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는 움직일 수 없는 계급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걸 모르는 척 사는 나라니까.
한국에서 2백50만원대에 팔리는 60인치 LED TV가 해외 사이트에서는 1백63만원이다. 약 90만원 차이다. 독일제 전기레인지의 가격은 한국에서 2백60만원, 해외에서 직접 사면 68만 원이다. 이 차이는 약 1백50만원 이상. 한국에서 30만~40만원대에 팔리는 침구가 현지 사이트를 통하면 9만원으로 내려간다.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다 사면 2백만원 정도의 돈을 아낄 수 있다. 10월 16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그렇다. 해외 직구 사이트 가격은 세금과 배송비를 포함한 것이다. 그럼 순진하게 한국에서 이 물건들을 사면서 내는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해외 직구’ 소식을 전하는 어떤 뉴스에서, 한 가전제품 회사 관계자는 한국과 해외 사이트의 TV 가격에 대해 소위 ‘옵션’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설명이었다. 곧 소비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는 스마트 TV를 예로 들었다. “사서 써보니까, 그 화려한 옵션들 다 필요 없더라.” 이걸 소비 망명이라 부르면 과장일까?
한국은 비싼 나라다.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에 견줄 정도로 비싼 도시다. 서울에 있는 한 공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는 집을 대전으로 옮기 면서 삶의 질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교육, 문화 인프라를 예로 들며 ‘그래도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을 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이 전부 서울에서 살면 지금 거기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해. 나는 좀 덜 외롭고 편할지 모르지만 가족들이 애매해지지. 같은 돈으로 서울에서는 못하는 일을 거기서는 다 하고 살거든. 아파트도 서울보다 훨씬 넓고.” 9월 22일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주요 지방 국립대생의 60퍼센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정된 일자리만 있다면 지방 근무를 더 선호했다. 지금 서울에는 약 1천2백 만 명이 산다. 사람 위에 사람, 집 위에 집이 있는 식으로 겹겹이 쌓여 살고 있는 도시가 서울이다. 사람이 많으니 물가가 높은 건 당연한 걸까? 그래서, 좀 싼 도시로 가려는 현상을 도시 망명이라 부르는 건 좀 과한 일일까?
카카오톡을 버리고 텔레그램으로 옮겨 가는 것을 ‘사이버 망명’이라 부르는 것은 이제 위험한 농담, 일종의 유행처럼 됐다. 하지만 호기심과 불신, 재미와 불안 사이에 있는 것은 사실상 은밀한 공포일 것이다. 누군가의 카카오톡을 수사기관이 들여다봤다는 건 심령물에 가까운 얘기다. “저기,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언로의 골목길까지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누군가는 신문과 방송에 대한 통제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큰길을 막았으니 좁은길도 단속하는 걸까? 한국의 언론 자유도는 세계 68위다. 지금은 ‘제한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된다. 이것을 ‘통제’의 결과로 인정한다면, 이제 그 대상이 어떤 단체나 기업을 넘어 개인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국내 포털 사이트보다는 구글을 선호하고, 어떤 현상을 파악하고 싶을 땐 한국 언론의 기사와 외신을 동시에 찾아보는 것은 그나마의 방편일 수 있다. 이건 미디어 망명일까?
다시 돈 얘기로 돌아가자. 거대한 액수의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개인의 푼돈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하는 일이다. 기업은 물건을 팔고 정부는 세금을 걷는다. 예를 들면, 담뱃값 인상은 정부의 수입을 늘리는 일이다. 그것이 금연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갑에 1만5천원쯤 하면 효과가 좀 있을까? 2천원을 올렸을 때 정부 의 세수가 최대에 이른다는 건 ‘국민 건강을 생각하다 보니 세금도 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될까? 담배는 기호품으로 분류돼 있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담뱃값이 올랐을 때 그게 더 절실해지는 사람은 누굴까? 담배 한 대가 타는 그 짧은 동안 아주 잠시의 위안을 얻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아닐까?
9월 24일 <가디언>에는 ‘가난한 사람은 장기적인 계획을 짜지 않는다. 가슴이 아플 뿐. Poor people don’t plan long term. We’ll just get our hearts broken’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페이스북 페이지 ‘외신 번역 프로젝트’는 이 긴 기사의 간단한 요약을 전했다. 화자 는 ‘남편과 함께 두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 하며 아이 둘을 기르는 린다 티라도’였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담배를 피우고 정크 푸드를 먹으며 마약을 하는 이유는 가장 빨리, 가장 싸게, 가장 효율적으로 뇌에 충족감을 주며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몸이 녹초가 돼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때, 담배 한 모금을 마시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디언>에 실린 기사는 그녀가 쓴 책 의 일부를 소개한 것이었다.
담뱃값은 ‘좀 무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오를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그걸 미처 포기하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으로부터 조금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대인 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은 10월 16일 <오마이 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세 정책처럼 세금을 깎아주는 건 쉬워도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누구든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럴 때 숫자는 작아도 부자 집단의 반발은 엄청 거세다. 반면 담뱃세 같은 간접세는 납세자가 세금을 직접 내기보다 소비나 거래를 통해 자동으로 낼 수밖에 없는 세금이다. 기분이 나빠도 담배를 끊기 전엔 낼 수밖에 없는 세금인 것이다. (중략) 가진 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 이해관계에 반하지 않으면서, 조세 저항이 약한 간접세를 인상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유리하 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젠 슬슬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 나도 모르는 어딘가로 허락도 없이 망명을 신청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지 않나? 여기에 이른 바 ‘부자 감세, 서민 증세’의 세부를 더하면 천천히 윤곽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10월 5일 <연합 뉴스>가 보도한 “국민연금, 10대 그룹 주식투자 ‘1조 6천억 날아가’” 같은 기사를 보면 더 확실해지는 게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혹은 생산자와 소비자로 분리 돼 있다. 대부분의 개인은 종업원이자 소비자다. 누군가에게 고용된 상태에서, 그들이 주는 돈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돈은 큰 집단, 큰 기업, 큰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10월 15일 <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순자 산 5백억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가 약 1천9백 명이라고 한다. 절대 다수가 그들이 소유한 땅 위에서 뭔가를 빌려 세를 내고 산다. 이 와중에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형식의 망명은 그저 소극적인 시도인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아끼려는 시도, 혹은 이 상황을 조금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욕망일 뿐이다.
그렇다면 출구는? 지금은 아무래도 돈이 주인인 것 같은 시대인데,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그나마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지금은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친한 형으로부터, 몇 년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너 ‘투잡’ 생각 없냐?” “아르바이트?” “아니 내가 친구랑 식당을 차릴 건데, 너 생각 없냐? 저기 대학교 앞에 목 좋은 자리가 하나….” 그는 지금 거의 모든 직장인의 화두가 일종의 아르바이트 혹은 개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 돈에 은행이 빌려주는 돈을 더해 누군가가 가진 건물에서 뭔가를 판다는 계획인 것이다. 그 앞을 지나는 불특정 다수에게서 받은 돈으로 조금 더 잘살고 싶은 욕망. 그 형의 목소리에서 읽은 것이 자신감보다 불안 에 가까웠다면, 그건 또 지나친 해석일까?
시대가 개인을 구차하게 만든다. 모든 피로는 인정해야 마땅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 앞으로 집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욕망에는 끝이 없으니까, 지금 버는 돈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심지어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그 회사에서 정년을 맞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그것마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은 뭔가를 단단히 가진 사람이 움직이는 나라가 됐다. 계급은 가진 것의 양이 결정할 텐데, 그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은 겹겹이 막혀있는 것 같다.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땐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곤 하는 법인데…. 그렇지 않으니 다양한 형식의 망명을 시도하는 것이 2014년 한국의 가을 풍경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사실만이 차갑고 냉정하다.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