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기자가 쓴다. 보도 자료는 홍보대행사가 쓴다. 기자는 갑, 홍보대행사는 을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럴까?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뒷자석’을 검색해보면, ‘뒷좌석’을 잘못 쓴 1천1백여 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지난 8월 31일엔 GM대우 알페온 관련기사가 게재됐다. 두 온라인 매체의 기사에, 같은 문장이있다. <조선닷컴>에 게재된 기사엔 이렇게 쓰여있다. “동급 최초로 페달이나 핸드레버가 필요 없는 버튼 타입의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가 적용됐고 ‘뒷자석’ 독립 에어컨 시스템, 이오나이저와 퍼퓸디퓨저를 포함한 공기청정기 등의 편의사양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뉴스웨이>는 이렇게 썼다. “특히 동급 최초로 페달이나 핸드레버가 필요 없는 버튼 타입의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가 적용됐고 ‘뒷자석’엔 독립 에어컨 시스템, 이오나이저와 퍼퓸디퓨저를 포함한 공기청정기 등의 편의 사양을 갖춰 타 기종과 경쟁력을 갖췄다.” 어떤 부분은 기자가 고쳐 썼다. 하지만 같은 문장이다. 보도 자료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다가, 뒷부분만 고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오타까지 그대로 옮겨 적은 기사들을 온라인에선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자들은 보도 자료라는 걸 받는다. 경찰서에선 어떤 범인을 검거했을 때 보도 자료를 발송한다. 정부부처에서도 기사화를 염두에 둔 정보들을 거기에 담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언론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한다. 기업의 보도 자료는 주로 홍보대행사가 만든다. 업체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이 쓰고, 그들이 배포한다. 필요한 정보만 건조하게 담겨 있는 형식이 아니다. 최대한 기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작성한다. 몇몇 기자는 그걸 그대로 복사해서 기사로 올린다. 6년째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K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몇 번이나 검토해도 오타를 못 찾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기자님들까지 그걸 그대로 올린 걸 보면 심경이 복잡해져요. 솔직히 누구 탓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대행사는 상대하는 매체가 너무 많고, 지금은 기사 퀄리티를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요.”
홍보대행사들이 담당하는 매체의 수를, 지금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돈이 몰리는 분야엔 신생 미디어도 몰린다. IT나 자동차등 산업 관련 기사가 특히 그렇다. 보도 자료 전송으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기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대행사 직원을 찾는다. 자료를 구하거나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한다. 내일 신문에 들어갈 그래프를 그리라고 시키거나, 기사를 써서 보내라고 하거나, 술자리에 불러 결제를 시키는 식으로 도를 넘는 기자들도 없지 않다. 을은 갑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선 언론이 갑, 이들은 을이다. 3년차 대리C는 이렇게 말한다. “광고홍보학과 친구들 만나보면 이미 ‘언론은 갑, 홍보는 을’이라는 뉘앙스로 배우는 것 같아요. 으레 그래 왔던 거죠. 펜은 기자가 쥐고 있고, 업체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면 책임은 대행사가 지니까요. 업체와 언론 사이에서, 홍보대행사를 ‘슈퍼 을’ 이라고 지칭하기도 해요.”
언론과 기업 사이에 ‘홍보대행’이라는 직업군이 자리를 잡은 건 서울 88올림픽 이후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진출이 늘기 시작했고, 그들에겐 팔고 싶은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공해 어떤 통로로 노출할지는 몰랐다. 현지화가 필요했다. K 과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외국계 기업이 자체 인력으로 국내 홍보팀을 구성하는 건 무리가 있었습니다. 비효율적이었죠. 한국의 정서나 언론문화에 대해 잘 모르니까요. 그들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 국내 전문가들이 필요해진 거죠.”
그들의 전문성을 원한 건 기업이었다. 그래서 고용했다. 홍보대행사에선 제품의 특성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포장해야 기사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했다. 콩을 팥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콩이라고 알리는 게 홍보다. 기자와 일 대 일로 만나 알렸다. 돈은 기업이 주지만, 갑을 관계는 아니었다. 기업이 필요한 전문 서비스를 홍보대행사가 제공하는 파트너 관계였다. 컨설팅에 가까웠다. 시작은 그랬다. 미국식이었다.
외국계 기업의 진출은 점점 늘었다. 매체 시장도 팽창했다. 대행사도 활발해졌다. 눈여겨보던 국내 기업도 대행사를 두기 시작했다. 이미 홍보팀이 있던 국내 기업의 경우, 업체와 홍보대행사는 ‘주종관계’ 로 정리됐다. 업체 인력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언론과 기자들을 대신 상대했다. 일종의 ‘하청’ 에 가까웠다. 기자가 제1고객이었다. 일본식이고, 분명한 갑을 관계다. 현대중공업 홍보실부장으로 재직 중인 금석호 씨가 쓴 책 <홍보 리얼리티>의 제1장은 ‘신문에 관한 이야기’다. 방송, 통신과 인터넷 매체, 기자, 광고, 접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접대할 땐) 기자의 특성을 먼저 파악하라’ ‘귀가는 기자보다 늦게’ 같은 조언은 현실적이다. 지금 한국의 홍보대행사는 미국식과 일본식이 혼재된 채, 업체와 언론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좋은 것을 좋다고 알리는 본연의 홍보부터, 부정적인 ‘팩트’ 를 살짝 흘리는 정보 제공까지도. 기자는 그들의 1차 고객이고, 기자들에게 그들은 정보 제공자다. K 과장의 말이다. “매체가 많다는 건 수익 경쟁도 심해졌다는 뜻이에요. 파이는 제한돼 있으니까요. 한번은 어떤 매체가 광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는데 못했어요. 편성된 광고비가 소진된 후였거든요. 그랬더니 부정 기사 나오고, 헤드라인 격해지고…. 참다못한 담당자가 취재 협조비 명목으로 지원을 좀 했어요. 바로 다음 날부터 긍정적인 기사로 바뀌기 시작했죠.”
부정적인 기사는 홍보대행사의 수익과도 직결된다. 치명적인 단점이 기사를 통해 드러나면 책임소재가 분명해진다. 부정적인 뉘앙스만 풍기는 노출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사는 이런 식으로 돈과 직결된다. ‘누군가’ 제공하는 정보 또한 돈과 직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쟁사를 ‘까는’ 고발성 기사를 기자와 대행사 직원이 합작하는 경우도 있다. “ ‘어떤 매체랑 친하냐’ ‘그 매체의 기사를 따올 수 있느냐’ ‘어떤 방송에 나갈 수 있냐’, 기업이 홍보 대행사를 평가하고 선정할 땐 이런 질문들을 해요. 매체를 어디까지 파고들었고, 어떤 기자랑 친하고, 통화는 몇 번이나 해봤는지가 기준이 되고,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지가 계약 조건에 들어가기도 하죠. 대기업일수록 심해요.” C 대리의 말이다. 지금, 기업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기자가 아니다. 담당 홍보대행사 직원이다. 그들의 말이 그대로 기사가 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보통 기자가 쓴 문장으로 환원된다. 출처를 밝히긴 애매하다. 홍보대행사는 기업 핵심 관계자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품을 만들진 않는다. 기사를 쓰지도 않는다. 대신 대중과 언론과 흐름을 알고, 이면에서 돈과 미디어를 움직인다. K 과장이 말했다. “동료들끼리 만나면 이런 얘기 자주해요. 갑을 관계로만 따지만 사실 우리가 제일 밑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 달라진다고.”
펜과 돈은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권력의 두 축이다. 그 사이에, 홍보대행사가 있다.
- 에디터
- 정우성
- 스탭
- Illustration/ soho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