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2008년, 모란처럼 선명한 이 여자들

2008.12.09GQ

모란처럼 선명한 이 여자들을 기억한다. 홀아비도 춤추게 만든 원더걸스와 침이 고이듯 불현듯 다가서서는 진득하게 독자를 흡입한 김애란과 장한 대한의 딸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그들이 있어 2008년이 예쁘고 붉었다.

원더걸스 텔미, 쏘핫, 노바디 뒤에는 열풍이 따라 붙는다. 모두 원더걸스가 불렀다.
작년 요맘때, 우리는 어깨를 흔들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는 다섯 여자애들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어깨를 저었다. 노래방에서도 그랬고, 야유회에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휘저었다. 5월의 원더걸스는 예쁜 턱을 받들어 올리며 “자신이 예쁘다고, 매력있다”고 했다. 그걸 또 따라 했다. 내일 모래 마흔인데도 열심히 턱을 치켜 올렸다. 9월의 원더걸스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네가 아니면 싫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2일,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마련된 무대에서 그 노래를 만났다. 회전 목마를 기다리던 아이도, 그 손을 잡은 엄마도, 무대 뒤에서 (인터뷰를 위해) 그녀들을 기다리던 에디터도 따라 불렀다. 원더걸스는 이어 ‘텔미’를 불렀다. 오른손에 커다란 마이크를 들고 라이브로 불렀다. 세 곡을 연거푸 부르느라 숨이 찰 법도 한데, 원더우먼처럼 굳세고 당당하게 불렀다. 그들의 팬이 된 에디터는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하루에 세 개 정도의 스케줄이 잡힌다는 것, 그래도 모두 건강하다는 것, 의상이나 소품은 컨셉트를 위해 함부로 협찬받지 않는다는 것, ‘노바디’때 들고 부르는 복고풍 마이크는 차에 늘 갖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음성을 증폭시키지 못하는 가짜라는 대화 등을 풀어 가며 함께 걱정하고 궁리했다. 여전히 모두 건전하고 겸손하며 정중했다. 포복절도하는 개인기는 없지만, 잘 나가는 리얼리티 예능프로엔 나오지 않지만, 요즈음 잘 먹힌다는 비호감은 머리카락 끝에도 없지만, 그들은 정말 끝내준다. <지큐>를 잘 보고 있다고 해서 더 끝내준다. 특히 ‘피에스’가 재미있다고 했다. ‘피에스’를 특별히 공들여 써야겠다.

김애란 문단의 ‘김애란 신드롬’이 허상이 아님을 그녀는 올해 증명해 보였다.
은행나무 아래 김애란이 있다. 그녀는 늘 어떤 간절함을 떠올리게 한다. 손을 흔들며 애란, 여기, 여기라고 소리 질러도, 어떤 간절함 그대로이다. 신사동의 사람들 사이를 지나, 한달 후면 서른이 될 ‘한국문단의 국민 여동생’이 걸어온다. 김애란은 이제 문단의 막내가 아니다. 더 어리고 심지어 훨씬 예쁘거나 잘생긴 외모의 작가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김애란처럼 대국민적 사랑을 받진 못한다. 대국민적 사랑?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두 번째 단편집 <침이 고인다>가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내세운 광고 카피는 ‘다시 김애란이다’였다. 호들갑이 아니란 건 책을 몇 장만 넘겨도 안다. 단정형의 말투를 그녀가 싫어할지 모르지만, 김애란의 소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 건 각각의 작품들이 보편적인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한복판에 공룡이 출현하거나, 남자와 남자가 사랑을 나누거나,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죽이는 대신 김애란은 일상적인 슬픔들을 작품 속으로 들여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일상이 – 이제 그녀의 대표작이 된 ‘달려라 아비’와 ‘칼자국’은 제목에서도 추측 가능하듯 나란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 낡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그녀가 한국예술종합대학에 다닐 때 소설보다 시에 매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김애란은 없지 않았을까? 그녀 소설의 당대적 변별력은 시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에디터는 믿는다. 금요일 오후 우리는 빵집에 앉아 있다. 팔십 년대 미팅도 아니고, 굳이 빵집이어야만 하느냐는 그녀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빵 생각이 났던 건, 좀체 세련되지 못한 그녀 아니 그녀 소설의 주인공들 때문일 수도 있다.만난 지 십분이 족히 지났으니까 이제 김애란은 실없는 농담도 하고 우스꽝스런 표정도 지을 것이다. 언젠가 그녀에게 “당신이 이렇게 웃긴 여자란 걸 사람들이 알까?”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낮은 목소리로, “혹시 김애란 소설가 아니세요?”, 라고 물어오는 이에게“만져보셔도 돼요”, 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니까. 그러나 진짜 김애란은 아직도 은행나무 아래에서, 어떤 간절함의 형상으로, 고요 그 자체로 있을 것이다. 또한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그녀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저 간절함은 감추고 지우려고 해도 결국 그녀의 것이다. 허구는 진실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으므로. “작가가 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데뷔도 빠르고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 부담되지 않냐는 거였어요. 너무 겸손해 보일까봐 거만도 떨어보고 능청스럽게 대답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격려도 비난도 어느 쪽도 나를 지켜주는 건 아니다. 여기 있어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줄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그녀의 등장은, 소설이 나이로 쓰는 게 아님을 증명한 사례로서도 의미 있다. 혹 어떤 작가는 김애란에 대해 “문장력은 있지만 인생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을 안 읽었을 것이다. 올해 김애란은 이효석 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앞으로 받을 수많은 상들의 시작에 불과하단 확신이 에디터에겐 있다.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팀 그녀들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노력까지 짜내 경기장에서 공을 던졌다.
올림픽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오그라든 손발을 부여잡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여자 핸드볼 경기를 본 일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도, 1996년 아틀랜타도, 2000년 시드니도, 2004년 아테네도 그랬고, 올해 베이징 올림픽 때도 여지없었다.그 경기를 차마볼 수가 없어 자꾸 채널을 돌리기도 했다. 간신히 스코어만 확인하려고 실눈을 뜨면 오영란이 하늘다람쥐처럼 사지를 벌린 채 골문 앞에서 뛰고 있었고, 폭격기 같은 문필희는 두 다리를 허리춤까지 올린 채 공을 던지고 있었다. 오성옥과 허순영은 유난히도 자주 넘어졌고, 박정희와 안정화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준결승전, 노르웨이의 마지막 골이 득점으로 인정되던 순간 넋나간 듯 울던 김차연을 보고서는…. 예선전 때부터 피멍이 들도록 편파판정을 겪으면서도, 평균 나이가 서른 살을 훌쩍 넘어서도, 비인기 종목과 ‘한데볼’이라는 설움을 참으면서도, 그녀들은 해냈다.

11월 7일,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 대회를 준비하는 대표팀을 찾아 태릉선수촌으로 갔다. ‘아줌마’ 선수들은 없었고(오영란과 오성옥은 대표팀에서 빠졌고 허순영, 김차연, 홍정호, 최임정은 소속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국했다), 절박함은 다소 걷혔고, 선수들은 많이 웃었다. 그래도 온 몸을 던지며 훈련하는 것은 여전했다. “지난 번 미디어데이 때는 올림픽을 앞두고 긴장해서 사진을 찍어도 ‘썩소’만 나갔을 거예요. 그렇게 엄청난 훈련을 하고 출전했는데, 금메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씩씩한 문필희가 조곤조곤 말한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장 막내였던 김온아는 “언니들이 빠지고 없으니까, 아,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부담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곤 둘 다 쑥스러워 세우고 앉은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웃는다. 그 얼굴들이 너무 예뻤다. 그들은 대표팀 코치가 “웃지 말고 훈련해”라고 소리치면“웃기니까 웃잖아요”라고 받아 치는 어린 소녀들이었고, 올해의 남자를 뽑아보라는 말에 송승헌, 동방신기, 비, 김C, 빅뱅을 줄줄이 꼽는 여자애들이었다. 비록 올림픽 자료 사진엔 성한 표정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예쁜 대한의 딸들이었다.

오성옥 최임정 박정희 김온아 오영란 문필희 홍정호 김차연 안정화 김남선 송해림 배민희 허순영 이민희
    에디터
    장진택, 이우성, 손기은
    포토그래퍼
    오중석, 목나정, 심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