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축구는 남자의 미래다 3

2009.09.24GQ

서정원은 젊은 시절 얘기를 할 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청소년 대표 팀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자 눈가에 특유의 웃음 주름이 잡혔다.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서정원

헤어 스타일링이 끝나고 거울을 보며 “아저씨 같다”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마음은 20대구나 하는…. 으하하. 그게 아니라.

당신이 아저씨란 뜻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안다. 마음은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다 똑같구나 생각했다. 당연하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 아니다. 똑같다. 얼굴이 작아서 그렇다. 사진 찍으면 늘 얼굴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최근 인터뷰를 보면 의욕이 넘치는 것 같다. 전수하고 싶고 물려주고 싶고.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것과 부족했던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게 흥미롭다. 운동을 늦게까지 한 이유도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는데,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됐다.

은퇴 전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굉장히 좋은 활동을 한 걸로 알지만, 중계를 한 적은 없었다. 뉴스 말고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나? 그렇지는 않다. 은퇴 시기에 나간 거니까. 1년 생각했다. 짧게는 6개월. 그 정도만 하고 지도자 수업할 곳을 찾자는 생각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몸이 좋아서 3년 반에서 4년이 됐다. 오래 하면서 큰 걸 얻었다. 좋은 경기도 너무 많았고. 유에파 컵이나 챔피언스 리그나 유로 2008 같은 경기들을 시간 날 때마다 봤다.

자비로? 그렇다. 지도자로 출발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당신이 한창일 때 관심을 보였던 클럽 명단이 화려하지 않았나.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레버쿠젠, 발렌시아…. 벤피카는 등번호까지 정해졌던 클럽이었고. 별문제가 없었다면 거기서 뛰는 선수가 됐을 텐데, 은퇴하기 직전에 그런 경기들을 보는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마음이 조금…. 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제일 안타까웠던 건 일찍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잡지 못했다는 거다. 여러 군데서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축구 인생 전체를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아쉽다.

젊을 때도 아쉽기만 했나? 그때는 상당히 화가 많이 났었다. 어린 나이였으니까. 큰 걸 잃었지만 그 속에서도 얻는 게 있었다. 참는 것, 인내하는 것.

오스트리아는 어땠나? 유럽도 나라마다 축구 스타일이 다르지 않나. 아무래도 독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유명한 코칭스태프들도, 선수들도 빅 리그로 이적하기 전에 많이 거쳐간다. 최근에 유소년 제도도 많이 바뀌어서, 세계 청소년 4강에도 들었다. 그걸 보면 확실히 시스템이 바뀌면 성과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청소년 대표 팀에서 공격 쪽 코치를 맡고 있다. 한국에선 좀 드문 일 아닌가? 좀 창피한 거다. 축구 후진국이랄까? 코칭스태프가 선수만큼 있어야 된다. 감독, 코치, 골키퍼 코치 정도로 30명을 다 읽을 순 없다. 유럽은 다 정착이 됐다. 일본도. 더 많아야 된다. 코칭스태프 하나 더 쓰는 게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니까.

94, 98세대라고 할까? 당시 월드컵에 나갔던 세대들이다. 한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많은 국제 경험을 하고 선진국에서 보고 느꼈으니 실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세대인 것 같다. 성공한다면 한국 축구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고쳐야 할 건 뭔가? 유럽 축구문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 맞는 시스템과 훈련만 빼서 조화를 이뤄야 된다.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클럽하우스 시스템이 아니라 학원 스포츠라는 거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다른 코칭스태프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배워야 된다.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성적 위주의 훈련 프로그램, 그런 게 마음이 아프다. 나이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갖춰야 차근차근 한 단계 위의 뭔가를 배우는데. 최근엔 그래도 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공격수였다. 수비 출신 홍명보 감독과 보는 시각이 달라서 충돌하는 경우는 없나? 대부분 비슷하다. 있더라도 조율해야 하는 거다.

선수 시절의 행보를 보면 꽤 고집이 셀 것 같다. 고집은 필요하다. 얘기를 해서 제일 좋은쪽으로 근접하는 게 좋으니까. 어느 한 사람의 독단적인 의견을 따라가면 발전이 없다. 상당히 민주적으로 변하고 있고,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불과 2년 전까지도 선수생활을 했다. 그것도 잘했다. 아직까진 선수들이 하는 걸 보면서 내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이 있을 거다. 그러나 그걸 선수들에게 전수를 해야지. 맞게끔.

최근 한국 축구에서는 제대로 된 윙 포워드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당신 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없다. 맞다. 경기를 보면 느껴질 거다. 밋밋하다. 그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세계 축구 흐름 때문이다. 미드필드 싸움이 치열해지다 보니 중앙에 스무 명이 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밀집된 상황이 많아서 개인이 돌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드물다. 공격수까지도 공격만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기 때문에 옛날 같은 플레이가 나오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요즘 축구는 빠른 템포의 카운터 어택이 필수다. 요즘 선수들이 일대일 돌파를 잘 안 한다. 그래서 그런 걸 좀 많이 강요한다. 좋은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돌파하고 사이드에서 흔들어야 된다. 그래야 수비 조직이 흐트러진다.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한다. 밋밋한 플레이는 하지 마라. 공을 괜히 뒤로 돌리지 말아라. 좋은 상황이 있다면 버리지 말고 과감하게 수비를 유린하라고.

보통 조직력을 제일 강조하지 않나? 조직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된다. 공격이라면 과감함이 필요하다. 창과 방패가 있다면 공격은 찔러야 되는데 못 찌르고 들고만 있으면 뭐하나. 공격수의 장점이 있지 않나.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들에게 조직력만 강조하고, 너무 드리블 많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 그 선수 죽는 거다. 그 팀도 죽는 거고.

개인기를 하다 공을 뺏기면 유난히 많은 비난을 받는 분위기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멘탈’이 기량만큼 중요한 시대다. 그런 종류의 비난부터 골을 못 넣는 데 대한 압박감, 개인적인 가족사까지도 코칭스태프가 조절해줘야 한다. 해외의 경우 심리학 박사가 팀에 상주할 정도다.

당신은 어땠나? 제치려다 자주 막히면 분명 비난은 있다. 그래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진 않았다. 그 선수가 제일 잘하는 걸 못하게 하면 어떡하나. 지도자라면 장점을 최대한 살려줘야 된다.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데 그 부분만 잘 인식시키면 선수도 알아듣는다. 그게 바로 지도다. 요즘 애들은 똑똑해서 금방 알아듣는다.

사실 한국에 그 정도의 테크니션이 있느냐는 생각도 드는데. 그러니까 더 해야 된다. 안 하면언제 하려고? 앞으로도 계속 공격수다운 플레이 스타일을 강조할 것이다. 난 솔직히 그랬다. 아무나 일대일로 붙어도 자신이 있었다. 얘 하나쯤이야. 공격수가 자기 쪽의 수비를 제치지 못하고 볼을 뒤로 뺀다? 그럼 난 진 거다. 한 번 제치고 나면‘얘는 나한테 안 돼’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게 자신감이다. 공격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 니가 그렇게 유명해? 해보자.’이런 식으로.

국가대표 팀 선수 시절에 꽤 답답했을 것 같다. 아니다. 조직력은 기본이니까. 어느 나라 팀이건 조직력이 제일 무서운 무기다. 그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고 상황마다 벌어지는 순간을 잘 판단해야 하는 거다.

홍명보 감독이 당신을 공격 쪽 코치로 추천한 큰 이유로 보면 될까? 오래전부터 같이 생활을 했고, 대표 경력도 함께하다 보니 홍명보 감독과 김태영 코치와 생각하는 게 어느 정도 일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우리 선수들에게 맞는 훈련, 요즘 시대에 맞는 훈련을 하려고 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성공적인 출발 아닌가? 바로 청소년 대표 팀 코치로 출발하는 건. 그런 면도 있다. 20세 청소년이면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우리도 섣불리 못한다. 젊은 코칭 스태프들이 뭔가 바꿔보려는 걸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연구하게 된다. 미팅도 자주하고. 이름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하려는 것도 있고.

홍명보 감독과 형 동생 하는 관계일 줄 알았는데 그래 보이진 않는다. 그런 관계였다. 예전에는. 지금은 일할 때니까. 십 몇 년 동안 같이 밥 먹었는데 왜 안 그렇겠나.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나나, 박태일, 문성원,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보성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