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돌고 돌고 돌고

2014.03.05GQ

레코드가 돌아왔다. 레코드가 팔린다. 그런데 선뜻 반기긴 어렵다.

Culture판형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한정판 LP로 재발매됐다. 제작사는 기존 발매 CD와 음원이 왜곡되었다고 했다. 소리가 늘어지고, 목소리만 부각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었다. 재발매 된 <사랑하기 때문에>는 이미 음원 웹사이트에 공급을 마쳤다. 재발매반을 포함해 1987년작(웹사이트 기준), 2001년 작을 비교해 들어본 결과, 음질과 곡 길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객관적 지표라 할 수 있는 곡 길이만 봐도 ‘텅빈 오늘밤’의 경우 가장 짧은 버전과 긴 버전 사이엔 20초까지도 차이가 났다. 왜곡된 음악을 본래 에 가깝게 돌려놓겠다는 취지는 성공적이었다.

의문이 생겼다. 그것이 LP 재발매의 당위로서 충분한가? CD나 음원의 재발매였다면 충분할지 모른다. 수차례 리마스터링된 CD로 재발매된 적은 있어도, 이번엔 오리지널 마스터를 써서 복각했으니까. 하지만 LP의 재발매에 관해서라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이번 재발매의 초점은 분명히 LP였다. 음악 감상실에서 재발매 LP와 기존 CD를 번갈아 듣는 행사도 열었다. 키워드는 ‘고음질 LP’였다. 보도 자료엔 “이 걸작 앨범의 음악은 이 고음질 LP를 통해서만 온전히 전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처음 발매된 LP에 가깝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주고자 했다”는 담당자 멘트가 실린 기사도 뒤따랐다. 재발매의 미덕 중 하나가 초판과 근접한 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것을 스스로 거부 혹 은 넘어서려는 듯 보였다.

재발매반을 1987년 발매된 재판(재발매반과 동일한 커버)과 똑같은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 구성으로 들어봤다. CD나 음원과의 비교와는 달리 큰 차이가 없었다. 객관적인 지표라면 재발매반이 재판보다 볼륨이 좀 작고, 곡 러닝타임이 수초 내로 다른 정도였다. 음질이 이렇고 저렇고 하기엔 글쎄. ‘고음질 LP’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저음질 CD’는 아닐 것이다. LP 대 LP라면, 두 장의 LP 모두 좋은 소리를 냈다.

그보단 슬리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재발매반은 하드커버를 썼다. 그것은 장점의 한 부분으로 홍보 문구에 들어 있다. 1987년 작 슬리브는 그보다 얇고 광택이 있는 종이다. 오래된 음반이라 색이 바랜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눈에 재판과 재발매반을 구분할 수 있다. 이 또한 재판과의 동일성을 거부한 증거일까? 그보단 커버의 색감과 종이 질을 재현하지 못하던 팝 라이선스 CD의 고질적 문제처럼 보인다.

재발매의 최우선 당위로는 희소성을 들 수 있다. 2011년, 신중현의 음반이 미국에서 발매됐다. 그가 쓰고 부른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었다. 몇몇은 음반은커녕 음원으로 듣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묻힌 노래가 소비자와 접점을 찾는 건 재발매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다. 그땐 “우리가 할 일을 다른 나라에서 먼저 했다”는 아쉬움이 앞섰다.

유재하의 음악을 희소성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긴 어렵다. 라디오, TV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유재하의 LP는 여전히 시중에서 거래된다. 시중이라 표현한 이유는, LP 시장은 매체 특성상 중고와 신품을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고를 판매하는 곳에서도 신품을 팔고, 신품이 있는 곳에도 중고가 있다. 그렇게 자라온 시장이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1987년 작 재판은 1만~2만원 선이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차별점으로 내세운 음질의 우위는 CD나 음원을 상대로 했을 때만 유효하다. LP 대 LP 구도로서 큰 구분이 없는 상황. 4만원이란 가격은 제작 과정상의 이유겠지만, 1천 장 한정판이란 생색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게다가 1천 장이 순식간에 팔리자, 제작사는 500장을 더 찍어 예약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엔 들국화의 1집, 2집, 라이브 음반, <1979~1987 추억 들국화> 음반이 재발매됐다. 모두 LP 시장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음반들이다. 역시 한정판. 보도 자료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운드를 최고의 품질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습니다”라 쓰여 있다. 하드 커버란 점도 유재하의 재발매반과 동일하다. 이쯤 되면 내용이 어떻든 양장본이어야 팔리고마는 도서 시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LP, 레코드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음악이 아니라 매체가 그것을 드러낸다. 굳이 LP 더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1만원짜리 판을 찾거나, LP 구입을 위한 당위를 따져보는 대신 쉽고 간편하게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취향을 과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 LP 유행 뒤에는 음질이라는 가상의 가치가 들어 있다. ‘아날로그’, ‘따뜻한 소리’는 요즘의 LP 붐을 설명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과연 LP는 CD보다 소리가 좋은가 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LP 재생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변수가 많다는 말이다.하다못해 침압, 바늘 마모도, 턴테이블의 수평 설정도 음질에 영향을 미친다. 애초에 제작사에서 어떻게 LP를 찍었느냐도 큰 변수다. 어느 나라에서, 언제, 어느 회사에서 나왔는지에 따라서도 완전히 소리가 다르다. 즉, 표준이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LP를 팔기에 음질보다 더 좋은 수사는 없다. 그렇게 해서 벌어지는 일이란, 포터블 턴테이블을 사서 내장 스피커로 재발매된 ‘고음질 LP’를 듣는 상황이다. LP란 매체와 그 홍보 문구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엔 포터블 턴테이블과 LP를 묶어서 파는 특가상품도 있었다.

80년대 말 CD가 서서히 시판될 무렵, 커버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콤팩트 디스크는 현대의 첨단공학이 이룩한 또 하나의 개가로서 종래의 디스크와는 전혀 다른 디지털 방식을 채택해 원음의 충실한 재생, 깨끗한 음질 등을 보장함으로써(중략)….” 역설적으로 “원음의 충실한 재생”은 요즘 ‘고음질 LP’의 단골 수식어다. 소비자는 설득당했고, LP는 사라졌다. 정작 음반사들이 CD를 권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제작 단가가 싸고 대량생산이 쉬웠으니까. 그러면서 판매가는 거의 곱절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이젠 ‘고음질 LP’가 기존의 LP를 잡아먹는다.

다시 좋은 예. 비트볼 뮤직은 2000년대 초 부터 데블스, 히식스 등의 음반을 꾸준히 LP로 재발매했다. 상태가 좋으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음반들이었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Sound of Seoul> 시리즈를 통해 어렵게 수집한 LP들을 재조립한 믹스셋을 냈다. 제작사가 음반을 재발매하거나 LP를 이용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에 해당하는 얘기다. 수고스러운 일을 마다한 채로 발전하는 취향 같은 건 없다. 그런 취향을 기반으로 한 문화는 유행조차 아닌 가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잠깐 갖고 놀던 포터블 턴테이블만 치워버리면 더 이상 생각도 나지 않을 수도 있다.

LP 시장이 커지고 있다. 레코드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 그런데 자꾸 진짜가 아닌 것이 진짜로 둔갑한다. 진짜는 여전히 레코드 가게에서 싼 가격표를 달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터인데, 생산자도 소비자도 거기에 관심이 없다. 차라리 그저 멋있으니까 산다, 팔리니까 낸다는 식의 솔직함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에디터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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