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자가 새 앨범 <It’s Not Too Late>로 33년만에 돌아왔다. “늦기 전에” 팬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곡 ‘몰라주고 말았어’를 들어보니, 오히려 몰라주고 늦은 건 우리들의 헌사였다. 한국대중음악에 관한 가장 진지하고 해박한 조언을 들려주는 네 사람,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이봉수, 하세가와 요헤이, 최규성을 찾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상세한 김추자를 통해 김추자의 현대성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김추자는 김추자다
“하하하, 아저씨, 지금 나오는 노래 누구예요?” 1993년에 일하던 유흥업소에서 ‘기다리고 있을까’를 틀면 어김없이 누군가 묻곤 했다. 국내 레이블 유니버설에서 1973년에 발매한 김추자의 앨범 <뷰티풀 선데이>에 실린 곡이었다. 들어보면 바로 알겠지만 원곡은 더 도어스의 ‘Light My Fire’. 김추자의 개성 있는 보컬과 개사 덕분에 원곡과는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곡을 틀 때 종종 나오는 유쾌한 반응이 좋았다. 김추자라는 이모뻘 여가수의 음악에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 당시 20대 초반의 여느 음악 애호가가 그랬듯이 서구 ‘팝 컬처’의 세례 속에 자란 터라, 그녀의 곡이 표현하는 묘한 ‘이국성’이 흥미로웠다. 1970년대 한국 가수들이 부르고 녹음한 대개의 팝송처럼, 그 직설적 표현과 개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비록 서양 음악을 듣고 자라며 생긴 ‘뒤틀린 오리엔탈리즘’의 발로였겠으나.
하지만 얼마쯤 시간이 흘러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신중현 사단의 여가수들, 이정화나 김정미를 알게 되면서 김추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내 맘대로 부여한 순위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들려오던 김추자의 컴백 소문에도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비트볼 레코드에서 재발매할 안타기획 카탈로그를 정리할 때, 대표 안치행이 볼멘소리로 “김추자 리사이틀 음반으로 내가 손해를 얼마나 입었는지 아냐”는 회고를 듣기도 했다. 솔직히, 김추자의 전설이 허명은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와는 별개로, 스판덱스를 입고 힙을 내민 커버로 인해 김추자의 그 리사이틀 음반은 안타기획 재발매 시리즈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유명세를 타던 몇몇 작곡가와 준비하던 신작이 엎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앞선 풍문이 사그라지기 무섭게 송홍섭과 함께 돌아온다 했을 때도 반신반의하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전설 대접을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를 알렸던 여가수들의 실패, 혹은 무의미한 신작 행렬을 숱하게 보아 왔으니 말이다. 장은숙의 복귀를 반가워하며 역촌동 기계 우동집 아줌마와 수다를 떨던 날이 아직도 부끄럽다.
“하하하, 여보시오, 이게 도대체 지금 이곳에서 만든 노래가 맞단 말이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김추자의 새 앨범이 발표된 6월 2일은 가왕 혹은 전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또한 ‘가수’의 정의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시대에 부합하는 세련된 마인드’나 ‘케이팝 원조’ 등의 말과는 하등 관계없는 원초적인 매력의 가수 그 자체. 영화 소재 같은 ‘소주병 난자 사건’이나 ‘북한과의 비밀 수신호 댄스’는 이제 잊어도 좋을 기억으로 가볍게 날려보내는 앨범이었다.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일명 ‘신중현 사단’의 적통 중 적통은 바로 나야!, 라고 외치듯 구어체 가사를 신중현의 호흡으로 노래하는 첫 곡이라니…. ‘몰라주고 말았어’에서 ‘가버린 사람아’로 이어지는 ‘원투 펀치’를 뛰어넘는 음반은 아마도 올해 안에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다. ‘소울 가요’ 분위기로 가득한 앨범이 나온 것은 또 얼마만인가. 과거의 미덕으로 남아 있는 내용을 천연덕스럽게 가사로 밀어붙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걸 기다렸다. 과거의 작업에 후회만 남기고, 이제 나이 찼다고 본질을 팽개치는 그런 노래 말고.
“기다리고 있을까, 님이 오실 때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파도가 밀리는 노을 진 해변을 그대와 함께 걷고파. 가을 잎이 지길래, 님이 올까 그렸죠. 하얀 눈이 오길래, 님이 올까 그렸죠. 보고픈 그 얼굴 찾아서 가볼까. 보고픈 얼굴 찾아서 가볼까. 기다려볼까봐, 님이 오실 때까지.” 아, ‘기다리고 있을까(Light My Fire)’에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시치미 뚝 떼고 특유의 꺾기로 희대의 히트곡을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능력, 그렇게 짐 모리슨을 밀어낼 수 있는 능력. 그래,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런저런 반응에 즐거워하며 농담을 던지곤 했어도, 정작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건 나였다. 약간의 공백이 있긴 했지만 김추자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도 하던 대로 노래한다. 사람들은 다시 그녀의 새 노래에 발 박자를 맞추며 ‘몰라주고 말았어’의 창법을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담배는 청자 대신 에쎄를 피우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유일한 부분이랄까. 김추자는 김추자다. 이봉수(비트볼 레코드 대표)
* 김추자와 나 – 3 (하세가와 요헤이)편에서 이어집니다.
- 에디터
- 정우영, 유지성
- 포토그래퍼
- LEE SEUNG YOUN, LEE HYUN SEOK
- 기타
- 자료 제공 및 해설 / 최규성(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