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는 가사를 한 번 쓰면 안 고친다. 다행히 얼굴도 안 고쳤다.
“요즘 처지가 낙타 같다”는 말을 했다.
스물넷부터 스물여섯까지 음반 준비하랴, 학교 다니랴 너무 바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음반 작업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고…. 사막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지난 연말 [GQ]가 뽑은 ‘올해의 래퍼’였다. 기억나나?
아, 맞다. 기억난다. 그때 되게 기뻤는데.
무슨 얘기를 해도 랩처럼 들린다는 말은 어떤가?
오히려 랩이란 틀 때문에 못한 말이 너무 많다. 못 쓴 표현도 많고. 라임, 플로우, 단어들의 음절 수…. 발음도 잘 굴러가야 한다.
가사 쓸 때 어디서 밀고 당길 건지, 어디서 치고 빠질지까지 다 정해놓고 스튜디오로 들어가나?
플로우, 박자 타는 것까지 다 짜놓고 녹음한다. 써 놓고 바꾸는 방식은 잘 안 맞는다. 그렇게 하면 플로우가 죽는다.
그렇다면 가사는 한 번 쓰면 안 고치나?
안 고친다. 진짜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고칠 힘도 없다.
가사에 규칙을 깨려는 시도가 있어 반갑다. 탈립 퀄리가 ‘Move Something’에서 “Intercontinental”란 단어를 라임을 맞추기 위해 “Inter-conta-nental”로 비틀던 때의 통쾌함이랄까.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데서 오는 긴장, 환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 마디를 쓰더라도 최대한 빤하지 않게 쓰는 데 중점을 준다. 뭐든 신선한 게 중요한 것 같다.
그걸 ‘억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Boogie On & On에서 “되어도”를 “되얼~도”로 발음하는 거, 신선하지 않나? 듣기에 딱 꽂힌다고 생각한다.
컴퓨터로 가사를 쓴다고 들었다.
주로 컴퓨터로 쓴다. 잘 안 써지면 공책으로 옮기고. 그런데 미국 래퍼들은 휴대전화로 쓴다. 설마 요즘에도 “너 공책에 가사 안 쓰냐?너 외계인이냐?” 이런 건 없겠지?
물론. 쓰면서 수정과 퇴고가 많은 부지런한 래퍼일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손으로 쓰는 거 좋아하는데, 칸이 모자라면 다음 장에 써야 한다. 그러면 이어지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습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번엔 EP였다. 정규 음반은 어떻게 다를까?
첫 솔로 음반이라 좀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트랙의 순서, 흐름을 유지하는 게 좀 어려웠다.
앨범이 좀 더 유기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도 느꼈다. 그런데 곡 수가 워낙 적고 내가 다작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다른 노래를 넣거나 거기 있는 노래를 빼고 싶진 않았다.
일리네어 레코드와 계약한 지 1년이 좀 넘었다. 도끼와 더 콰이엇은 당신에게 어떤 주문을 하나?
별 주문 안 한다. 음반이 너무 차분하거나 우울하면 좀 신나는 게 있는데 이런 건 어떠냐? 정도지, 어떤 음악을 해라, 이런 건 전혀 없다. 그런 게 있으면 안 들어갔다.
메이저 기획사에서도 계약 제의가 들어왔었다고 들었다.
턱 깎으라 그랬다. 특유의 기획사 말투 있다. “아, 턱 좀 깎고….” 초면인데, 예의가 없었다. 내가 그 사람들 없다고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학력과 외모 덕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없다고는 말 못하는데, 음악이 별로면 다 쓸데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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