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축구는 남자의 미래다 2

2009.09.24GQ

그는 축구보다는 태권도 도장의 관장 같았다. 할 때 하고 놀 때 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김태영

촬영 때 보니, 평소 알고 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어떤 이미지였나?

무섭고 무뚝뚝하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좀처럼 웃지 않는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상대 선수에게 거친 플레이를 일삼아 ‘아파치’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하. 그런 웹 사이트가 있나? 그라운드 안과 밖을 구분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운동장에서 하듯 행동하면 주위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아까 옷 입었을 때 능청스럽게 “내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하는 농담, 아니 진심이겠지만, 그런 말을 해서 경기장에서의 김태영 맞나 싶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얘기한다. 색다른 이미지라고. 난 원래 편안한 사람이다.

선수들 가르칠 때도 그런가? 코칭 스태프가 어떤걸 요구하고 어떤걸 바라는지 빨리 눈치 채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필요한 부분이 부족하면 엄하게 할 때도 있다. 그라운드 안에서만 집중을 요구하는 편이다. 생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당신은 항상‘현장’에 있는 선수 같았다. 선수생활 내내 한 팀에서만 뛰기도 했고. 그래서 은퇴를 하는 것도, 그리고 바로 지도자 준비를 하는 것도 처음엔 잘 와 닿지 않았다. 은퇴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축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거다.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나 같은 스타일의 선수를 찾아서 키워보고 싶다. 아니, 키운다는 건 좀 그렇고 발굴해보고 싶다.

당신 같은 스타일의 수비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 흐름이 그렇다. 선수들은 대부분 미드필더나 공격수가 되길 원한다. 수비수는 주목을 못 받으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런만큼 수비수 숫자가 적고 전문적으로 수비 보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국내만 해도 홍명보나 당신 같은 수비수가 있었고, 해외에서 존 테리나 푸욜 같은 선수들은 어지간한 공격수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디어에서 수비수를 부각시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두루 비추면 좋겠다.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전경쟁이 더 치열해지니까 선수 선발도 더 잘할 수 있다. 수비자원이 부족하다는 게 제일 문제다.

왜 수비수라는 위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정말 카메라를 피해 다니는 위치다. 팬들은 화면에 비치는 것 위주로 보지 않나? 90분 동안 한두 번 나올 때도 있다. 나도 뛰면서 아쉬울 때가 있었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튀지 않고,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수비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왜 수비수가 됐나? 초등학교 때는 윙 포워드였다. 그러다 중학교 때 미드필더를 했고 고등학교 때 윙백을 맡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교 가서 중앙 수비와 윙백을 겸했고, 3~4학년 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도 하고 센터백도 했다. 사실 내가 중앙 수비로 보면 신장이 열악하다.

그런 얘기하는걸 많이 들었다. 신체적인 약점을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그래서 한 가지 장점을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없으면 영원히 평범한 선수로 남을 것 같아서 맨투맨이라도 잘해야지 마음먹었다.

제일 큰 이미지가 월드컵 때 마스크를 쓰고 나왔던 모습이다. 그걸 뺀 평소 경기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뭐랄까…. 어땠나?

얼굴에 항상 욕이 써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정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은 내가 마크하는 선수에게 골을 안 먹어야겠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운동장에 들어가니까 아마 얼굴에 그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은 안 드나? 요즘 애들은 약해빠졌다거나. 아무래도 보인다.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옆에서 조언을 해주면 성장하며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수들에겐 어떤 부분을 강조하나? 아직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정신력은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수비 라인의 조화, 서로 대화도 하고 커버링하는 움직임을 요구한다. 좀 더 성인 쪽으로 갔을 때 그런 얘기를 할 것 같다. 너희가 보여줄 수 있는 것, 순간순간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해라.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 그걸 최대한 보여줘라. 우리 때는 선수생활하면서 실수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다. 많이 혼났고 많이 맞았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최대한 개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과 당신의 이름 때문에 수비 쪽에 많은 기대를 한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수비자원은 항상 부족한데 그 간극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현실은 선수도 충분하지 않고, 현재 있는 선수들만으로 만들어가야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차피 수비는 경험이 쌓여야 된다. 그래서 축구 팬들도 지금 당장, 우리가 맡은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선수들이 금방 달라지겠지 생각해선 곤란하다. 현재의 선수들이 더 성장해서 어떻게 변할지 그 모습을 봐달라는 거다. 그들이 올림픽이나 대표 팀 선수가 됐을 때 우리가 가르쳤던 것 중 어느 한 부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태영의 아이들, 그런 식으로? 그건… 선수들이 성장한 후 A 대표 팀이 되어 인터뷰했을 때 개인적으로 나올 만한 말이지.

축구도 그렇고 세대가 있기 마련 아닌가. 홍명보, 김태영, 서정원, 신의손. 이렇게 4명이 청소년 대표를 맡고 있다는 건 인상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코칭 스태프만으로 관심을 모은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경쟁하면서 뭔가를 만들어가려는 게 우리 눈에도 보인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기분이 좋다. 지도자가 억지로 선수를 끌고 가서는 발전이 없다. 우리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따라오면서 스스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있다.

수비의 경향이 대인방어에서 지역방어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당신은 대인방어로 유명한데. 우리 시대 때는 스리백이었기 때문에 중앙 수비수가 개인 마크를 했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포백을 쓰기 때문에 서로 간의 의사소통, 커버링, 순간 판단력, 집중력이 다 가미되어야 한다. 그런걸 가르쳐주는 거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전술적인 부분을 반복 훈련한다. 점차적으로 만들어가는 상황이라 바깥에서 보면 답답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한국 축구는 언제나 협력수비로 재미를 봤다. 그게 최선일까? 협력수비라는 게 자기 위치에서 크게 많이 뛰는 건 아니다. 테트리스를 생각하면 된다. 한쪽이 비면 블록을 맞추고 또 다음 블록이 내려오는 방식. 수비에서는 외국 선수와 일대일은 육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불리하다. 그래서 언제나 이대 일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최선이다.

갈수록 전술적으로는 발전하는데 축구란 스포츠가 갖고 있던 거친 면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히딩크 감독도 한국에 와서 선수들이 너무 순하다고 이야기했었다. 한국 축구선수들은 너무 순하다. 운동장에서는 좀 다른 모습으로 변해야 되는데. 어떻게 보면 한 가지 숙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지도자들이 그 숙제를 갖고 방법을 찾아봐야지.

얌전한 선수는 역시 안 된다? 당연하다. 예를 들어 격투기를 생각해보라. 순하면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저분하게 하는 게 아니다. 룰이 있으니까. 경기에서 해야만 하는 태클, 공중 경합, 몸싸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신이 키우고 싶다는 선수란 그런 스타일의 선수를 말하는 건가? 내 스타일과 홍명보 감독의 스타일을 섞으면 제일 좋을 것 같다. 기술과 판단, 전술이해력, 전투적인 과감함.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장점은 다 갖고 있다. 그런데 한두 가지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장점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김진규 선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맞다. 그런데 요즘 계속 대표 팀 부름을 못 받다 보니 힘들어하는 것 같다. 단점이 있다면 변화를 줘야 대표 팀에 복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지도자로서의 제일 큰 목표는 월드컵 대표 팀 감독인가? 이제 시작한 거라 큰 목표를 두지 않고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대답 말고…. 그건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다음에.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나나, 박태일, 문성원,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보성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