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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와 서퍼를 사랑한 도시, 골드코스트에서의 마라톤이 특별한 이유

2024.07.22이재위

모델 홍태준과 골드코스트 마라톤에 갔다. 우리는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서핑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러너와 서퍼를 사랑하는 도시가 아름답지 않을 리 없고, 우리는 이 도시를 마음에 품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의 일출 러닝

골드코스트로 떠나기 전날 6피트의 서프보드 한 장과 러닝화 세 켤레를 챙겼다. 서핑도 서핑이지만 이맘때 우리나라의 봄 날씨처럼 선선한 골드코스트에서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러닝화는 조깅, 레이스, 트레일 러닝 각각의 용도에 맞게 배낭에 담았다. 누군가가 보면 좀 과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위한 여행인 것이다. 자전거 여행이나 도보 여행도 있는데 달리기 여행이 안될 리 없다. 에디터는 골드코스트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곳의 숲과 해변, 도시 구석구석을 찾아 달리기를 할 계획이었다.

에디터는 매일 새벽, 러닝화를 신고 호텔을 나선 뒤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해변을 따라 달렸다. 달리기를 한 뒤 커피 한잔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었다. 그것은 이번 여행을 함께 한 모델 홍태준의 생각이기도 했다. 홍태준과 홍태준 만큼 키가 큰 친구들은 이태원과 해방촌 일대의 숨겨진 카페를 찾아 달린다. 달리기와 커피의 관계는 등산과 막걸리처럼 중독적이다. 누군가는 한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달린다. 어쩌면 러너가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면 달릴수록 커피는 맛있어지기 때문이다.

서퍼들과 러너들로 가득한 서퍼스 파라다이스 메인 비치
홍태준이 조깅 때 신었던 아식스 젤 카야노 31

골드코스트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엔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메인 비치부터 벌리헤드까지 10킬로미터를 달렸다. 벌리헤드는 골드코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핑 포인트를 가졌다. 해안 절벽 아래로 끊임없이 파도가 달려와 부서진다. 큰 파도, 작은 파도, 빠른 파도, 느린 파도. 파도도 러너처럼 모두 다른 움직임과 속도를 가지고 있다. 언덕에 앉아서 파도를 한참 구경하다 홍태준이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멋진 카페에 가서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골드코스트는 달리면 달릴수록 러너에게 또 다른 길을 안내한다. 서핑은 언제 할 거냐고? 달리고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언제나 할 것이다. 골드코스트에는 어느 길에나 러너가 있고 어느 해변에나 서퍼가 있다.

에디터는 골드코스트에 네 번째 방문이다. 에디터의 골드코스트 여행은 매년 발전하고 있다. 처음과 두번째는 오로지 서핑이었고 세 번째는 골드코스트 마라톤 풀코스 참가였다. 네 번째는 달리기와 서핑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골드코스트 마라톤을 완주한 뒤에도 도시와 숲에서의 달리기를 이어갈 것이고 더 많은 서핑 포인트에 가볼 것이다. 우리가 빌린 7인승 SUV에는 언제나 에디터의 서프보드 한 장과 홍태준의 렌탈용 소프트 보드 한 장이 실려 있었다. 발코니에 널어둔 웻수트는 마를 틈이 없었다. 에디터가 와 본 골드코스트는 그렇게 해야만 할 가치가 있는 도시였다. 이 도시는 매일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한다.

참가자 3만 명 중 절반 이상이 해외 러너인 골드 코스트 마라톤은 매년 7월 초에 열린다
골드코스트 마라톤의 하프 코스에 참가한 러너들

“달리기는 체중 관리 때문에 시작한 거예요. 제가 원래 건장한 편이었거든요. 촬영 전에 부기 빼기용으로도 좋구요” 홍태준이 ‘체중 관리’라고 말했을 때 주변의 공기가 잠시 멈칫했다. 그는 185가 넘는 큰 키에 밀도 높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중 관리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외형이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정말 잘 먹고 잘 마시며, 잘 먹고 잘 마신만큼 잘 달리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달리고 파도타기를 했다. 일주일 동안의 시간은 골드코스트가 우리에게 준 축복 같았다.

골드코스트 마라톤 하프 레이스가 열리던 토요일 새벽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스타트 라인이 있는 사우스포트로 가는 길에 이미 옷과 신발이 젖어 버렸다. 골드코스트의 아침 기온은 10도를 웃돌았다. 안 그래도 약간 쌀쌀한 날씨였기 때문에 시작도 전에 체온이 너무 낮아지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비 올 때 달리는 걸 좋아해서 오히려 좋아요. 비가 더 내려도 좋을 것 같은데요?” 홍태준이 말했다. ‘오히려 좋다’는 홍태준의 말에 안도했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좋다’는 말만큼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밝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을 보니 젖은 길 위에서 몸을 푸는 주자들이 보였다. 가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길 끝까지 달려 나갔다가 돌아왔다. 비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마라톤 코스에서 만난 무지개
골드코스트의 해변을 따르는 길고 곧은 코스
홍태준이 골드코스트 마라톤 하프 코스에서 신은 아식스 슈퍼블라스트 2 파리

골드코스트 마라톤은 풀 코스든 하프 코스든 해변을 따라 달리는 마라톤 대회로 유명하다. 풀코스는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메인 비치부터 벌리헤드까지 서핑 포인트로 유명한 해변을 달린다. 바다에는 커튼이 나부끼듯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서프보드를 든 서퍼들이 총총 걷는다. 에디터가 달려 본 그 어떤 마라톤 대회의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이 구간을 달리고 나면 출발점인 사우스포트로 돌아와 다시 북쪽 바다를 향해 달린다. 여기서부터는 하프 코스에 포함된 구간이다.

골드코스트 메인 비치의 북쪽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형성되어 있다. 서퍼들의 파도타기 대신 출항을 준비하는 요트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프 코스는 사우스포트부터 런어웨이 베이를 지나 파라다이스 포인트까지 비교적 한산한 바다를 바라 보며 달리게 된다. 해변에 앉아 귀여운 책을 펼치고 독서를 하고 싶은 풍경이다. 러너라면 달리기와 독서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 알 것이다. 러너는 어느 순간 결승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달려 간다는 걸 안다. 그런 관점에서 달리기는 명상이자 산책 그리고 독서와 비슷한 운동이다.

“어느 정도 페이스로 달릴 거예요?” 홍태준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4분 초반 페이스로 달려 볼게요. 그 다음 어떻게 할 지는 달리면서 생각해 보려고요” 홍태준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4분 초반 페이스는 너무 빠르다. 웬만큼 훈련된 러너라 해도 4분 초반 페이스로는 10킬로미터 이상 달리기 어렵다. 하지만 굳이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완주가 아닌 한계에 가 보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에디터가 그를 따라잡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도전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롭고 즐거운 일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말이다. 우리는 비에 젖은 사우스포트를 뒤로 하고 달려 나갔다. 달리다 보니 금새 비가 잦아 들었다. 회갈색 구름 사이로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조금 뒤에는 무지개가 라인을 그렸다. 비와 구름과 무지개가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젖은 길 위를 달리는 홍태준

이른 아침이었지만 골드코스트의 시민들은 일찌감치 주로에 나와 응원을 시작했다. 수천 명의 러너들은 잠시 뜨거운 연료가 되어 목가적이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주민들도 그것을 반기는 눈치였다. 오늘 응원을 나온 사람들 중 몇 명은 신발장에 묵혀둔 러닝화를 꺼내 들고 내일부터 당장 달리기를 시작할 지도 모를 일이다. 러너와 시민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며 나아간다.

홍태준은 자신이 얘기한 것처럼 4분 초반 페이스로 달렸다. 자세는 안정적이고 호흡은 편해 보였다. 그렇게 10킬로미터를 달렸다. 반환점을 돌 때 에디터의 시계는 4분 8초 페이스를 가리켰다. 아무리 하프 코스라고는 해도 첫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러너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페이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홍태준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15키로미터를 넘어설 때쯤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졌다. 마지막 3킬로미터를 남겨 놓았을 땐 4분 후반대의 페이스였다. 그래도 힘차게 달렸다.

피니시 라인을 가득 메우고 응원하는 시민들
1시간 30분 29초 기록으로 21km 하프 코스를 완주한 홍태준

1시간 30분 29초. 홍태준이 골드코스트 마라톤 하프 코스에서 성취한 기록이다. 에디터는 그보다 1초 늦게 들어왔다. 우리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에디터의 풀코스 최고 기록 또한 2023년 골드코스트 마라톤이었다) 골드코스트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이 해변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빨리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숫자로도 설명이 된다. 골드코스트 마라톤에서 공지한 바에 따르면 하프 코스의 누적 고도는 단 28미터로 표시되어 있다. 풀 코스는 고작 62미터다. 에디터가 지난 4월에 다녀온 파리 마라톤의 누적 고도가 400미터를 넘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골드 코스트 마라톤의 코스가 얼마나 평탄한 지 알 수 있다.

또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해변을 따르는 코스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열리는 복잡한 경로와 비교하면 코스가 아주 단순하다. 방향을 바꿀 일이 거의 없다. 오직 반환점에서만 방향을 바꾸면 된다. 10도 안팎의 아침 기온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은 마라톤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누군가 자신의 마라톤 최고 기록을 깨고 싶다면 7월 캘린더 골드코스트 마라톤을 추가하길 바란다.

에디터와 홍태준은 골드코스트 마라톤이 끝난 뒤 퀸즐랜드 최남단의 서핑 포인트를 찾아 떠났다. 그린마운트 비치, 키라 비치, 커럼빈 비치 등 서퍼들로 가득한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했다. 때때로 무지개가 하늘과 바다를 잇는 풍경을 보며 서핑을 하고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 바다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갔다. 달리기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골드코스트의 갤러리와 카페, 식당을 달리기로 누볐고 마운틴 탬버린 국립공원을 찾아 트레일 러닝도 했다. 어딜 가든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골드코스트는 끊임없이 길을 만들어내고 파도가 몰려오는 도시였다. 한 순간도 정체되어 있지 않는 도시. 골드코스트는 우리를 달리게 하고, 돌아보게 하며, 물위를 걷게 하고, 때때로 사랑에 빠지게 했다.

마운팀 탬버린 국립공원에서의 트레일 러닝
러너와 서퍼를 사랑하는 도시, 골드코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