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맛과 향은 핀셋으로 뽑아 내듯 꼼꼼히 시음하지만, 정작 얼음은 주는 대로 마신다. 칵테일 레시피에는 얼음의 양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칵테일의 맛과 도수는 얼음을 녹인 물로 조절한다. 얼음은 커튼 뒤 스태프처럼 묵묵히 술맛을 살릴 뿐이다. 더 팀버 하우스의 박민규 바텐더는 “얼음과 얼음에서 나온 물이야말로 칵테일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술을 합쳐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꾹꾹 찍어 말한다.
블록 아이스 무게가 1킬로그램이나 되는 큰 덩어리 얼음이다. 대야처럼 큰 볼 안에 이걸 넣어두면 펀치 음료수가 파티 내내 속 시원하게 차갑다.
럼프 아이스 블록 아이스를 주먹 정도 크기로 힘차게 조각낸 얼음이다. 이걸 둥근 모양이 될 때까지 칼로 깎아내면 위스키 온더락에 쓰는 아이스볼이 된다.
크랙트 아이스 모양이 일정하지 않게 마구 부서진 얼음이다. 잔에 넣는 용이라기보다는 칵테일 셰이킹을 할 때 쓰거나 잔을 차갑게 할 때 쓴다. 술에 얼음을 넣고 몇 번 휘저은 뒤 다시 얼음을 빼내, 칵테일을 차갑게 만드는 식으로도 사용한다. 마티니, 맨하탄을 그렇게 만든다
큐브 아이스 가장 기본적인 칵테일 얼음이다. 길쭉한 잔에 가득 채우거나 칵테일 셰이킹을 할 때 두루 사용한다.
크러시드 아이스 우두둑 씹히는 맛이 살아 있도록 잘게 간 얼음이다. 모히토나 트로피칼 칵테일처럼 과일 재료가 많이 들어가 미적지근한 온도의 술을 빠르게 차갑게 만들어야 할 때 쓴다.
셰이브드 아이스 입에 넣으면 씹히자 마자 녹아 풀어질 정도로 곱게 간 얼음이다. 얼음을 씹어 먹는 맛에 마시는 프라페 칵테일에 많이 쓴다.
얼음이 위스키를 만날 때
위스키 온더록을 마실 때 마음이 쫓기는 기분을 느낀 적 있나? 스물스물 녹아 흩어지는 얼음에 위스키의 맛도 함께 옅어질 때는? 마음의 여유와 위스키의 맛을 모두 지켜줄 대안은 큰 덩어리 얼음이다. 더 팀버 하우스의 김준미 지배인은 “보통 손님이 위스키 온더록 한 잔을 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다. 그때쯤이면 큐브 아이스는 거의 다 녹고, 한 덩어리의 공 모양 얼음은 반 이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더 팀버 하우스에서는 ‘아이스볼 프레스’ 장비로 얼음을 그 자리에서 원형으로 만들어 서빙한다. 매끄러운 맛을 남기는 미네랄 워터로 얼린 얼음도 한정적으로 내놓을 때도 있다. “얼음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건 ‘위스키의 가장 좋은 안주는 물’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래서 김준미 지배인은 수정 구슬을 얼려 얼음 대신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더 팀버 하우스에 가면 수정 구슬을 담근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청명한 얼음 만들기
집에서 술을 마실 때 아직도 냉동실 멸치 냄새가 스며든 얼음을 넣는다면,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그 한 잔은 실패다. 투명한 얼음을 위해선 먼저 정수된 물을 준비해야 한다. 불순물이 많을수록 구름처럼 뿌예지고 만다. 그리고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을 만들기 위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골라 얼리면 된다.
끓였다 식히기 깨끗하게 정수된 물을 끓였다 식힌다. 차가워졌다 싶을 정도로 식으면 다시 한 번 끓이고, 조금 식어 뜨뜻미지근할 때 얼음틀에 붓는다.
녹였다 얼리기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을 얼음틀 그대로 냉장실로 옮긴다. 이때 얼음틀에 뚜껑이 있으면 냄새가 덜 스며든다. 얼음이 녹으면 한 번 더 얼린다. 얼음 안의 기포가 줄어들어 더 단단한 얼음이 된다.
위부터 얼리기 칵테일, 위스키용 얼음을 만드는 아이스팜 정준양 대표는 더 간편한 방법을 개발했다. “새내기 바텐더들이 집에서도 깨끗한 얼음으로 연습하고 싶어하기에 연구했어요.” 길쭉한 물통과 같은 얼음틀의 윗면을 제외한 모든 면을 수건과 비닐, 혹은 스펀지로 감싼다. 그럼 얼음이 위에서부터 얼면서 불순물은 밑으로 가라앉는다. 윗부분을 깨서 위스키 잔에 넣으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
더 맛있는 얼음 만들기 얼음을 얼리기 전, 물 안에 향신료를 넣고 얼리면 독특한 칵테일 재료가 된다. 이 향신료 얼음에 잘 어울리는 칵테일을 만들고 맛을 맞춰 마시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잘게 채썬 생강을 넣고 얼린 얼음을 버번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 , 라임을 넣고 얼린 얼음을 밀맥주 칵테일에 빠뜨려도 재밌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