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십 대인 쉰한 살 디자이너 장광효와 몸만은 스물두 살인 남자애 조권이 토요일에 만나서 나눈 얘기.
(장광효) TV에서 조권 씨 봤을 때, 나도 저 나이 땐 저랬을까 생각했어요. 조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늦잠도 자고 들풀도 보면 좋을 텐데. 지금까지 내 디자인의 어떤 생기나 재치는 하늘, 들판, 바다 같은 자연에서 온 것 같아요. 조권은 어떻게 살아요? 책도 많이 봐요? (조권) 책은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해요. 음악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와서. 사실,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 아버지는 저를 막 ‘조가수’ 라고 불렀대요. 음악만 나오면 춤추고 노래하고 그래서. 그때 찍어놓은 영상이 있는데, 여섯 살 때 흘러나온 노래에 추는 춤이랑 제가 요즘 예능에서 추는 털기 춤이나‘깝치는’그런 춤이나 다를 게 없어요. 모든 좋은 건 이유가 있잖아요? 노래와 춤에 대해서는 이유가 없었어요. 마냥 좋고, 지금까지 그냥 즐겼던 것 같아요. 사람들 시선도 그렇고요. 제가 열세 살부터 8년이란 시간을 연습하다 데뷔했는데, 사실 연습생이라는 건 가수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관문이에요. 장단을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친구들은 저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방과 후에 친구들이랑 학원도 가고 모여서 놀고 분식집도 가는 것도….
데이트도 하고? 항상 보컬이랑 댄스 레슨이 있으니까, 학교 끝나면 버스 타고 강남역 가서 전철 타고 회사 가는…. 그게 늘 반복이었어요.
주말도 없었어요? 네. 지금은 연기, 중국어, 영어, 아크로바틱,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정말 다양한 문화를 배워요. 그게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사실 중학생까지는 힘든 걸 몰랐고요.
그 와중에 사춘기도 겪었겠네요? 나는 누구인가?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연습생 4년 했을 때. 그리고 (박)진영이 형은 저에 대해 한 번도 언급을 해주신 적이 없었어요. 연습생은 한 달에 한 번씩 월말평가를 하고 결과에 따라 데뷔가 결정돼요. 저는 8년 동안 월말평가만 봤어요.
거의 백 번이네요? 그동안 진영이 형은 ‘네 실력이 늘었다. 줄었다. 제자리다’ 이런 말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칭찬도 없고 혼내지도 않고. 저는 너무 헷갈렸어요. 저랑 열세 살에 같이 들어온 선예 양이 ‘원더걸스’ 로 데뷔하고 ‘지소울’ 이라는 친구는 뉴욕에 가고. 그런데 저는 뭐 아무 말도 없는 거예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런 세월을 보내고 지금 20대 초반인데. 지금 나이에 맞는 사고를 갖고 있나? 공허한가요? 그래도 해놓은 게 있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다 느꼈어요. 데뷔 무대에서 느낀 연습생 8년은 너무 짧았어요. 8년이 어렵게 흘렀어도, 데뷔 나이는 스물이니까. 아직 어리니까, 나의 끼와 모든 것을 펼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예능에서 했던 댄스나 그런 것들에도 저는 한 번도 꾸미지 않았어요. 개인기를 연습한 적도 없었고요.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몸에서 나오니까. 초반에는 “이상한 애다” “쟤 너무 ‘오버’ 한다” “너무 ‘깝치는’ 거 아니야?” 그런 분이 많았어요. 악플도 많았고. 데뷔 전에는 악플 때문에 속상해하는 연예인들 보면서 ‘저게 저렇게 신경 쓰이나?’ 했는데. 그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러다 한계에 부딪혀서 못해버리면 악플대로 되는 거죠. 그러든 말든 너무 끼를 잘 발산하니까 처음의 우려나 악플이 없어진 것 같아. 연습생으로서, 박진영 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뭐라고 했어요? 첫 싱글 ‘이 노래’ 녹음 다 끝나고 나서예요. 그때 제 파트가 후렴 부분 들어가기 전 네 마디 정도 되는데. 그걸 12시간 녹음했어요. 녹음실 안에만 있었어요. 밥도 못 먹고. 다 끝내고 나와서 처음 건네는 말씀이 “니가 지금까지 데뷔를 못한 이유를 알겠니?” 였어요. 펑펑 울었어요. 제가 녹음한 트랙을 가리키면서 지금까지 데뷔를 못한, 가수를 못한 이유를 알겠냐고.
그때까진 박진영 씨 기준에 못 미쳤던 거겠죠? 그날 꽉 채워졌던 거고. “이제 알겠니? 오늘은 잘했다” 는 뜻이죠? 뼈에 박히는 말을 들은 것 같아요. 그때 처음 울었어요. 진영이 형 앞에서는 절대 안 울려고 마음 독하게 먹었었거든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세월이 빨리 가요. 십 대의 8년은 정말 길거든. 어른의 20년 정도 되는데 소화를 잘했다는 건 대단한 거죠. 조권 처음 나왔을 땐 별종이네, 근데 약간 비호감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근데 워낙 잘하니까. 많은 분이 비호감이라고 생각하셨죠. 남성분들도. 여성분들도. “뭐 저런 애가 다 있냐.” 전 신경 안 쓰려고 했어요. 제가 만약 그런 모습을 연습했고, 계획했던 거라면 신경 쓰였겠죠. ‘〈스타킹〉에선 이렇게 하자’ 그런 식으로 계산했더라면 악플들 보고 안 해야겠다 생각했을 텐데, 저는 카메라가 있든 없든 똑같거든요. ‘깝권’ 도 팬들이 지어줬어요.
말도 잘하네. 주관이 뚜렷하다는 거예요. 세대, 문화 차이도 있지만.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나 어렸을 때 같아. 나는 조권이가 정말 진중하고 고전적이고 인간적이고 더 내면이 꽉 차 있으면 좋을 것 같애. 본인이 어떻게 걸러서 살아왔다는 계획이 있는 애랑, ‘연예인’ 처럼 마냥 흘러흘러 하는 애는 다르거든. 내용이 달라요. 지금 조용필, 패티김 씨도 너무 좋아 보이니까. 그런데 요즘 문화는 너무 빠르잖아요? 빨리 왔다 빨리 가니까 싫더라고. 그건 어떻게 대처하려고 해요? 대안이 있을 것 같애. 가수, 연예인, 배우도 롱런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종종 가수 선배님들이나 대중이 “아이돌은 오래 못 간다.” “가수는 수명이 길지 않다” 하는 말을 할 때 속상했어요. 사실 2AM이라는 그룹이 아이돌 그룹이고 또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저도 물론 ‘쟤 아이돌이지’ 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동료 가수들, 후배나 선배님들도 두려워하는 분이 많았어요. 그 다음을.
그래서 우울증 걸리고 자살하고…. 안 좋은 일들도 많았잖아요. 왜냐하면 가수도, 사람이 성숙하는 것도 과정이 꼭 필요하잖아요. 사실 많은 분이 재밌다고만 생각을 하시지만…. 음악적인 면도, 예능에서 보여드리는 것도 같이 교차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어떻게 예능에서 까불던 애가 무대에선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하냐. 연기 아니냐”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사실 저만의 독특한…, 그런 게 있어요.
그건 일종의 끼일 텐데…. 울기도 잘 울어 조권이. 내가 봤어. 그게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본인이 감정 표현을 했기 때문에, 연기든 아니든 그 사람 본연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좋아 보이던데? 상황이 다른데도 너무 뻣뻣하고 그러면 그것도 좀 그래. 그게 연예인이 박수를 받고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예요. 눈물도 즐거울 수 있는 거거든요? 요즘 트렌드가 너무 빨리 왔다 가고, 변화라는 것도 너무 중요하잖아요. 앨범이 한 장 한 장 나올 때마다 새로운 콘셉트, 새로운 앨범, 새로운 노래. 사람들이 저를 주목하고 관심 갖고 계시니까, 기대를 하시잖아요. 부응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본래 저의 모습은 그냥 쭉…. 내려가지도 않고 올라가지도 않는 ‘그냥 조권’. 저만의 어떤 것은 지켜가고 싶어요.
서른의 조권은 뭐하고 있을까요? 또 8년 후네? 그때는 좀 건장한 청년이 돼서 지금보다 더 진지하게 연예인 생활을 하지 않을까? 그때 목소리는 어떨까? 어렸을 때 집에 전화와서 받잖아요? 그럼 부모님한테 “어머 딸내미 목소리 너무 예쁘다” 그럴 정도로 얇은 미성이었어요. 피부도 워낙 하얗고, 화장 지우면 진짜 무슨 흡혈귀처럼 하얗거든요. 되게 “예쁘장하게 생겼다” 들 말씀하시니까.
본인도 예쁘다고 생각해요? 아, 아니요. 제가 외동아들인데, 아버지는 딸을 원하셨대요. 그래서 저를 갖고 어머니는 씩씩한 아들로 키웠고 아버지는 딸내미처럼 예뻐하시고…. 저는 변성기가 온 줄도 몰랐어요.
지금 조권이 아이돌 스타의 부류로 나뉘어진다고 했을 때 생명이 짧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서서히 의젓해지면서 진중하게 가다 보면 삼십 대 가서는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자기 캐릭터를 가질 것 같아요. 여자친구 있어요? 지금 없어요. 한 번도 없었어요.
〈우리 결혼했어요〉 봤는데, 여자친구 있을 것 같던데?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연습생 때부터 하도 들은 얘기가 있어서. 회사가 좀 엄격하다고 해야 할까요? 진영이 형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 “사귀면 안 된다” 는 말과 “나중에 네가 성공했을 때 사귀어도 절대 늦지 않다. 그리고 네가 정말 성공했을 때는 톱 여자 연예인들이 그냥 따라오게 돼 있다” 항상 뭐,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고등학생들한테 “대학 가면 여자가 줄을 선다” 하듯이? 너무 심각하게 얘기하셨어요.
사춘기 때, 나는 나를 좋아했어요. 나를 함부로 내돌리기 싫더라고. 내가 오늘 올 때 뭘 선물할까 고민하다 왔어. 위덕의 〈논어〉라는 책이 있어요. 그걸 살까 〈데미안〉을 살까 하다가 ‘책 안 좋아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그냥 왔어. 어렸을 땐 꿈도 많고 그림, 노래, 정말 팔방미인이었어. 어느 순간 갈라지더라고. 미대를 갔고, 디자이너가 됐는데, 그러다 보니 이해가 가요. 패티킴 씨는 칠십대 할머닌데, 그분이 롱런할 수 있는 건 이 세상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다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봐도 멋있어요. 그 ‘멋’ 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럼 할아버지 조권도 최고지. 어떻게 본인을 가꿀 건지가 답안처럼 있을 것 같애. 조권은 안 흔들릴 것 같애. 애늙은이라는 단어가 싫을 수도 있지만, 난 분명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다 생각했어요. 분명히 강한 면을 갖고 있어. 2AM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해서 1위 하기까지 1년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정말 이 악물고 했거든요. 조권이라는 이름도, 2AM이라는 그룹의 이름도, 리더로서도. 가수라면 누구나 1이라는 숫자 옆에 내 이름이 있으면 좋겠고. 내 그룹이 그 옆에 있으면 좋겠고 그래요. 1위를 했을 땐 정말 펑펑 울었거든요. 눈물 안 날 줄 알았는데, 호명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그날 우연찮게 어머니도 오셨어요. 그 때 너무 행복했는데도 마음은 무거웠어요. ‘과연 이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1위한 만큼 정말 많은 사람이 나와 2AM에게 새로움을 바랄 텐데. 내가 과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을까. 나중엔 그런 생각들이 너무 짧았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 욕심엔 끝이 없잖아요. 1위를 원했는데 했고, 대상도 받고 싶고, 롱런하고 싶고.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가 교만하지 않고 그냥 자기만의 욕심을 가지고 자기만의 길로 간다면, 충분히 이뤄낼 수도 있으니까. 저는 아직 흔들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직 어리니까 그럴지도 몰라요. 나는 남성복을 30년 했어요. 이 험난한 길을 어떻게 왔을까 생각하니 어느 순간, 내가 즐긴 것 같애. 좋아서 즐기니까 이 짓을 오래 하고 자리를 지키지. 나보다 선배도 있었는데, 하다가 힘드니까 다 그만둔 거야. 어쨌든 끝까지 하는 사람이 이겨요. 중간에 하다가 다른 거 하고 음식점 하고 그러면 결론은, 잊혀. 정말 죽을 때까지 한길을 걸어 그것을 대중에게 알리고 끝까지 간다는 건 축복받은 거예요. 앞으로의 조권을 지켜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또 나를 테스트해보고 싶어. 제가 데뷔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어쨌든 시작점이잖아요. 선생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이런 시기에 선생님을 만나게 돼서 감사해요.
롤모델이 있어야 해요. 나는 장 폴 고티에가 그랬어요. 한창 활동할 땐 진태옥 선생님. 지금은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한 분들이 롤모델이에요. 법정 스님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있겠죠. 10년 단위로 변했던 것 같아요. 선배 중 정말 괜찮은 가수들을 리서치를 해보고, 모차르트 같은 고전 음악가들도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스티비 원더요.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잖아요. 그분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셨고.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고, 부인도 있고. 거기까지는 고난과 역경도 많았고. 그런데 견딜 수 있었던 건 음악을 즐기면서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예전에 가수들 의상을 많이 만드셨던 것도 알아요.
소방차 의상 만들어준 게 벌써 20년이 됐고.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협찬 받고 하지만 그 때는 직접 와서 다 가봉해서 옷을 해줬어요. 서태지와 이이들도, 자기네 회사 사장 박진영 씨도 대학 다닐 때 우리 집에 자주 왔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어. 옷 좋아해서 만져보고 “이거 얼마예요?” 하고. 그때 아이돌들을 많이 봐서 지금 아이돌을 봐도 친구 같애. 저는 선생님을 〈안녕! 프란체스카〉때부터…
그말 나올 줄 알았어. 진짜 팬이었어요. 그 캐릭터랑 똑같으세요.
그때 출연 안 했으면 참 불행했을 것 같아.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지금까지 명성이 이상해지지 않을까?” 하더라고. 그러다 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그 전까지 20년 동안 쇼 1백 번을 해도‘패션 피플’이나 알지 다른 분들은 모르거든? 그거 찍고 나니까 지방 허름한 식당에서 주인 할머니가 “귀한 분 오셨다” 고 밥값을 안 받으시려고 했어요. 그럴 때,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구나 생각했어요. 잠깐 외도했던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안 늙는 비결이야. 사실 마음은 조권이랑 똑같애. 〈양철북〉같이. 조권도 구태의연한 거 싫어하죠? 내가 책 선물 보낼게요. 회사로 보낼까? 독후감 써서 보내요. 더 멋있는 조권이가 돼서 밥 먹을 때 얘기해요. 와,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이랑 같은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요. 저는 그냥 그대로일 것 같아요. 지금처럼,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요.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장윤정
- 스탭
- 메이크업/ 이가빈(포레스타), 헤어/ 영석(포레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