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의 연극 같은 수다다. 목마를 땐 주로 보리차를 마시지만 가끔 콜라가 ‘땡길’땐 굳이 참을 필요도 없는, 스물여덟 살의 섹스 철학이다.
한번도 안 해본 여자, 남자 친구랑만 하는 여자, 내킬 때마다 할 수 있는 여자. 스물여덟 살 여자는 세 부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십대 초중반에 경험이 없는 건 그럴 수 있고 삼십대가 능숙한 것도 상식적이지만, 스물여덟은 경험이 없어도, 능숙해도 눈치 보이는 민감한 나이니까. 그래서 동갑내기 여자 세 명을 불렀다.“우리 섹스 얘기 하자”고 했다. 솔직하지만 난잡하지 않은, 요부처럼 노골적이지도, 마초처럼 일방적이지도 않은.
양지혜(증권사 근무, 1년째 연애 중, 이하‘양’) 물론, 아직 경험 없는 친구들 많죠. 섹스가 싫은 건 아니에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거나, 두려움이 큰 거지. 하고 싶은데, 기준이 엄격한 거죠.
에디터 남자들은 첫 경험에 별 집착 없잖아요.
박수진(어학원 강사, 싱글, 이하‘박’) 여자의 처음은 사랑이야. 나이완 관계없어요. 서른이라도 첫사랑을 못 만났다면 안 해봤을 수 있죠. 첫경험이 원 나잇 스탠드인 여자는 없을걸요?
고미란(통번역사, 2년 반째 연애 중, 이하‘고’) 결혼도 기준이죠.‘ 28년 참았는데, 결혼할 때까지 조금만 더 참자.’그래서 남자랑 모텔에 들어가도 안 하고 나오는 애들 많아요. 진도가 안 나가는 거죠. 기질이그래요. 이 남자를 너무 좋아하지만, 나를 주고 싶은 사람은 아직 못 만난 거지.
에디터 ‘준다’는 표현은 남자 기준 아닌가요?
고 그렇죠. 여자가 같이 자면 몸을‘줬다’고들 하는데, 그럼 남자 소유가 된 건가? 외국 소설 번역본을 봐도 여자랑 자고 나면 남자만 말투가 반말로 바뀌어요. 여자는 계속 존댓말 하고. 웃겨.
양 미친 듯이 취해도, 싫은 사람이랑은 못 자요. 섹스 하고 싶어서 모텔 가도,‘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는 거죠. ‘준다’는 건 남자들의 착각이지. 근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섹스를 알아가면서 개방적이 되죠. 그런 건 있어요.
에디터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만 자는 여자는요? 남자친구하고만 자는 여자. 이것도 남자들만의 생각인가?
양 나이가 들수록 달라진다니까요? 이미 경험이 있으니까. 몸이 끌려서 자는 사람이랑 사랑하는 사람과 자는 건 느낌이 달라요.고 매일 보리차만 마시다가 콜라 마시는 느낌? 평소엔 살찔까봐 보리차만 마시지만, 그래도 콜라 생각 날 때 있잖아요.‘아, 어제 밤에 콜라왜 마셨지’후회할 때도 있죠. 마셨는데 별로야. 탄산이 싫어. 하지만 또 콜라를 찾아요.
에디터 그건 유부남의 불륜 논리 아닌가.‘밥만 먹곤 살 수 없다’는.
양 섹스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크고, 이미 경험도 있고, 결혼도 안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만 하겠다는 여자는 없을걸요? 결혼할 사람 이 있어도 마찬가지죠.
박 결혼 상대가 있다고 해서 다른 남자 생각이 없다는 여자도 좀 이상한 사람이야.
양 자제 하는 거지, 완전히 닫히는 건 아니죠. 다른 남자랑 자고 싶어도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하는 거지.
고 법적인‘모럴’을 느끼는 거죠. 그런 여자들도 일처다부제 나라에가면 남편 여럿 거느리고 살 수 있는 거야. 나 혼자 영국으로 출장을 갔어, 그 와중에 아무하고도 안 잔다? 안 그러겠다고는 얘기 못 해요.그건 사회의 모럴이 아니라, 내 모럴이죠.
에디터 스물여덟에 사랑하는 사람과만 하는 여자는 없을 거다?
양 그게 일반적이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잖아요. 어린 여자애가 원 나잇 했다가 임신하면 “남자가 개새끼다”그러지만, 스물여덟살 먹고 원 나잇 했다 임신하면 “너 미쳤어?”그러죠. 스물일곱, 여덟은 여자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나이죠. 몸이든 마음이든.
박 그건 순진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죠.
에디터 어떤 남자라면 섹스 하겠어요? 외모? 몸? 지적 호기심?
고 그런 건 없어요. 원 나잇으로 끝날 거라면 상관없어.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 난 지적으로 끌릴 때. 자고 싶으면 자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박 소개팅을 해도 이 남자가 끌리냐 아니냐는 첫인상에 결정 나잖아요. 사랑하진 않아도 이 남자랑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있죠. 성적 매력이 있는 사람이 있지.
에디터 남자랑 다를 바 없군요.
고 나이 들수록 차이가 없어지죠. 섹스의 위험부담, 즉 ‘임신’에 대한 무거움을 제외하면.
에디터 섹스 하고 나면 아무 생각 없던 남자도 좀 달라 보이지 않아요?
박 남자들보단 여자들이 섹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에디터 공식 질문이에요. 스물여덟 살 여자에게 섹스란?
박 그래도 그 사람과 특별해지는 것?
양 편해지는 거.
고 그거 딱이다. 편함과 불편함의 차이. 불편하던 사람도 자고 나면 편해지는 느낌. 근데 섹스가 또 다른 불편함일 때도 있어요.
양 언제?
고 전에 회사 사람과 한 번 잔 적이 있는데, 괜히 껄끄러웠어요. 그냥 한 번 잤을 뿐인데, 나는 괜찮아도 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니까 가늠하기가 힘들었지. 계속 나랑 사귀는 사람이면 편하죠.
박 사귀는 사람끼리는 무조건 편해져요. 하지만 소개팅 나가서 어쩌다 자게 되면 불안하죠. 얘가 날 좋아해서 잔 걸까? 앞으론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관계에 확신이 없으니까.
에디터 처음엔 어떤 남자랑 잤어요?
박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못 했던 것 같아. 처음이 원 나잇이었다면 평생 싫었을 거야.
고 다들 첫 경험이 그렇게 애틋하고 그래?
에디터 그러나 이젠 가끔 콜라가 마시고 싶고,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고 지금은 콜라에 중독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콜라는 절대 보리차가 될 수 없어, 처음부터 우린 서로에게 콜라였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양 그래서 섹스 파트너끼리는 약속을 안 해요. 우리 다음에 이렇게 하자, 그런 것도 없죠.
고 콜라끼리는 한 달 만에 연락해도 여전히 콜라죠. 둘 사이에 섹스만 있으니까.
양 서로 애인이 없다고 해서 보리차가 되진 않아요.
박 내가 콜라 같은 사람은 아니어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서로 콜라가되기도 해.
고 콜라끼리 침대에 누워서 서로의 보리차에 대해 상담할 때도 있어. 콜라가 해주는 상담이니까, 오히려 객관적일 수 있어요. 콜라만이 줄 수 있는 객관성이 있죠. 그게 나이트일 수도, 클럽일 수도 있고.
에디터 대체 콜라와 보리차, 파트너와 남자친구의 기준이 뭐예요?
고 나는 이 남자를 진지하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나를 섹스 파트너로 생각하면 그 관계는 끝나요. 여자는 콜라도 김이 빠지면 보리차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박 한 가지 매력을 느끼면 잘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다이어트 콜라인지, 제로 칼로리인지, 레귤러인지는 상관없죠. 우린 그냥 탄산으로 만나는 사이니까, 열량은 상관없지.
에디터 그건 진정, 바람둥이 남자의 공식이군요.
고 연인이 서로의 콜라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건 잘 하고 있는 거예요. 알면 끝이지. 가끔 서로가 마시는 콜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모른척 할 수 있는 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거죠.
박 바람도, 모르면 끝이잖아요. 대신 죽을 때까지 들키면 안 되죠.
양 알고도 이해해달라는 건 말이 안 되죠. 남자나 여자나.
에디터 이건 시대의 산물일까요, 여자의 본성일까요?
양 여자의 본성이 시대를 만난 거죠.
(이때 2월 결혼을 앞둔 스물여덟 여자가 한 명 더 왔다. 여자 넷은 모두 친구다.)
양 우리 섹스 얘기 하고 있었어. 큭큭. 넌 어때? 결혼하면 이제 끝이잖아, 아쉽지 않아?
이수진(대학원 재학 중, 이하‘이’) 아쉽지…. 뭔가 이대로 못 박힌다는것. 이제 나는 우리집 정수기물만 마셔야 한다는 게. 이건 보리차도 아니잖아. 할부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거지.
박 콜라 생각 날 것 같지?
이 당연하지…. 콜라 생각나지. 다른 남자 여전히 궁금하지, 딴 애들 새 콜라 시음 소식 듣지, 요즘 스타일은 어떤지, 남편한테 만족해도 생각은 나겠지. 내 신랑은 어디 가서 또 몰래 콜라 마시고 있지 않을까.그런 의심도 들겠고….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해. 물론 우린 둘 다 정수기물을 좋아하겠지. 서약했고, 렌털비 냈고, 잔금 남았고.
고 우리에게 섹스는‘해보고 싶은 것’같아. 저 사람도 궁금하고, 이남자의 또 다른 매력도 궁금하고.
박 앞으로의 남자들에 대한 기대감도 있어요.
양 많이 산 것도, 적게 산 것도 아니고. 어른도, 애도 아니고. 남자는 겪을 만큼 겪어봤다고 생각하는 그런 나이 아닌가?
박 질 좋은 보리차를 찾고 있는 거죠. 나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