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원샷 아니면 안 마시고, 옷은 해골무늬를 좋아한다. 이런 한지민을 감당할 수 있나?
데뷔 9년 차. 서른. 뭐라고? 한지민이?
하하. 이제 진짜 서른 살이다. 설렌다. 새로운 출발점?
데뷔 전엔 어떻게 살았나?
어우, 갑갑했다. 대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 내 성격이라면 또 그렇게 지냈을 것 같으니까 후회는 안 한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해 떨어지기 전에 알아서 집에 가는 스타일이었다. 누가 보면 속 터지는 그런…. 친구들이 집에 전화 해서 “지민이 뭐 해요?”라고 언니한테 물어보면 만날 “걔 집에서 자” 이랬다. 방학 때도 집에만 있었다. 명절에도 우리 집이 큰집이니까, 어디 갈 일이 없었다. 그래선지 가수들이 본명을 안 쓴다는 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립싱크라는 것도 다 커서 알았다. 지금 내가 성격이 많이 활발해져서 모두 신기해한다. 그땐 얼굴도 꼬질꼬질했다.
무슨 말인가? 당신의 졸업 앨범 사진은 꽤 화제였다.
아, 그거…. 그날은 졸업 앨범 찍는다고 꾸미고 학교 간 거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진짜 ‘자연미인’ 맞나?
뭐, 그냥 어렸을 때 치아 교정 같은 건 했지만…. 그게 말하는 게 좀 그렇다. 그런 거 있지 않나? “저 자연미인이에요.” 말하면 괜히 좀 그래 보일까 봐…. 성형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어떨 때 나도 거울 보면 욕심이 생길 때도…. (옆에 있는 거울을 실제로 들여다보다가) 아니 근데, 왜 나 갑자기 다크 서클이 이만한 것 같지?
이름 앞에 늘 붙는 말 중에 ‘여신’도 있다.
사실 지인들은, 솔직히 그런 말 들으면 비웃는다. 특히 형부가 외국에 살다 와서 내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잘 몰랐다. 어느 날 “야, 우리 회사 사람들 널 되게 좋아하더라.” 이러면서 의외라고 놀랐다. 난 친구들이랑 놀 때도 막 편하게 다니는 스타일이다. 북적북적대는 곱창집이 더 좋고, 되게 차려 입고 뭐 먹는 그런 데보다는 고수부지 가서 돗자리 깔아놓고 치킨 시켜 먹는 게 더 좋다.
더 강력한 거 없나?
안 청순한 거…. 아, 술 마실 때, 첫 잔 원샷 안 하면 내가 되게 뭐라 그런다. 또 술 끊어 마시면 내가 “뭐 하시는 거냐”, “이거 아니지 않냐”고 다그친다. 성격이 점점 더 씩씩해진다.
일 때문에?
정말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뭐든 계속 피하고 싶었다. 혼나면서 자란 것도 아니고, 뭔가 ‘잘해야 된다’ 이런 것도 없었는데, 여기서는 너무 못하고, 혼나기만 하니까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자꾸 숨으면 20대를 되게 재미없게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성격을 바꾸려고 했던 것 같다. 처음엔 정말, 대사를 하면서도 속으로, ‘아, 빨리 오케이가 났으면 좋겠다’. ‘아, 비가 와서 신이 취소됐으면 좋겠다’ 이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건방진 생각이었다. 그때는 나한테 던져진 기회가 소중한 것도 몰랐고, 귀한 것도 몰랐다.
지금은 아나?
<대장금> 끝나고 단막극을 하나 했는데 처음으로 누군가의 뒤에 숨을 수 없는 역을 맡게 됐다. 그때 ‘나도 노력을 하니까 되는 신이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도 처음 생겼다.
<조선 명탐정>에선 뭐가 변했나?
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이미지는 사람들 속에 각인돼 있다. 한객주 역할을 맡았을 때, 여기 잘 녹아들지 않으면 ‘아, 역시 한지민은 저런 게 안 어울려’가 되는 거고, 캐릭터를 입고선 작품 속에 몰입되면, ‘어, 쟤가 저런 것도 어울리네’가 되는 거다. 내 경험 안에서 찾아낼 수 없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라서 처음엔 마냥 소리를 질러야 하나, 날카로운 눈빛을 해야 하나, 했는데 그러면 상대 배우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연기하면 상대의 리액션과 자연스럽게 어울릴지를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잡았다.
당신의 캐릭터는 어떤가? 배우로서의 위치랄까.
그러니까… 임팩트 있게 뭔가를 확 남긴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주로 남자 주인공을 받쳐주는 멜로 연기를 했고, 그러면서 거부감 없이, 비호감 안 되고, 자연스럽게 잘한 것 같다. 배우의 아우라가 있다기보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배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나?
글쎄. 그런 친숙함을 내세운 배우는 꽤 많다. 그럼, 당신과 비슷한 분위기로 꼽히는 여배우들은 신경 안 쓰이나? 송혜교, 한효주….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최근에 ‘극장가 대결’ 이런 식으로 여배우들 비교하는 기사도 나오는데, 사람마다 매력이 다 다르고 영화마다 색깔도 다르지 않나? 그런 걸 신경 쓰는 건 그냥 부질없는 마음 같다.
<올인>의 여주인공 아역부터 영화 원톱 주연까지, 천천히 경력을 쌓아왔다. 더 큰 한 방을 기대하진 않나?
생각은 해봤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 가치관이 ‘현실의 행복을 찾자’다. 목표를 정해두고 달성하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기고 또다시 높은 목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그리고 작품성도 뛰어난데다 그 작품을 끝내고 나면 배우로서 한 단계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들어오더라도, 소화하는 동안 너무 괴롭거나, 내가 찍은 작품인데도 보기가 괴로울 정도면, 난 그건 안 한다.
- 에디터
-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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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