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동국은 왜 욕을 먹는가

2009.02.03GQ

누구처럼 두서없이 말을 한다든가,현란한 사생활로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늘 비난을 받는다.한때 우리가 한국 축구의 희망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이동국은….

Illustration/ Lee Jae June

Illustration/ Lee Jae June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대표팀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동네 아이 데리고 놀 듯 약 올릴 때 우리는 차범근에게 걸었던 숱한기대를 거두어들였다. 모두가 기억하듯 차범근 감독은 대회중에 경질되었다. 희망이 사라졌다. 그날 한국 축구는 죽었다. 그리고 살아났다. 이동국은 열 여덟 살이었다. 머나먼저편의 골대를 보며 열 명의 선수들이 어쩌지 어쩌지 발 구를 때 후반 종반에 교체 투입된 이동국은 선배들을 비롯해감독, 코치, 경기를 보고 있던 국민들을 모두 어깨에 짊어지고 네덜란드 골문을 향해 달려가 중거리 슛을 날렸다. 벼랑으로 떨어진 태극기는 이미 시야에서 멀어졌지만 우리는 그의 부축을 받으며 다음 월드컵을 기약했다. 이동국은 한국축구의 미래였다.

거기까지. 이동국의 성장은 멈추었다. 이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동국은 성장했을 수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이동국은 운이 없는 경우다. 기대가 너무 높았다. 그가 정말 게을렀을까? 한때 그는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 성인국가대표를 동시에 뛰며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나타났다. 혹사였다. 그는 부상과 살았다. 독일 프로 리그에 진출했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영국에서 뛰었다가, 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군대에도 다녀왔다. 게으를 겨를은 없었다.이동국의 성장이 왜 멈춘 것처럼 보이는가에 대한 개연성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전술의 변화를 꼽는다. 요즘 축구는 확실히 정신이 없다. 골키퍼를 제외하곤 모두 ‘멀티플레이어’야 한다. 몇 년 전 같았으면 우리는 박지성을 무능한 선수로 평가했을 것이다. 공격 진영에서 뛰는 선수라면 골을 넣거나, 골에 기여해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은 동료들의 움직임이 더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골이 적은 게 아쉽지만, 그로선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고, 평가 역시 나쁘지 않다. 이동국과 박지성은 포지션이 다르다. 하지만 요구되는 바는 비슷하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물론 골을 넣어야겠지만, 공간을 넓게 쓰며 공격 진영 전체 혹은 미드필드 진영과 공격 진영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영리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동국은 확실히 한 방이 있는 선수다. 골키퍼 정성룡은 가장 파괴력 있는 슛을 쏘는 선수로 김진규와 이동국을 지목한 적이 있다. 막기 어려운 공격수가 누구냐고, K리그 수비수들에게 물으면 거론되는 이름 중에 이동국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동국은 벽이다. 밀리지가 않는다. 신은 그에게 탄탄한 허벅지를 주셨다. 하지만 넓은 시야와 빠른 몸놀림은 안 주셨다. 이동국이 최근의 이근호만큼 많이 움직이거나, 박주영처럼 센스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축구의 템포는 갈수록 빨라지고, 이동국은 저 아래서 느리게 달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동국이 비난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안 선다.

이동국은 어릴 때부터 스타 플레이어였다. 그는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조련 받으며 자랐다. 그땐 그게 대세였다. 만약, 그가 자신의 스타일만을 끝까지 고집했다면 어느 정도 비난을 받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드러내놓고 말하긴 어렵지만, 우린 그런 선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동국의 경우는 아니었다. 상무 축구팀을 거치며 이동국은 넓고 빠르게 움직이며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애썼다. 달라질 수 있는 만큼은 달라졌다. 미들스보로에서도 – 비록 존재감이 없었고, 출장 시간도 적었지만 – 움직임은 확실히 많았다. 공격 진영에서 볼을 잡았을 때, 무조건 앞만 보고 질주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성장이었다. 데뷔전에서 쏜 슛이 골 포스트를 맞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의 영국 생활은 좀 더 원활했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이동국이 국가대표가 돼 주길 바라진 않는것 같다. 국가대표팀의 전형은 4-3-3에서 4-4-2로 바뀌었다.적어도 최근까진 그렇다. 두 명의 공격수 자리엔 이근호, 정성훈, 박주영이 상황에 따라 투입됐다. 모처럼 활기를 띠고있는 공격 진영에 다시 이동국이(혹은 조재진이) 들어가 속도를 늦추거나, 흐름을 확 끊기를 바라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이동국이 짧은 영국 생활을 마치고 초라하게 귀국할 때 많은 축구팬들은 새 기대를 품었다. 압축하면, K리그의 부흥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까지 이동국에게 그 정도 힘은 있다고 본 것이다. 비난으로써, 이동국은 그 힘을 증명하긴 했다. 상당히 많은 축구팬들이 이동국이 포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동국은 포항이 키운 선수니까.게다가 미들스보로 진출 당시 포항의 이적 동의가 없었다면, 이동국은 갈 수 없었으니까. 최근 염기훈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선수의 미래를 위해 – 그것이 곧 한국 축구의 미래이므로 – 구단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단 인식이 많이 깨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반대 여론이 훨씬 많았다. 포항은 이동국의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이동국을 영국으로 보내준 건 팬이었다. 여기엔 이면 계약이 존재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포항과 일차적으로 협상을 한다는, 뻔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성남으로 갔다. 이동국이 포항과 협상을 하긴 했는지, 어떤 의견 차를 보였고, 이를 조율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동국이 성남에 간 건 돈 때문이었다. 그가 정말로 K리그에서 공격수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면, 포항으로 가거나,공격수가 필요한 다른 팀에 갔어야 한다. 성남은 공격수가 넘쳐나는 팀이었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이적에 관한 한 선수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며,“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이라고 할수 있는 포항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커리어를 장식했으면 어땠을까”아쉬움이 든다고 말한다. 연고지주의가 약하다는것은 K리그의 저변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거론되는 문제다. 이동국이 포항으로 돌아갔다면,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과 다른 선수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힘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남에 간 것은 존중받아야한다. 선택은 프로 스포츠 선수가 누릴 마땅한 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리엔 의무가 따른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K리그 발전에 일조해야 한다는 것은 의무다. 포항은 그 의무에 따라 이동국을 영국으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권리를 누리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어차피 이면 계약은 계약이 아니다. 이 논리라면 이적에 관한 한, 그에게 가해지는 비난 역시 정당한 것이다.

성남에서 방출된 이동국은 전남과 계약했다. 이 계약을두고 일부 팬들은 전남이 아주 너그러운 구단이라고 말한다. 비아냥이다. 물론 이 비아냥은 동시에 이동국을 향하고있다. 그리고 이동국과 아주 비슷한 유형의 또 한 명의 공격수 조재진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남에서의 일 년, 조재진은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자리에 성남에서의 반 년, 역시 그다지 보여준 게 없는 이동국이 들어오면서, 여전히 전남은 이동국 같은 조재진과 조재진 같은 이동국을 보유하게 됐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전남은 리그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전남은 좋은팀이고, 좋은 공격수를 필요로 하는 팀이다. 이동국 입장에선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에 들어간 걸 수도 있다.

그가 부활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부활에 박수 쳐 줄 팬이 얼마나 될까?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김병지, 이을룡, 정경호같은 선수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들은 다음 시즌부터 고향팀에서 뛴다. 이들 때문에 새 시즌을 기다리는 팬도 많다. 전남에서 이동국은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도 포항 팬들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골을 못 넣으면 포항 팬은 물론이고 전남팬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무얼까? 선수로서 그의 자부심이란? ‘ 우리는’ 지나친 기대와 일방적인 시선으로 오래 그를 괴롭혔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갈 무렵 그는 분명 혹사당했다.‘ 우리는’ 무릎에 칭칭 붕대를 감고 뛰는 그를 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 모습은 옳았을까? 비난은 공허하게, 어디에서 누구에게로 가는 것일까?

    에디터
    이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