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이 달라지고 있다.
종편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그 변화를 보는 시각차는 있다. 엄청난 호황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종편의 변화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의 안간힘, 용두사미 꼴이다. 스타들을 불러 모아 때깔 좋은 드라마를 왕왕 만들었고, 호기로운 예능도 꽤 있었다는 것이 용의 머리였다면, 돈도 품도 덜 드는 시사 프로그램을 간판에 내걸면서 종합편성 채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한 재방송 채널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변화는 뱀의 꼬리라는 시각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한 해도 못 가서 몰락의 수순을 밟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종편 시청률이 꽤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강호동의 귀환이라는 수사가 민망하게도 최단기 폐지 운명을 맞은 <달빛 프린스>가 시청률 2퍼센트를 기록할 때, MBN의 <황금알>은 쉽게 4퍼센트를 넘겼다. 시청률 0퍼센트의 ‘신화’를 이어간다는 종편 프로그램이 이제 2퍼센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넘어서는 중이다. 그리고 양승철마침내 김수현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가 10퍼센트를 넘겼다. 방송국 쪽에서 처음 이 드라마에 기대한 시청률은 5퍼센트 정도, 그 숫자에 코웃음을 쳤던 작가도 첫 방송 시청률을 보고는 상황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마침내 종편에서 처음으로 10퍼센트를 넘겼다.
그런데 종편의 변화는 채널마다 약간씩 궤가 다르다. JTBC는 특히 다르다. “우리는 원래 방송국 해봤던 사람들이야” 하는 듯이 시사, 교양, 예능, 드라마까지 고루 만들어낸다. 다른 채널들이 예능과 교양을 버무린 형식에 고무된 것과 달리 익숙한 형식의 예능, 내내 보던 대로의 예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MBC에서 자리를 옮긴 여운혁 프로듀서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많다.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어요. 하드웨어 면에서 아직은 미비해요. 후배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죠. 섭외 면에서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거절하는 쪽보다 부탁하는 쪽이 편하죠. 시스템 구축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지상파 위세의 10분의 1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분의 1 수준으로 느껴집니다. 지상파의 실금은 이미 터졌어요. 이제는 어느 채널에 있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죠.” 여운혁 프로듀서는 이렇게 지금을 정리했다.
TV조선과 MBN, 채널 A 등은 주 시청자 층에 대한 분석을 새롭게 해냈다. 보다 연령층이 더 높은 쪽 입맛에 맞추는 것이었다. TV조선 예능국 김일중 부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TV가 고령화되고 있어요. 30년 이상 TV를 봐온 고수들이 시청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모든 프로그램이 재편되는 상황을 맞은 거죠. 텔레비전을 오랜 친구처럼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이고 복잡한 예능보다, 유명 스타가 나와 신변을 얘기하는 토크쇼보다, 한 회를 건너 뛰었다간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운 전개가 빠른 드라마보다, 그저 편안한 프로그램이 좋은 거죠. 뭔가 공감하면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는, 현재 종편에서 집단 토크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라고 봐요.”
그는 또한 요즘의 시청률 추위를 만드는 주 시청자의 취향에서, 종편이 그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했다. <세바퀴>로 시작된 집단 토크 형식은 <황금알>, <동치미>, <신의 한 수>, <속사정>, <닥터의 승부>로 옮겨왔다.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은 독창적인 기획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소소한 즐거움, 다채로운 의견, 낯익은 얼굴과 가벼운 동감. 이 특별할 것 없는 형식을 공중파가 다시 따라가는 형편이다.
성공을 얘기하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얼마 전 JTBC의 <썰전>에서 이윤석은 “시청률 2~3퍼센트로 무한복제되고 있는 종편 집단 토크쇼가 성공했다는 말은 종편의 자뻑”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시청률 2~3퍼센트 자체가 아닐까? 그리고 ‘종편’이라는 별도의 틀이 아니라 그저 많은 채널 중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비상식적인 성장 배경, 지나친 우연의 연속을 막장 드라마의 공식이라고 한다면 종편도 만만찮다. 출생의 비밀이 없지 않고, 비상식적으로 지원하다가도 금세 나 몰라라 돌아서고, 돈이 덜 든다는 이유로 시사에 눈을 돌렸더니 대선 정국과 맞물려 뜻밖의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한바탕 스포츠로 ‘대박’을 노렸으나 한 방에 ‘쪽박’을 차는 불운도 있다. 하지만 현재 종편이 어두운 막장으로 치닫는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텔레비전을 잘 아는 오래된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청자 층은 텔레비전 앞이 아니라도 있을 곳이 더 많아 보인다.
- 에디터
- 글/ 조경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