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누가 손님을 왕으로 만들었나

2013.01.18GQ

기업은 친절과 서비스를 강조하며 손님을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정작 수발을 든 건 판매자들이었다. 기업이 해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 백화점 화장품 코너 12년 차 판매 사원인 J는 <개그콘서트>의 ‘정 여사’가 웃기지 않다. 코너 속 고객의 황망한 환불 요구를 보고 있자면 매장 한 가운데서 손님에게 무릎을 꿇었던 악몽만 떠오를 뿐이라고 말한다. J는 정기적으로 본사에서 주관하는 서비스 교육을 받는다. 미소와 인사법을 훈련하고 고객 편의에 관한 지침과 응대 멘트를 숙지한다. 마지막으로 현장 모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서비스 자격 증명을 얻는다. 하지만 J는 이 시간이 아깝다. “희롱하는 태도로 화장품을 직접 발라달라거나, 별 효과가 없었다고 빈 화장품 용기를 내밀며 다짜고짜 환불해달라는 식으로, 문제 있는 고객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해요. 하지만 교육 속 가상 고객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는 법이 결코 없어요. 교육 내내 친절과 미소만 앵무새처럼 강조합니다.” 기업이 판매원들에게 하달하는 서비스 지침은 기계적인 친절일 뿐 현장의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유명 서비스 매니저를 초빙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객에게 무조건 봉사한 경험들만 잇달아서 늘어놓는 식이다.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지만 교육 내용이나 응대 지침은 똑같아요. 바뀐 거라곤 교육 횟수뿐입니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소비 형식과 고객의 유형은 강산보다 빠르게 변했지만 상식적인 지침 하달과 친절만 난무하는 서비스 교육의 실상만큼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녀가 교육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다. 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프렌차이즈 대부분은 서비스 전담 팀을 꾸려 서비스 매뉴얼을 공유하고 정기적인 집체 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고발 빈도가 가장 높은 곳 역시 기업 유통망 아래의 업체들이란 사실은 서비스 교육의 맹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다. 소비자 업무 전문가 S는 위의 사실에서 손님이 왕이 된 사연을 찾는다. “지금처럼 손님이 무조건 대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된 데는 일방적으로 친절만을 내세우는 기업의 서비스 지침과 공격적인 점포 확장이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프랜차이즈 같은 기업의 후원을 받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니까 양질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덩달아 커졌어요. 악용 사례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그에 걸맞은 지침을 마련하거나 판매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가맹점을 부러 찾는 건 양질의 서비스와 기업의 보상체계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판매자와 입점 업주의 기대 또한 같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실제로 백화점은 다른 곳보다 환불, 교환 요구가 훨씬 많아요. 소동은 대부분 이 과정에서 벌어지죠. 하지만 백화점 측에선 고객 불만으로 불거진 문제의 손해와 책임을 대부분 해당 매장에 일임합니다. 그건 결국 판매원의 몫이에요. 본사가 명시한 규정에 관해서만 책임질 수 있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때문에 입점 업체에선 소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요. 손님들의 화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판매자들은 문제 상황을 해결할 회사의 도움을 기대하지만 기업은 이들에게 책임만 전가하는 꼴이다. 심지어 고객의 ‘컴플레인’은 판매자 평가에 반영되어 업계 종사 내내 주홍글씨로 남는다. “소비자 권익 보호 대책과 유사한 판매자 권익 보호 장치를 회사 차원에서 마련해주어야 해요.” J는 고객 역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고객 문제는 시스템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악의적으로 소동을 일삼는 고객도 부지기수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비 중재 전문가를 매장 내에 배치하거나, 기업 차원의 보상 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현실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백화점 환불’이라고 치면 여러 환불 매뉴얼이 나온다. 대개 고객 불만 처리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다. 영리한 고객의 행태는 갖가지 방법으로 진화하지만 응수할 수 있는 기반은 허약하다. 판매자들에게 지급된 무기는 친절과 웃는 얼굴뿐이다. J는 감정노동의 대가로 한 달에 10만원이 채 안 되는 추가 수당을 받는다.

    에디터
    장승호
    아트 디자이너
    ILLUSTRAION/ PARK JIN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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