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가 프랜차이즈를 베끼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속도에 휩쓸려 원조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베끼기 관행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요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관행이 이젠 전략이 된 것일까? 사례는 수두룩하다. 2000년대 초반, 찜닭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무슨 무슨 찜닭집이 우수수 생겼던 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후에도 김밥집, 우동집 할 것 없이 프랜차이즈는 유사 상표와의 전쟁을 치러왔다. 그런데 최근, 정확히는 작년부터 그 양상이 좀 달라졌다. 유사 상표가 생기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그 상표가 가맹점을 모집해 전국 체인점을 만드는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한두 개의 ‘짝퉁’이 위협하는 게 아니라 유사 상표의 수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하나의 원조 뒤에 수십 개의 유사 상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작년 여름을 휩쓴 ‘스몰비어’ 열풍, ‘눈꽃빙수’ 열풍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스몰비어는 작은 규모의 호프집으로 크림 생맥주를 주력으로 판매하면서 감자튀김 같은 간단한 안주를 파는 곳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아늑해서 지난여름엔 골목마다 이런 가게가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눈꽃빙수는 우유를 넣고 포슬포슬하게 갈아낸 얼음 위에 치즈, 베리, 인절미 가수 등을 올린 팥빙수 디저트다. 스몰비어 맞은편엔 어김없이 눈꽃빙수를 파는 디저트 카페가 있고, 손님들이 긴 줄을 만들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가게의 행방이 걱정될 정도로, 골목을 장악했다.
스몰비어나 눈꽃빙수나 하나의 원조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미투’ 브랜드에 원조는 의미가 흐려졌다. 불과 1년 남짓 만에 생겨난 비슷한 업태의 프랜차이즈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몰비어집은 봉구비어, 봉쥬비어, 춘자싸롱, 청춘싸롱, 춘자비어, 상구비어, 용구비어, 청담동말자싸롱, 몽구비어, 달봉비어 등이다. 눈꽃빙수집은 설빙, 호미빙, 옥빙설, 빙설, 눈꽃마녀, 빙스퐁 등이다. 개인업자가 프랜차이즈를 흉내 낸 게 아니다. 프랜차이즈가 프랜차이즈를 흉내 낸 것이다. 가맹점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가맹점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과장 좀 보태, 트위터의 리트윗만큼이나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금은 매운 등갈비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끼얹은 ‘치즈등갈비’ 업종이 사방으로 퍼지는 중이다.
과거의 프랜차이즈 베끼기는, 원조집에서 일하던 직원이 기술을 배워 엇비슷한 상품을 만들고, 이 집이 장사가 잘돼 가맹점을 늘리면서 논란이 시작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과정을 훌쩍 건너뛴다. 원조집의 음식, 콘셉트, 기물, 로고 등을 비슷하게 가져와 바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다. 직영점을 열고 홍보하는 기간도 없이 브랜드 등록 후 바로 가맹점을 모집하기도 한다. 무려 원조집의 사진과 음식으로 자료를 만들어 홍보하는 곳도 있다.
음식점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타는 것과 비례해 프랜차이즈 베끼기 역시 속도가 빨라졌다. 이 과정에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소비자들이다. 원조와 후발주자의 등장 간격이 워낙 짧아 소비자는 무엇이 원조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엔 원조집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가게를 채 알리기도 전에 유사 업체와 싸울 준비부터 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베끼기가 빠르고 넓게 퍼지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예전엔 원조집을 흉내내려면 하다못해 레시피라도 캐내거나, 원조의 맛을 연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 득세하고 있는 외식 업종은 생각보다쉽게 그 맛을 따라잡을 수 있다. 이를테면 눈꽃빙수는 얼음을 눈꽃처럼 얇게 갈아주는 기계를 구입하면 만들 수 있다. 세세한 재료의 배합이나 방식에선 차이가 있겠지만, 기계만 있으면 핵심을 얼추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 한 해 눈꽃빙수의 대박으로 눈꽃빙수 기계의 개발과 대리점 사업도 덩달아 커졌다. 동시에 기기 사업이 커지면서 눈꽃빙수 프랜차이즈는 다시 또 부풀어 오를 수 있었다. 스몰비어도 마찬가지다. 스몰비어에서 파는 거품이 풍부한 국산 맥주를 ‘크림 생맥주’라고 부르는데, 이것 역시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맥주를 뽑아내는 업소용 기계가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베낄 때 맞딱뜨리는 가장 큰 장벽이 쉽게 사라지는 셈이다. 기술이 쉽게 공유되니 당연히 후발 업체에 속도가 더 붙을 수밖에 없다.
“비슷한 콘셉트의 가게가 이렇게까지 난립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망하는 곳이 생기겠지.” 이 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각자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로 사활을 걸고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우유 맛이 진한 아이스크림 위에 벌집채 꿀을 올려 인기를 끈 소프트리가 유사 브랜드 밀크카우를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청구 소송이다. 지난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에 밀크카우는 벌집 아이스크림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소송이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크지만,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베끼기에 제대로 제동이 걸리리란 기대를 품을 순 없다. 실질적으로 유사성을 입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벌집 아이스크림 업계도 이번 소송이 판결되기까지 업체 간 잡음과 뒷소문이 무성했다.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언론과 이슈로 문제를 타결해보려던 몇몇 업체 때문에 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한 업체가 파라핀 벌집을 쓰는 다른 업체를 고발하려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는 것이다. 유사한 제품을 파는, 심지어 메인 요리에 곁들이는 음식의 구색까지 유사한 업체들끼리는 애초에 건강한 경쟁을 벌이기가 힘들다. 저가화장품 시장처럼 서로 다른 경쟁력을 지닌 제품으로 안정적인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려면 갈 길이 참 멀기도 멀다.
그동안 ‘미투’ 제품으로 노이즈를 만들던 곳들은 주로 과자 업계나 라면 업계였다. 소위 대기업끼리의 경쟁이다. 소비자들은 유사한 상표에 속아 다른 제품을 사곤 했지만, 누군가가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프랜차이즈 베끼기 열풍이 위험한 이유는 이런 출혈 경쟁으로 소상공인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3528개, 가맹점은 20만 개에 이른다. 이 중 외식업이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들 중 취미로 외식 프랜차이즈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퇴직 후 뛰어든 사람들을 포함해, 가맹점을 내는 사람들은 가게 하나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외식의 유행이 프랜차이즈에 잠식되진 않는다. 클렌즈주스 열풍이나 랍스터롤의 인기는 외식 업계의 흥미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성업 중이다. 작년 가로수길에 처음 등장한 아사이볼 카페 ‘보뚜 아사이’를 만들었던 보뚜슈퍼푸드의 김준범 대표도 건강한 경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을 모방하려는 후 발주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파트너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보뚜슈퍼푸드가 아사이볼을 만들 때 필요한 아사이베리 스무디 팩을 직접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다른 제품의 스무디 팩도 수입되고 있지만, 스무디 팩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삼바존의 제품을 독점 수입하고 있어 이런 제안이 가능하다. “프랜차이즈화를 한다기보다는 직영점을 확장하거나, 파트너십을 맺고 합작하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획일적으로 가게를 퍼뜨리기보단 해당 지역에 맞게 키우려는 것이죠.” 김준범 대표의 말이다. 유사 업체들이 아사이볼 시장에 뛰어든다고 해도 김대표로서는 제지할 방법이 없다. 다만 천천히 사업을 키워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인지시키고, 다른 업체가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해두는 것밖엔.
자, 그럼 소비자들에겐 문제가 없을까? 외식 프랜차이즈에 반응하는 우리나라 손님들의 행태가 좀 재미있다. 그들은 엇비슷한 가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고 해서 식상함을 느끼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행 그 자체를 흠뻑 즐기는 쪽이랄까? 치즈등갈비 가게가 갑자기 많아지고, 블로그에 치즈등갈비 인증샷이 엄청나게 올라온다고 치자. 소비자들은 그 유행에 빠르게 탑승해 또 다른 블로그 게시물을 생산한다. 트렌드의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즐긴다. 우르르 몰려가 화르르 소비한다. 대신 다른 트렌드가 보이면 또 완벽하게 갈아탄다. 이런 소비 행태가 외식 업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소비자 성향때문에 스몰비어집이 교회만큼 많이 생겨도 당장은 장사가 잘 된다. 이런 소비자 특성을 간파하고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 많던 빙수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에디터
- 손기은