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MY YUMMY VALENTINE

2014.01.27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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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는 이런 이상한 시절의 거대한 로맨스 미스터리가 되었다. 다들 쇄뇌되었다. 왠지도 모르면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결혼식에서 부케를 던지고, 졸업식 날 밀가루를 뿌려댄다. 사랑의 공식 지정일이라고 예외일 리가.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 현대적인 삶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지는 게 만만할 리도 없다. 어쩌면 두려운 일. 의도적인 친밀함으로 무장한 채, 친하고 싶은 너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는 듯한 도회의 카페조차 때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밸런타인데이는 이런 이상한 시절의 거대한 로맨스 미스터리가 되었다. 다들 쇄뇌되었다. 왠지도 모르면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결혼식에서 부케를 던지고, 졸업식 날 밀가루를 뿌려댄다. 사랑의 공식 지정일이라고 예외일 리가. 그날, 세상은 당연히 받아야 되는 사람, 마땅히 안겨줘야 하는 사람, 두 부류로만 나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암수 가릴 것 없이 서로를 위해 부산스럽다.

여자애들은 아침 일찍 방산시장에 가서 초콜릿을 위한 키트를 원스톱 쇼핑한다. 카카오 덩어리, 짤주머니, 색색의 별 모양 스프링클, 유산지 컵, 포장지, 밀봉용 스티커, 캐릭터 타이, 종이상자…. 돈 좀 가진 남자들은 순도 높은 카카오의 고급한 씁쓸함을 흠씬 묻힌 초콜릿 가게 앞에서 한없이 긴 줄을 만든다. 며칠 전부터 꽃가게에 예약해두지 않으면 뭔 일 나는 줄 아는 세상. 장미꽃 숫자 는 제한돼 있으나 그녀 몫으로 미리 챙긴, 줄기가 긴 장미 다발이 가죽 잎사귀에 싸여선 박스에 담긴 채 아기 젖 냄새 같은 향기를 풍기며 배달되는 것이다. 헤어지고 나면야 그 장미가 얼마나 비싼 거 였는지 지껄여댈 테지만. 초콜릿은 서랍 구석에서 진작에 미라가 됐거나 딴 선물로 재활용되어버린 지 오래일 테지만.

아직 밸런타인데이 미션은 끝나지 않았다. 여자들은 자격이 있건 말건 황홀한 저녁을 원한다. 여자의 심장은 뛰게, 남자의 심장은 멈추게 하는 요리를. 심장 수술조차 그 하나보다 싸게 먹힐 메뉴를. 너무 요란해서 성적으로 식어버릴 정도의 코스를. 요즘 여자들에게 로맨스란 남자의 지불 의사와 같은 것. 하트가 그려진 케이크, 하트를 닮은 라비올리, 라스베리 소스가 하트처럼 뿌려진 패스트리, 그릴로 구운 스위트 하트 피자, 굽다 보니 하트 꼴이 된 스테이크 중 뭘 먹을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싹 다 먹어버릴 거라서. 뭐가 됐든 하트가 없다면 큐피트가 다 죽여버린다고 활을 쐈을 거라서.

밸런타인데이 박람회는 끝났다. 와인을 마시고 입가심으로 마신 맥주에 만취해 그 비싼 백을 택시에 두고 내렸을 때 여자들은 비소로 알게 된다. 진실한 사랑 따위, 레스토랑 근처 모텔에서의 하룻밤만 못하다고. 그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매너는 남자에게 함께 해달라고 떼쓰지 않는 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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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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