빠져들어요. 예를 들어 이만한 퍼즐 있죠? 1천 피스짜리 퍼즐. 그것도 하루 반, 이틀 안에 다 풀어요.

다시 봐도 손이 정말 두툼하네요. 아까 촬영할 때 손 보니까 할아버지가 태오 씨 어릴 때 도둑놈 손 같다고 했다던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어하하하. 맞아요, 제가 어렸을 때요. 손이 크죠? 나머지 시간은 쾰른에서 자랐는데 열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 그 딱 5년은 쾨닉스빈터라는 시골에서 지냈어요. 당시에 부모님이 일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아서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께서 돌봐주셨죠. 한창 사춘기 시기를 할아버지와 많이 지냈어요.

사춘기였으면 할아버지한테 못되게 굴고 그랬어요? 절대로. 부모님께도 그렇고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한테 그렇게 편하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얼마 전에 경연 무대를 보는데 꼬마가 탈락했다고 막 울더라고요. 와, 저 아이는 정말 씩씩하구나. 굉장히 쇼킹했어요.

우는 아이가 씩씩해 보였어요? 그렇죠. 자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대단한 거죠. 왜냐면 저는 그러질 못했거든요. 울면 “울지 마, 뚝해” 그랬지 표현해도 괜찮다는 말을 많이 못 듣고 자라서.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엄했군요. 사랑의 표현이 다른 면이 있었죠.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파독 광부셨고. 사랑했지만 그 표현이 거칠고 달랐죠.

화이트 셔츠, 블랙 슬랙스, 모두 김서룡 옴므.

터틀넥 니트 톱, 오라리 at 비이커.

포켓 디테일 롱 코트, 설밤 at 아데쿠베. 패턴 톱, 디올 맨. 벨티드 슬랙스, 첼시 부츠, 모두 르메르.

모헤어 니트, 골든구스.

언제부터 감정을 표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첫 단계는 연기를 처음 경험했을 때. 그때는 선생님을 잘 만나서 가이드를 잘 받았어요. 어딘가 잠재적으로 숨어 있던 것들이 무대에서 폭발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빨간색 파란색을 캔버스에다 던져버린다고 그림 그리는 게 끝인 건 아니잖아요. 제 사생활에서, 일상생활에서, 그런 감수성에 관한 절묘한 표현과 단계, 섬세함을 더 배워야 했던 것 같아요. 그건 확실히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많은 소통 끝에야 알았고. 두 번째 단계는 아직도 생각나요. 2018년 3월부터인데, 왜 기억나냐면 그때부터 심리상담을 받았거든요.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그런데 참 운이라는 게 신기해요. 심리상담을 받은 한 달 사이에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그리고 4월 11일인가 12일에 <레토>가 칸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날이 상담 마지막 날이었어요.

허. 신기하죠? 되게 신기했어요.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뭔가 딱 에너지가 만났죠.

상담소에 가서 무엇을 털어내고 싶었어요? 복합적인데, 결국은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죠. 정체성에 혼란이 많았어요.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독일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언어 장벽에서 오는 편견들, 외모 때문에 생긴 편견들, 거기에서 나와 내 자신감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동아시아부터 서유럽까지 제 안에 섞여 있는 정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죠. 그런 여러 가지를 정리해야 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요? 사실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정체성을 넘어서, 이제는 유태오라는 아이덴티티가 생긴 건 아닐까요? 그래요? 처음 들어보는 관점이에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과정, 많은 과정 중의 하나 같아요.

작품 밖 유태오 씨 모습이 궁금해서 가장 최근 예능 2개를 챙겨 봤어요. <방구석 1열>과 <런닝맨>. 뭔가 힌트를 얻었나요?

유태오 씨가 평소 인터뷰라든지 SNS 라이브 방송에서 활발하게 관심사를 말하고 그런 것과 달리 리얼 버라이어티 속 모습은 주변을 맴돌면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작은 털뭉치 동물 같은 느낌이랄까? 어하하하하. 그럴 수 있죠. 맞아요. 엄청 샤이하죠.

그래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엄마 다리 뒤에 숨는 아이였어요. 정말 샤이했어요. 그게 선천적인 건지 아니면 가정 교육 때문에 생긴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냥 제 기억 속 저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매체에 나온다든지 영화제에 나갔던 게 엄청나게 큰 도전이었죠. 나를 깨고 노력을 통해 페르소나를 보여준다는 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다른 모습이 조금 더 보였을지도 모르죠.

얼핏얼핏 자신의 본모습이 말이죠. 막상 숨기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숨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나를 깨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거네요. 예를 들자면 음, 제가 한 3, 4년 전까지는 사람들한테 진짜 관심이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거든요. 많은 분이 혼자 있으면 심심해하잖아요? 그러면 친구를 찾게 되잖아요. 저는 그런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혼자서 재밌으니까. 연기에 관한 고민은 내가 하는 거고, 현장에 나가면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어떤 단계에서, 제가 캐릭터를 소화하고 그 캐릭터를 통해 소리를 외쳤을 때, 제가 저를 화면에서 보는데 공감이 안 되는 거예요. 연기할 때 설득이 안 되는 거죠. 그러면 사생활에서 내가 뭘 고쳐야 그런 오류가 나지 않을까 고민했을 때, 진심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둔다는 게 뭘까? 우정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걸 어떻게 고쳐야 할까, 그게 가장 큰 노력이었어요.

고친다고 고쳐지던가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그 목소리 톤과 템포만큼 더 민낯을 드러내는 건 없거든요. 이 사람이 왜 저런 톤으로, 저런 속도로, 저런 말을 하지? 내용은 말고요. 일단 소리와 템포를 먼저 듣고 언어를 추상화시키는 거죠. 그러면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도를 찾게 되거든요. 저 사람이 한숨을 쉬네. 힘든가? 그럼 같이 한숨 쉬게 되고. 그렇게 알아가는 거죠.

이런 거네요. 타인과의 감정적인 공감 능력보다 인간을 탐구 대상으로 보고 기술적인 공감 능력을 키운 거죠. 그렇죠. 왜냐면 그게 제가 약한 부분이었으니까요. 제가 저에 대해 인식하는 약점이었으니까요.

흥미롭네요. 어쩌면 배우로서 숨기고 싶어 할 것도 같은데 오류를 탐구하다니 흥미로워요. 음, 저는 게으름과 매일 싸워요. 그러니까, ‘사람들이랑 교감할 필요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어’라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게으름과, ‘그러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공감이라는 관계 안에서 보여줘야 될 연기에 한계점이 보이니까 그걸 깨야 해’ 하는 마음이 매일매일 싸워요.

누가 이겨요? 끝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