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있나. 올해 김기덕은 좀 다르다. 아니, 그를 바라보는 우리가 달라졌다.
끝내,<피에타>가 황금사자상에 올랐습니다. 그동안의 꾸준한 필모그래피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특히 베니스에서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감독은 영화제 수상도 관객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도 저를 포함한 인간을 따뜻하게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피에타>는 모성애를 향합니다. 김기덕 영화에서 ‘엄마’를 보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끔찍한 뉴스와 범죄의 당사자를 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요.
이 영화의 시작은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그 정체에 대한 고민과 추적이었는데, 저만의 작은 해답이 있다면, 유전자의 결핍이었습니다.현재는 우리를 만들어낸 수많은 유전자의 복합성에서 에러가 난 지점이에요. 그것은 당연히 느껴야 할 가장 가까운 유전자인 모성과 부성의 결핍, 그러니까 정체성의 혼란을 말합니다. 그 때문에 어느 순간 인간 사이의 믿음을 무시하고 사회의 법을 무시하며 이탈하는 것이겠죠. 앞으로도 극단적인 돈, 명예, 권력 중심의 세계에서 크고 작게 폭발할 것입니다.
이번엔 그 폭발이 ‘돈’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전작의 모든 주제가 ‘돈’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요.
한국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는 이유마저도 극단적 경쟁을 기반한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고, 모든 것의 출발이죠. 열등한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고, 아이는 분명한 의미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트랙에서 달립니다. 이제 그 정체가 드러나는 시기가 왔고,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서로의 믿음과 인성마저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비관적이지만 이제 고치기엔 매우 늦었을지도 모르고, 수술 과정은 엄청 고통스러울 거예요.
고통과 폭력은 김기덕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은 모른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그런데 새삼 이전 작품들을 다시 보니, 이게 뭐 그렇게 고통스럽고 폭력적이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뭐가 변했을까요?
제 영화의 특징은 처음에는 마치 다른 별에서 일어나거나 제 망상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인생을 살고, 성장하면서 세상과 부딪치며 어느 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의 일처럼 느끼고, 불편하다고, 짜증 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대개 그들은 두 유형인데 정말 인생을 모르거나 그런 일이 자기와 상관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현장에서 제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아요. 저는 그런 상황을 전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원인을 알고 나를 찾으려는 작은 노력을 합니다. 거대한 터빈처럼 막을 수 없는 유전자의 관성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문제로 생각해야 하죠.
<피에타>는 관객의 이해를 받았을까요? 수상 결과 덕분인지, 괜찮은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천만 시대에 정말 모든 걸 동원해 짜낸 관객이 60만이에요. 그 모두가 <피에타>를 의미 있는 영화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돈이 들어간 작업이라 원금을 회수해야 할 숙명이 있지만, 어떤 관객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10만이 들어도 손해 보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 계속할 이유는 없습니다. <피에타>도 마케팅 비용이 제작비의 여섯 배입니다. 다시 또 그런 마케팅을 해야 할지는 고민이에요.
좀 더 큰 자본으로 만든 영화는 어떨까요?
앞으로는 아무리 큰 영화를 만들어도 한국에선 멀티플렉스 한 관씩에서만 한다는 조건을 걸겠습니다. 대신 큰 제작비로 한다면 해외 시장을 병행해서 수익이 나게 할 거예요.
멀티플렉스와 상영관 독점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이셨죠. 여전히 한국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독점일까요?
그들은 더 심해졌어요. 하지만 극단적 자본주의 안에 있는 우리 모두 공범입니다. 누구나 그 한 방의 기회가 자기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거죠.
앞으로 대기업 영화사들이 한국 안에서 상영관 독점으로 이익을 내기보다, 해외로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이번에 미국에서 관객과 대화를 하면서 미국 관객들도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역시 한국의 메이저처럼 감독을 조정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 스튜디오를 통해서는 창의적인 영화가 어려울 것 같고, 한다면 독립적으로 하든,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후반 작업만 연합하든, 해야 합니다. 다만 시나리오와 연출을 보장하는 조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더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캐스팅 결정권도 중요한 조건이겠죠. 배우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꾸준히 출연한 배우를 찾기 힘듭니다. 저는, 감독은 화가이고 배우는 물감이라고 생각해요. 늘 소재와 주제에 맞는 물감을 찾아 본능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직관을 믿어요. 그리고 늘 틀리지 않게 합니다. 물감을 잘못 선택해도 컬러를 바꾸는 지혜가 필요한 거죠.
좋은 연기는요? 임권택 감독은 배우가 자신 그대로를 연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배우가 배우 내면의 삶을 끄집어내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배우는 다 한정된 캐릭터예요. 얼굴 느낌이 첫 번째 캐릭터이고 목소리가 두 번째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배우의 감정의 진폭이 세 번째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 안에서 잘 조정해 영화에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연출 전 그 연기자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진폭을 계산해 영화 안에 잘 배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년에 정성일 평론가는 사석에서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감독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게 창작자에게 오히려 위기는 아닐까요? 수상 후라서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요?
상을 받는 법은 아주 간단해요. 아주 감동적인, 인간적인 영화를 만들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에타>의 수상은 저도 놀랐습니다. 영화제가 바뀌는 현상이겠죠. 저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나를 지배하는 거대한 바위를 한 조각이라도 깨고 싶습니다. 언젠가 내 자신을 짓누르던 바위를 들고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전 작품인<아리랑>은 확실히 바위를 깬 영화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기도 했고요. 최근엔 여러 다큐 영화가 개봉하면서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로 스크린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큐든 극영화든 모두 진실이 진심을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카메라나 조명 또는 화면 나누기 등도 영향을 주지만 창작자가 얼마나 가슴으로 작업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영화는 기계로 찍지만 창작자가 심장을 담으면 관객들은 분명히 그 울림을 듣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김기덕 영화의 울림은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특히 10년 전, <나쁜남자> 개봉 땐, 영화가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의심으로 쏠리기도 했죠. 한데, 그렇게 날을 세우던 비평가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김기덕에 대한 비판이 줄어든 건지, 영화 비평 자체가 줄어든 건지 헷갈립니다.
지금 한국의 평론가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스스로의 자리를 버렸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메이저가 대부분 빤한 영화를 토해놓으면서그에 부합하는 글들로 자신의 배움과 지조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영화 비평 글들은 메이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식으로 충돌할 뿐이죠. 그래서 진정한 평론가들은 평론할 영화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건 한국에 비평할 영화가 없고 메이저 영화들이 중심이 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에 따라 한국엔 새로운 영화도 줄어들 거예요. 그래서인지, 한국에 문제작이라고 등장하는 신인 감독의 영화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군대 시절의 성장통에 관한 영화죠. 그러니 주목받은 감독들이 두 번째 문제작을 만들지 못하고 바로 메이저에서 상업영화 감독으로 둔갑합니다. 극단적인 영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당연한 수순이에요.
‘돌파구’라는 이름으로 후배 감독을 발굴했습니다. 많은 일이 있기도 했고요.
저는 영화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나오지 않고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에요.
영평상 수상 소감으로 장훈 감독의 영화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마음인가? 그리 생각했습니다만.
사람은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다른 문제를 과거의 문제까지 끌어와 합리화합니다. 저도 한때 그랬어요. 저는 장훈 감독의 재능을 높이 삽니다. 한때 자본주의 안에서 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든 그것과 상관없이 장훈 감독의 재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상에 입력된 분명한 그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 또한 장훈 감독이 훌륭한 영화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포토그래퍼
- Kim Hyun 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